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화 (2/118)

2화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호접지몽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는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인지.

혹은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던.

“대체.”

현승이 바로 그랬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분명 자신은….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 가지 않았던가?

한데, 어찌 된 일일까?

눈을 떠 보니 21살의 어느 날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상황에 당황했으나….

조금 시간이 지나자 괘념치 않기로 결심했다.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고민했으나 이제 더는 고민치 않기로 했다.

애초에 자신이 고민한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

‘일단 누워서 꾸물거리지 말고 일어나자.’

침대에서 일어난 현승이 곧장 책상으로 향했다.

‘책상 되게 좁네….’

어릴 적에도 집이 작다고 생각은 했지만 큰 집에서 호화롭게 살다 이렇게 돌아오니 이 집이 더욱 작고 낡게만 느껴졌다.

우선 노트를 펼치고 펜을 쥐었다.

일단 종이 위에 현재 상황을 적어 내리며 상황을 천천히 정리해 볼 요량이었다.

1. 나는 죽었다.

명백한 사실이었다.

‘분명 죽었지.’

잠깐 지면을 바라보던 현승이 써 내린 글귀에 줄을 긋고는 옆에 새로운 글귀를 적어 넣기 시작했다.

1. 나는 과거로 되돌아왔다.

자신은 죽은 게 아니라 21살이던 시절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현승은 이를 모든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라 여겼다.

‘그래, 이건 기회야.’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고 음악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기회가 아니겠는가?

만약 자신에게 정말 다시금 삶을 살아갈 기회가 생긴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일단.

할 줄 아는 건 음악뿐이었다.

‘음악만큼은 자신 있지.’

전생에서도 별도의 교육을 받지 않고 히트곡을 냈다.

원 히트 원더일 것이라는 세간의 뒷말과 달리.

현승은 발매한 거의 모든 곡을 흥행시켰던 이례가 있었다.

비결은 ‘재능’이었다.

현승에게는 음악에서 일컫곤 하는 머니 코드.

즉….

돈이 되는 음악을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후천적 학습에 의한 게 아니라 선천적으로 타고난 능력.

그러니 감히 재능이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현승에게 음악으로 돈을 버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다만.

일에 매몰된 삶을 살았던 전생과 달리 이번 생에서는 주변을 둘러보고자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번 생은 달라.’

이번에는 주변을 돌아보며 살아가고자 했다.

또한.

구설수에 오를 일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전생에서도 마약, 여자, 술로 인한 문제는 없었지만.’

자격 있는 거만은 미덕이라는 생각으로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이런저런 구설수에 올랐던 바 있지 않은가?

자신이 곡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살한 소속사 대표의 죽음을 시작으로 온 세상의 손가락질이 시작됐고….

모든 이들이 기다렸다는 양 자신을 끌어내리고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악담과 비방의 말을 쏟아 냈던 바 있었다.

‘덕분에 내 이름으로 곡도 못 냈었지.’

이번 생에는 조금 더 정체를 숨기고 조심스럽게 음악 활동을 하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굳이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편히 활동하고 싶었다.

‘그래, 그게 답이야.’

적을 만들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 아예 정체를 숨긴 채로 음악을 하겠노라는 결심을 한 셈이었다.

‘좋아.’

슬슬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계획 1. 이건 기회다! 다시 음악을 한다!

계획 2. 단, 일에 매몰되지 않는다!

계획 3.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한다!

계획 4.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 준다!

이내 현승이 마지막 계획을 적어 넣었다.

계획 5. 아버지를 위한 곡을 만들겠다.

전생에서도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많은 돈을 벌지 않았던가?

‘분명 그랬지.’

현승은 자신이 ‘일’을 일종의 ‘게임’으로 여겼다고 생각했다.

곡을 만들고, 성적을 증명하고, 돌아오는 보상을 확인하고….

그 과정에서 분비되는 도파민에 흠뻑 도취 되었던 거겠지.

일, 일, 일, 일.

일에 매몰된 삶이 거듭되며 가족들과의 관계는 점점 소원해질 따름이었다.

‘아버지의 병세가 점점 나빠지고 있단 사실조차 모르고 일에만 매달렸으니….’

