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97화
곡에 대한 평가는 호평 일색이었다.
- 분명 컨셉추얼한데 이지리스닝임 이거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이트온의 이번 타이틀, <경계선>은 굉장히 특이한 곡이었다.
댄스뮤직인 만큼, 퍼포먼스 무대에 맞게 빠르고 자극적인 비트가 뒤섞여 있다.
하지만 벌스와 코러스의 경계가 희미해, 곡 전체가 유기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지녔다.
정신 차리고 보면 몇 번이고 노래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는 노래.
다르게 말하자면, 음원차트에 최적화된 곡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거 진심 된다고 차트 진입 몇 위로 할지 궁금하다
- 벌써부터 음원 반복재생하는 중임 수록곡도 다 개쩌는데 타이틀이 ㄹㅇ 너무 좋아
게다가.
초반 화력의 가장 중요 요인 중 하나인 뮤직비디오가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으니, 반응이 터져 나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 뮤비 보는데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인규호 연출 잘하는 건 알았지만 라이트온이랑 시너지 좋네
- 보는 내내 입이 안 다물림 퀄 하나하나가 끝내준다고;;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가 치솟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해석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 뮤비 해석 이거 소름 돋음 (링크)
그중에서도, 한 스위치가 올린 뮤직비디오 해석본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었다.
뮤비 공개 30분 만에 등장한 해석이었다.
곽덕배는 그것을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 이번 라이트온의 <경계선>엔 무척 많은 세계관의 떡밥이 존재합니다.
- 우선, 이전 에서는 최승하가 불이라는 속성과 크게 관련된 것처럼 연출되었는데요. 그래서 저는 라이트온의 세계관이 ‘원소의 속성과 관련이 있나?’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이건 이전부터 한참 떠돌았던 세계관의 추측 중 하나였기에, 곽덕배는 흥미롭게 타래를 읽어나갔다.
- 그리고 저는 성해온이 주인공이었던 이번 <경계선> 뮤직비디오를 통해 확신을 얻었습니다. 속성과 관련이 있다는 걸요.
- 대표적인 속성이라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불][물][바람][흙]을 떠올리실 겁니다. 이들은 4대 원소이자 속성이니까요.
곽덕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 세계관에서 멤버들이 이런 속성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렇다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라이트온은 4명이 아닌 6명이니까요.
- 그럼 여기서 두 가지를 추가해보겠습니다. 무엇이 있을까요? 전기, 얼음, 풀, 강철, 독……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계선>에선 친절하게도 그 두 가지 속성을 모두 알려줬습니다.
“나만, 나만 몰랐나 봐.”
이미 과몰입한 곽덕배는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 바로 빛과 어둠입니다.
“……! 마, 맞네!”
곽덕배는 순간적으로 돋은 소름에 팔을 쓸어내렸다.
돌이켜 보면, 성해온이 장식한 뮤직비디오의 시작과 끝이 완전한 어둠이지 않았는가!
- 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라이트온이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라이트온의 존재는 무엇일까요? 실험의 결과물? 초자연적인 존재? 그건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하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성해온’은 이 세계관의 키를 쥔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사진) (사진)
트윗엔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뮤직비디오 속, 어지럽게 놓여진 컴퓨터 화면과 시선을 마주치는 성해온.
두 번째 사진은 <경계선> 뮤직비디오 속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성해온은 다시 혼자가 될 것을 알고 있죠. 별다른 반항과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두 눈을 감은 채 몸을 맡깁니다.
- 여러분은 성해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다가온 물음에, 곽덕배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어둠?”
- 대부분은 성해온이 어둠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경계선> 속 성해온은 계속해서 어두움 속에 갇힌 상태로 연출됐으니까요.
“아니라는 뜻인가?”
눈을 빛낸 곽덕배는 빠르게 다음을 읽어내렸다.
- 어둠은 성해온이 아니라 신유하입니다. 그 증거론 이게 있고요. (사진)
뮤직비디오 속, 신유하가 밟은 사과의 사진이었다.
- 굉장히 기묘한 연출이었습니다. 사과는 뮤직비디오에서 꽤 자주 쓰이는 오브젝트라지만, 투명한 과즙이 아닌 붉은 액체가 나왔거든요.
- 이건 제 추측일 뿐이지만, 이건 선악과를 표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선악과!”
선과 악을 구분 지어준다는 열매인 선악과는 주로 사과의 형태로 그려지곤 하니, 그럴듯한 주장이었다.
- 어둠 하면 무슨 느낌이 드십니까? 조금은 악한 느낌이지 않습니까?
- 하지만 신유하는 성해온을 되찾기 위해서 가장 노력합니다. 거울을 깨부수고, 경계선 속 성해온을 불러내죠.
- 이들이 보여주는 관계엔 ‘선’과 ‘악’의 구분이 필요 없다는 것이죠. 신유하는 그 의미로 선악과를 밟아 으깬 것입니다.
“미, 미친 거 아니야?”
- 뮤직비디오 속 멤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죽음’을 암시합니다. 최승하가 스스로 추락을 선택하고, 류인이 미래를 알면서도 독배를 들이켠 것처럼요.
- 다른 멤버들도 신전이라는 공간에서는 감정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입니다. 하지만 신유하가 경계선 속 성해온을 불러냄과 동시에, 이들의 세계는 전부 뒤바뀝니다.
- 폐허 같던 신전에서 별빛이 쏟아지는 공간으로 뒤바뀝니다. 무감정하던 멤버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 찹니다. 밝고, 유쾌합니다.
