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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7화 (7/118)

7화

“여기가 네 개인 작업실이야. 마음에 들어?”

현승이 내부를 찬찬히 살피며 중얼거렸다.

“뭐, 나름….”

작업실 내부는 눈대중으로 대략 7평 정도 되어 보였다.

또한.

그 안으로는 방음시설과 더불어 필수 장비가 한가득 자리한 채였다.

일단 꽤 높은 가격대를 자랑하는 고가의 88건반 마스터 키보드만 봐도 그랬고.

스피커와 벽의 배치 간격 등을 미루어 봤을 때도 제법 공을 들인 양 보였다.

특히 작업실 중앙에 비치된 소파가 마음에 들었다.

길이감도 좋고 쿠션감도 썩 나쁘지 않다.

밤샘 작업을 하는 일이 많은 직업이 아니던가?

‘좋은 소파는 필수지.’

비록 회귀 전에 쓰던 개인 작업실과 비교한다면 형편없는 수준이라지만….

‘구색 갖추려고 노력을 하긴 했어.’

장장 12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 현시점에서는 최선의 대우였다.

김 실장이 눈매를 좁힌 채로 현승을 바라봤다.

뭐지?

환호성을 지르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족한 기색을 보일 순 있는 거잖아?

설비에 공을 들인 시간이 아까워질 만큼, 덤덤하고 의연한 반응이었다.

‘이십 대 초반 남자아이인데 개인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뭔가 맥빠지는 기분이 드는 한편.

‘후우-.’

어쩐지 현승이 얄밉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이내 김 실장이 제 손을 꽉 말아 쥐었고.

살금살금-.

책상 위에 놓인 모니터를 만지작대고 있던 현승의 뒤통수에 “콩!”하고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실장님.”

그 말에 김 실장이 화들짝 놀라서는 되물었다.

“응? 왜? 무슨 일 있어?”

“모니터로 다 보여요.”

김 실장이 멋쩍은 양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하하, 모니터가 크고 선명해서 잘 보이지?”

이내 현승이 고개를 좌우로 내저어 댔다.

지난 며칠 사이 둘의 관계에도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며칠 사이 부쩍 가까워져 말을 놓게 됐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김 실장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뭐랄까?

넓은 풍채와 짙은 눈썹 밑에 자리한 부리부리한 눈매.

전반적으로 마주한 이를 압도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아우라 덕에 이런 큰 엔터 매니지먼트 부서에서 실장직을 도맡게 됐겠지만….

어쨌든.

만남이 여러 차례 거듭되며 인상과 달리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다 떠나서….’

저런 사람이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준다고 상상해 보면 꽤 듬직한 일이 분명할 테니까.

“아, 맞다.”

그때 김 실장이 무언가를 떠올린 양 말문을 열었다.

“이따 연락하면 잠깐 사옥으로 와 줄 수 있어?”

“예? 왜요?”

“잠깐만 시간 좀 내줘. 사원증이랑 명함 나왔거든.”

이내 현승이 눈매를 좁혔다.

“벌써요-?”

계약서에 도장 찍은 지 고작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사원증이랑 명함이 나온 걸까?

‘그래도 아버지께 보여 드리면 분명 좋아하실 테니….’

이내 현승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연락 주세요.”

일단 지금 당장은 작업실을 조금 더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뭐랄까….

이제야 정말 과거로 돌아와 작곡가로서의 새 출발을 앞둔 것 같은 기분이었다.

* * *

서울 노른자 땅 한복판에 자리한 LS 엔터에 발을 들였다.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위축될 만한 규모의 사옥.

저벅, 저벅-.

하지만 중앙로비를 가로지르고 있는 현승의 얼굴에서는 위축된 기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현승이 회귀 전 소속되어 있던 기획사 또한, 대형 기획사를 꼽을 때면 꼭 세 손가락 안에 들던 곳이었다.

심지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건 물론이거니와, 명예 이사라는 낯간지러운 직함까지 달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일 터지니까 다들 나 몰라라 했지만….’

아직 쌀쌀한 늦겨울.

후드티를 푹 뒤집어쓴 채 검정 점퍼를 입은 현승이 헤드셋을 끼운 채, 엘리베이터 앞으로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기획사 사람들은 각자 제 할 일이 바쁜 사람들이다. 바쁜 사람들이니 먼저 말을 걸어올 일도 없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거기.”

