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대형 여행 플랫폼 ‘저기 갈래’의 회의실 안.
“이야.”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하여 광고를 보고 있던 직원들 입에서 감탄이 쏟아져 나왔다.
“보고 있으니까 막 떠나고 싶어지지 않아?”
“이야, 아주 기막히게 뽑혔다!”
“삽입곡 선정이 늦어진 이유가 있었네.”
“그러게, 이렇게 착 붙는 곡 찾는다고 그랬나 봐.”
“근데 이 곡 누가 부른 거야?”
‘저기 갈래’는 동종업계 2위라는 타이틀의 꼬리표를 떼고, 1위로 올라설 도약을 제대로 준비한 모양새였다.
대일기획을 통할 정도면 꽤 엄청난 거금을 들였을 것이고, 그 값어치를 해낼 광고가 나온 것이다.
광고는 브이로그 재질로 총 3가지 버전이 제작되었다.
모녀의 여행. 부자의 여행. 반려견과의 여행….
따듯한 느낌이 드는 연출은, ‘같이 걷자’라는 곡을 만나 더욱 포근한 느낌의 광고로 탄생했다.
그래서였을까?
‘저기 갈래’의 광고는 기대했던 것 이상의 파급력을 가져왔다.
[ 나 바로 엄마랑 떠나려고 예약했다! ]
↳ 난 낯부끄럽지만, 아버지한테 여행 가자고 해봐야지..
↳ 울 뽀삐, 더 늙기 전에 언니랑 여행 많이 다니자 ㅠ
↳ 이상하게 이 광고만 보면 찡해지고 부모님 생각남.
[ 좀 뜬금없는데 광고 삽입곡 겁나 중독되지 않냐. ]
↳ 그러니까ㅠ 계속 귀에 맴돌아ㅠ 곡 제목 뭐냐?
↳ 서지니의 같이 걷자는 곡임.
↳ 이게 서지니 곡이라고?
↳ ㅇㅇ. 진짜 이번에 서지니 싱글 다 좋음.
↳ 서지니 진짜 칼 갈고 나왔나 보네.
↳ 2222. 곡이 광고 슈퍼 캐리한 느낌임;;;
금세 광고 영상의 조회 수가 133만 회를 넘어갔다.
광고는 산발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유명 크리에이터들의 광고를 패러디한 여행 브이로그가 쏟아져 나왔다.
“현재 반응도 좋고, 점점 신규 유입자도 많이 늘어나고 있어.”
“이참에 우리 광고 모델도 서지니 씨로 바꾸자고 얘기해 볼까?”
“아예 다음 광고에는 로고송을 불러 달라고 하지, 왜.”
비단 물살을 탄 것은 ‘저기 갈래’ 뿐만이 아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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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LS 엔터 또한 그 물결에 일렁이고 있었다.
[ 돌아온 디바, 서지니! ‘같이 걷자’ 음원 순위 역주행 중….]
[ 서지니, 앨범 수록곡 전체 음원 순위 줄 세우기 성공! ]
[ 여행 플랫폼 ‘저기 갈래’ 광고 영상 CF 최초 천만 뷰…. ]
김 실장은 사내 카페에 앉아 기사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사무실에 계신 줄 알았는데, 카페테리아에 계셨네요.”
때마침 매니지먼트 1팀 소속 조 팀장이 찾아왔다.
“어, 점심시간에 무슨 일이야?”
“김 실장님, 놀라지 마세요.”
“뭔데.”
“서지니 ‘같이 걷자’가 말이죠.”
“어, 어.”
한참 뜸을 들이던 조 팀장이 작게 속삭였다.
“국내 음원 차트 실시간 순위 10위 내에 진입했습니다.”
“뭐?”
“실시간이라서 일간 차트에서는 변동되겠지만….”
“그래도!”
“안 그래도 홍보실에 공식 기사 요청하고 오는 길이에요.”
김 실장은 “잘했다! 잘했어!”라며 조 팀장의 어깨를 몇 번이나 두들겨 줬다.
“조 팀장은 역시 일처리가 빨라. 커피라도 한잔 사 줄까?”
“괜찮아요. 얼른 들어가서 일해야죠.”
“어, 그래. 나도 밥만 먹고 바로 사무실 복귀할게.”