“……!”
- 성해온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들에게도 빛이 생겨났기 때문에.
삐쭉 소름이 돋은 곽덕배가 팔을 문질렀다.
- 하지만 성해온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경계선에서 불러내졌지만, 불안정하죠. 어쩌면 그 존재 자체가.
- 홀로 물에 비치지 않는 성해온.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인지하고 있는 성해온.
- 이 세계관의 키를 쥔 성해온이 보여줄 이야기가 궁금해졌습니다. 라이트온의 다음 뮤직비디오를 숨참고 기다리는 수밖에요.
“…….”
눈을 질끈 감은 곽덕배는 스스로의 이마를 연타했다.
“너무 좋아…….”
* * *
그리고 오후 7시.
진입 순위가 공개되었다.
- 미친 미친 미친 진입 19위 (사진)
- 돌았나 야 라이트온 1군이다 (아직아닌거알아요)
- 스밍 돌릴 맛이 난다 나 지금 가족들 스마트폰까지 차지함 ㅋㅋㅋㅋㅋㅋㅋ
- 이번엔 2주차에 바로 음방 1위 노릴 만하겠는데?
라이트온의 이전 앨범 은 아무래도 의 수혜를 받았었다.
그 이전까지 진입 차트인은 꿈도 꾸지 못했던 라이트온이 단번에 35위로 진입했으니 말이다.
- 35위! 35위, 차트인입니다!
당시 의 쇼케이스에서 진행자의 외침에 팬석이고 무대고 난리가 났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름 있는 아이돌들도 차트에서 미끄러지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차트인은 만만히 볼 게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라이트온이 진입 19위라는 성적으로 단숨에 체급을 증명했으니, 이건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놀라운 성과였다.
- 랕온깅들아 진짜 어떡하냐 축하한다 애들 너무 행복하겠다 지금
스위치들의 예상대로였다.
아니, 조금 달랐다.
라이트온은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이 상황을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 미, 믿, 믿기지가 않!”
“어, 어떡해……!”
차윤재와 신유하가 눈을 크게 뜬 채로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음원 차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닿아보지 못한 영역이었으니까.
“……이, 이게 정말입니까? 세, 세상에!”
“나도 안 믿긴다. 19위…….”
류인이 혼잣말하듯 작게 말을 이었다.
“정말…… 정말이구나…….”
평소 감정 표현이 적은 달콤이마저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니 말 다 했다.
멤버들은 쿡 찌르면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들이었다.
조금 먹먹해진 분위기 속에서, 최승하가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와아아, 나 진짜 갑자기 힘이 막 나는데?”
“승하 형님, 방금까지 졸리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완전 회복됐어! 아, 너무 행복한데? 너어어무 행복하다!”
“우리 진짜, 잘하자…… 실망 끼치고 싶지, 않아!”
주먹을 불끈 쥔 신유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한수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형들, 오늘은 숙소에 들어갈 생각 마세요.”
밤샘 연습의 선전포고에도, 멤버들은 웃음기를 잃지 않았다.
단 한 명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걱정합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원래 이때쯤이면 걱정은 골드로 하라고 해야 하는데 조용한 걸 보라며 눈물을 콕콕 닦습니다!]
미안하지만 목숨이 달랑대고 있으니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뿐, 절망하고 있는 건 아니다.
‘애초에 진입 10위권은 기대하지도 않았으니까.’
실제로 음원 차트의 상위권은 피 튀기는 경쟁률을 자랑한다.
고공의 히트를 친 곡들이 몇 달 동안 붙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대중성을 자랑하는 아티스트의 곡들이 포진되어 있는 게 차트의 상위권이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진입이 19위?
이건 엄청난 결과였다.
* * *
다음 날.
나는 이동하는 밴 안에서 성적을 체크했다.
현재 <경계선>은 훌륭하게 순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 우리 애들 1군 지망생이에요
- 최고 순위 12위 ㅠㅠㅠㅠ 아 라이트온 가자~
- 수록곡까지 올차트인 미쳤다…
스위치들이 엄청난 화력을 지원해 주고 계시거든.
팬덤의 규모가 커진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놀라울 지경이었다.
“흠.”
그리고 음원은 아마 파인 차트가 기준인 것 같다.
약세한 음원 차트 플랫폼에선 3위까지 찍었는데, 미션 성공 알림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쯧.”
음원 플랫폼의 수는 무척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며, 이용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게 파인 차트.
가장 많은 이용자를 보유한 음원 플랫폼답게 가장 차트 등반이 어려운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형님, 저도 보내주십시오!”
“응……!”
멤버들은 작은 규모의 음원 플랫폼에서 기록한 3위라는 순위에 잔뜩 들떠있었다.
“정말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작은 음원 사이트라지만, 예전엔 이 차트에 들지도 못했는데요!”
눈물 나는 과거로군.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나는 손가락을 탁탁 두드렸다.
지금 <경계선>은 모호한 입지다.
현재 10위권에서 횡보 중이니, 운때가 맞아준다면 알아서 10위권 안으로 한 번쯤은 들어가 줄 수도 있겠으나…….
‘승률이 적지.’
지금 10위권 안쪽의 라인업이 굉장히 화려하거든.
차트의 상위권에 위치한 곡들은 당연하게도 대중적이고, 좋은 곡들이다.
‘우리도 곡이 좋아! 자신 있어!’ 따위의 생각으로…… 그 틈을 파고들 수 있을 거라 확신할 만큼 멍청하진 않아서 말이다.
“…….”
나는 대가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주판 튕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