헤드셋을 뚫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목소리.

현승이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한 여자가 고고하게 턱을 든 채로 서 있었다.

비록 선글라스를 끼운 상태였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서지니?’

그녀는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4인 여성 아이돌 그룹 ‘스트릿걸즈’로 데뷔했던 인물이다.

비록 그룹이 일 년도 채 가지 못한 채 끝났지만, 그중 서지니만 홀로 살아남았다.

그녀는 오히려 솔로 가수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자 센세이셔널한 기록을 세우고 화제를 일으키며,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런 영광도 잠시.

서지니의 빛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누구보다 뜨겁던 서지니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점점 묻어져 갔다.

심지어 그녀의 안하무인 격인 면모나 거침없는 언행이 결국 여러 차례 이슈를 몰고 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발표하는 신곡들은 모두 다 음원 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현승이 전생에서 작곡가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이미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춘 뒤였다.

“안녕하십니까!”

현승이 기억을 되새기던 무렵, 지나가던 직원들이 서지니를 알아보고 인사를 청했다.

“어.”

서지니는 한껏 세운 턱을 한번 끄덕일 뿐, 사근사근한 미소 한번 보여 주지 않았다.

“직원? 아니면 연습생?”

그녀의 물음에 현승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이미 직원들은 자리를 떠난 뒤였다.

“당신 말이야.”

서지니는 답답했는지 현승의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고.

“직원.”

현승의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띠링!

때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현승은 그녀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말이 좀 짧네?”

제 뒤를 쫓아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서지니가 꺼낸 말이었다.

아무래도 시비를 거는 모양새인데….

“그쪽도.”

현승은 이런 실랑이는 피하고 싶지만, 마냥 고분고분하게 받아 줄 성격도 되지 못했다.

“뭐? 혹시 너 나 몰라?”

“아는데.”

현승은 자신이 생각해도 이 대화가 너무 유치했다.

얼른 이 자리를 탈피하기 위해 4층 버튼을 눌렀다.

“아는데 인사 안 해?”

그러나, 그녀는 이 유치한 싸움을 이어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하-.”

현승은 귀찮다는 듯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까딱거렸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사실 서지니라는 인물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어째서 평판이 곤두박질쳤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이러한 행실이 제 평판을 깎아 먹는데 크게 기여했으리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예계.

무수한 이권과 이윤이 얽혀 있는 회색 콘크리트 정글 숲이 아니던가?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지만 이렇게 사서 적을 만드는 성격이라면….

‘내가 그랬듯 안 되기를 비는 사람들이 한가득하겠어.’

짙은 화장으로 덮어 놨지만 아직은 앳된 얼굴이 곳곳에 보이는 고작 23살의 여자.

저렇게 표독스러운 눈빛보다는 조금 더 싱그러운 표정이 어울릴 것 같은데.

현승이 입을 꾹 다물고 잠시 상념에 빠진 찰나.

“야!”

그녀의 외침이 들려왔다.

띵!

때마침 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활짝 열렸다.

“그럼 이만.”

현승이 먼저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탁-.

그녀는 현승의 어깨를 치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또각, 또각-.

듣기 싫은 구두 굽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그때.

현승의 앞을 가로막고 선 서지니가, 걸음을 멈춰 선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기 시작했으나, 현승은 그녀를 잠자코 응시할 뿐이었다.

“경고하는데 다음번에는 먼저 인사하는 게….”

더 대화를 섞어 봐야 똑같이 유치해질 수밖에 없으리란 사실을 직감한 현승이 그녀의 반대 방향으로 재빠르게 휙 돌려 걸음을 옮겼다.

“뭐, 뭐 저런 게 다 있어-?”

서지니는 자신의 분한 마음을 표출하기 위해 구두 굽으로 바닥을 “꽈직!” 내리꽂았다.

하지만.

현승은 이미 코너를 돌아 사라진 뒤였다. 뒤쫓아 가서 왜 무시하냐며 멱살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더 이상의 난동을 부리면 안 되는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었다.

으레 가수들이 앨범을 준비할 무렵이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서지니가 이렇게까지 예민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다.

또각, 또각-.

