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8화 (18/118)

18화

정아린은 약 보름간의 피 터지는 연습 끝에 드디어 녹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추워….”

낮게 중얼거린 정아린이 다시 눈을 감은 채 몸을 둥글게 웅크려 보이기를 잠시.

멍하니 고개를 휙 들어 올리고는 짧게 “어?” 하고 중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언제 잠들었지?’

딱 한 곡을 녹음하는 게 전부였건만 무려 삼 일을 보냈다.

“잠깐 쉬자.”

현승이 녹음 마무리 단계만 남겨 놓은 채 휴식을 선언했다.

피로가 켜켜이 쌓인 상태에서 녹음을 강행한 까닭일까?

아무래도 잠깐 쉬려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든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지? 잠들었다고 왕창 혼나는 거 아냐? 차라리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아무렇지 않은 척할까? 지금 몇 시지….’

좌우를 둘러보려 했지만, 눈꺼풀이 마냥 무겁게만 느껴졌다.

‘더 늦기 전에 일어나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어렵사리 결심을 마친 정아린이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끼이익―.

별안간 작업실 문이 열리며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국….

정아린은 어정쩡한 자세로 다시 자는 시늉을 해야만 했다.

“이야, 왠지 작업실 오랜만에 온 것 같은 기분인데?”

“네, 실제로 오랜만에 오긴 하셨어요.”

“맞아, 요 며칠은 정말 정신이 아예 없었던 것 같네.”

“덕분에 매일 구내식당에서 혼밥 했다고요.”

대화 내용으로 유추하건대 아무래도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현승과 김 실장이 이제 막 작업실로 돌아온 게 분명해 보였다.

“음?”

이내 이를 쑤시던 김 실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어째 지니 녹음할 때랑 상황이 똑같아 보인다?”

그런 김 실장의 시선은 소파 한쪽에 웅크린 채 잠든 정아린의 등에 고정된 채였다.

“아린이 쟤도 참 고생이다.”

“고생은 무슨 고생이에요?”

“이 봐, 보면 꼭 이렇다니까?”

김 실장이 표정을 구기며 되물었다.

“야, 너 같은 음악 변태랑 녹음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고생일지 고민이나 해 봤냐?”

“그 덕분에 결과가 어느 정도 보장되잖아요? 나중에 쪽박 차는 것보다야 낫죠.”

재수 없지만,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 자식 이거….”

김 실장이 언젠가 한 번쯤은 기어이 현승을 ‘말’로 이겨 먹고야 말겠노라 다짐하기를 잠시.

“아, 그나저나.”

그가 이쑤시개를 컴퓨터 옆 쓰레기통 안에 대강 던져 넣으며 넌지시 되물었다.

“정말 괜찮겠냐?”

노파심이 서린 물음이었다.

“또 뭐가요?”

김 실장이 턱짓으로 정아린을 가리켰다.

“네가 대표님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까딱 잘못해서 미끄러지면 예쁨받는 것도 끝이야.”

“그렇게 속이 좁아 보이지는 않으시던데? 그리고 대표님께 예쁨 좀 못 받으면 어때요?”

현승이 어깨를 으쓱였다.

“사십 대 아저씨한테 예쁨받아서 뭐 한다고.”

“다들 그 아저씨 눈에 들려고 얼마나….”

“그건 남들 이야기고 저는 관심 없습니다.”

덤덤하게 답한 현승이 작업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김 실장이 재차 되물었다.

“이번에 곡 받겠다고 줄 섰던 쟁쟁한 가수가 어디 한둘이야? 전부 다 걷어차고 퇴출당한 연습생 데려왔는데 윗분들 눈에 괜찮게 보이겠냐고….”

잠든 척 누워 있던 정아린의 귀가 쫑긋 섰다.

‘쟁쟁한 가수 리스트…?’

김 실장이 정장 외투 안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내서는 한 장씩 뒤로 넘겨 가며 말을 이어 나갔다.

“박신후, VMS, 김진오, 카인, 그리고 또 누구더라….”

그 말에 현승이 “그만, 그만….” 하고 말하는 것으로 김 실장을 만류했고….

“어차피 녹음 다 끝나가는 마당인데 이제 와서 그런 이야기 해서 뭐 해요? 그리고 윗분들이니 뭐니 하는 표현 좀 쓰지 말아 주세요. 누가 보면 옥황상제나 염라대왕 정도 되시는 분들이라도 언급하는 줄 알겠네….”

