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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94화 (294/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94화

신유하는 조심스럽게 말을 잇기 시작했다.

[ 생일…… 생일인 것도 있지만, 저는 사실,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인데요. ]

[ 바뀌었어요. 스위치, 덕분에, 그리고 또…… 멤버들 덕분에. ]

신유하가 작게 웃었다.

[ 라이트온은, 제 인생을 바꿔, 줬어요. 그래서, 오늘은 제게 정말…… 소중한, 날이에요. 여러분이 함께, 만들어주신 날이라고, 생각해요. ]

동시에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래로 훅 숙여졌다.

신유하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함과 동시에 함께 내려간 것이다.

[ 앗, 이게 아, 닌데! 스위치들은, 인사하지, 않아도 되는데……. ]

버벅거린 신유하가 무언가를 허둥지둥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서류철을 가져와 얼굴을 가렸다.

스마트폰을 적당한 위치에 세워놓은 신유하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 정말…… 감사해요. 응원해 주셔서, 사랑, 해주셔서……. ]

부끄러운지 점점 목소리가 작아진 신유하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 형들, 승하, 동생들과 라이트온으로 데뷔한, 건…… 그리고 스위치들을, 만나게 된 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에요. ]

근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 이렇게 착해?”

신유하에게 별 관심이 없는 건 사실이었음에도, 그런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죄스러워질 지경이었으니까.

근돌은 약간 얼빠진 얼굴로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내가 이렇게 울컥할 정도면, 다른 팬들은 오열하고 있겠는데?”

정답이었다.

- 나는 오늘부로 신유하에 대한 전면적인 지지를 철회한다. 지지를 철회하고 지금 이 순간부터 신유하와 나는 한 몸이 되어 신유하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목숨 걸고 싸우겠습니다.

- 어째서 눈물이?

이미 스위치들은 눈물 속에서 헤엄 중이었던 것이다.

* * *

한편, 회의실에 남겨진 라이트온 멤버들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저, 저 아무래도 유하 형님께 조금 감동받은 것 같은…….”

“저도요. 갑자기 나가시기에, 무슨 생각이실까 했는데…… 흠, 역시 가족이로군요.”

멤버들에게 비밀로 해달라는 게 무색하게, 라이트온은 신유하가 나가자마자 라이브에 접속했다.

한마디로 신유하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그리고 그 배신의 주도자는 지금 감탄을 삼켜내고 있었다.

‘신유하가 그 논란을 알 리 없는데?’

애초에 SNS를 잘 하지 않는 녀석이니까.

그리고 나처럼 모니터링 중독이 아니고서야, 팬덤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꿰고 있을 수 없다.

사실 스위치 타임라인에서는 어제부터 소소한 잡음이 일었다.

녀석의 개인팬들로부터 시작된 논란이었다.

- 아 ㅎ 애 생일 화력 죽는 거 좀 글타 쩝

팔로워가 꽤 있는 팬이었기에, 이 논란은 순식간에 도마에 올랐다.

같은 이유로 서운해하던 신유하의 팬이 여럿 존재했던 것이다.

‘그게 말이냐 헛소리냐’를 주장하는 쪽과.

‘서운하다는 말도 못 하냐? 솔직히 데뷔 전에 멤버들 생일은 피해서 날짜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를 주장하는 쪽이 맞붙었다.

하지만 별 논란이 아니었고 놔두면 자연스레 사라질 논란인지라 굳이 대처하지 않았는데, 신유하의 진심이 담긴 말로 순식간에 상황이 종료된 것이다.

‘놀라울 정도로군.’

짧은 모니터링을 마친 내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순간,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가지고 나갔던 라이브용 스마트폰과 함께 귀환한 신유하가 밝은 얼굴로 우릴 마주했다.

“저 왔…….”

도로록, 굴러간 신유하의 눈동자가 태블릿 PC에 닿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이브 화면이 띄워져 있는.

“봐, 봤……!”

신유하의 얼굴에 엄청난 충격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나는 뻔뻔한 낯짝으로 그 시선을 무시했다.

