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24화 (24/118)

24화

한편, 같은 시각.

“늦었지? 미안하다.”

김 실장이 한쪽 손에는 편의점 봉투를, 반대쪽 손에는 노트북을 든 채로 현승의 사내 개인 작업실 안에 들어섰다.

“예? 갑자기 늦긴 뭐가 늦어요?”

“얘 좀 봐라?”

“저희 약속 있었어요? 없었잖아요?”

그 말에 김 실장이 “허.”하고 탄식하고는 되물었다.

“야, 오늘 아린이 뮤중 방영 날이잖아?”

“그래서요?”

“뭘 그래서야? 같이 모니터링 해야지.”

“제가 왜요?”

“왜냐니! 네가 데려와서 데뷔까지….”

이내 현승이 손사래를 쳐 보였다.

“됐어요, 곡 발매됐으면 손 떠난 거죠.”

“에휴, 내가 다 서운하다.

“서운할 일도 참 많으신 분이라니까….”

한차례 입씨름 후 “그럼 이렇게 하자.”하고 말문을 연 김 실장이 챙겨 온 봉투에서 맥주캔 몇 개와 간단한 주전부리를 꺼내며 덧붙였다.

“뮤직중심 틀어 놓고 같이 맥주 한잔하는 거로 하면 어때?”

그리고는 현승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곧바로 노트북을 협탁 위에 올려놓고, 포털사이트에서 지원하는 실시간 라이브챗 방송을 띄우기에 이르렀다.

“오, 이제 곧 아린이 차례인 것 같은데?”

김 실장이 자연스럽게 맥주캔 하나를 건네줬고….

“것 참.”

현승이 못 이기는 척 맥주캔을 받아 들었다.

그때.

한창 공연 중이던 가수의 무대가 끝났고….

[ 금주의 핫 데뷔 신인 – 정아린 ]

별안간 장면이 전환되며 정아린의 앨범 재킷 사진이 화면 위로 꽉 들어찼다.

이내 김 실장과 현승이 자연스럽게 화면 오른쪽에 띄워져 있는 실시간 채팅을 살폈다.

↳ 누군가 했더니 요즘 연예 기사에서 많이 본 애네;;;

↳ LS에서 칼 갈고 내보낸 듯; 연예 기사 온통 얘로 도배임

↳ 모 얼마나 대단하길래 뮤지션들 사이에서 극찬이 자자해?

↳ 걍 해주는 말이지; 언론플레이 모름?

↳ ㄴㄴㄴ 근데 연습생 때 영상 풀린 거 보니까 실력은 좋던데?

↳ 질린다 질려; 언플도 적당히 해야지

이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인가수라 크게 욕먹을 이유가 없었지만, 근래 포털 웹 뉴스 연예 면에 관련 기사가 많이 쏟아진 까닭인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들도 더러 있어 보였다.

“그래도 이 정도면 반응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윽고 다시금 장면이 전환됐고….

↳ 역시 대형 기획사 자본력인감? 무대 퀄 오지긴 하네. ㅋㅋ

↳ 무대 연출 괜찮은디? 데뷔무대치고 고퀄임. ㅇㅇ

↳ 이래서 대형이 조아. 망해두 LS에서 망하라는 말두 있잖슴.

↳ ㄹㅇㅋㅋ 중소돌 빨다가 마음 찢어져본거 한두번아님ㅠㅠ

박 전무의 일로 경황이 없는 탓에 무대 연출까지는 신경을 많이 못 써 줬는데도 생각보다 그림이 잘 나왔다.

정아린의 이미지에 맞게끔 순수하면서도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무대 연출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제발 이대로 노래까지 실수 없이 완벽하게 잘 해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정아린이 마이크를 올려 입술 가까이 가져다 댔고, 떨리는 숨과 함께 첫 소절을 내뱉었다.

이윽고.

실시간 톡이 미친 듯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 ?? 뭐임??? 뭐야??

↳ 잘못들은건가? 방금 사람목소리 맞음?

↳ 엌ㅋㅋㅋㅋㅋ 나만그렇게 느낀게 아니었구나

↳ 도입부 음색 지렸다..개 미쳤네ㅋㅋㅋ

↳ 찾았다 내 첫사랑 한참 찾았잖아 목소리 듣고 알아봤네 ㅎㅎ

↳ 카메라 딱딱 찾아내는 거 내가 다 희열 돋는다.

↳ 그니까;; 신인이라 하지않았어 분명??

↳ 요즘 안 그래도 얘 곡 무한스밍중,, 띵곡임; 안 질려;

↳ 쓰읍,,나랑 같은 눈코입인데 이케 다르게 생김?

