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99화
……꿈인가?
자신의 시야를 인지하기 무섭게, 근돌이 한 생각이다.
“지, 지, 진짜 미쳤냐고.”
이렇게 말을 떠는 건, 곽덕배나 하는 짓이었는데!
커다란 충격에 근돌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근돌은 얕게 떨리는 손을 쥐었다피며 본분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하지만 제대로 촬영이 될 리 만무했다.
그도 그럴 게.
자연광에서 보는 잔근육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류인의 짧은 상의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살짝 위로 들어 올려져 복근이 드러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저곳이 해져 있어, 몸의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기까지 한 의상이었다.
조금은 어둑한 무대에서 볼 때도 미칠 것 같았는데, 야외에서 이렇게 마주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최승하 역시 엄청났다.
이쪽은 등이 시원하게 뚫려 있었는데, 잘 짜여진 광배근이 그대로 드러나 스위치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실 모든 멤버의 의상이 어마어마했다.
여섯 멤버의 착장 중, 뚫리지 않은 의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근돌의 시선은 지독하리만큼 최애 둘을 좇았다.
‘살아 있길…… 잘했네…….’
인생의 의의까지 찾아주는 비주얼에 근돌은 눈물을 삼켰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이크를 든 차윤재가 밥 먹는 모션을 취한 것이다.
“그…… 식사는 하셨을지!”
오늘 라이트온이 역조공한 점심에 대한 물음이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대답이 튀어나왔고, 이어서 마이크를 쥔 건 신유하였다.
“왜, 안 드셨, 어요! 배고프실, 텐데…….”
“너네 얼굴 보니까 배 터질 것 같아!”
한 팬의 고함에 멤버들이 어깨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최승하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마이크를 들어 올린 것도 그때였다.
“아~ 진짜로요?”
근돌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럴 수가.’
아 진짜요, 가 이렇게 달콤한 느낌이었던가?
최승하가 히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도 스위치 얼굴 보니까 배가 터질 것 같아요!”
“무슨 소리야아아아아악! 살쪄야 돼!”
어느 스위치의 절규에, 성해온이 쿡쿡 웃으며 말했다.
“오늘 기분이 정말 좋아요. 날씨도 좋고…… 음, 스위치들이랑 같이 있어서 그런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고, 근돌의 옆에 앉아 있는 곽덕배도 영혼이 반쯤 털려 있었다.
근돌은 숨 쉬듯이 팬들에게 플러팅을 날리는 성해온을 바라봤다.
최승하야 성격 자체가 워낙 능글맞고 밝으니 팬들에게 애정 섞인 멘트를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다지만, 성해온은 그런 타입이 아니니 더더욱 눈길이 갔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관상은 딱 동태눈깔 될 그건데, 신기하단 말이지’
그때였다.
성해온이 팬들과 대화를 나누며 팔을 조금씩 훑기 시작한 것이다.
‘추운가 보다.’
봄이지만 오늘은 유독 바람이 세게 불기도 했고, 옷 자체가 구멍 천지였으니까.
사소한 행동이었지만, 성해온을 지켜보고 있던 스위치들은 많이 춥냐며 걱정의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해온은 민망하다는 얼굴로 운을 뗐다.
“아, 추운…… 건 아니고요.”
성해온의 얼굴에 신인 아이돌 느낌이 만연한 수줍음이 물들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음…… 조금 민망하실까 걱정되어서요.”
“이봐, 그럴 리가 없잖냐!”
옆에서 대노하는 곽덕배를 무시한 근돌은 성해온을 바라봤다.
자신의 고인물 인생 최초로, 정말 정체를 알 수 없는 아이돌이었다.
게다가 눈빛은 자신이 봐도 가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진심이라는 게 더 미스테리였다.
‘……진짜, 뭐 하는 애지?’
근돌은 류인의 입이 황당함으로 조금 벌어졌다는 걸 캐치하지 못한 채 의문을 띄웠다.
“역시 갈아입을걸.”
작게 말한 성해온이 볼을 긁적였다.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팬분들이 벌써 모이셨다기에…… 스위치 얼굴을 조금이라도 오래 보고 싶어서요.”
심각할 정도의 유죄 발언에, 여기저기서 전국 고함 자랑이 시작됐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물론.
