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95화 (295/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95화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도진을 만난 다음 날부터 기사가 속속들이 떠오르기 시작했거든.

[ ‘BK 특급 신인’ 에이원 데뷔 임박, 올봄에 출격 예고……. ]

[ KPOP 리더로 자라날 준비가 완료된 신인 그룹 ‘에이원’ ]

에이원의 프로필이 하나씩 공개되며, 데뷔를 알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우리의 컴백 4일 전이었다.

대형 소속사의 신인 그룹은 언제나 화제성을 몰고 오게 마련이기에, 라이트온의 컴백에 쏠려야 마땅했을 관심이 서서히 분산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성해온 씨, 저도 정말 몰랐던 사실입니다. BK가 작정하고 거짓 정보를 풀었어요.

에이원의 공개와 동시에,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유인성이 쩔쩔맸으나…… 이건 딱히 이 인간의 탓이라고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컴백일자를 어떻게 정했든 간에, BK는 우리를 따라왔을 테니까.

‘우리가 쌓은 화제성을 날름 처먹을 기회인데, 놓칠 리가 있나.’

도진의 말로는, 그쪽도 이를 갈고 준비하고 있다던데.

BK의 자본력은 말해 뭐 해 수준이니, 아마 큰 자본을 등에 업고 데뷔할 것이다.

이미 음악방송의 컴백 예정 그룹에 라이트온이 소개됨은 물론, 티저까지 공개된 상황이니 컴백 일자 조정은 불가했다.

뭐, 가능하대도 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이번 일의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마 BK는 우리의 단물만을 쏙 빼먹겠다는 전략이었을 거다.

라이트온을 찍어 누를 자신이 있으니, 둔 수겠지.

하지만.

우리가 상황을 역으로 뒤집는다면 어떨까.

그래, 예를 들어…….

‘라이트온’이 ‘에이원’을 압도적으로 이긴다면?

배우 기획사 소속으로 아무런 백이 없는 그룹이, 대형 기획사의 자본을 쏟아부은 그룹을 뛰어넘는다면?

라이트온의 연차는 고작 3년 차.

실제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년이 조금 넘은 상황.

대형 출신의 신인을 성적으로 누른다는 건, 우리 쪽에서도 호재였다.

물론 리스크는 상당하겠지만…… 걸어온 싸움을 피하는 건 성격에 안 맞아서 말이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자신이 없는 건 아니라서.

나는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 * *

5월 5일.

컴백이 4일 남은 타이밍에, 강도 높은 연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연습실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숨을 고르며 물을 들이켰다.

요즘은 체력이 먹고 죽을래도 없는지라, 자비 특성이 발동되지 않게끔 멤버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

그 탓에 서운하다는 눈빛을 받고 있지만 말이다.

“나 혹시 땀 냄새 나나?!”

방금 내게 다가왔다가 내쳐진 최승하가 자신의 옷을 끌어 올려 얼굴에 가져다 댔다.

“하나도 안나는데? 애초에 땀도 그닥 안 흘렸는데! 그리고 나 섬유유연제에 자부심 있는데에?!”

“형님은 웃통을 이렇게 훅훅 까십니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시고!”

최승하의 맨등을 찰싹, 후려친 차윤재가 고개를 절레 저었다.

“하지만 이 형이 요즘 날 피한단 말이야! 숙소에서도! 밴에서도! 연습실에서도!”

서운한 게 많은 모양인지, 최승하가 연습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내가 무슨 잘못했어요? 그럴 리가 있나! 나 같은 동생이 어딨다고!”

아주 자문자답을 하는군.

잘못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치대는 게 죄다.

내 체력이 살살 녹으니까.

“그런 거 없어. 원래 살 닿는 게 싫어.”

“하지만! 전엔 막 하루에 한 번씩 와서 힘내라고 우리 어깨 토닥여 주고 그랬으면서?”

그거야 포인트 수급을 위한 전략적인…….

‘음.’

생각해 보니 내 업보로군.

하지만 가타부타 변명하면 더 웃겨진다.

입을 닫는 걸 택한 나는 연습실을 살폈다.