한눈에 봐도 채팅창의 열기가 제법 후끈해 보였다.

“뭐야? 반응 진짜 엄청 좋은데…?”

이내 현승 역시 박자에 맞춰 톡톡 발을 구르며 실시간 채팅을 유심히 살펴봤다.

↳ 정아린 라이브 음원 언제 뜨냐 무한스밍 대기중

↳ 누가 직캠 올려주겠지? 아닌가? 각잡고 기다린다ㅠㅠㅠ

↳ 말안댐 고음이 어떻게 저렇게 쉽게 올라가? 돌고랜줄;;

↳ 소문 듣고 구경하러 왔다가 여기에 눕습니다. ㅇ<-<

↳ 2222222 ●▅▇█▇▆▅▄▇

↳ LS에서 돌판 기강 잡으려고 내보냈네

↳ 와 첫 무대 아닌 줄 왤케 자연스럽냐, 데뷔 몇 년 된 줄;;

↳ ㄹㅇ역주행인줄 알았는데 데뷔무대네ㅋㅋ거의 중고신인아님?

↳ 리얼 찐갓벽. 표정부터 호흡, 발성, 성량. 이게 실화냐.

현승은 실시간 톡방에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채팅은 미뤄 두고, 정아린의 무대를 찬찬히 살펴봤다.

곡을 작업하는 과정에서 정아린에게 슬쩍 흘리듯 얘기했던 무대 연출이 자연스레 녹아든 무대였다.

또, 자그마치 6년.

정아린이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 LS 사옥 지하에서 보내왔던 유충의 시간만 해도 장장 6년이다.

무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연습생으로 지내며 얻은 경험들이 곳곳에 묻어난 무대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확한 시선 처리라든가, 자연스러운 표정이라든가, 노련해 보이는 무대 진행이라든가….

‘제법인데?’

현승과 녹음 작업을 거치면서도 계속하여 발전에 발전을 이뤄 낸 정아린이다.

디렉팅을 보면서 그 과정을 제 두 눈과 귀로 확인하며 확신하게 된 점이 있었다.

‘연주하는 대로 따라올 수 있는 폭넓은 악기.’

자신의 확신에 확신을 보태는 무대를 보고 나니 저절로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윽고.

정아린의 무대가 끝이 나고 다음 순서의 무대가 시작되었지만, 실시간 톡은 계속 ‘정아린 앓이’를 이어 나가고 있을 뿐이었다.

↳ 내 맘에 불질러놓고,, 이대로 간다고? 후; 뮤중에 불지르러 간다

↳ 정아린 라이브음원 나올때까지 숨참는다 흡

↳ 윗톡.. 여기서 그러지 말고 국민청원에라도 좀 올려봐,,,

↳ 음방에 앵콜이 어딨냐!ㅡㅡ 하지만 방송관계자 여러분.. 이번 기회에 시도해보는 것도,,,

하지만 마지막 순서인 ‘KOK’의 압도적으로 화려한 무대가 시작되자 잠잠해졌고.

모든 순서가 끝나고 엔딩을 위해 당일 출연 가수들이 무대 위로 모이기에 이르렀다.

- 5월 첫째 주 생방송 뮤직중심!

- 1위 발표만 남겨 두고 있는데요!

MC를 중심으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가수들이 자리했고,

KOK와 더슈퍼즈가 가장 중앙 앞줄을….

정아린은 카메라 앵글을 벗어난 맨 구석에 물끄러미 서 있었다.

- 대망의 1위 후보, 바로 화면으로 만나 보시죠!

그때 MC가 활기차게 손짓하자 곧장 화면이 전환되었다.

- 5월 첫째 주 1위 후보입니다. KOK의 Firework!

MC의 설명에 따라 전광판 한쪽에 ‘KOK’의 얼굴이 떠올랐고, 약속이라도 한 듯 관객석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아아-!

KOK의 멤버들은 ‘아이돌의 아이돌’인 만큼, 여유로운 태도로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덩달아 더슈퍼즈의 멤버들도 자신들이 다음 1위 후보로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던 찰나였다.

- 그리고 다음 후보는요…!

MC가 큐카드를 한 장 넘기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던 찰나.

- 정아린의 사춘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이름이 들려왔다.

* * *

“뭐?!”

묵묵히 지켜보던 김 실장이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섰다.

“누구? 누구라고?”

당연히 1위 후보는 KOK 와 더슈퍼즈일 거라 생각했다.

데뷔 후 첫 음악방송인 만큼 절대 순위를 기대하지 않았다.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사실이라는 걸 확인해 주듯 전광판에 떠오른 건 정아린의 놀란 얼굴이었다.