이내 김 실장이 “허.” 하고 짧게 침음하기를 잠시.

“야, 현승아. 딱 하나만 물어보자.”

“계속 이것저것 물어볼 거면서.”

“대체 왜 퇴출당한 연습생을 골랐어?”

정아린 역시 의문이었다.

‘그러게, 정말 왜 하필 나를….’

앞서 김 실장이 언급했던 가수들은 하나같이 일정 수준 이상의 흥행이 보장되어 있는 이들이 아니던가?

흥행 보증 수표들.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인지도 면에서도 훨씬 우위에 있는 기성 가수들을 내팽개치고 대체 왜 자신을 고른 걸까?

“저 정도면 꽤 훌륭한 악기라고 생각해요.”

“저 아이가?”

“예, 다만 연주자를 잘못 만났던 거죠.”

아마 사내 연습생 전담 트레이너들을 두고 한 말일 터였다.

“그럼 사내 트레이너들이 잘못 연주했다는 거야?”

“잘했으면 쟤가 저기서 쪽잠 자고 있겠어요?”

“그래도 연습생 시절 기록 살펴보니 늘 하위권에….”

훨씬 더 좋은 선택지가 있지 않았냐는 의도로 건넨 물음이었다.

“그러니까 전부 연주자 탓인 거죠.”

“흠….”

“악기한테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귀를 쫑긋 세운 채로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있던 정아린은 일순 제 코끝이 찡해짐을 느꼈다.

‘저 사람 말은 좀 툭툭 내뱉어도….’

정아린은 그저 제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단 사실만으로도 지금까지의 노고와 고초를 전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휴, 아무튼 나는 좀 걱정되네.”

김 실장이 재차 아쉬운 투로 중얼거렸다.

“사실 아직 곡 나온 것도 아니고 앨범 발매된 것도 아니잖아?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현승이 이죽거리듯 말했다.

“그럴 시간 있으시면 차라리 오늘의 점심 메뉴를 고민해 보시는 게 어떨까 싶네요?”

“구내식당 밥 잘만 나오는데 점심 메뉴를 내가 뭐 하러 고민해? 영양사가 알아서 해야지.”

“그럼 제가 알아서 해야 할 연주는 뭐 하러 걱정해 주세요? 딱히 큰 도움도 안 될 텐데.”

현승이야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김 실장의 입장에서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기도 했다.

그야말로 탄탄대로.

잘 포장된 길을 내버려 두고 울퉁불퉁한 수준을 넘어선 험난하기 그지없는 길을 선택한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어 보였으니까.

“걱정 좀 접어 두세요.”

그런 김 실장의 마음을 헤아린 현승이 사뭇 따뜻한 투로 넌지시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뭔지 아세요?”

“연예인 걱정 아냐?”

“연예인 걱정 안 하면 누굴 걱정하실 건데요?”

“보통 그렇게 말하잖아?”

“음주, 마약, 폭행, 스캔들, 걱정거리가 한둘이에요?”

“그럼 어떤 걱정인데?”

현승이 씩 웃으며 답했다.

“제 걱정이요.”

다른 사람이 했더라면 실없는 농담처럼 들렸을지 모른다지만, 현승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짜식….”

이내 김 실장이 헤드셋을 집어 들며 덧붙였다.

“곡이나 한번 들려줘 봐.”

“그건 안 돼요.”

“것 참, 치사하게 굴 거야?”

현승이 어깨를 들썩였다.

“어차피 좋다고만 하실 거잖아요?”

“어떻게 확신해?”

“매번 그렇게만 말씀하셨잖아요?”

비록 말은 그렇게 해 보였다지만….

“아직 완성도 못 했는데.”

말과 달리 엔터 키를 한 번 가볍게 눌러 곡을 재생시켜 줬다.

딸깍.

갑작스레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김 실장이 곧장 헤드셋을 뒤집어썼고….

단박에 귀를 사로잡는 전주가 흘러나오더니 머지않아 정아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를 잠시.

“와….”

촘촘히 짜인 곡 위로 매끄럽게 흐르는 정아린의 목소리에 절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소위 돈을 벌어다 주는 코드라 불리는 머니 코드(Money Code) 형태의 진행이었으나….

또렷한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는 와중에 특색 있는 보컬이 특유의 감칠맛을 살리는 중이었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가사.

