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35화 (35/118)

35화

현승의 작업실 문 앞에 선 김 실장이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것참….”

현승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에 괜스레 가슴이 떨려왔다.

뭐랄까?

가까워진 것과 별개로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현승은 여전히 어려운 사람이었다.

“난리 칠 것 같은데….”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안 좋은 소식을 어느 정도 상쇄해 줄 수 있는 그나마 좋은 소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모르겠다, 일단 부딪혀 보자….”

이내 김 실장이 조심스럽게 작업실 문을 두드렸고….

“예.”

닫힌 문 너머에서 현승 특유의 무뚝뚝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 오셨어요?”

현승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휴대폰을 만지작대며 건넨 답에 김 실장이 괜히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제 눈길 한 번을 안 주는구나.”

그 말에 현승이 “아아, 쏘리.” 하고 답하며 김 실장과 잠시 눈을 맞추고는 재차 덤덤한 투로 부연했다.

“죄송해요, 지금 여자 친구가 좀 아파서요.”

“제수씨 아프셔? 어디가 아프신데?”

“예? 글쎄요? 제수씨라고 하기에는….”

“네 여자 친구면 나한테는 제수씨지!”

현승은 한창 플레이 중인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속의 히로인 캐릭터를 두고 한 말이었으나….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김 실장의 오해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어져만 가는 중이었다.

“주소 알려 주면 이따가 퇴근길에 간단한 상비약이랑 죽이라도 가져다 놓을게. 아니, 아니지. 부담스러우실 테니까 그냥 문 앞에 걸어 놓기라도….”

이내 현승이 눈살을 찌푸린 채로 손사래를 쳤다.

“됐어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현승의 입장에서는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소리’일 터였다.

“그나저나, 무슨 일 있어요?”

“응?”

“식사 때도 아닌데 오셔서.”

그 말에 김 실장이 “아아.” 하고 중얼대고는 답했다.

“일단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거든.”

이제 현승에게 오늘의 본론인 ‘안 좋은 소식’을 전해야 할 때가 된 듯 보일 따름이었다.

“뭔데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네 앨범 타이틀곡 말인데 꼭 오도현이 불러야 하겠어?”

“저 까였어요?”

“까였다기보다는 시기가 잘 맞지 않았다고 해야 하려나….”

“에이, 까였네.”

대수롭지 않다는 양 답한 현승이 재차 부연했다.

“실장님 잘못도 아닌데 왜 그렇게 어렵게 말씀하세요?”

“괜찮아?”

“기분이야 더러운데 실장님한테 화풀이할 일은 아니잖아요.”

현승이 그제야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덧붙였다.

“실은 제가 의외로 속이 좁은 편이거든요.”

“그래서?”

“오도현은 죽을 때까지 제 곡 못 받아요.”

그 말에 김 실장이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괜히 너스레를 떨면서 되물었다.

“억만금을 줘도?”

“당연하죠.”

“억만금인데도?”

현승이 피식 웃음 짓고는 답했다.

“오도현이 억만금을 줄 테니 곡 달라면서 사정할 때가 됐는데,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르겠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오도현 씨는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곡 못 받을 테니까 한번 지켜보세요.”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모를까….

‘저 녀석, 독이 바짝 올랐네….’

현승의 입에서 나온 말인 까닭인지 절절한 진심처럼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어쨌든 무조건 오도현이여야 하는 건 아닌 거네?”

현승이 “예, 맞아요.” 하고 답하자 김 실장이 다시금 심호흡하고는 말을 이었다.

“자, 다음은 그나마 좋은 소식.”

이제 안 좋은 소식을 어느 정도 상쇄해 줄 수 있는 그나마 좋은 소식을 전할 차례인 양 싶었다.

“문범재 선생님은 어때?”

그 말에 현승이 눈매를 좁혔다.

“문범재 선생님이요?”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뇨, 그런 건 아닌데….”

김 실장이 재차 물었다.

“그래, 네가 직접 작성해서 전달해줬던 희망 가수 리스트업에 문범재 선생님도 있었잖아.”

잠시 입술만 옴짝달싹 대던 현승이 답했다.

“예, 그렇긴 한데 아마….”

“아마?”

“안 부르실 것 같은데요.”

김 실장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무심코 “그야 경험상….” 하고 답하려던 현승이 입에 머금었던 말을 도로 꾹 삼켜 냈다.

문범재.

LS의 대표 가수 중 한 명인 그는 현승이 전생에서도 몇 번이나 러브콜을 보냈던 가수였다.