고된 연습으로 지쳐 있긴 하다만, 대부분 활기를 띄고 있었다.

이 녀석들은 BK가 우리에게 칼을 들이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든.

그저 컴백 시기가 겹친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

“그나저나, BK의 신인 그룹이라니 굉장히 궁금합니다!”

“나도……!”

“트웰브 선배님들처럼 퍼포먼스 특화의 느낌일까요?”

그래, 딱 호기심 정도.

매년 유망한 그룹들이 데뷔하고 컴백하는 건 이 바닥에서 매달 있는 일이기에, 멤버들은 별다른 경계심을 품고 있지 않았다.

나 역시 유인성과 도진이 아니었다면, 그저 떨떠름한 우연으로 치부했을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습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휴식으로 가진 10분이 지나기 무섭게 한수현이 벌떡 일어났다.

“다시 노래 틀게요.”

“으흑흑, 나는 막내가 제일 무서워…….”

“승하 형, 안 지친 거 알아요.”

“지쳤어! 아침부터 쉬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오늘 어린이날인데! 어린이가 이럼 안 되는 거지!”

연습실 바닥에 늘어진 최승하가 강력하게 휴식을 주장했으나, 한수현에게 통할 리 없었다.

“전 19살이고, 어린이 아니에요.”

“네가 아니면 누가 어린이야!”

“…….”

흐릿해진 얼굴의 한수현은 곧바로 타이틀 음원을 재생시켰다.

곡소리만이 가득 차는, 연습의 헬게이트 오픈이었다.

* * *

TEAM. GHI.

인규호가 만든 팀으로서, 현재 이 바닥에서 최고의 주가를 자랑했다.

팀 지하이는 수평적인 구조를 자랑했으며, 대표인 인규호부터가 위계가 없었다.

그 흔한 대표이사실도 존재하지 않으니 말 다 했다.

드넓은 사무실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인규호의 자리.

……인규호의 꼴을 힐끔 본 팀원들은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왜저래?’

‘꽂혔나 보지.’

‘일주일 내내 집도 안 들어갔다며.’

‘가끔 그러잖아.’

격의 없는 대표라지만, 팀원들에겐 오히려 눈칫밥이었다.

대표라는 작자가 저렇게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데 신경이 안 쓰일 리가.

게다가 팀원들은 인규호가 보통 성깔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약간 은은하게 돌아 있다고 해야 할까.

본인이 뭐 하나에 꽂히면 과로로 뒈지기 전까지 뮤직비디오만 보고 있으니까.

팀 지하이는 그 규모와 명성답게 세부적인 업무로 나뉘어 있는데, 대표가 그 모든 걸 디렉팅하기란…… 쉽지않다.

하지만 인규호는 그걸 해내는 사람이다.

‘성공한 이유가 있다’라는 게 팀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인규호를 따라 지옥의 야근 열차에 탑승하게 된 지하이의 팀원들이 눈물을 삼켰다.

이 뮤직비디오를 의뢰받은 순간부터, 인규호가 수상할 정도로 싱글벙글하긴 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돌아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한 팀원은 라이트온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음산하게 낄낄거리던 인규호를 떠올렸다.

커피를 한 모금 삼킨 팀원은 생각했다.

‘내가 봐도 잘 나오긴 했으니까…….’

라이트온의 얼굴이 잘생긴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퀄리티 높은 뮤직비디오까지 더해지니 그 시너지가 엄청났다.

무엇보다.

‘애초에 노래가 좋으니까.’

뮤직비디오는 시각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근본은 곡과의 조화였다.

팀 지하이 역시 뮤직비디오 작업을 진행하며, 라이트온의 곡은 질릴 만큼 들었다.

그러니까, 대충은 감이 왔다.

‘얘네 이번 노래로 좀 뜨겠는데.’

이런 감 말이다.

* * *

곽덕배는 요즘 매일같이 신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라이트온의 뮤직비디오와 음원이 공개되는 게 오늘이었기 때문에!

동료들이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살피고 있을 때, 곽덕배는 쿵쿵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이쪽도 다른 의미의 주식이긴 했다.

‘라이트온 떡상해야 한다고.’

