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93화
- 나는 몰랐어요. 도움이 되는 거라면 뭐든 협조할게요. CCTV도 있고, 그 사람들 번호도 있으니까.
부동산 중개인의 적극적인 협조로, 일의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확실한 증거가 한두 개가 아니니, 불범 침입자 셋은 곧장 구속 기소됐다.
남자는 사생의 의뢰를 받고 동행한 용역업체 직원이었다.
- 불법 가택 침입은 성립되지만 실질적으로 입은 피해가 없어서 높은 강도의 처벌은…….
경찰은 처음에 이런 미지근한 입장을 내보였으나, 상황이 역전됐다.
그들의 스마트폰에서는 수백 장의 숙소 사진이 발견됐고…… 인터넷으론 초소형 카메라를 주문해 놓은 게 들통난 것이다.
‘윗집 매물이 팔리기 전까진, 계속 침입을 시도할 요량이었던 거지.’
증거물은 쌓이고 쌓여 침입자 측이 바라던 기소유예는 물 건너갔으며 MH의 법무팀은 강력한 처벌을 원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별다른 이변이 없다면 재판행에 이어 감방행이 확정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계속해서 혐의를 부인하던 침입자들은 명백한 증거가 들이밀어지자, 자세를 낮췄다.
- 저희 진짜 그냥 아무 것도 안 했고요. 훔친 것도 없어요! 이제 눈앞에 안 띄일 테니까 선처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 아직 대학생이고 취업도 해야 해요. 한 번만 봐주세요. 합의금도 드릴 수 있어요. 저희 집 돈 많아요.
하지만 이런 뉘앙스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무섭게, 그들은 태도를 달리했다.
- 하하! 마음대로 해보세요. 숙소에서 뭘 찍었는지 모르죠? 다 USB에 저장해서 숨겨놨어요. 여기서 다 삭제당해도 그건 남아 있을걸? 나가면 다 터뜨릴 거야!
- 방금 제 말이 장난같아요? 꼴에 법무팀이라고…… 라이트온한테 전해줘 보세요. 아마 찔릴 게 많~ 을걸?
우리를 긁으려고 한 소리 같다만, 그다지 타격은 없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동료를 믿는 당신에게 감동합니다.]
딱히 믿는다기보단, 이 녀석들의 평소 행실을 보면 당연한 것이다.
‘찔릴 만한 게 있을 리 없지.’
그런고로, 이건 100%의 확률로 겁주기용 입털기였다.
내 방에 통장이 있긴 했다만…… 수상할 정도로 돈이 많다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점이 있었을 리 없지 않은가.
어찌 됐든, 이들의 쇠고랑 소식은 라이트온 팬덤의 심연에서 은은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사생들 철컹철컹 됐다는 게 실화야? 사이다 한 트럭 마신 듯
- 아 ㅋㅋㅋㅋ 자비 없는 거 너무 좋다 이래야지
- 라이트온 숙소랑 MH 사옥 앞에 사생 수 확 줄었다는 게 코미디임 다들 겁먹어서 ㅋㅋ
처음부터 확실한 증거들로 잡아넣은 덕에, 어그로성이 짙은 기사들도 딱히 터지지 않았다.
‘회사에서 힘을 많이 쓰기도 했고.’
그리고 우리 숙소의 창들엔 도끼로 내려쳐도 잘리지 않는다는 방범창을 설치했으며, 거실엔 CCTV를 달아놨다.
아무튼.
숙소는 평화를 되찾았다.
나를 향한 놀림이 시작된 것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 형이, 어? 어땠는지 알아? ‘있습니다. 사진’ 하면서 스마트폰을 딱 내미는데!”
“…….”
참고로 이건 약 오천 번 정도 들은 말이다.
부동산으로 향할 때, 나를 따라온 최승하를 내버려 둔 탓이었다.
내가 중개인과 대화할 때 답지 않게 얌전히 앉아 있더니, 아주 건수를 물었군.
문제는 다른 녀석들까지…… 무슨 영웅담을 듣는 동네 아이들처럼 눈을 빛내고 있다는 것이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습니다!”
“나도……!”
“그럴 만해. 해온이 이번엔 진짜 멋졌어.”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렇게 해결이 될 거라곤 정말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역시 해온 형이십니다.”
