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홈마(homepage master)
‘홈마스터’의 줄임말로 연예인의 고퀄리티급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하여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이재선의 직업이기도 했다.
그는 사진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팬심에서 시작된 일이었으나….
어느 순간.
사진뿐만 아니라 굿즈 판매나 전시회를 열게 된 건 물론이고,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인 트위터 내에서 무려 21만 명의 팔로우를 보유한 파급력 있는 홈마로 거듭났다.
수익성이 좋은 시장이라는 판단이 선 때부터 과감하게 업으로 삼기로 한 뒤, 정말 미친 듯 파고들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대기업 부장급 이상의 연봉을 벌게 됐다.
“흠.”
그런 이재선은 지금 턱을 괸 채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림은 아주 좋은데.”
모니터 화면 속에는 지난 페스티벌에서 찍어 온 정아린의 사진과 영상을 띄운 상태로….
“이걸 올려, 말아.”
홈마로서 입지를 단단히 굳히고 이 일을 업으로 삼은 뒤부터는 팬심이 아니라 이해에 의해서만 움직여 왔다.
비밀리에 접촉을 시도해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한 업체들의 소속 아이돌 위주로만 촬영을 진행해 왔으며….
그런 게 아니라면 직접 촬영한 사진, 영상, 또는 굿즈 등을 통한 외부적 수요가 기대되는 팬덤을 지닌 아이돌만 촬영해 왔다.
분명 그랬는데….
영상 속의 정아린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정아린네 회사랑 이야기가 잘 돼서 계약한 것도 아니고….”
그가 애꿎은 스페이스 바를 연달아 꾹꾹 누르며 중얼댔다.
“팬덤이 견고해서 돈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문득 처음 홈마를 시작했을 무렵의 기억이 떠올랐다.
ROA.
그가 처음 홈마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어 준 여성 솔로 가수였다.
오롯이 팬심으로 홈페이지를 제작했고 업로드할 사진을 찍고자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더랬다.
정말 팬심 하나만으로 비용, 시간, 젊음마저 매몰시키는 시간을 보냈던 시절이었다.
‘이제는 현실적으로만 바라봐야 하는데….’
그렇게 소위 말하던 ‘덕질’을 하던 도중에 ROA는 명확한 이유 하나 밝히지 않고 돌연 해체를 선언한 뒤 가요계를 떠나 버렸다.
그 이후.
이재선은 계약으로 얽혀 있다거나 수익성이 명확히 보장되는 게 아니라면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팬덤 문화에 깊게 빠져 있고 애착이 있었기에 이 일을 제 직업으로 삼았을 터.
“아, 씨. 나도 모르겠다….”
이윽고.
딸깍!
얼마 안 가 경쾌한 엔터 소리와 함께 미소를 띠었다.
“모처럼의 무보수 덕질인데….”
이윽고 그가 “업로드가 완료됐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알림 창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댔다.
“잘 됐으면 좋겠네.”
그리고는.
꾸욱-.
모니터 전원을 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이런, 씨발!”
오만상을 찡그린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박 전무가 책상을 “쾅!”하고 내려치자 명패가 위태로운 모양새로 흔들렸다.
[ 헐, 나 이날 하늘음악회 보러 갔는데 진짜 갑자기 미친 듯이 비 내림,, 솔직히 나도 갈까 말까 했는데 기다린 거 아까워서 기다렸거든? 근데 그 와중에 정아린은 가창력 폭발 시켜벌임; 얘는 갓린이야.. 다들 라이브 들으면 쌉ㅇㅈ할거임; ]
↳ 나도 기다린 덕분에 귀 호강함,,
↳ 보고 있으면,,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 실제로 들으면 ㄹㅇ 꿀 목소리!
↳ 얼굴이랑 목소리 궁합찰떡임.
↳ 인정인정 혈당수치올라가는 느낌이라구
↳ 여러분 119 좀,, 덕통사고가 좀 쎄게 남;
↳ 진짜 청초 그 잡채;;
↳ 비 맞고도 천상계 비주얼 자랑하는 것 좀 보라고ㅜㅜ
원래 계획대로였더라면 음악 방송 출연 한 번을 끝으로 진즉에 폐사했어야 할 정아린의 인기가 나날이 격상하는 중이었다.