*현존하는 악기 중에서(*활동 중인 가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뛰어난 악기라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러브콜을 보낸 건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문범재를 생각하며 쓴 곡을 준 적도 있었다.

“곡은 좋은데….”

물론, 결과는.

“우리 작곡가 선생님 곡은 나랑은 결이 영 안 맞는단 말이지.”

번번이.

“미안합니다.”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이야, 천하의 민현승도 작아지는 사람이 있네?”

“예?”

“문범재 선생님이 까탈스러운 건 사실인데….”

말끝을 흐렸던 김 실장이 의외의 사실을 전해 왔다.

“아냐, 선생님께서 먼저 하고 싶다고 하셨대.”

“예?”

“네 곡 말이야. 어쩌다가 우연히 들으셨나 본데.”

“예.”

“꼭 본인이 부르고 싶다고 거듭 말씀하셨다던데?”

“예―?”

현승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어서….’

러브콜을 보낼 때마다 매번 결이 맞지 않는 둥 하는 추상적인 거절을 일삼던 가수가 아니던가?

작곡가로서의 커리어가 절정이었던 시절에도 매번 퇴짜만 놓곤 하더니 대체 어째서….

전생에 비해 훨씬 커리어가 부족한 현재의 자신이 쓴 곡에 푹 빠져서 먼저 러브콜을 해 온단 말인가?

‘대체 무슨 기준으로 곡을 고르는 거야?’

현승이 눈매를 좁히고 있던 찰나였다.

“그냥 단순히 부르고 싶다 정도가 아닌 것 같더라. 작곡가 개인 앨범이라서 피처링에 이름 올려야 하는 거 아시는지 여쭤봤는데도 전혀 상관없다고 날짜만 잡아 달라고 사정사정하셨다던데….”

우선 문범재가 타이틀곡을 부르게 됐다는 사실은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 분명했다.

“네, 저도 좋아요.”

다만 문범재가 왜 자신의 곡을 선택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퇴짜만 놓던 양반이 대체 왜….’

물론 녹음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희석될 의문일 터.

“좋아! 진행시켜!”

김 실장이 너스레를 떨던 찰나였다.

지이이이이이이잉―.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현승의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 지금 대표실에서 봤으면 하는데. ]

다름 아니라, 전남일 대표로부터 온 문자였다.

“일단 저는 지금 바로 가 봐야겠는데요.”

“지금?”

“네, 애석하지만 지금 바로 와 달라고 하셔서요.”

“누가?”

“쩝.” 하며 입맛을 다신 현승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대표님이요.”

벽에 걸린 시계의 초침이 점심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 * *

현승은 별안간 대표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 덕분에 오래간만에 대표실 앞에 자리한 채였다.

간만에 대표실에 들어선 현승이 묵은 숨을 내쉬었다.

“안녕하십니까?”

평소에도 꽤 묵직하게 느껴지던 대표실의 공기가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또 평소와 달리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전남일 대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거 예감이 안 좋은데.’

어쩐지 원치 않는 내용의 대화가 나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예감에 불과할 따름이었으나….

전생의 자신을 최정상 작곡가로 만든 것도 이 예감이었다.

“앉으시죠.”

현승이 한자리를 꿰차고 앉자마자 전남일 대표가 높낮이 없는 어투로 입을 뗐다.

“듣기로는 개인 앨범을 제작 중이라던데.”

아무래도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는 시기에 ‘개인 앨범’을 제작 중이라는 사실이 못마땅해 부른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완강하게 반대할 생각은 아니신가 보네.’

만약 완강하게 반대할 생각이었더라면 수고롭게 불러 앉혀 놓고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이 작업 중단 지시를 내렸을 테니까.

“예, 맞습니다.”

대표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그러고는 찻잔 입구를 한번 손으로 스윽 매만지며 덧붙였다.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아직은 시기적으로 조금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아직 브랜딩이 완벽하지 않은 단계이니 당분간 인지도를 더 쌓은 뒤에 차근차근 진행하는 방향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현승이 곧장 무어라 답하지 않자 대표가 부연했다.

“근래 담당하셨던 서지니와 정아린의 곡 모두 큰 성공을 거둔 바 있기야 합니다만, 아직은 사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드리기에 커리어가 부족한 감이 있잖습니까? 사측에서 보유 중인 마케팅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갖는 게 좋으리라고 판단됩니다.”

전남일은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이기 전에 사업가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콘크리트 정글이라 불리는 연예계에서 대성한 사업가.

