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SUV 차량 한 대가 도로 위를 내달린다.
끼이익-.
그러나 얼마 안 가 신호에 걸린 차량이 멈춰 섰고.
“여보세요.”
디스플레이를 조작하여 전화를 걸었다.
- 어 오빠.
“집이야?”
- 응, 왜?
“아버지도?”
- 같이 있지.
“아버지랑 나와”
- 갑자기?
“응, 5분 뒤에 나와.”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는 동시에 전화를 종료한 현승이 엑셀을 보챘다.
가파른 골목 사이를 오르니 집 앞에 서 있는 현아와 아버지가 보였다.
빵-!
크락션을 가볍게 울렸지만, 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뭐해? 얼른 타.”
결국 현승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오빠 이게 뭐야?”
“차.”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그럼?”
“어디서 난 거냐고!”
“회사.”
현아는 일순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을 어렴풋하게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됐어, 그냥 말을 말자.”
놀란 눈으로 계속 차 외관만 살피는 아버지에게 현승은 수화로 설명을 덧붙였다.
- 이번에 회사에서 지원받은 차량이에요, 얼른 타세요.
- 그냥 차를 지원해 준다고? 잘 알아본 거야?
- 네, 이번에 맡았던 일이 잘 마무리되면서 받았어요.
현승은 뒷문을 열며 아버지를 차에 태우고는 돌아가 운전석에 다시 몸을 실었다.
“오빠, 이번 서지니 앨범 잘돼서 차도 준 거야?”
현아의 얼굴 위로 호기심과 설렘으로 가득 담겨 있었다.
“방금 말을 말자면서?”
“아씨!”
“조만간 이사 가자.”
제 말에 씩씩거리며 열을 뿜어내던 현아가 화들짝 놀라서는 되물었다.
“조만간? 언제? 이사? 갑자기 무슨 이사?”
“학교에서 가깝고 치안도 좋은 곳으로.”
현아의 입가에 은은한 웃음이 퍼져 나갔다.
“정말? 그럼 이제 나 골목길 안 올라가도 돼?”
현승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활짝 웃어 보인 현아가 “아싸!”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근데 작곡가가 그렇게 돈을 잘 벌어?”
“그랬으면 너도나도 작곡가 하겠지.”
현승이 피식 웃으며 거들먹대듯 덧붙였다.
“나니까 이렇게 잘 버는 거야.”
“와아, 가족이지만 정말 밥맛이다.”
질색하는 말투와는 달리 현아의 표정은 몹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처음 여행이라도 떠나는 듯 설레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물어왔다.
“오빠 이건 무슨 버튼이야?
컨트롤 패널 보드에 위치한 경사로 밀림 방지 버튼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륙양용 기능, 차를 오리 배처럼 띄울 수 있는 기능이야.”
“정말? 물 위에? 언뜻 보면 진짜 오리 같아 보이긴 하는데….”
현승이 웃음을 꾹 참으며 작게 끄덕거렸다.
“그럼 이건?”
현아가 또 다른 버튼을 가리키며 물었고.
“차량 폭발 버튼.”
“뭐? 어라? 이씨!”
현아의 감정이 순식간에 급변했다.
“방금 말한 거 다 거짓말이지?”
“그걸 속냐?”
“나 진짜 오빠랑 말 안 해!”
현아의 입술이 또 오리마냥 삐죽 튀어나왔고.
“안전벨트나 얼른 매.”
현승의 말을 끝으로 차량이 매끄럽게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적막이 가득한 차 내부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노래를 재생시켰다.
“네가 좋아하는 서지니 노래다.”
“됐어.”
화해를 시도해 봤지만, 단단히 삐진 현아는 창가에 기대어 밖에 풍경만 바라봤다.
그러던 중.
흘러나오던 노랫소리와 엔진 소리만 가득한 차 안에 다른 소리가 겹쳐졌다.
무슨 소리지?
“으음-.”
현승이 고개를 살짝 돌리자 현아가 흥얼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이내 얼마 안 가 흥얼거림은 들썩임으로 퍼져 나갔다.
“노래 좋지?”
슬쩍 곁눈질로 묻자, 재빨리 자세를 고쳐 앉으며 퉁명스레 답했다.
“뭐, 좋긴 좋네.”
“이번 수록곡 중에 뭐가 제일 좋았는데?”
차 안이 잠시 고요해지던 찰나.
“같이 걷자.”
현아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너무 좋더라.”
살짝 엿본 동생의 얼굴은 몹시 생경했다.
‘이렇게까지 음악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정말 음악 하나에 저렇게나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전생에서조차 본 적 없는 여동생의 얼굴빛.
성과를 따라오는 재물이라든가, 명예 따위와는 다른 보상이었다.
현승은 가슴 한편이 뻐근할 정도의 뿌듯함을 느꼈다.
