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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6화 (6/118)

6화

김 실장은 여러 장의 계약서를 말끔한 파일에 끼워서 가방 안에 넣은 뒤, 호기롭게 넥타이를 고쳐 맸다.

“민현승, 이번에는 꼭 도장 받아 내고야 만다.”

오늘은 기필코 계약해 내겠노라는 굳은 심지가 엿보였다.

띠링!

명쾌한 알림이 울리고.

[ 미안한데 중요한 일이 생겨서 조금 늦습니다. ]

약속 시간이 다 돼서야 도착한 현승의 문자에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손가락은 괜찮다며 웃는 얼굴 모양의 이모티콘까지 더해서 답장을 보냈다.

‘참자, 참아….’

현승이 카페에 들어선 건 약속 시간으로부터 약 20분가량이 경과했을 무렵이었다.

“제가 많이 늦었죠.”

낯짝 두껍게 건넨 질문에 김 실장이 애써 웃는 낯으로 답했다.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오시던 길에 급한 일이 생기셨나 봐요?”

그 말에 현승이 “아아.” 하고 답하더니 대뜸 제 휴대폰 앨범을 보여 주었다.

액정 위로 나타난 건 꽤 귀엽게 생긴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담긴 동영상이었다.

“실은 오는 길에 고양이를 만났거든요.”

“아….”

“밥 좀 줬더니 자꾸 따라와서 곤욕이었습니다.”

길고양이랑 노닥거리느라 늦었다는 거잖아?

무 농사에, 섬 낚시에, 애완동물까지 좋아하는 건가?

“솔직히 개냥이는 못 참죠.”

“그렇군요….”

“뭐, 잡담은 이쯤 해 두고.”

현승이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해 오신 거 맞죠?”

그 말에 김 실장이 다급하게 가방 속에 넣어둔 파일을 꺼내 들었다.

“예! 자신 있습니다!”

난폭한 사자를 포획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 끝에 꾸며 낸 계약서였다.

“흠.”

이내 현승이 정적 속에서 계약서를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현승이 아무 말 없이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다 보셨나 봅니다.”

김 실장 역시 덩달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에는 사인하실 거죠?”

“분명 성의는 느껴지는데….”

두루뭉술 말끝을 흐린 현승이 고개를 비스듬하게 기울이며 되물었다.

“제 곡이 그렇게까지 마음에 든 건 아니었나 봐요?”

“별로라뇨! 마음에 드니까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을…!”

“그냥 서로 이해가 안 맞을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승이 어깨를 들썩였다.

“LS 같은 대형 매니지먼트사가 저 같은 신인 작곡가에게 목을 맬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명백한 협박조의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저도 굳이 LS를 고집할 필요가 없을 테고요.”

그 말에 김 실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그리고는 숨을 고른 뒤에 물었다.

“차라리 원하시는 조건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현승이 “그래도 돼요?” 하고 묻고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되는 거면 진작 말씀을 해 주시지. 서로 번거롭게 이게 뭐예요?”

김 실장이 애써 화를 억눌러 가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 여기 적어 주시겠습니까?”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이내 현승이 기다렸다는 듯 곧장 원하는 ‘특약 조건’ 몇 개를 기재했다.

슥슥슥-.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이런 미친!’

현승이 요구한 조건을 확인한 김 실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잔뜩 일그러졌다.

지면이 욕이 절로 나올 만큼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꽉 채워진 채였다.

히트곡을 최소 5곡 이상은 찍어 낸 기성 작곡가들이나 요구할 법한 조건.

‘뭐지?’

한데 이상한 점은 지나치게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허무맹랑한 요구는 없다는 점이었다.

“후-.”

잠시 고민하던 김 실장이 큰 결심 끝에 말문을 열었다.

“이봐요, 민현승 씨.”

현승이 그런 그를 바라봤고.

“며칠 뒤에 다시 봅시다.”

“예, 뭐.”

“도장 꼭 챙겨 오시고요.”

말을 마친 김 실장이 경고하듯 덧붙였다.

“그땐 계약서에 도장 찍으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 말에 현승이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답했다.

“예, 제발요.”

그렇게 두 번째 미팅 역시 이렇다 할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 * *

다시 며칠이란 시간이 흘렀다.

[ 특약 조건 ]

1. 개인 작업실 준비해 줄 것.

2. 원하는 장비 세팅해 줄 것.

3. 출퇴근 시간 터치 금지.

4. 계약 기간은 1년 단위로.

5. 개인정보 노출 절대 금지.

오늘도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김 실장이 현승의 요구를 반영해 새롭게 꾸민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쭉 훑어봤다.

뭐랄까?

부당한 요구를 해 온 건 아니라지만 신인 작곡가의 계약서에 기입될 만한 내용은 확실히 아닌 셈이었다.

“흠.”

이쯤 되니 자신이 어째서 이렇게 민현승에게 목을 매게 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정말 현승이 제 입신양명의 동아줄이 되어 줄 재목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오기 때문에?