비록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았으나 ‘좋은 곡’이라 확신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김 실장이 좋은 곡과 그렇지 않은 곡을 판별하는 방법은 몹시 간단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음원 차트 상단에 오르는 상상을 했을 때 이질감이 들지 않으면 좋은 곡으로 분류하는 식이었다.

된다.

곡이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점점 더 확신이 짙어졌다.

비록 장담할 순 없다지만….

이 정도 퀄리티라면 충분히 히트곡이 될 수 있다.

“이건 되겠다….”

“네?”

“진짜 좋은데…?”

김 실장이 감격에 취한 얼굴로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완성된 거 아니라고 하지 않았어?”

“맞아요.”

“바로 마스터링 넘겨도 되겠던데?”

그 말에 현승이 단호하게 답했다.

“아직 한참은 더 깎고 다듬어야 해요.”

“너희 3일이나 녹음했잖아.”

“기간이 중요해요? 결과물이 중요하지.”

“하여튼, 음악 변태라니까….”

말끝을 흐렸던 김 실장이 소파 위에 웅크려 있는 정아린을 슬쩍 돌아보며 덧붙였다.

“그럼 곡 최대한 잘 마무리해 봐. 네 말대로 손에서 떠나보내고 나면 나머지는 회사한테 달린 일이잖아? 너도 그렇고 쟤도 그렇고 이렇게 고생하는데, 최대한 좋은 결과 생길 수 있도록 나도 최선을 다해 봐야지….”

그 말에 현승이 정아린의 등에 대고 물었다.

“야, 들었지?”

이내 김 실장이 “야, 야.” 하고 다급하게 현승을 연달아 부르고는 만류했다.

“자는 애를 뭐 하러 깨워?”

현승이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쟤 안 자요.”

“어?”

“깨어 있어요.”

현승이 쥐 죽은 듯 누워 있는 정아린의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언제까지 자는 척하려고?”

일순 뒤돌아 웅크려 있던 정아린이 움찔했다.

‘어떻게 아셨지?’

대체 어떻게 자신이 깨 있다는 걸 알았을까?

아니.

대체 언제부터 알아차리고 계셨던 것일까?

‘하, 어떻게 하면 좋지….’

그럴 의도는 아니었건만 자는 척을 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엿들은 꼴이 되어 버렸다.

정아린이 민망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서 애꿎은 제 아랫입술만 깨물던 찰나.

“셋 센다.”

현승이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정아린은 터질 듯 붉어진 제 얼굴을 감싸 쥐었고.

“둘.”

이윽고.

“아, 잘 잤다!”

벌떡 몸을 일으킨 정아린이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하하, 저 바로 부스 들어갈까요…?”

현승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세수부터 하고 와.”

정아린은 켜켜이 쌓인 피로 탓에 부쩍 푸석해진 얼굴로 멋쩍게 웃음 지었다.

* * *

그로부터 며칠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정아린.

그녀의 녹음이 원만하게 끝난 건 물론이거니와 이제 발매일까지 얼추 잡혔다.

제 할 일을 모두 마친 현승은 며칠 푹 쉬어야겠다며 작업실을 비운 채였고….

바톤을 이어받은 김 실장은 늘 하던 대로 일을 처리하려던 도중 묘한 불안에 휩싸였다.

‘뭐지?’

아무리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려 해도 사내가 이상하리만큼 조용할 따름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말하자면 그 누구도 정아린의 데뷔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홍보실은 사소한 요청 하나에도 며칠간 묵묵부답하다가 간헐적으로 형식적인 답을 해 왔고….

곡의 모니터링 과정이라든가, 유통사로 이관되는 과정에서도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기 일쑤였다.

‘아무리 낙하산이라고는 해도….’

LS 엔터와 정식으로 계약한 신인 가수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저벅, 저벅.

결국 김 실장은 직접 발품을 팔아 보기로 했다.

양손 가득 뇌물 격인 커피를 챙겨 든 채로….

홍보팀 사무실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대표님이 곁눈질로나마 주시하고 계시는 프로젝트인데….’

만약 엎질러졌다가는 현승의 앞날에 영향이 갈 터였다.

아니, 그보다….

이쯤 되니 조금은 억울한 마음이 들 지경이었다.

곡이 잘 뽑혔다.

퇴출 확정이었던 연습생을 데리고 이 정도로 높은 퀄리티의 곡을 뽑아냈건만, 대체 왜 이렇게 미적지근하고 찝찝한 반응만 이어지고 있단 말인가?