행복이 과할 정도로 넘치는 고함이었다.
* * *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가식에 기겁합니다!]
[성좌, ‘희곡의 설계자’가 당신에게 감동합니다!]
이렇게 노출 많은 의상을 작정하고 미팬에 입고 나왔다?
물론 긍정적인 의미겠지만 ‘성공에 눈 먼’ 프레임이 씌워지기 마련이다.
- 독기 ㄹㅈㄷ
- 라이트온 진짜 성공에 눈 먼 아이돌 (좋다는뜻)
비겁하게 화제성을 챙기면서, 그런 프레임은 빗겨갈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 간단한데 안 할 이유가 없지.
게다가.
카메라 소지가 허용되는 미니 팬미팅답게, 이미 고화질 사진이 넘쳐 흐를 정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 자연광에서 이 의상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오냐 오늘이 나의 생일이로구나
- 이 천재 아이돌 뭐임?
- 오늘 잠망해서 사녹 못 간 나 자신. 스스로 죽어라.
- 지금 떠도는 아이돌 프리뷰 보고 영업당함 라이트온이라고?
봐라.
이미 훌륭할 정도의 화제성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히죽…….
손으로 입을 가린 나는 양심 없는 미소를 지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 * *
활동 4일 차.
타이틀에 수록곡 무대까지.
가장 정신없는 활동 첫 주의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내가 뒈져가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어지럽게 핑 도는 시야를 정돈했다.
멤버들과 같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만, 워낙 몸뚱어리가 하찮다 보니 버거운 모양이다.
‘요 며칠간은 잠을 4시간도 못 잤으니.’
게다가.
어쩌다 녀석들과 살갗이 닿을 때도 자비 특성이 발동되어 버리니, 기력은 걷잡을 수도 없이 방전되어 가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선 이전과 같이 조수석에 혼자 앉고 싶다만, 그럴 수도 없었다.
나는 멤버들을 훑었다.
조수석에 자리했던 내가 크게 다쳤던 게 보통 충격이 아니었던 모양인지, 이 녀석들은 내가 퇴원했던 날부터 나를 뒷자리에 밀어 넣기 시작했거든.
- 형님이 해가 넘어가도록 눈을 뜨지 않으실 때 저희끼리 약…… 약속했습니다!
- 조수석이나 뒷자리나 사고 나면 위험한 건 매한가지다. 그리고 난 혼자 앉는 게 편하고.
- 그럼, 형이 두 자리를 다, 차지 하시, 는 건 어떨까요? 그럼 더 편하실…… 텐데!
- 저도 해온 형이 조수석에 탑승하는 건 반대입니다. 위험성이 매한가지라는 건 객관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냥, 해온 형이 그 자리에 앉으면 기분이 이상해요.
- 형, 그냥 귀여운 동생들 생각해서라도 뒤에 앉아줘요. 응?
- 그래, 해온아. 사실 나도 수현이처럼…… 음, 조금 그런 기분이 들어서. 이상하지?
사고 당시의 기억이 없는 게 분명함에도, 녀석들의 고집은 질기고 질겼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내가 조수석에 앉는 건 못 보겠다는 태도를 여태껏 유지 중이니 말이다.
하도 기력이 딸려 조수석에 앉겠다 실랑이도 부려봤으나, 결과는 100전 100패였다.
‘애초에 5명을 상대할 수 있을 리가.’
티격태격하는 동안 애꿎은 자비 특성이나 발동되니, 이젠 그냥 해탈했다.
나는 피곤에 젖어 무거운 눈을 내려 감았다.
* * *
“와아아~ 우! 라이트온!”
익숙하고도 시끄러운 목소리로군.
아직 얼굴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린데, 목소리가 저 너머에서 쩌렁쩌렁 들려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눈깔에 안광을 걸친 나는 눈을 빛내며 허리를 꾸벅 숙였다.
“클락션 선배님.”
“라이트온~ 보고 싶었다구~”
순식간에 달려온 클락션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번에 노래 좋던데~?”
오늘 참여할 음악방송의 MC가 클락션이었다.
사실 음악방송의 MC는 어린 아이돌들을 위주로 돌아간다지만, 클락션의 진행력이 워낙 좋은 탓에…… 부르는 곳이 많은 것이다.
