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90화 (29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90화

이해성의 오타쿠 자아가 있는 나로선 확신할 수 있다.

심각한 정도가 아닌, 적당한 찢김은 오히려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 아 심장 철렁했네 다행이다 바로 수습돼서

- 코디 ㅅㅂ 옷 제대로 만들어라 대체 어떻게 만들면 이렇게 됨?

물론 겉으론 이런 반응이 주가 되겠지만, 자물쇠 계정…… 즉 심연에서는 조금 다른 반응이 나온다.

- 코디 선생님의 큰 뜻 잘 알아들었습니다

- 의상 : 제가 한번 찢어져 보겠습니다

우리 : 복받으세요

- 앞으로 코디님을 내 스승으로 떠받들어 모셔볼게 고맙습니다

일부러 이런 짓을 벌이진 않겠지만, 혹시라도 찢어진다면 그것 나름대로 화제가 되겠지.

하지만 차윤재는 이런 쪽으로 은근히 보수적인 성격이라서 말이다.

“무대에선 이쪽 천을 살짝 덧대어달라고 부탁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이런 순진무구한 물음이라니.

나의 답은 당연히.

싱긋…….

“저, 저도 그냥 해본 말이었습니다!”

만면에 미소를 띤 내 낯짝을 마주한 차윤재가 다급하게 말을 바꿨다.

“절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이 의상으로 말하자면, 치졸하게 성공하기 위해 이해성과 머리를 싸매며 완성한 것이다.

- 제 생각엔 이쪽을 조금 더 파고, 이쪽은 메꾸는 식이…….

- 아무래도 팬분들은 이쪽 부분의 신체 노출을 선호하시니까요. 이쪽은 부담스러울 것 같고…… 흠, 여기 이 부분은 오히려 좋을 것 같네요.

- 그렇죠. 이게 또 라이트온처럼 슬렌더한 체형에 붙은 잔근육만의 매력이…… 잠깐만, 해온 씨가 어떻게 그런 걸 아세요?

-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시죠.

- 어라? 지금 말 돌리시는 거예요?

짧은 회상을 마친 나는 의상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폈다.

화제성은 이끌 수 있지만 절대 과한 느낌은 아닌 디자인.

오히려 컨셉과 잘 맞아떨어져, 돈 냄새가 나는 의상이랄까.

나도 완성된 의상의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인데, 괜찮게 나왔군.

환복을 마친 우리가 착석하자, 샵에서 출장 나온 메이크업 스태프들이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아니, 컨셉안 봤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저희 애들이랑 계속 메이크업 시안 갈아엎었잖아요. 거기 기획팀에 새로 들어오신 분이 되게 적극적이시더라고요.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으시고~”

이해성의 이야기로군.

대화를 이어가며 빠르게 움직이던 붓이 멎어든 것도 그때였다.

“와, 역작인데.”

“너무 치켜세워 주시네요.”

“전 빈말은 안해요. 이야…… 라이트온 분들은 이게, 이게 되니까…….”

어떤 단어를 말하고 싶은 듯, 감탄을 삼켜낸 스태프가 손을 얼굴 앞에서 휙휙 움직였다.

“보통 되는 것도 아니고 약간 규격 외로, 그래! 본판! 본판이 되니까! 뭘 해도 소화가 된다고.”

이번 앨범의 컨셉은 꽤 독특한지라, 메이크업에도 차별점이 있었다.

물론 눈두덩이에 화려한 색을 얹는다거나…… 이런 종류는 아니었다.

애초에 라이트온은 무대 메이크업을 강하게 하지 않으니까.

이번 활동은 보석 같은 파츠와 글리터를 얼굴 곳곳에 붙이는 디자인을 채택했다.

솔직히 당장 오늘까지도 난해하진 않을까 걱정이 컸는데…… 이해성의 주장대로군.

- 이건 너무 과하지 않을까 걱정되는데요.