“어? 곽 팀장!”

상념에 잠긴 채 걸음을 옮기던 김 실장이 타이밍 좋게 홍보실 앞에서 곽 팀장을 마주했다.

“실장님…?”

양손에 두툼한 서류를 쥔 곽 실장이 목 인사를 끝으로 곧바로 자리를 뜨려 했다.

평소 같았더라면 너스레를 떨거나 괜히 먼저 실없는 농담 몇 마디를 건넸을 터였다.

‘뭐가 있긴 있네.’

이내 김 실장이 “잠깐만!” 하고 그를 불러 세우고는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커피를 건네줬다.

“이거 홍보실 식구들 좀 가져다 줘.”

“뭘,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그가 멋쩍게 웃으며 커피를 받아 들었다.

“감사해요, 잘 마실게요.”

김 실장이 홍보실 내부를 곁눈질로 살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곽 팀장, 요즘도 홍보팀 많이 바쁘지?”

“저희야 바람 잘 날이 없죠….”

“맞지, 가만 보면 여기가 제일 고생이야.”

말을 마친 김 실장이 턱짓으로 비상계단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오랜만에 같이 옥상에서 담배 하나 피울까?”

잠시 망설이던 곽 팀장이 “어….” 하고 침음하기를 잠시.

“예, 그러시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답했다.

“커피만 건네주고 뒤따라 올라갈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옥상 난간 앞에 섰다.

치이익―.

각자 입에 문 담배에 불을 붙인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양 매캐한 연기를 내뿜었고….

“곽 팀장.”

김 실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예, 실장님.”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다름 아니라, 이번에 데뷔하는 정아린 있잖아.”

‘정아린’이라는 이름이 거론되자마자 곽 팀장의 얼굴 위로 사뭇 불편한 기색이 드러났다.

“예, 알죠.”

이내 김 실장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데뷔가 코앞인데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아, 그게….”

“오해할까 봐 하는 말인데 뭐라고 하려고 부른 거 아냐.”

김 실장이 고개를 슬며시 기울이며 물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곽 팀장이 아무런 답 없이 애먼 담배만 태워댔다.

“맞지? 얼른 말해 봐.”

이내 그가 앓는 소리를 내 보이기를 잠시.

“학연, 지연, 혈연 그리고 흡연이라잖아?”

김 실장이 넉살 좋게 치근덕댔다.

“우리 그동안 같이 태운 담배만 해도 수십, 수백 보루는 되겠다. 서운하게 이럴 거야? 이유가 있으면 말을 해 줘야 나도 나름대로 대비를 할 거 아냐?”

이내 곽 팀장이 나지막이 중얼댔다.

“하, 진짜 미치겠네….”

그리고는 별안간 한 손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고는 슬쩍 김 실장을 바라봤다.

“진짜 김 실장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거예요.”

잠시 숨을 고른 곽 팀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준비가 안 되어 가는 건 홍보실이 바빠서가 아니에요.”

“그럼?”

“지금은 체력을 아껴 놔야 할 때라서 그런 거예요.”

김 실장이 작게 “아.” 하고 탄식하고는 반문했다.

“시기의 문제다?”

체력을 아껴야 할 시기라는 말은 업계에서 으레 쓰이곤 하는 ‘은어’랄 수 있었다.

보통 거물급 연예인의 컴백을 앞둔 상황에서 회사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아끼는….

쉽게 말해 머지않아 있을 거사를 위해 대소사를 포기해야 하는 시기에 쓰는 말이었다.

그 말인즉슨.

곧 사내 대형 가수의 컴백을 위해 정아린의 홍보에 힘을 쏟지 못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데,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조만간 활동 재개 예정인 사내 거물급 가수가 없지 않은가?

떠오르는 이름이 몇 개 있기야 했으나 모두 하반기 일정이므로 벌써 ‘체력’을 비축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컴백 예정인 가수 없는 상황 아니야?”

“죄송합니다. 정말 더는 말씀 못 드립니다.”

“곽 팀장, 진짜 이러기야? 나도 숨 좀 쉬자.”

“하아, 엠바고 진짜 세게 걸려 있는 일인데….”

이내 곽 팀장이 좌우를 살피고는 목소리를 한껏 낮춘 채로 진실을 토로했다.

“조만간 ‘KOK’가 10주년 앨범을 발표할 거예요.”

그 말에 김 실장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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