한수현이 끊임없이 주절대기 시작했고, 이 모든 사태의 주범인 최승하가 빙글 웃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눈을 접어 웃었다.
싱긋…….
“또, 또 등 때리려고!”
내 행동반경을 예측했다는 듯이, 최승하가 자신의 등을 숨겼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이 세상엔 기출 변형이란 게 있었다.
[자비(慈悲)의 손길이 베풀어집니다.]
“으브브브븝븝! 빕, 빕!”
최승하의 입을 주욱 잡아당긴 나는 화사한 낯짝을 걸쳤다.
[축하합니다!]
[당신의 자비로움을 모두가 주목합니다!]
[11포인트가 적립됩니다!]
체력이 살살 녹는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알 바 아니었다.
자비의 손길이 베풀어지건 말건, 나는 최승하의 주둥이를 엿가락처럼 잡아늘렸다.
“우브브븝!”
“하하.”
나는 상쾌하게 웃었다.
요 며칠, 쌓인 게 많았던 모양이로군.
* * *
그리고 다음 날, 숙소가 조금 시끌벅적했다.
4월 6일.
신유하의 생일이자, 우리의 데뷔일이다.
물론 생일 파티는 어제 조촐하게 했다.
생일 직전에 소란스러운 일이 있었던 탓인지, 신유하는.
- 굳이, 챙기지 않아주셔도, 괜찮아요. 그냥 조용히 보냈으면, 좋겠어요. 함께, 맛있는 거 시켜 먹는 정도, 로만……!
본인이 먼저 이렇게 제안했으나, 그럴 수야 있나.
나 때와 비슷하게 각자 선물을 마련해 서프라이즈로 들이밀었다.
- ……!
그리고 이 녀석은 정말 예상 못 했던 건지,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로 한참 말을 못 하더라.
나는 눈가가 불어터진 신유하를 힐끔 바라봤다.
‘울었군.’
어제 멤버들과 있을땐 눈물을 꾹 참는 것 같더니,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꿈틀거리더라.
아는 체하면 더 민망할까 봐 대충 모르는 척하고 눈을 감았는데, 얼마나 눈물을 뽑았으면 저렇게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단 말인가.
나는 신유하에게 다가갔다.
“생일 축하한다.”
“어제도, 말씀해 주셨으면서!”
“따지자면 오늘이 생일이니까.”
“……감사해요. 정말 기뻤어요. 아! 물론 오늘도 기쁘, 고요!”
그래 보인다.
내가 녀석의 어깨를 대충 토닥이던 무렵, 최승하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팔을 번쩍 들었다.
“오늘은 해야죠!”
“뭘?”
“라이브! 저희 데뷔일이잖아요. 유하 생일이기도 하고~”
“안 그래도 할 생각이었다.”
나는 멤버들을 불러 앉혀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 * *
갑작스레 울린 라이브 알림에, 허겁지겁 접속한 스위치들이 하나둘씩 빵 터지기 시작했다.
- 아 라이트온 귀엽네 진짜
- 진짜 곧 컴백이라는 거 유라이브 뜸해진 순간부터 개티났는데 어떻게든 숨기겠다고 이러는 게 너무 웃겨 미치겠어 ㅋㅋㅋㅋㅋ 차라리 라이브를 안 하면 될 텐데 팬들 기념일은 못 놓치는 순둥이들아
- 화면 구도 무슨 일인데
머리카락 한 올도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돋보이는 구도였다.
아예 카메라부터 목 아래 쪽으로만 보이게 설치했으니까.
- 이거 약간 범죄 프로그램 증언 인터뷰 구도 아냐? 목소리까지 AI 보이스로 변조돼서 나가면 존똑일 것 같은데
- 너무 웃어서 배아픔 지금
스위치들의 폭소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제 있었던 생일 파티를 설명하던 신유하의 목소리가 촉촉해진 것이다.