[ 내 친구가 하늘음악회 관계자라 들었는데 ㅇㅂㄹ랑 ㅍㅇㅂㅈ 등등은 비가 오자마자 지들 다치면 어쩌냐고 난리 치고 기다리던 팬은 어쩌냐니까 자기들이 알 바 없다면서 가버렸다고 함. 정아린은 그 와중에 꼭 무대 오르겠다고 약속하고 첫 번째 타자로 나섰다 함;]
↳ 정아린 비 때문에 눈도 잘 안 떠지면서 아이컨텍도 해줌. 얼굴처럼 인성 갑.
↳ 내새끼들 보러 왔다가 남의자식한테 반하고간다
↳ 비 와서 인사도 안 하고 쌩까고 간 걔네에 비하면 정아린은 천사 아니냐?
↳ ㅇㅈ 팬들도 비 맞으면서 기다렸는데 건 배신이자 배반임;
↳ 보면 몇몇 찔리는 가수들 많을 듯ㅋㅋㅋㅋㅋㅋ
스크롤을 아무리 내리고 또 내려도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은 정아린을 칭송하는 내용의 글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고….
“제기랄!”
신경질적으로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덮어 놓은 그가 지끈거리는 이마 위에 손을 얹던 찰나였다.
띠링-!
별안간 메신저 알림음이 울림과 동시에 정아린의 모든 스케줄이 기록된 파일이 도착했다.
삼십 분 전쯤, 부하 직원에게 부탁한 파일이 이제야 도착한 게 분명해 보였다.
“얼씨구? 아주 대스타 납셨네.”
음악 방송을 시작으로 예능, 토크쇼, 라디오, 페스티벌, 대학교 행사 등등….
파일에 기록된 그녀의 한 주 일과는 잠깐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딸깍, 딸깍-.
파일을 훑으면 훑을수록 박 전무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져 갔다.
최 이사가 웃고 있을 상상을 하니 열이 뻗쳐 참을 수가 없었다.
“후우-.”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하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재꼈다.
그래, 이 바닥에서 잠깐 반짝이다가 사라진 하루살이 연예인이 어디 한둘이던가?
더군다나 다른 이도 아니고 자신이 표적으로 삼게 된 햇병아리 가수에 불과하다.
비록 이번에는 의도한 대로 풀리지 않았다지만 언제고 기회를 살피다가 밟아 주면 그만이다.
“그래, 큰일 하는 사람이 이렇게 일희일비하면 안 되지….”
그리고는 책상 위에 놓인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내서는 불을 붙이기에 이르렀다.
연기를 깊게 빨아들인 뒤 입 밖으로 전부 뱉어 내고 나니 조금 진정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 단발성으로 그칠 관심이야.’
결국 박 전무는 언제 사라질지 모를, 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짓밟을 수 있는 햇병아리 신인 나부랭이에게 신경을 기울일 바에 차라리 여유롭게 골프나 한 게임 치러 가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는 결론을 도출했고….
“어디 보자….”
오늘 함께 라운딩을 나갈 연예계 인사를 찾기 위해 스마트 폰 전화번호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조차 시시각각 박 전무의 속 편한 짐작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 폭우 속 하늘음악회 숨겨진 보석, 정아린 – 사춘기 ]
유명 동영상 플랫폼에 게시된 정아린의 영상의 뷰(View) 수가 500만 회를 넘어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까.
* * *
한편.
현승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사내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사내 카페테리아를 찾았다.
“더워 죽겠네….”
에이드 한 잔을 시켜 놓고 테이블에 널브러졌다.
한여름에 접어들며 무더위가 시작된 탓이었다.
“민현승 씨?”
자신이 기다리던 카페 직원의 목소리가 아닌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정수리 위에서 들려왔다.
“음?”
고개를 슬쩍 올려 살펴보니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성이 양복 차림을 한 채 서 있었다.
“급하신 일이 없다면 저와 같이 가시죠.”
“누구시죠?”
“전남일 대표님의 수행 기사입니다.”
현승이 “아아.”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실을 나설 무렵 대표에게 문자가 한 통 왔었던 사실이 떠오른 탓이었다.
[ 조금 있다가 잠시 뵙죠. 사람 보내겠습니다. ]
이렇게나 빨리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지.
요즘 정아린이 엄청난 인기 궤도를 타면서 곡도 잘 팔리고 있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다.
얼핏 듣기로는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한 홈마가 그날 정아린의 무대를 촬영하여 트위터에 올렸고.
이후 수많은 계정과 커뮤니티로 퍼져 가면서 정아린의 데뷔무대 영상까지 알고리즘을 탔다지?
‘정말 사람 앞일은 모르는 건가.’