덩달아 여동생과의 관계 역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지 않았던가?

“하아.”

현승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다짐하듯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이번에는 달라.

각오이자 다짐이었다.

다 함께 행복하게 살자.

몹시 굳은 심지가 느껴지는 다짐.

* * *

‘돈부터 벌어야겠네.’

향후 계획에 대한 정리를 얼추 마치고 거실로 나온 현승이 가장 먼저 한 생각이었다.

곰팡이가 핀 장판, 얼룩덜룩하게 변색한 벽과 천장, 세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너무 좁은 집.

‘이사부터 가야겠어.’

제 기억에 의하면 이 무렵에는 집안 사정이 아주 좋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전생에서도 자신이 첫 히트곡을 낸 이후에야 이사를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 무렵에는 온갖 공과금은 물론이고 끼니 걱정마저 하며 살았었지.

움찔!

인기척을 느낀 아버지께서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고지서를 바리바리 챙겨서는 서랍장에 욱여넣으셨다.

- 현승아, 밥은?

수화로 묻는 아버지께 현승이 고개를 내저으며 수화로 답했다.

- 괜찮아요.

그리고는 재차 되물었다.

- 아버지는요?

이내 아버지께서 답하셨다.

- 나도 먹었지.

그리고는 구태여 덧붙여 말씀하셨다.

- 이번에 장애인 일자리 알선으로 정규직 채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공장에서 간단한 조립 업무를 할 것 같은데 앞으로는 고정 수입이 생길 테니, 현승이 너는 다른 걱정하지 마라.

현승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버지께서 재차 말씀하셨다.

- 전역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친구들 만나서 즐겁게 수다도 떨고 놀기도 하고 그래야지. 아빠가 살아 보니까 그렇게 걱정 없이 놀고 웃고 떠드는 것도 다 시기가 정해져 있는 거야.

아버지는 이런 분이셨다.

홀로 조급하게 사시되.

내겐 강요하신 적이 없었다.

‘것 참.’

아마 제 기억에 따르면 군 제대 이후 장장 반년 이상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집에서 놀았던 게 분명했다.

딱히 취업할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젊음을 낭비한 셈이었다.

한데 아버지께서는 답답하실 법도 한데 그런 자신에게 단 한 번조차 잔소리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쉴 수 있는 것도, 도전도, 실패도, 전부 젊은이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든가?

놀랍지만 정말 뜬금없이 작곡해 보고 싶다 말씀드렸던 때도 마찬가지였다.

- 응원하마.

그 한마디 말을 끝으로 피아노 학원조차 한 번 다녀보지 않은 자신을 믿고 묵묵히 지지해 주셨지.

- 현아는요?

현승의 물음에 아버지께서 답하셨다.

- 요즘 독서실에서 늦게 오잖니.

그리고는 주섬주섬 외투를 챙기며 말씀하셨다.

- 슬슬 데리러 가 봐야겠는데.

그렇게 아버지께서 외출하신 뒤.

“흠.”

현승이 곧장 아버지께서 서랍장 안에 감추신 고지서를 꺼내 미납액을 계산해 봤다.

도합 220만 원.

비록 과거의 현승에게는 정말 우스울 정도로 적은 금액이 분명하다지만.

‘지금의 아버지께는 큰 고민거리란 말이지.’

사실 이 무렵의 현승은 그런 환경을 적당히 외면했었다.

모르는 척.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 게임을 하며 시간을 탕진했지.

‘일단 수중에 있는 돈은 150만 원 남짓.’

군대 월급과 몇 번 갔었던 막노동 일당비를 안 쓰고 모아 놓은 돈이었다.

까칠한 성격 탓에 친구 한 명 없었기에 외출할 일도 없어 고스란히 모여 있었고.

‘이 정도면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출 수 있겠는데.’

현승이 낮게 중얼거렸다.

“돈을 좀 만들어 볼까.”

* * *

그 뒤로 현승은 중고 거래에 매진했다.

“네, 금액 모두 맞네요.”

이내 현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잘 쓸게요.”

그리고는 중고로 산 헤드셋을 한번 내려다봤다.