서지니는 복도 끝자락에 있는 녹음실 앞으로 향했고.

‘만약 이번 앨범까지 잘못되면 나는….’

잔뜩 위축된 표정을 숨기기 위해 다시금 선글라스를 끼웠다.

이미 어제 한차례 진행된 녹음작업.

하지만 작업은커녕, 엄청난 폭언을 끝으로 내일 다시 오라는 통보를 받고 돌아섰던 기억이 떠올랐다.

똑, 똑-.

서지니는 마른 입술을 한번 축이고, 깊게 숨을 들이켠 뒤 “흠, 흠!” 목을 가다듬었다.

“주지태 선생님, 지니예요. 들어갈게요.”

그녀는 마치 지옥문을 열 듯, 발발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 * *

“자, 여기.”

김 실장이 현승에게 새로 발급된 사원증과 명함꾸러미를 건네줬다.

“이제 정식으로 LS 엔터의 전속 작곡가가 된 거야.”

김 실장은 현승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덧붙였다.

“잘 부탁한다.”

“예, 저야말로.”

이내 김 실장이 현승을 데리고 사내 곳곳을 순회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층별로 내려오며 대략 어떤 부서가 있는지부터 옥상 테라스, 사내 카페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

“여기가 바로 우리 회사의 핵심 복지 시설이지!”

“구내식당이요?”

“타 엔터 직원들도 우리 구내식당을 부러워하거든.”

“그럼 부러워할 게 딱히 없다는 뜻 아닐까요?”

“야, 너는 왜 이렇게 삐뚤어진 눈으로 세상을 보냐?”

이내 현승이 고개를 내젓고는 물었다.

“식당 말고 녹음실 내부 좀 구경하고 싶은데.”

“녹음실? 그래, 지금 바로 구경시켜 줄게.”

현승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또 우리 녹음실도 타사가 모두 부러워하는….”

너스레를 떨려던 김 실장이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 현승을 발견하고는 곧장 소리쳤다.

“야! 야! 그쪽 아니야!”

* * *

“자, 여기가 가장 작은 녹음실인데….”

김 실장이 이런저런 설명을 이어 나가며, 손에 쥔 문고리를 돌려 얼었다.

두꺼운 녹음실 문을 열자 방음으로 차단되어 있던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마음이 급했다.

미처 녹음실이 사용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고 덜컥 문부터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녹음 중이신지 몰랐습니다.”

“김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남자는 김 실장을 발견하자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인 작곡가인데 구경을 시켜 주려다 그만 실례를 범했네요.”

“아, 안 그래도 녹음 쉬었다 가려던 참이었으니 편하게 구경하시다가 가시죠.”

시끄럽게 울리던 반주를 “툭.” 꺼 버린 남자는 주지태였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인 김 실장이 이번에는 현승을 향해 말을 덧붙였다.

“현승아, 인사드려. LS 엔터 소속 작곡가분 중에 가장 잘나가시는 분이야.”

현승이 그에 부응하듯 고개 숙여 인사했고.

‘젊은 모습은 처음이라 못 알아볼 뻔했네.’

전생에서 주지태와 두터운 친분은 없었지만, 두어 번의 인사치레를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도 유쾌한 성격으로 바닥에서 평판도 좋고, 능력 또한 좋아서 히트 메이커라고 불렸었다.

“안녕하십니까. 민현승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까딱하면 아버지뻘이겠는걸? 말 편하게 해도 되지?”

“네,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나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하겠네.”

주지태와의 첫 만남은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적어도.

서지니가 녹음 부스에서 녹초가 된 꼴로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야? 저 또라이가 여기 왜 있는 건데?’

현승을 발견한 서지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지?

어째서 김 실장과 주지태와 하하 호호 웃고 있는 걸까?

충격적인 그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또 뵙네요.”

서지니를 발견한 현승이 먼저 도발 섞인 인사를 건네기에 이르렀다.

두 사람은 고작 30여 분 전에 썩 좋지 않은 첫 만남을 가졌던 사이가 아니던가?

“아, 지니 녹음작업 중이었구나?”

“네, 보시다시피요.”

“그나저나 두 사람이 구면인가 보네?’

“아까 그냥 우연히….”

이내 서지니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저.