- 해온 씨는 다른 건 잘 아시면서 이쪽으론 영…… 객관화가 안 되셨네요. 숙소 가자마자 거울부터 보세요.

- ……예?

- 이런 건 얼굴이 개연성인 거라고요.

“음.”

나는 시선을 돌려 멤버들을 훑었다.

확실히 화려하게 생긴 놈들이라 소화력이 좋았다.

‘오히려 나보다는 이 녀석들이 더 어울리지.’

메이크업을 비롯한 헤어 세팅을 가장 먼저 끝마친 나는 뮤직비디오 세트장으로 발을 내디뎠다.

‘엄청나군.’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메인이 될 장소는 부서진 신전이었다.

신전을 연상시키는 기둥과 난간 등…… 대리석 느낌의 화려한 구조물들이 드넓은 스튜디오 곳곳에 늘어져 있었다.

내가 그것들을 둘러보고 있을 무렵, 등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게 나왔지요?”

“……! 감독님.”

인규호에게 곧장 인사한 내 낯짝에 서서히 의문이 감돌기 시작했다.

‘왜 안 가는 거냐.’

인규호가 꼭 ‘대화’를 하고 싶은 인간처럼 그 자리에 발을 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 저에게 전달 주실 사항이 있으실까요? 변동된 게 있다면 편히 말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요…… 크흐.”

나는 난데없이 실실대기 시작한 인규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온 말은 더 황당했다.

“사실 인철호…… 좀 재수 없지 않아요?”

“……?”

이건 상상도 못 했던 대화 주제인데.

……뭐 하는 놈이지?

“좀,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알거든요~ 밥맛이야. 솔직히.”

“…….”

“이런 말 곤란하죠?”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근데 너무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어. 그 인철호를 쥐었다 폈다 한 장본인이잖아요.”

손깍지를 껴 본인의 뒷통수를 감싼 인규호가 말을 이었다.

“뭐…… 저는 형이 데뷔시키는 그룹 작업도 말도 안 되는 단가에 해줬거든요. 엄마나 아빠도 ‘가족이니 해줘라~’ 하시니까. 제가 이래 봬도 말 잘 듣는 아들이라.”

인규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점점 분한 거야. 나는 돈 좋아하거든요. 벌어도 벌어도 좋잖아, 돈은.”

일단 고개를 끄덕인 나는 차분한 낯짝 아래로 대가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게 고도의 엿먹이기일 가능성은?

이번 건은 인철호와의 딜로 얻어낸 것이니, 형제간의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인규호가 저렴하게 해줬을 확률이 크지 않나.

내가 할 말을 고르고 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형이 막, 하하하!”

인규호가 처웃기 시작한 것이다.

“뒤통수 한 대 제대로 맞은 얼굴로 나한테 부탁을 하는 거예요! 세상에, 그걸 찍었어야 하는 건데.”

통쾌하다는 얼굴의 인규호가 손가락을 기분 좋게 튕겼다.

“전 알거든요. 그 인간, 돈 진짜 많은 거! 물론 나도 많지만 억울하잖아. 매번 가족이란 이유로 털어먹는 게~ 지 돈은 아깝고, 내 노동력은 당연한 거지.”

평소에 쌓인 게 많은 모양이군.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선택을 했어요.”

“어떤 선택을……?”

“인철호의 지갑을 털어먹기로.”

인규호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고, 나는 사람을 매체에서 보이는 이미지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알고 있던 인규호의 이미지는 점잖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런데 본판은 수다쟁이였군.

“들어봐요. 그 인간, 아니 우리 형이 아니나 다를까 또 가격을 후려칠, 큼, 싸게 하려고 하는 거예요? 가족 좋은 게 뭐냐면서 협조해 달라고 하는데…… 알 게 뭐야. 나는 돈이 좋은데.”

인규호가 입매를 끌어당겼다.

“내가 스케줄이 안 맞는다고 살살 뺐더니,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고 하더라고. 성해온 씨가 나랑 연결해 달라고 했다면서?”

인규호가 내게 엄지를 내밀었다.