‘이제 얼추 끝인가?’

마스터 키보드, 오디오 인터페이스, 콘덴서 마이크, 스피커와 헤드셋 등등.

모두 전에 쓰던 장비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을 만큼 급이 낮은 장비에 불과했다.

저가형, 심지어 중고로 산 제품들이지만 그래도 당장 작업을 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터였다.

사실상 장비보다는 컴퓨터 사양을 올리는데, 가진 돈의 태반을 지출한 채였다.

음악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SSD와 RAM 용량이 어느 정도 뒷받침을 해 줘야 하는 까닭이었다.

‘어쨌든, 끝인가.’

비록 가진 돈을 전부 써 버렸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벌면 되지.’

음악인이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 비웃을지 모르지만, 난 돈이 되는 음악을 만드는 능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머니 코드.’

대중음악에서는 흔히 돈이 되는 코드를 의미한다.

나는 그런 머니 코드를 수백 가지는 정립해 놨고….

변칙적으로 활용하고 섞는다면 경우의 수는 더 늘어난다.

그 덕에.

곡을 발매할 때마다 차트 상위권에 올릴 수 있었지.

음악으로 돈을 버는 일.

현승에게는 그저 ‘늘 하던 일’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

“시작하자.”

현승은 늘 하던 일을 시작했다.

탁, 타닥, 타다닥-.

곧장 머릿속에 떠오른 음들을 옮겨 그리기 위해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프로그램 내에서 무료로 지원해 주는 툴밖에 사용할 수 없어 한계가 명확했지만.

현승이 트랙별로 찍는 코드들은 제각각 본인만의 라인을 만들어 냈다.

전자기타 사운드, 퍼커션 한 리듬을 강조한 일렉트로팝.

트랙을 통째로 날리기도 하고 아까와는 달리 드럼 소스를 가져와 찍어 내려갔다.

절대 예상치 못할 곡이 탄생할 것이란 생각이 들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급하게 만든 곡에 가사가 있을 리 없기에 가이드는 허밍으로 대충 녹음을 끝냈다.

그리고는 믹싱과 마스터링으로 마무리.

이후 두 곡 정도를 더 해치우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침 여덟 시였다.

곡을 만들다가 밤을 꼴딱 새워 버린 셈이었고 달리 말하자면 하룻밤 새에 세 곡을 찍어 낸 셈이었다.

“이제 이 곡을 돈으로 바꿔 볼까….”

하룻밤 새에 찍어 낸 세 개의 곡을 각각 앞부분만 30초씩 잘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미리 알아봐 둔 메일로 잘라 낸 세 곡의 샘플을 첨부했고.

탁.

곧바로 메일을 전송했다.

‘이제 답장만 기다리면 되겠어.’

그리고는 만족스럽다는 양 커피를 홀짝였다.

메일을 보낸 곳은 LS 엔터테인먼트.

뚝딱뚝딱 만든 데모곡들을 매절 계약 형식으로 판매하고 당장 필요한 자금을 만들 계획이었다.

물론 제 곡의 샘플로 대금을 치르지 않은 채 사내 작곡가에게 비슷하게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릴 수도 있지만….

‘그런 곳은 전부 걸렀지.’

앞으로 향후 12년 이상 이렇다 할 경영 이슈가 생긴다거나 도산되지 않을 튼튼한 회사이자, 유능한 신인 작곡가로부터 받은 샘플을 멋대로 가져다 쓰지 않고 영입할 생각을 할 최소한의 상도덕을 갖춘 회사.

‘LS라면….’

이 바닥에서 더러운 꼴을 많이 봤기에 정말 심혈을 기울여 선정 조건을 만들었고 그 조건에 충족하는 곳을 고른 채였다.

“언제 입질이 오려나.”

메일이 전송됐으니 곧 입질이 올 터였다.

그러니까.

메일을 읽은 담당자가 얼간이가 아니라면.

“좋아.”

현승이 보낸 메일을 다시금 검토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데모 3곡 샘플입니다. 곡당 300만 원에 매절할 생각, 만약 구매 의사 있을 시 연락 요망. 작곡가 HS, 010-XXXX-XXX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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