무대 위에 서 있던 가수들마저 수군거리며 ‘KOK’와 함께 1위 후보로 불린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 정아린 씨, 앞으로 나와 주세요!

정작 당사자인 정아린도 멀뚱멀뚱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결국 MC가 손짓으로 부른 후에야 정중앙으로 나오는 해프닝이 고스란히 화면에 담겼다.

“아이고, 저 바보!”

김 실장이 머리를 감싸고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 정아린 표정 킬포,, ㄱㅇㅇ

↳ 이제야 좀 신인 같아 보이네,, 무대랑 표정 갭차이 봐.

↳ 저 얼굴 보면 누가 신인인줄 모르겠냐고ㅋㅋㅋㅋ

↳ 근데 더슈퍼즈를 재치고..1위 후보라고..?

↳ 이 정도면 조작 슬쩍 의심됨;

↳ 솔까 이제 데뷔한 신인인데 말이됌?

↳ 무대 잘한 거 킹정인데,, 데뷔 첫방에 바로 1위 후보는 좀..

아무도 예측 못 한 상황으로 실시간 톡방도 같이 들썩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들 믿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김 실장 또한 믿기지 않는데 네티즌들이 쉽게 믿길 리 없지.

혹시나, 만약에, 정말로….

정아린이 1위까지 해 버리면 김 실장은 홍보실과 함께 해명 자료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 과연 누가 1위를 차지하게 될지 점수 보여 주세요-!

이내 혼란스러운 틈 속에서 MC의 설명과 함께 점수가 하나씩 발표되기 시작했다.

- 디지털 음원 점수입니다.

[ 정아린 – 사춘기 ]

[ 1148 점 ]

[ KOK – Firework ]

[ 931 점 ]

MC의 멘트에 따라 집계된 순서가 전광판에 떠 올랐다.

“오!”

김 실장은 조금 전 해명자료에 대한 고민은 싹 잊었는지 금세 안색이 밝아졌다.

남자 아이돌이 디지털 음원 점수에서 약한 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 같은 것이다.

발라드나 여돌의 경우 성별이나 팬의 여부와 상관없이 스트리밍을 해 줘서 음원이 잘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남돌의 경우는 팬덤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차트는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금방 차트에서 자리를 내어 주곤 했다.

물론.

KOK의 경우 남돌 중에서는 그래도 차트 진입도 잘 되는 편이고, 장기 집권을 했던 곡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두석의 언론 플레이 찬스(?) 덕분인지 정아린의 디지털 음원 점수가 이례적으로 높게 나와 준 모양이었다.

‘KOK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LS 엔터는 확실한 라인이 나누어져 있는 조직이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김 실장으로서는 정아린이 디지털 음원 점수가 더 높다는 사실은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화면 가리지 말고 좀 앉아서 차분히 봐요.”

현승이 미간을 좁힌 채 김 실장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아니, 지금이 차분할 때냐? 미온수 같은 놈….”

“일어선다고 정아린이 1위 하는 건 아니잖아요.”

김 실장이 “그건 그렇지.” 하며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 원래 남돌 음원 점수에서는 약하잖슴. 인정할 건 인정하자.

↳ 그래두.. KOK는 좀 예외 아님..?

↳ ㄹㅇ KOK가 밀리다니; 점수 집계 잘못된 거 같은데?

↳ ㄴㄴ 정아린 음원 스트리밍 수가 더 높긴 함.

↳ 정아린이 1위 하면 바로 방송사 게시판 폭발임;

그러나 김 실장의 기분과는 달리 실시간 톡은 꽤 예민하게 과열되어 있었다.

‘혹시라도 정아린이 1위 하면 바로 들고 일어날 것 같은데…?’

김 실장은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위를 걷는 심정으로 다음 점수를 기다렸다.

- 시청자 선호도 점수입니다.

MC가 이어서 점수표의 항목을 읊었다.

- 방송 횟수 점수입니다.

마지막 음반 점수까지 떠오르자 총점 칸에 숫자가 요란하게 효과음을 내며 집계되기 시작했다.

- 과연 총점은…!

이번 주 1위 후보에 예상치 못한 신인이 끼어들었기 때문인지 무대 위에도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정아린은 두 눈을 꼬옥 감는 것으로, KOK는 여유롭게 입가에 미소를 띠는 것으로 긴장감을 표출했다.

- 뮤직중심 5월 첫째 주 1위의 주인공은 바로….

덩달아 MC도 긴장된 얼굴로 외쳤다.

- 축하드립니다!

펑!

꽃가루가 흩날리는 무대 위로 잠시 정적이 흘렀고.

↳ 어?!?!?!?!?!?!

쉴 새 없이 올라오던 실시간 톡마저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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