속으로 현승이 앞서 있었던 일을 묵인해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녹음하는 거 조용히 지켜보다가 가도 될까요?”

현승의 뜬금없는 부탁에 서지니는 경악했다.

‘저 또라이 진짜 왜 저러는 거야?’

갑자기 자신의 녹음 과정을 보겠다니, 뭐 얼마나 잘하나 보자 이건가.

“음, 뭐 안 될 거야 없지.”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주지태는 흔쾌히 허락했고.

현승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녹음 부스 안을 바라봤다.

다행히.

자신이 염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김 실장이나, 주지태에게 앞서 일을 고자질하는 일 말이다.

“지니야, 다시 부스로 들어가.”

이내 서지니가 도로 부스에 들어섰고.

“후렴부터 따 보자.”

헤드셋을 뒤집어쓴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실 스피커를 타고 반주가 흘러나왔다.

머니 코드를 잘 활용한 대중성 높은 곡이었다.

‘확실히 보통내기는 아니네.’

일단 곡은 합격이었다.

‘흠.’

고개를 슬쩍 돌려 바라보니 김 실장 역시 같은 입장인 건지, 연신 고개로 리듬을 타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다시! 다시! 다시!”

연신 반주가 끊겼고.

“힘주고 지르라고!”

주지태가 호통과 함께 연신 녹음을 중단했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지!”

작업실에 처음 발을 들였던 때 주지태의 표정이 어두웠던 이유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산으로 가고 있네.’

만약 화를 내서 제대로 된 소리를 낼 수 있더라면, 성질이 가장 더러운 작곡가가 가장 성공했을 터였다.

‘방식이 글렀네.’

곡을 가수에게 맞춰야 하는데, 가수를 곡에 맞추고자 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히려는 행위나 마찬가지였고….

당연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자 답답함에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흠.’

현승이 재차 고개를 돌려서는 서지니를 바라봤다.

이따금 미세하게 성대의 떨림이 과해지는 구간이 있었지.

‘역시나.’

그녀의 잔뜩 움츠러진 어깨와 목선이 증명해 주고 있었다.

겁을 먹었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진행해야 하는 녹음이라는 숭고한 행위를 겁에 질린 채로 행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더 볼 것도 없겠는데요.”

“나갈까?”

“예, 분위기도 엉망이고요.”

답을 알았다고 해서 당장 왈가왈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주지태에게 가볍게 묵례를 해 보인 두 사람이 곧장 녹음실을 빠져나왔고….

“주지태 씨가 원래 프로듀싱을 할 때 좀 까칠하신가 봐요?”

“좀 엄격한 편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감정적이진 않은데….”

현승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저 사람한테만 까칠한 성격이란 말씀이세요?”

현승이 말한 ‘저 사람’이 서지니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김 실장이 곧장 답했다.

“사실 지니 지난 앨범도 주지태 씨가 총괄 프로듀싱을 도맡았거든. 근데 시원하게 말아먹었지. 이번에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본인 커리어에도 타격이 올 테니 예민해졌을 거야.”

김 실장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덧붙였다.

“실력이 좋은 양반이다 보니 사실상 거의 떠넘겨 받다시피 지니를 맡게 된 거거든. 아마 당사자가 가장 머리 아플걸?”

현승이 한차례 “흠.”하고 침음을 흘렸다.

주지태의 심정은 이해했다.

다만 방식은 공감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연주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악기에 욕설을 퍼붓거나 내동댕이친다고 원하는 소리가 날 리 없지 않겠는가?

“아무튼 골칫거리다. 서지니, 이번 앨범도 망하면 재계약은 물 건너갈 텐데….”

반면, 현승은 깊은 상념에 잠겨 있을 따름이었다.

‘기본적으로 소리는 좋았어.’

현승이 듣기에는 꽤 쓸 만한 목소리였다.

조율이 잘못되었지만, 기본적 선율은 좋은 악기.

한 마디로.

현승이 바라본 서지니는 꽤 괜찮은 연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쓸 만한 악기’였다.

“실장님.”

그렇다면.

“제가 해 보면 안 돼요?”

방법은 하나다.

“그게 무슨 소리야?”

“골칫덩어리라면서요.”

“그야 그런데….”

“제가 한번 연주해 볼게요.”

조율부터 다시 시작하면 그만일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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