“저도 선배님 솔로곡 자주 듣고 있습니다.”
“정말?”
“예.”
감동받았다는 얼굴의 클락션이 휘파람을 불었다.
“어디 가서 라이트온이랑 친하다고 자랑해야지~”
“영광입니다.”
“아!”
다리를 꼬고 앉아 오늘의 대본을 살피던 클락션이 손가락을 튕긴 것도 그때였다.
“나랑도 찍어줘야지.”
내가 대답을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클락션이 상처받은 얼굴로 장난스레 눈썹을 늘어뜨렸다.
“……노땅이라 안 찍어주려나?”
챌린지 말이로군.
나는 곧바로 부정했다.
“그럴 리가요. 저희가 먼저 요청드리려고 했습니다.”
“와하하학, 클락션 아직 안 죽었지~ 내가 선배로서의 가오가 있으니까, 다시 한번 부탁해 봐요.”
“선배님, 저희와 챌리지를 찍-”
“비싼 몸인데 시간 한번 내볼게요. 흥흥.”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덥석 문 클락션이 자신의 가슴팍을 탕탕 두드렸다.
언제 봐도 예능에 특화된 텐션이었다.
거울 앞에 선 클락션이 우리의 타이틀 곡을 흥겹게 콧노래로 흥얼대며 머리칼을 정돈했다.
“이번에 챌린지도 반응 오고 있지?”
“조금은 그런 것 같습니다.”
“겸손 봐라. 그 정도면 배 쭉 내밀고 다녀도 돼~”
클락션이 킬킬대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거울을 모티브로 한 <경계선>의 안무는 반응이 꽤 좋은 편이었다.
- 와 이거 매주 달라질 거라고 예상한 스위치 돗자리 까셈 대박이다
- 안무 ㄹㅈㄷ 간지남 퍼포먼스 특환데 이렇게 좋을 수가 없음
- 멤버별로 추는 느낌 달리하는데, 거울 파트에선 그 ‘느낌’까지 카피하는 게 올타임 레전드임 ㅋㅋㅋㅋㅋ 실력 좋은 거 여기서 확 체감되잖아
- 미쳤다 직캠들 조회 수 벌써부터 터지네? 새삼 라이트온 멤버별 인기 골고루 퍼진 편이다 개인 직캠 조회 수 보니까 ㅇㅇ
그리고 포인트가 되는 거울 안무를 활용해 만든 챌린지는 착실히 퍼져주고 있었다.
그것도 꽤 빠른 속도로.
스케줄에서 만난 이들부터, 활동이 겹친 그룹들, 그리고 지금 클락션처럼 음악방송 MC까지.
상대방이 먼저 즉흥적인 안무를 추면, 마주 선 우리가 그걸 거울 모드로 카피한 다음 본격적인 <경계선> 의 포인트 안무로 들어가는 챌린지였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구성이다 보니 더 파급력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 사실 이거 하고 싶어서 어제 집에서 연습했잖어~”
클락션이 기대해도 좋다며 카메라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함께 영상을 찍을 이로 낙점된 나와 최승하가 클락션의 양옆으로 섰다.
고갯짓으로 박자를 맞춘 우리는 곧바로 클락션의 안무를 카피…….
“……?”
내 낯짝에 강렬한 물음표가 떠올랐다.
다급하게 낯짝을 관리한 나는 싱긋 웃었다.
“……선배님.”
“어때! 끝내주지! 이게 내, 앙? 얼마 없는 장기 중에 하나라고.”
“크흐흐흑, 큭…….”
“아, 클락션 씨 진짜 너무 웃겨.”
이미 일부 스태프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멤버들도 다를 바 없었다.
가요계 후배라는 위치상 대놓고 웃지 못하고 있었지만, 얼굴을 반쯤 가리고 들썩이고 있었으니까.
“라이트온! 얼른 카피해 보시지! 어우, 피 몰려!”
클락션이 의기양양하게 발을 까딱였다.
“어이~ 리더리더! 카피해 보시지! 못 하나? 못 해? 앙? 앙?”
참고로 이 인간의 발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이 망할 꾸러기 같은 인간.
……지금 프리즈 자세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