와중에 쏜살같이 튀어 나간 최승하가 녀석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유~ 하~ 야~ 널 만난 건 나한테도 최고의~ 행운이야아~”

“……! 너, 너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몰래 보고 있었냐고 ㅅㅂ 웃겨 죽을 것 같음 라이트온 어떡함 이 개그 그룹아

- 유하 얼굴 지금 걍 토마톤데

신유하의 얼굴이 붉게 타올랐고,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라이브는 끝이 났다.

* * *

그리고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어느새 5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컴백이 다가온 만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 인간은 뭐란 말인가.

나는 눈앞에 있는 한 인영을 응시했다.

물론 반짝거리는 비즈니스 눈깔을 걸친 채로.

“선배님, 혹시 무슨 일로…….”

“알죠? 우리 곧 쫑나는 거.”

“아.”

직구에 잠시 흠칫한 나는 고개를 주억였다.

알다마다.

트웰브는 곧 재계약 시즌인데, 상황이 영 안 좋게 흘러간다더라고.

어차피 BK가 트웰브를 ‘한물 지난’ 그룹 취급하기 시작한 건 알고 있었다.

멤버들의 단합이 잘된다면, 트웰브라는 그룹의 명줄이 더 이어가지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인간의 그룹은 내부에서부터 불협화음이 심하다.

안 그래도 삐거덕거리던 그룹인데, 회사의 방치와 계약 만료가 다가오니 손쓸 수 있을 리가.

‘흠.’

사실 도진은 아이돌 활동 자체에 큰 열정이 있어 보였던지라, 건너건너 소식을 들은 나도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내가 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쯤, 도진이 커피를 빨았다.

“뭐, 불편하라고 말한 거 아니에요. 앨범 망했을 때부터 예정된 수순이었으니까.”

“음…… 선배님은 어떤 선택을 하든 잘되실 겁니다.”

“입바른 소리는.”

도진이 피식댔고, 나는 도진을 훑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지만, 내 코가 석 자라서 말이다.

게다가 평소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도 아닌데 갑자기 연락이 와서 놀랐다.

마지막 만남이 뭐…… 트웰브와 친한 척을 하며 이미지 관리를 하자는 거였으니까.

내가 면전에서 바로 거절했으니, 그다지 훈훈한 분위기도 아니었고.

‘오히려 안 좋았지.’

그 당시, 도진을 비롯한 트웰브는 날이 바짝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편해 보이는군.’

어느 정도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다들 이 이야기하면 막 불쌍해서 어쩔 줄을 모르던데, 반응이 영 다르네요.”

“선배님은 연예계 활동을 접으실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말마따나 새로운 출발인데 동정할 게 있나요. 응원이면 몰라도.”

내 말에 잠시 놀란 듯한 도진이 이내 웃었다.

“응원이라, 좋네. 나 BK 나갈 거거든.”

“……?”

“왜 그렇게 봐요?”

“조금 의외라서요. 트웰브가 어떻게 되든 BK에 남아 계실 거라 생각했거든요.”

“큰 회사고, 좋은 회사지.”

도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더 작더라도 날 써주는 데로 가고 싶어. 팬들이랑 자주 만나고 싶거든.”

“그렇군요.”

“반응이 담백하네.”

도진은 뜬금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에야 말하는 거지만, 라이트온 재수 없었어.”

“……?”

“멤버들이 친해 보이잖아. 리더 말도 잘 듣고.”

서바이벌 당시엔, 친했다기보단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협박이었다고 합니다.]

그래, 협…… 음.

아무튼 지금보다 가깝지 않았음에도, 도진의 눈엔 그렇게 보였나 보군.

‘하긴.’

트웰브가 워낙 막장이었어야지.

그 그룹의 리더였던 도진은 못해도 수십 년은 늙었을 것이다.

‘화병이 안 걸린 게 대단할 수준이지.’

망나니들이 대체 몇이었는지, 마약 사건으로 멤버들이 우르르 탈퇴한 뒤에도 그룹 내의 자잘한 사건 사고가 아주 많았다.

“처음엔 라이트온 무시도 많이 했어요. 대형 애들은 자부심이 있거든. 연습생이 되는 것부터 경쟁률이 차원이 다르니까.”