요즘은 같은 재료와 요리법으로 맛을 낸다 해도 마케팅의 형태에 따라 음식점의 성패가 갈리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비단 LS 엔터뿐만 아니라 모든 엔터테인먼트가 앨범 발매에 앞서 사측이 보유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갖춰진 마케팅 채널들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일쑤였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아직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는 물론이거니와 인지도도 부족하기 그지없는 현승이 무턱대고 조급하게 제 개인 앨범을 발매하는 건 이렇다 할 이점이 없는 행동처럼 보일 뿐이었다.

“모쪼록 작곡가 개인 앨범 발매는 후일을 도모하는 쪽으로 재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상업성을 고려한다면 전남일 대표의 말대로 여유롭고, 침착하게 시기를 기다리는 게 올바를 터였다.

올 한 해 동안 이런저런 성과들을 내기야 했다지만 홍보부에서 무작정 밀어주기에는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굽힐 생각은 없었다.

이미 발매를 결심하지 않았던가?

만약 사측의 반대가 생각보다 거세진다면….

‘떼를 써서라도 추진해야지.’

현승이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을 뗐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기상조일 수도 있겠습니다.”

“예, 아무래도.”

“다만 아주 가끔은 가장 상업적이지 않은 방식이….”

현승이 틈을 두고는 강단 있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가장 상업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흥미로운데, 조금 풀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 말에 현승이 어깨를 들썩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고 가정해 보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

“과연 어떻게 해야 거위를 지킬 수 있을까요?”

전남일 대표가 방긋 웃으며 답했다.

“흠, 글쎄요? 일단 배를 가르지 않아야 한다?”

현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화를 통해 알려진 가장 기본적인 주의 사항이군요.”

“다른 주의 사항이 또 있나 보군요?”

“거위가 호기심을 느끼지 않도록 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 말에 전남일이 “호기심?” 하고 낮게 중얼댔다.

“거위가 공연히 바깥세상을 궁금해하지 않도록, 지금 머무르는 축사가 가장 좋은 곳이라는 확신을 갖도록, 거위의 욕구와 욕망을 적절히 충족해 줘야 할 겁니다.”

현승이 재차 덧붙였다.

“괜한 호기심으로 울타리를 넘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생각을 진즉에 방지하는 겁니다. 거위 녀석이야 어차피 일정 주기에 맞춰 황금알을 낳아 제공해 줄 테니 적당히 맞춰 주는 정도로 호기심을 말소시키는 거죠.”

전남일 대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흠, 뼈가 있는 말이로군요….”

현승은 스스로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현승은 주기적으로 황금알을 낳아 주고 있으니까.

‘고집 피우겠다는 말을 유려하게도 하는군….’

전남일 대표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능구렁이 같은 현승의 태도가 마음에 쏙 들었다.

뭐랄까?

나이는 물론 경력의 고하를 막론하고 다들 제 앞에서는 어쩐지 벌벌 떨어 대기 일쑤였다.

반면, 현승은 어떤가?

한 치의 떨림도 없는 투로, 흥분하지 않고, 목소리의 높낮이조차 달라지지 않는 투로 유려하게 제 의견을 펼치곤 하지 않는가?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현승과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이따금 정말 동등한 관계에서의 비즈니스를 논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 일쑤였다.

그런 이유로….

전남일은 현승과 날이 바짝 선 대화가 됐든, 비교적 일상적인 대화가 됐든 둘만의 시간을 즐겼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해 봐야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한데….’

대표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침묵을 지키던 찰나였다.

똑똑―!

대표실 문 너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몇 초 지나지 않아….

직속 비서가 다급한 걸음으로 들어섰다.

“대표님, 말씀 중에 정말 죄송합니다만 급한 전화가 들어와서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급한 전화?”

“네, 어떤 용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 ‘맨 레코즈’ 측의 타이치 사카모토 씨가 직접….”

전남일 대표가 “타이치?” 하며 작게 되물었다.

대표는 얼마 전 회의에서 박 전무가 맨 레코즈 측과의 협업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라던 말을 떠올렸다.

‘뭔가 틀어졌나?’

대표는 곧장 비서에게 답했다.

“우선 대표실로 연결해 주세요.”

현승은 둘의 대화에 속으로 작게 호응했다. 맨 레코즈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아니, 알 수밖에 없지.

대형 레코즈 사중에 한 곳이니 음악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곳이다.

맨 레코즈.

대중성보다는 음악성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는 방식이라든가 작업 환경들이 여타 레코즈 사보다 독보적으로 좋다는 소문은 업계에 파다하지만….

워낙 폐쇄적이고 외부 프로듀서와 협업하는 일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현승 또한 아직 맨 레코즈와는 협업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전생의 현승은 소니나 유니버설을 비롯한 여타 대형 레코즈사 측으로부터 후한 대우를 받으며 여러 작업을 진행하곤 했었기에 굳이 맨 레코드사에 크게 연연하거나 목을 맬 필요가 아예 없었다.