“근데 오빠가 서지니 수록곡 다 만든 거야?”
“만들기만 했겠어?”
“그러면? 작곡만 해 준 거 아니었어?”
현승이 어깨를 들썩이며 거드름을 피웠다.
“프로듀서로서 전반적인 건 다 했다고 봐야지.”
“진짜? 그럼 친구들한테 자랑해도 돼?”
“아니, 미안하지만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아.”
진중함이 느껴진 말이었기에 현아가 재차 조심스레 물었다.
“왜? 나도 오빠 자랑 좀 하고 싶은데….”
“유명해지는 게 싫어서 그래.”
“싫다니? 다들 유명해지고 싶어 하지 않아?”
잠시 고민하던 현승이 고개를 내저었다.
“응, 그냥 나는 지금처럼 지내고 싶어.”
“지금처럼?”
“평범하고, 자유롭고, 소소하게.”
대답을 들은 현아가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는 영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로 골몰하다가 화제를 전환했다.
“됐고, 같이 걷자 한 번만 더 듣고 싶어.”
“그렇게 좋아?”
“응! 세 곡 다 좋지만, 그 곡이 제일 좋더라.”
대중의 평가와는 달리 가족의 평가는 낯설지만, 또 다른 보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어떤 게 제일 좋….”
아차.
현승은 백미러로 아버지를 살펴보다 목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너무 들뜬 나머지 한 실수였다.
동시에 현아도 눈치를 살폈고, 차에는 다시금 적막이 찾아왔다.
‘다시 돌아왔어도 아버지는 내 곡을 들을 수가 없네….’
아무것도 모른 채 창밖을 내다보는 아버지의 옆얼굴이 백미러에 비춘다.
현승은 앞으로도 영원히 아버지가 제 곡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겼다.
달칵-.
식당 앞에 주차를 끝낸 현승이 차 키를 돌리며 말했다.
“현아야, 도착했다. 내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어색한 가족들의 식사 시간이 흘러갔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현승이 계산하고 나가던 찰나….
톡톡-.
뒤따라 나온 아버지가 현승의 어깨를 두들겨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의 예상치 못한 뜻밖의 부탁.
- 혹시 악보 같은 걸로 우리 아들이 만든 곡 볼 수 있을까?
현승은 회귀 전 아버지의 유품 박스를 떠올렸다.
그 속에 들어 있던 수백 장의 낡아 버린 종이 쪼가리….
투병 중에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자신의 악보.
- 그럼요. 가져다 드릴게요.
예나 지금이나 아버지는 늘 한결같은 분이었다.
그 일관성 탓에….
일순 가슴 한편이 자갈을 삼킨 양 욱신거려 왔다.
아버지.
고작 세 음절로 된 단어가 언제부터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애잔한 단어가 된 걸까?
정말 알쏭달쏭한 일이었다.
* * *
현승은 가족과 시간을 보낸 뒤, 느지막이 LS 엔터 사옥을 다시 찾았다.
“겁나 무겁네.”
사옥 내 개인 작업실로 짐도 옮겨 놓고, 아버지에게 드릴 악보를 만들기 위한 걸음이었다.
어디라고 했지…?
얼마나 헤맸을까. 불 꺼진 사옥 복도 끝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작곡가 작업실이 몇 층이냐고 물어봐야겠다.’
현승은 곧장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고, 가까워질 무렵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내게 와 주면 나는 하늘을 날아가….”
불안정한 호흡으로 끌고 가는 노래를 듣고 있자니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흠, 목소리 자체만 놓고 보면 좋은 악기 같은데 호흡이 영 엉망이네….’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니, 새하얗고 어린 여자가 팔다리를 엉성하게 살랑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팔을 이렇게 뻗고 바로 턴 하면….”
딱딱하게 굳은 짓이 마치 깡통 로봇이 떠올랐다.
‘출입명부?’
문 앞에 걸린 출입명부가 뒤늦게 현승의 눈에 들어왔다.
‘학교도 아니고 무슨 출입명부씩이나.’
오늘 날짜가 적힌 종이 위로 이름 하나가 덜렁 적혀 있다.
정아린.
어딘가 익숙한 이름 석 자, 현승은 그 이름을 곱씹었다.
“아린, 아린, 정아린….”
그때 현승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고 출입문을 쳐다봤다.
“거기 누, 누구세요?”
“아, 지나가던 직원.”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양 덧붙였다.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하시면 될 듯?”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잘 찾지 않는 지하 1층 연습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실.
살짝 열린 출입문에 물끄러미 서서, 제 이름을 곱씹어 대고 있는 낯선 남자 한 명.
정아린으로서는 무서운 상황일 따름이었다.
“그, 근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출입명부에 버젓이 적혀 있던데.”