3대 소속사 출신 놈들 눈엔, 명훈이의 아이들인 우리가 우스워도 심각하게 우스웠을 것이다.

“근데 가면 갈수록, 내가 비참해지더라고. 대형이면 뭐 해? 더 잘난 게 없어 보이는 거지. 그럴수록 라이트온이 괜히 미워지더라고.”

도진이 휘핑크림이 가득 올라간 카페모카를 휘저었다.

“크으~ 이 단 게 얼마 만인지. 평소엔 관리한답시고 입에도 안 댔거든. 당이 들어가니까 기분이 막 좋아지네.”

어쩌라는 거지.

“지겨운 얼굴이네. 내가 바쁜데 불러냈죠?”

“그럴 리가 있나요. 선배님과의 시간은 언제나 유익하죠.”

“이 입재간도 오랜만이다. 이게 내가 라이트온을 재수 없어 했던 이유였다고!”

나는 화사한 낯짝으로 웃었다.

“괜찮습니다. 전 트윙클이니까요.”

“그래! 이, 이 망할 컨셉질!”

도진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거 때문에 내가 그때 분해서 한 3일 잠을 설쳤다니까? 어디서 이런 컨셉질을 할 생각을…… 그쪽도 진짜 대단해요.”

“컨셉질이라니요. 진심인데요.”

내가 눈깔을 반짝이자, 도진이 아찔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한참 애꿎은 음료만 뒤섞던 도진이 중얼거리듯 입을 연 건 그때였다.

“나 이제 BK 소속 아닌 거 알죠?”

“예.”

“그리고 그쪽 눈치면, 내가 BK 한테 쌓인 게 많다는 것도 알 테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일수록 세대교체에 자비가 없으니까.

수급되는 연습생들의 머릿수가 어마어마할 텐데, 굳이 영광을 잃은 그룹에게 자본을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회사의 규모가 클수록, 연습생들의 실력도 훌륭할 테니.’

하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만큼 비참한 게 없을 거다.

게다가 최근의 트웰브 앨범은 내가 봐도 심각할 정도였다.

아예 회사에서 손을 뗀 것 같은 처참한 퀄리티였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무렵, 도진이 시원하게 웃었다.

“이건 그러니까 복수하는 거라고 생각해 줄래요? 뭐, 겸사겸사 라이트온 얕본 거 사과하고도 싶었고.”

“선배님 그게 무슨 소리신지.”

“BK가 라이트온을 타깃으로 잡았어요. 그것도 꽤 전부터.”

“……!”

“내가 AMA에서 제안했던 거 기억하죠? 라이트온한테도 득이 될 거라고. 아무리 우리 대표가 못돼먹었어도…… 뒷방 늙은이랑 놀아주는 그룹한테 손을 쓰진 않을 거거든.”

“그 말씀은, 제가 그 제안을 거절한 이후로 BK에서 손을 쓰기 시작했다는?”

“빙고.”

손가락을 튕긴 도진이 말을 이었다.

“지금 BK 신인 그룹이 하반기에 론칭한다…… 이런 소리 들어본 적 있죠?”

“예.”

유인성에게 정보를 캐냈을 때 들었던 부분이다.

BK의 신인 그룹이 8월에서 9월 쯤으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고.

“그거 아니에요. 걔네 지금 데뷔 임박이야. 일자가 엄청 당겨졌는데, 기사 한 줄 안 나갈 정도로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어. 그 이유가 뭔 줄 알아요?”

“……알 것 같네요.”

“하하, 눈치가 역시 발군이라니까. 맞아요.”

요즘 이 바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그룹 중 하나는 라이트온이었다.

그런 그룹을 단번에 꺾고 올라가는 신인 그룹이 있다면…… 이미지가 어떻게 박힐까?

당연하게도 ‘대형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손에 쥐어진다.

도진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컴백을 준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BK도 신인 그룹의 론칭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래.

BK, 이 빌어먹을 회사는 처음부터 라이트온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생각이었던 것이다.

헛웃음이 절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하하.”

나는 눈알을 데굴 굴리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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