[ 정말 놀랐고…… 예상, 예상은 솔직히 안 했다면, 거짓말인데…… 너무…… 이게……. ]
- 무슨 대상 소감이냐고 ㅅㅂㅋㅋㅋㅋㅋ 왜 저렇게 감동한 목소리야 심지어 목소리 떨리고 있음
- 신유하 은근 웃기다니까 차분하게 할 말 다 하는데 그게 개웃김
[ 아앗~ 유하 운다! 울어! 울어~? ]
[ 푸하하, 유하 형님은 눈물이 너무 많으십니다! ]
[ 그건 아닐 텐데. 둘이 비슷해. ]
[ 형니이이임! ]
- 신유하 놀리는 구도에 괜히 참전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아기고양이 (시무룩)
- 성해온 ㅈㄴ 무덤덤한 얼굴로 팩트 툭 던지는 거 내 웃음벨임
그리고 근돌은 새삼스레 감탄했다.
‘라이트온이 이제 3년 차구나.’
입덕한 지 오래된 편은 아니지만, 라이트온은 2년 차를 바라보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망돌이었다.
하지만.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라이트온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현시점 KPOP에서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그룹을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히 라이트온이었으니까.
‘이건 솔직히…… 놀라운 수준이지.’
근돌이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이었다.
가장 가운데에 앉아 있던 성해온이 벌떡 일어난 것이다.
[ 잠깐만요. 저희가 준비한 게 있는데. ]
성해온은 곧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각각 다른 맛의 조각 케이크 8개가 홀케이크의 모양으로 동그랗게 모여 있었다.
[ 유하는 생크림 케이크 좋아하니까 그걸로 어제 파티했는데, 스위치들은 입맛이 다 다를 테니까요. ]
- 팬 생각해서 케이크 종류별로 산 거 왜 이렇게 귀엽냐
- 아ㅜ 나 말차맛 좋아하는데 있음 없는 게 없네
- 내 생일 같아 이렇게 케이크 들이미니까 tlqkf 감동 MAX 상태 됨 지금
어느새 화면에 가까이 다가온 성해온이 작게 말했다.
[ 하나, 둘, 셋! 하면 후우 불어주시는 거예요. 하나, 둘- ]
‘셋’이라는 카운팅이 나오기 무섭게 케이크에 꽂힌 초가 꺼졌다.
동시에 케이크를 든 성해온이 진심이 뚝뚝 흘러넘치는 목소리로 감탄했다.
[ 역시…… 스위치는 타이밍도 잘 맞추시네요. 방금 완벽했어요. ]
- 성해온 뻔뻔한 재질 미쳤다고 지가 위에서 불어서 꺼놓곸ㅋㅋㅋㅋ
- 나는 이런 네가 좋다 해온아
스위치들이 성해온의 행동에 낄낄대고 있을 무렵, 신유하가 카메라 쪽으로 다가왔다.
[ 저…… 스위치들한테, 비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
[ 어어어~? 승하 몰래~? ]
최승하의 물음에, 신유하가 긍정했다.
[ 놀릴, 것 같아서! ]
[ 내가 언제 널 놀렸어? 모함이다, 모함! ]
[ 승하 형,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
[ 우우! ]
멤버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 무렵, 라이브의 카메라 역할을 하고 있는 스마트폰이 쑥 뽑혀 나왔다.
[ 잠깐만…… 1분만! 이야기하고, 올게요! ]
신유하의 가슴팍에 안긴 모양새가 된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
그 탓에 화면은 칠흑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 잠깐만 이거 좀 좋은데? 외간 남자의 가슴에 안기기?
- 약간 4D 체험 같고 짜릿하다
- 유하 이 아기사슴아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려고
- 이 남자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됨
[ 스위치……! ]
작은 목소리를 낸 신유하가 살금살금 말을 이었다.
[ 그…… 오늘은 되게…… 뜻깊은 날이에요. ]
[ 어제, 멤버들이 축하해 주는데…… 울 뻔, 했거든요. 참는 데 성공했지만! ]
뿌듯한 목소리를 낸 신유하가 이내 제 발 저리듯 정정했다.
[ 사실 자기 전에, 혼자 조금…… 울었어요. 아! 이건, 이건…… 비밀이에요! 쉿, 쉿…… 비밀 지켜, 주실 거죠? ]
- 쇤네 목숨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주인님
- 뭐지? 화면에서 빛밖에 안 보임
채팅창 속 스위치들은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고, 근돌은 별 감흥 없는 눈을 껌뻑였다.
류인과 최승하가 아니니 큰 관심이 없는 것이다.
“뭐…… 잘생기긴 했다만.”
작게 중얼거린 근돌은 화면 속 신유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
근돌은 어쩐지 구마당하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