정아린은 그제야 “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생 정아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헐렁한 티셔츠의 앞가슴을 잡아내며 고개를 푹 숙여 인사를 건넸다.
“나한테 잘 부탁할 건 없고. 혹시 아이돌 연습생?”
“네? 아, 네! 맞아요.”
“그냥 물어보는 건데, 아이돌이 꼭 되고 싶은가?”
정아린은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고.
띠리링.
때마침 그녀의 휴대폰이 울려 퍼졌다.
“혹시 더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전화가 들어와서….”
현승은 작게 고개를 내저은 뒤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걷다가 중요한 걸 빠뜨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 맞다.”
정아린에게 길을 물으려 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터벅, 터벅-.
그렇게 도로 불 켜진 연습실 앞에 다다르던 무렵.
“아빠, 그냥 나 한 번만 믿고 기다려 주면 안 돼요?”
이번에는 울먹임이 섞인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월말 평가만 잘해 내면,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텅 빈 연습실에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완강함이 묻어났다.
“만약 이번에도 떨어지면 그때 내려갈게요.”
그녀는 통화를 끝내자 주르륵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승이 침음을 흘렸다.
길을 물어볼 상황도 아닌 것 같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자니 입이 간질거렸다.
“이봐, 거기.”
현승의 목소리가 들리자, 정아린이 고개를 휙 돌렸다.
“아직 계셨어요?”
한차례 “응.”하고 답한 현승이 대뜸 혹평을 날렸다.
“잠깐 봤는데도 춤에는 영 소질이 없더라.”
“예?”
“춤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니게 되잖아.”
갑작스레 날아든 공격적인 말에 정아린이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찰나였다.
“깡통 같은 몸으로 되지도 않는 춤까지 추면서 노래를 하니까 영 형편없어 보이더라고.”
“그게 무슨….”
“내 말은, 되지도 않는 춤 집어치우고 제법 괜찮은 노래에나 집중하는 게 나을 것 같단 거지.”
정아린은 자신을 지적하는 말을 듣자 화도 났지만, 반박할 수 없음에 분할 따름이었다.
조금 전 현승이 내린 평가는 그녀가 매번 트레이너들에게 받던 평가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아린아, 너는 목소리 자체는 좋은데 춤은 영….”
“벌써 몇 년째인데 춤은 늘지를 않아.”
“아이돌을 한다는 녀석이 이렇게 몸이 빳빳해서 원….”
별안간 가녀린 그녀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고.
“내일 모래 월말 평가가 있어요.”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마 이번에도 낙제 받으면 퇴출당할 거예요.”
그녀는 울기 싫은지 고개를 치켜들고 눈가를 향해 연신 부채질을 했다.
“조금 전에 봤던 실력이라면 아마 낙제할 거야.”
그러나 현승은 단호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이 바닥은 운다고 해결되는 곳이 아니거든.”
현승이 넓은 보폭으로 금세 그녀 앞에 다가섰고.
벅벅.
거칠게 눈가를 닦아 낸 그녀가 현승을 똑바로 응시했다.
“누가 운다고 그래요.”
그때 현승이 제 명함 한 장을 무심히 내밀었다.
“받아.”
정아린이 명함을 앞뒤로 돌려 보며 어리둥절하게 물어왔다.
“이게 뭐예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예정대로 낙제하게 되거든 연락해.”
현승이 어깨를 들썩이며 덧붙였다.
“마음이 동한다면 도와줄지도 모르잖아?”
정아린은 통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현승을 빤히 바라봤다.
한참 악담만 퍼붓더니….
느닷없이 대체 뭘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다고 이러는 걸까?
“어느 부서에 계신 누구신데요?”
“명함에 버젓이 적혀 있을 텐데.”
이내 정아린이 앞서 건네받은 명함을 한번 내려다봤다.
“작곡가님이셨어요?”
“응, 어쩌다 보니.”
대강 답한 현승이 아까 들었던 정아린의 음성을 다시 한번 곰곰이 되짚어 봤다.
‘좋은 악기일지도 몰라.’
정아린의 목소리 하나만큼은 현승의 걸음을 멈추게 할 만큼 좋았다.
현승은 비록 쓸데없는 오지랖 일지라도 한 번 정도는 부려 볼 만하다고 판단했다.
“아. 맞다.”
그때 현승이 무언가 잊었다는 양 대뜸 말문을 열었고.
“네?”
사뭇 진중한 투로 물었다.
“그나저나, 길 좀 묻자.”
“아, 얼마든지요.”
“길 물으려고 왔었거든.”
“네, 말씀하세요.”
“작곡가실이 어디야?”
이내 정아린이 명함에 적힌 ‘사내 작곡가’라는 직함과 현승의 얼굴을 몇 번이나 번갈아 쳐다봤다.
“작곡가라면서요…?”
아무래도 이상한 사람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