조 팀장은 목례를 한 뒤, 금세 사라져 버렸다.
쪼로록-.
김 실장이 한참 커피를 마시며 피식거리던 찰나.
“뭐가 그렇게 좋아서 계속 웃으세요?”
연락을 받고 찾아온 현승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어, 왔어? 그게 말이야….”
김 실장이 한차례 호흡을 가다듬고는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분명 처음에는 서지니 싱글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만 해도 다행이다 생각했거든?”
이내 씨익 웃으며 덧붙였다.
“근데 효자 곡이 될 것 같은 냄새가 나잖냐.”
“그럼요, 누구 곡인데.”
“짜식이, 어떻게 된 게 들뜨는 기색 하나 없냐?”
김 실장은 현승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모쪼록 음원 순위 싹쓸이한 기념으로 구내식당 쏜다!”
그 말에 손을 툭 내치며 답했다.
“구내식당을 쏘긴 뭘 쏴요.”
그리고는 뱉은 말과 달리 구내식당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야, 같이 가-!”
한껏 들뜬 김 실장이 그 뒤를 쫓아 걸어가려던 찰나.
띠리링-!
별안간 명쾌한 벨 소리가 울려 퍼졌으며….
“어….”
김 실장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힘차게 울리던 벨 소리가 끊길 때쯤 전화를 받은 김 실장이 연거푸 “네, 네.” 하며 굽신거리더니 통화를 종료했다.
“후….”
현승이 “무슨 일이에요?”라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봤고.
“현승아, 구내식당은 다음에 쏠게.”
“오, 좋은 곳에서 밥 사시려고요?”
“대표님 호출 와서 가야 할 것 같아.”
“그럼 다녀오실 때까지 기다릴게요.”
그 말에 김 실장이 “아니.”하고 답하고는 덧붙였다.
“같이 가야 할 것 같은데?”
“저도요?”
“그래, 우리 둘, 같이 말이야.”
그렇게 ‘대표’와의 첫 대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절대 무례하게 굴면 안 돼!”
김 실장이 연거푸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제가 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애 같지 않아서 걱정되는 거야.”
“뭐 어떡하라는 거예요, 가서 애처럼 굴어요?”
“그냥 너 잘하는 ‘네’만 하면 돼.”
현승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복도를 거닐었다.
과연 대표는 어떤 사람이려나….
결코 만만한 인물은 아닐 것이다.
LS 엔터는 이후 12년간 큰 탈 없이 대형 엔터의 자리를 지켜 낸다.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면, 12년간 대표직 또한 바뀌지 않는 건 물론이고.
그런 대표는 대외적인 이미지야 점잖으며, 말수가 적고, 온화한 편이라지만….
그건 잘 모르는 이들의 평판일 뿐일 터였다.
자신만 하더라도 업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리저리 옮겨지며 만들어진 소문을 잔뜩 들었으니까.
아마 그중 일부는 헛소문이 아닐 것이다.
정말 대외적인 이미지대로의 사람이라면 그토록 오래 군림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똑, 똑-.
생각이 깊어질 무렵 두 사람이 대표실 앞에 도착했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비서의 안내를 받고 대표실 문턱을 넘었다.
“두 분, 여기 와서 앉으세요.”
대표의 침착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안녕하십니까, 민현승입니다.”
“처음 뵙네요, 반갑습니다.”
“저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현승이 가볍게 묵례를 전하며 그의 얼굴을 살폈다.
전남일 대표.
확실히 깔끔한 인상과 부드러운 어조가 인상적인 이였다.
또한.
철저하게 관리된 몸이 슈트 밖으로도 티가 날 정도였다.
‘생각보다 젊네.’
하지만 서글서글한 눈매 뒤에 숨겨진 눈빛이 차갑고 매섭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위압적일 만큼 날카로운 이채를 보아하니….
역시 그를 둘러쌌던 흉흉한 소문들이 모두 거짓은 아니리란 생각이 들었다.
제 등을 수도 없이 찌르려고 날아오는 칼들을 피해 가며 올라왔을 자리다.
수많은 이들을 밟고, 밟아서 오른 위치.
결코 그가 쉽게 대표 자리에 앉아, 차나 마시며 여유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 터였다.