그런 정황상 정아린 일로 대표로부터 호출이 온 것이리라.
“예, 뭐, 가시죠.”
현승은 곧장 기사의 뒤를 따라서 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정문으로 나서자마자 위풍당당한 자태로 서 있는 롤스로이스의 세단 차 한 대가 현승의 눈길을 빼앗았다.
‘이전 삶에서는 내 컬렉션 중 하나였는데.’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기를 잠시.
“현승 씨, 타시죠.”
수행 기사가 문을 열어 주며 건넨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현승이 마치 제 차라도 되는 양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몸을 실었고….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안쪽 자리에 앉아 있던 대표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시간 괜찮으시죠?”
“네, 물론.”
대표는 자신을 지척에 두고도 안절부절못한 기색 하나 없이 창가에 기대앉은 현승을 바라보다 넌지시 말을 던졌다.
“정말 재미있는 친구란 말이지.”
대표는 현승이 자신에게 시선을 옮기자, 묘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부진하다 못해 재계약이 불가능에 가까웠던 서지니를 끌어 올린 것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퇴출당할 뻔한 연습생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성과를 끌어내다니….”
그의 입가에는 희미하지만, 기분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이라….”
낮게 중얼거린 그가 되물었다.
“전부 운이라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그의 말에 현승은 즉답하지 못한 채 잠시 상념에 잠겼다.
물론 어느 정도는 제 실력에 의한 결과라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많은 운이 많이 따라 준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박 전무의 훼방으로 이두석이라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게 된 것은 물론, 하늘음악회 당일 폭우가 쏟아졌던 것도, 정아린이 그 무대 위에 무리해서 오른 것도.
무엇보다 유명 홈마가 정아린을 찍은 영상이 온라인에서 이토록 인기를 끌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로….
전부 계산은커녕 예측조차 못 했던 상황이다.
대표가 한참 동안 답이 없는 현승을 대신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이번에는 아무리 현승 씨라고 할지라도 조금 무리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나, 끝내 이토록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 주셨고요. 겸손하게 모두 운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업계는 운도 실력인 곳 아니겠습니까?”
운도 실력이라….
“예, 뭐.”
어느 정도는 동감하는 발언이었다.
낭중지추.
주머니 속 송곳은 필연적으로 튀어나오게 되어 있단 말이 무조건 통용되는 업계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실력이 출중하다 한들 그 외의 변수 탓에 소리도 소문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운도 실력이기야 하지….’
현승이 희미하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금 덤덤한 투로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어쩐 일로 저를 호출하신 건가요?”
“아직 점심 전이죠?”
“예, 그렇죠.”
“같이 점심이나 할까 해서.”
현승은 전 대표의 식사 요청에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태연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예, 그러시죠.”
전 대표는 그런 현승을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들썩였다.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는….
이상하게 호기심이 자극되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대표라는 위치에 군림한 지도 어언 십수 년째가 아니던가?
자신이 식사 제안을 먼저 할 때면 대다수가 현승과는 아예 다른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가문의 영광이라는 둥, 거듭 시간을 내주어 감사하다는 둥 하는 입 발린 말을 늘어놓곤 했지.
한데.
바로 옆에 앉은 새파랗게 어린 작곡가는 어찌도 이리 태연하게 굴 수 있는 걸까?
한편.
그런 현승의 얼굴을 연신 들여다보고 있는 건 비단 전 대표만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대표의 수행 기사 역시 백미러로 현승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나이도 많이 어려 보이고….’
대표의 아버지뻘인 수행 기사는 사내 소식이나 연예계의 정황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었다.
그랬기에 요즘 LS 엔터를 들썩이고 있는 현승의 존재도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연륜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LS 엔터테인먼트 설립 이후 줄곧 전 대표의 발이 되어 주다시피 했던 그였다.
전 대표는 제아무리 임원이라 해도 최측근이 아니라면 끼니를 함께하지 않았다.
‘대표님께서 저렇게나 총애하시는 걸 보면 요즘 한창 잘나가는 연예인인가 본데….’
그는 신호에 걸리자마자 다시 룸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청년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가수인가?’
때마침 신호가 바뀌었고.
‘아니지, 딱 보니 배우 관상이네.’
현승의 얼굴을 토대로 결론을 도출해 낸 수행 기사가 다시금 앞유리창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엄청나게 잘나가는 배우인 거야….’
때마침 신호가 바뀌었고 롤스로이스 세단은 마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매끄럽게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