현재 라이트온의 컴백은 상당한 기대감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티저가 몰고 온 임팩트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 인규호? ㄹㅇ 인규호?

- 야 미쳤다 라이트온 뜬다 뜬다 뜬다 뜬다

이 어마어마한 소식에, 곽덕배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떡해, 명훈이 진짜 노망 왔나 봐.’

자신의 최애가 협박으로 얻어낸 뮤직비디오일 거라곤,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곽덕배가 꿈틀거리는 입매를 손으로 가렸다.

‘그 신인 그룹만 안 겹쳤으면 베스트인데.’

BK에서 웬 신인 그룹의 소식을 전하며, 관심이 양분된 게 사실이라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워낙 기대감이 높아서 타격은 덜 받았지만.’

VX, INT, BK…… 이런 대형 소속사에서 론칭시키는 신인 그룹은 그 공개부터 관심을 끌어모은다.

- 아 ㄷㅂ 선배 그룹 콘서트 때 단체 출몰로 연생 아니냐고 말 나왔던 애들인 것 같은데? 마스크 썼는데 눈매가 비슷함 (사진)

- 이 멤버는 아역배우 출신이래ㅋㅋㅋ 어쩐지 묘하게 익숙하더라 잘 컸네

규모가 큰 기획사에서는 유망한 연습생들을 선배들의 무대에 백댄서로 세우거나, 뮤직비디오에 조연으로 출연시키거나, 콘서트에 참관시키곤 한다.

그런 식으로 노출을 곧잘 시켜주는 데다가, 해당 소속사 그룹의 계보를 따라 대대로 덕질하는 팬들의 수도 많기에…… 화제성을 단번에 끌어올리는 게 가능한 것이다.

3대 소속사 중, BK는 트웰브를 논란으로 거하게 말아먹어 가장 약세라지만…… 그래도 대형이라는 이름값이 있었다.

‘하필이면 이때 나올 건 뭐냐고.’

이 그룹만 아니었으면 완벽한 빈집이었기에, 아쉬움은 두 배였다.

여러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뮤직비디오 공개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오후 6시를 10분 앞둔 시각.

스위치들은 과하게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 이렇게 떨려도 되는 거임? 내가 라이트온도 아닌데?

- 구라 안 치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 사실 내가 전생에 라이트온이었던 거 아니냐고 손에 땀남 지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무슨 컨셉인지 잘 예상도 안 가서 더 기대됨;; 멜로디가 개쩐다는 건 알겠어서 미치겠음 그냥 10분 뒤로 기절하고 싶음;;

그렇다.

지금까지 공개된 티저들은 기대감을 폭발적으로 불러일으켰지만, 신비롭고 모호한 분위기가 강조되어 있어 사실상 무슨 컨셉인지 유추하기가 힘들었다.

배경으로 추측하기에도, 대부분 어둡거나 하얀 배경에서의 얼굴 클로즈업이라 여의치 않았다.

“얼굴에 자신 있는 그룹만 할 수 있는 거지.”

고개를 주억인 곽덕배는, 막간을 이용해 이미 닳도록 본 티저를 재생시켰다.

“진짜 극악무도하다…….”

성해온의 개인 티저를 본 곽덕배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냐고.”

- 멤버들 얼굴에 보석 붙일 생각한 새끼 나와라 고맙다

- 너무 반짝여서 시력을 잃을 뻔함

- 아니 남돌 얼굴이 이렇게 홀리해도 되는 거임?

스위치들이 두근거림을 나누고 있을 무렵, 시곗바늘은 정각으로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 LIGHT ON ‘경계선’ Official MV ]

“……!”

곽덕배는 곧바로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켰다.

아주 어두운 화면.

톡.

착용한 무선 이어폰 속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한 뮤직비디오 속에서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물방울 소리는…….

시공간이 모두 정지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화면엔 달빛이 은은하게 스며들며, 암흑과도 같던 공간의 실루엣이 언뜻 드러나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 돈냄새의 상징 중 하나인 신전이었다.

“스, 스케일 무슨 일인데.”

작게 중얼거린 곽덕배가 눈을 크게 떴다.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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