“혹시 어떤 용무로 호출하셨는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나 현승도 회귀 이전의 삶에서 여러 엔터, 레이블, 레코즈에 이르기까지.
수년간 정글 같은 이 바닥에서, 많은 이들과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며 정상에 올라섰다.
현승이 ‘히트곡 제조기’라며 범국민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단순히 작곡만 잘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요, 쓸데없는 인사치레를 길게 할 필요는 없겠죠.”
전남일 대표가 곧장 본론을 꺼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일순 장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를 잠시.
전남일 대표의 입꼬리가 슬쩍 말려 올라갔다.
“사 측에서는 큰 지원 사격을 해 주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례적이라 할 만한 성과가 나왔더군요.”
아마도 서지니의 앨범 성과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
대표의 말대로였다.
정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단한 성과임이 분명했다.
“그저 곡과 가수의 합이 좋았던 것뿐입니다.”
현승이 평소와 달리 겸손한 투로 답하자 김 실장이 일순 두 눈을 크게 떠 보였다.
한데, 뭐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반복된 학습으로 형성된 상투적인 겸손처럼 느껴졌달까?
“만약 서지니가 이번 앨범에서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더라면 재계약은 없었을 겁니다. 작곡가님 덕분에 다시금 재계약 기회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겠군요.”
현승이 덤덤한 투로 답했다.
“잘된 일이네요.”
그리고는 뼈 있는 말을 덧붙였다.
“저랑은 무관한 일이지만요.”
대표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음?”하고 낮게 침음했다.
현승은 구태여 서지니를 맡겠다고 나서서 고집 피운 인물이 아니던가?
설령 이번 성과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이 주어진 것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첫 가수에 대한 정이나 유대감 따위로 가식 한번 떨어 줄 수 있을 텐데.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서지니를 직접 전담하신다고 하여, 특별한 애정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봅니다.”
“단지 좋은 소리를 내는 악기처럼 보여서, 직접 연주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대표의 눈썹이 작게 일렁였다.
‘가수가 악기라?’
작게 침음을 흘린 대표가 제 턱을 가볍게 훑어 내고는 현승과 시선을 맞췄다.
대표라는 위치가 주는 위압감이 있을 텐데,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눈동자가 고요했다.
“그래, 맞아. 직접적인 보상이 있어야겠지.”
다시금 대표실 안으로 적막이 드리우기를 잠시.
“사내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들어오셔서 마음에 드는 악기를 발견하시거든 언제고 마음껏 연주하시면 되겠네요.”
반면 현승은 여전히 생각을 읽을 수 없는 얼굴을 한 채였다.
뭐….
결국 자신을 제 울타리 안에 두고 지켜보겠다는 뜻이지 않은가?
“예, 뭐.”
한참 침묵하던 현승이 가볍게 묵례를 해 보이고는 말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
“그리고 이거.”
대표가 차 키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마음 편히 부르고 싶어서 드리는 겁니다.”
그리고는 재차 덧붙였다.
“작곡가님과는 밖에서도 종종 뵐 것 같아서.”
파격적인 보상이었으나….
“예, 마다하지 않고 감사히 받겠습니다.”
정중히 감사를 표한 현승이 넌지시 되물었다.
“제 결과가 꽤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뭐, 이후를 기대하게 되었죠.”
“이 정도 성과에도 이토록 기뻐해 주시는 분이니.”
잠시 말끝을 흐린 현승이 차 키를 손에 쥐며 덧붙였다.
“결코 실망시켜 드릴 일은 없으리란 생각이 드는군요.”
그 말에 대표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흘려 보였다.
“볼수록 마음에 드는 친구네.”
그 말에 두 눈이 화등잔만 해진 김 실장이 반사적으로 현승을 바라봤다.
현승은 이번에도 그저 묵례를 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허….’
저 천둥벌거숭이 같은 녀석은 알까?
전남일 대표의 눈에 드는 게….
또 저러한 평판을 받아 내는 일이.
당사자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까?
‘것 참.’
공명의 반만.
아니.
반의반이라도 해 주기를 바랐던 과거가 떠올랐다.
‘이거….’
아무래도 제대로 된 녀석을 초야에서 모셔 온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