‘그래도 이왕 다시 돌아온 거….’

이번 생에는 기회가 된다면 맨 레코즈와 협업을 해 보는 것도 꽤 재미있으리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때.

띠리리리리링―!

전남일 대표가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며 전화를 받았다.

― 처음 인사드립니다. 맨 레코즈의 대표 타이치 사카모토라고 합니다.

“대화 나누게 되어 영광입니다. LS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 전남일입니다.”

상대방 측에서 일어로 인사를 건네 왔고, 전남일 또한 일어로 다시 한번 인사를 전했다.

비록 현승이 코앞에 앉아 있지만, 일어로 대화를 나눈다면 대화가 유출될 리 없다고 판단했으나….

크나큰 착각이었다.

현승은 일어에 몹시 능통한 편이었고, 이미 아닌 척 다른 곳을 바라보면서도 귀는 쫑긋 세운 채였다.

― 혹시 일전에 저희 맨 레코즈에서 귀사로 발송해 드렸던 ‘공문’의 내용을 대표님께서는 미처 확인치 못하셨던 겁니까? 뭐, 그럴 리 없을 테니 저희가 이번에 받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답변을 정중한 거절 정도로 해석하면 되는 겁니까?

날이 바짝 선 투로 따지듯 물어오는 태도를 보니 중간에 일이 틀어졌음이 더욱 분명해졌다.

‘심지어 공문이라….’

박 전무로부터는 협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사실만 전해 들었을 뿐.

맨 레코즈 측에서 정식적으로 공문을 보내왔다는 말은 추호도 듣지 못했었다.

물론.

그 사실을 드러낼 순 없는 노릇이었던 터라 돌려서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소통 과정에서 불쾌한 일이 있으셨다면 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때 타이치가 잔뜩 격양된 투로 말을 이었다.

― 분명 저는 ‘그’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대체 어째서 쓰레기 같은 곡만 주구장창 보내 주고 계신 거냔 말입니다!

아무래도 맨 레코즈에서 제안한 ‘협업’은 회사와 회사 간의 협업이 아닌 듯했다.

소속 작곡가 한 명을 콕 집어서 곡을 받고 싶다는 부탁이라도 해 왔던 모양인데….

박 전무씩이나 되는 인물이 맨 레코즈가 원하는 의도를 파악 못 했을 리는 없다.

개인적인 연락도 아니고, 공문이었다면 더욱 확실히 원하는 바를 기재해 놓았을 터.

‘그럼 왜….’

대표가 머리를 짚은 채 고민에 빠져들자 머리 위로 이름 하나가 스쳤다.

‘민현승….’

맨 레코즈는 일본에 거점을 두고 있는 대형 음원·음반 유통사가 아니던가?

그리고.

최근 서지니가 발매한 앨범과 수록곡의 인기가 일본에서 연일 상승세를 보여 주고 있다.

‘그 앨범의 작곡가는….’

대표가 고개를 들어 지루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대표실 내부 곳곳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는 현승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 혹시 그가 맨 레코즈와의 협업을 거절한 거라면 제가 직접 그를 만나러 가도 되겠습니까?

머릿속의 퍼즐이 하나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만약 박 전무가 공문을 감춘 거라면 그 이유는….’

실적, 소위 말하는 밥그릇 싸움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우연히 먼저 받아서 가로챈 건가 보군.’

심호흡을 한 전남일 대표가 낮게 되물었다.

“죄송합니다만, ‘그’라면….”

그런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현승에게 고정된 채였다.

직접 만나러 온다고까지 하는 걸 보니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서 ‘그 작곡가’와의 협업을 갈망하는 듯 보였다.

맨 레코즈의 대표씩이나 되는 인물이 작곡가를 설득하기 위해 내한까지 예정에 둔다는 말인가?

만약 제 예상대로 타이치가 애타게 찾고 있는 ‘그 작곡가’가 정말 현승인 것이라면….

현승이 스스로를 두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칭하는 일은 절대 운 좋게 뜬 비기너의 자만 따위가 아닐 터였다.

그때였다.

수화기 사이로 침묵만이 오가기를 잠시.

― 일전에 발송한 공문에 똑똑히 적혀 있지 않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

― ‘HS’, 그 이름이 족히 열 번 이상은 언급했을 겁니다!

호통 섞인 타이치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이런.’

전남일 대표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자만이 아니었군.’

그의 시선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

아니, 아니지.

현승의 옆얼굴에 고정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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