당장 도장을 찍으리라 생각했건만 예상외의 반응이 돌아오자 오기가 생긴 걸까?

사실 ‘촉’ 때문이었다.

무수한 이들이 으레 말하듯 느낌이 좋았다.

촉.

형체 없는 한 음절짜리 단어에 홀린 게 분명했다.

다만.

그의 촉은 남들과 비교해 훨씬 예리하고 첨예했다.

그 촉 덕에 최연소 실장직에 올랐으니까.

문득 *삼고초려(*三顧草廬)라는 말이 뇌리에 떠올랐다.

유비는 초야의 공명을 데려오고자 세 번이나 걸음했다던가?

자신 역시 마찬가지.

오늘의 만남까지 도합 3번째 만남인 셈이었다.

과연….

민현승은 자신의 공명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오랜만이네요.”

그때 현승이 약속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고.

“또 뵙네요.”

의기양양하게 계약서를 건네주었다.

“모두 반영했으니 한 번 확인해 보시죠.”

현승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새롭게 기입된 특약 조건을 꼼꼼히 훑던 찰나였다.

“아….”

무언가 잊고 있던 것을 떠올린 양 침음한 김 실장이 나지막이 되물었다.

“그나저나 ‘4번 조건’은 정말 그 정도면 충분한 겁니까?”

“4번?”

“예, 계약 기간은 1년 단위로 설정한다는 조항이요.”

현승은 김 실장이 여태껏 직접 계약을 담당했던 그 누구보다도 까탈스러운 인물임이 더없이 분명했다.

그런 현승이 정작 재계약 시 반영될 조건 인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으니 의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예, 충분합니다.”

반면 현승은 단번에 긍정했다.

“어차피 1년 뒤면 몸값이 잔뜩 올라 있을 텐데, 그때 조건은 그냥 그때 가서 협의하기로 하죠.”

어마어마한 자신감이었다.

‘허….’

추후 계약의 미니멈 조건까지 명시하지 못해 안달이 난 여타 작곡가들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자신만만하시네요.”

“예, 러브 유얼 셀프.”

대체 이 엄청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다만….

중요한 점은 허황한 말처럼 들리지 않는단 것이었다.

“어쨌든 고생하셨습니다.”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현승이 악수를 청했고.

“김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아, 예.”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내 김 실장이 그런 현승의 손을 맞잡으며 답했다.

“예, 저야말로….”

삼고초려 끝에 공명을 얻은 유비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공명의 반만.

아니.

딱 반의반만.

부디, 그만큼이라도 해 주기를.

* * *

계약을 마친 현승이 카페를 빠져나와서는 집으로 향했다.

‘이제 저변 정리는 얼추 끝인가….’

LS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좋은 곡’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작업실도, 장비도, LS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전부 알아서 해결해 줄 터였다.

터벅, 터벅.

정리가 얼추 끝나고 나니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거 일단 이사부터 가야겠는데.’

허름하고 낡은 연립주택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오르막길.

꼭대기 바로 아래 어딘가쯤이 현승과 가족의 거처였다.

터벅, 터벅.

겨울이면 차가 오르지 못할 만큼 가파른 언덕.

언덕 저 멀리….

앞서 걷고 있는 여동생의 뒷모습이 보였다.

“음.”

책가방이 무거운 것인지 걸음걸이에서 지친 기색이 마냥 역력해 보였다.

이내 현승이 걷는 속도를 높여서는 제 여동생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고….

“민현아.”

현승의 부름에 현아가 화들짝 놀라서는 소리쳤다.

“꺄아! 깜짝이야!”

이내 현승이 눈매를 좁히며 되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깜짝 놀랐잖아!”

피식 웃음을 흘린 현승이 현아의 가방을 낚아채며 나지막이 말했다.

“줘, 들어 줄게.”

“됐어.”

“들어 준다니까.”

그렇게 억지로 가방을 빼앗다시피 한 현승이 “쯧.”하고 혀를 차 보였다.

‘가방이 왜 이렇게 무거워?’

아마 안으로 교과서에, 참고서에, 문제집에, 이런저런 책들이 한가득한 까닭이리라.

매일 이토록 무거운 가방을 먀 채로 등·하굣길을 다닐 여동생 생각에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돈 벌면 이사부터 가야겠네….”

현승이 작게 중얼거렸고.

“뭐라고?”

차마 그 말을 듣지 못한 현아가 바짝 다가오며 되물었다.

“아냐, 별말 안 했어.”

“뭐라고 했잖아?”

“그냥 혼잣말이었어.”

“무슨 혼잣말?”

현승이 장난스럽게 답했다.

“그냥,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너처럼 가방만 무겁다고.”

말을 마친 현승이 걷는 속도를 높였고….

“뭐? 이게 진짜-!”

현아가 성을 내며 그런 현승의 뒤를 따랐다.

그 모습이 꼭.

여느 남매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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