“좋은 선택이었어요. 인철호를 엿 먹이다니…… 아주 훌륭해. 그 계획에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그래서 이번 뮤직비디오엔 욕망 실현 좀 했어요. 어차피 인철호 돈인데, 뭐.”

인규호가 상상만 해도 즐겁다는 듯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사실 뮤직비디오의 조율 단계부터 무언가 수상하긴 했다.

- 이건 단가가…… 솔직히 그쪽에서 거절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한도에 제한이 없다고 하셨다지만…….

- 일단 들이밀어 보기나 하죠.

정재진의 우려에, 나는 그냥 찔러보자는 의견을 더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답변은 금세 도착했다.

그것도 당연히 된다는 내용을 담아서 말이다.

오히려 거기에 추가적인 제안을 하며, 한 술을 더 뜨더라.

나는 인철호가 노망이 왔나 싶었는데, 이 인간의 짓이었군.

“아, 걱정은 말아요. 형 이거 하나는 많거든.”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동전 모양을 만든 인규호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라이트온 이번 뮤직비디오 컨셉 너무 좋더라고. 해보고 싶었던 거거든~ 그래서 더 재밌었지, 나도.”

* * *

‘해보고 싶었다’는 말이 사실인지, 인규호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본인도 빠르게 찍고 파하는 게 편할 텐데, 그렇게 붙잡다니.

- 이 부분 마음에 안 들어서 한 번만 다시 갈게요. 오버더숄더샷이 제대로 안 잡혔어.

결국 하루로 예정되어 있던 촬영이 이틀로 늘어나 버리기까지 했다.

거센 강도의 촬영을 양일 연속으로 진행한 탓인지, 밴 안엔 앓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당장에라도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래.”

멤버들이 이 정도였으니, 내 상태는 안 봐도 뻔했다.

안 그래도 난이도가 높은 안무를 촬영 내내 반복했으니, 허접한 몸뚱어리가 남아날 리가 있나.

그냥 뒈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몸에 힘을 뺀 채 눈을 느릿하게 껌뻑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숙소 거의 다 왔습니다. 많이 피곤하시죠? 내일은 조금 늦게 픽업 오겠습니다. 여유롭게 주무세요.”

늦잠을 자도 괜찮다는 매니저의 발언에, 멤버들의 눈에 생기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요즘은 새벽부터 연습실행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습도 밤늦게 끝나곤 했으니, 평균적인 수면 시간은 기껏 해봐야 5시간 정도였거든.

‘오늘은 바로 잠든다면…… 7시간은 잘 수 있겠군.’

어느새 멈춘 차체에서 멤버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류인이 하하 웃으며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진짜 피곤하네…… 가자마자 뻗을 것 같다.”

누적된 피로로 인해 눈도 제대로 못 뜬 멤버들이 고개를 까딱이며 긍정했다.

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층에 당도하자, 멤버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안으로 쏟아지듯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간 내가 외투를 벗자, 신유하가 속삭이듯 말했다.

“형이, 먼저 씻으세요……!”

“어제 내가 먼저 씻었잖아. 오늘은 네가 먼저 씻어.”

“저는 그렇게 안, 피곤해서요!”

안 피곤하긴 무슨, 다크서클이 줄넘기를 할 기센데.

하지만 내 상태가 말이 아닌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나는 배려를 받아들였다.

“고맙다.”

“여기, 수건! 안에 안 접혀 있더라고요.”

“그래.”

수건을 받아 든 채, 방 안에 위치한 작은 욕실로 향하던 내 걸음이 멈췄다.

“……?”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개를 느릿하게 돌렸다.

그리고 주변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그런 내 시선이 고정된 곳은 내 침대 옆 서랍이었다.

내가 저걸 열고 갔던가?

‘그럴 리가.’

안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서랍을…… 열고 갔을 리 없지.

그리고 내 룸메이트인 신유하는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댈 위인이 아니고.

게다가.

서랍뿐만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의 배치도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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