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A&R 2팀 소속 엔지니어 유재우는 생각했다.
‘그래, 팀장님 말씀이 옳아.’
완벽함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두 사람이 만났다는 팀장의 말은 백번 옳았다.
“흠, 조금 아쉬운데요? 다시 부탁드려요.”
“선생님, 한 번만 다시 갈게요.”
“힘드시겠지만 방금 소절만 다시 갈게요.”
재차 현승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 저었고.
“호흡이 너무 많이 들어간 것 같아. 다시 한번 부탁해.”
“끝 음을 내리니 별로네. 다시 불러 보지.”
“방금 목소리가 긁히는 소리가 났어. 다시 해 보겠네.”
뒤를 이어서 문범재가 자신을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만들어 낸 “다시”라는 굴레 속에서 A&R 직원들이 차례로 나가떨어지는 중이었다.
“이렇게나 많은 테이크를 쌓아 본 건 처음이네. 이 정도면 같은 곡으로 버전 열 개는 만들 수 있을걸….”
“현승 씨, 분명 다른 수록곡들 녹음한다고 며칠 동안 제대로 못 잤다고 하지 않았어? 진짜 돌고래야?”
“정말 사디스트라는 별명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라니까? 지금도 좋은데, 여기서 더 좋아질 수가 있나?”
중간중간 직원 휴게실에서 잠시 눈을 붙여 가며 샤워실에서 대충 이빨만 닦으며 자그마치 3박 4일이라는 시간을 녹음실에서 함께 보냈건만….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다시 한 번만 더 갈게요.”
완성이란 단어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다.
“피곤해서 진짜 토할 것 같아.”
“응, 난 이미 했어.”
“참아. 토하면 체력 떨어지니까.”
아직도 눈을 반짝이는 현승과 달리 이미 그들의 눈은 초점을 잃은 채 어두운 그림자를 매달고 있었다.
제아무리 밤샘 작업을 밥 먹듯이 하는 엔지니어라 해도 살인적인 스케줄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민현승 씨, 혹시 로봇 아냐…?”
“로봇도 저 정도면 방전되지.”
“어려서 체력이 좋은 건가?”
“나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원래 이렇게 메마른 꽃잎처럼 시들시들하진 않았다.
분명.
처음 시작할 때는 아주 열렬히 동참하고 호응했다.
어떻게 곡을 다듬고, 어떤 구간에서 이펙트를 넣을지 의견도 보태 가며 열렬히 참여했다.
우선 곡 자체도 결점이 없었지만, 그걸 소화해 내는 문범재의 목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니까.
첫날까지는 말이다.
“힘드시면 그냥 가셔도 돼요.”
현승이 곁눈질로 그들을 살피다 넌지시 던진 말이었다.
“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힘들긴 한데….”
“그래도 우리가 함께하는 게….”
엔지니어들은 슬쩍 서로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도움이 될 거라며 큰소리를 떵떵거린 만큼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딱히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아서 그래요. 괜히 옆에서 힘 빼실 필요 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시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선택 아니려나?”
그들은 현승이 덧붙인 말에 힘이 “축.” 빠지기라도 한 양 콘솔 앞으로 엎어졌다.
“하여튼, 솔직하시다니까….”
엔지니어로서 명확하게 줄 만한 도움이 없었던 까닭에 사실상 다들 녹음을 구경하는 관람객에 가까웠다.
현승이 녹음실 분위기를 압도하며 디렉팅하는 모습에 환호와 동경의 박수를 보낸 게 다였으니까.
대체 누가 엔지니어고, 누가 작곡가인지 모를 지경이었다면 조금은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지.’
그들은 고지가 코앞인데 마무리까지 같이하겠노라고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웠다.
기왕 시작을 함께했으니 끝도 함께 내고 싶은 객기 비스무리한 마음이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부스 안에서도 활활 타오를 듯한 열기가 내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모두가 언젠가는 녹음이 끝나리란 사실조차 믿을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됐다.”
“됐군.”
부스 창문 하나를 두고 문범재와 현승이 서로 오케이 사인을 주고받았다.
엔지니어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양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들을 살폈다.
“뭐야? 진짜 끝난 건가?”
“끝이야?”
“끝이 있기는 있었구나!”
그때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녹음 부스의 문이 드디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렸고.
“선생님, 고생하셨습니다.”
“자네야말로 고생 많았어.”
바깥으로 나온 문범재가 현승의 어깨를 다독이며 재차 치하했다.
그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엔지니어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선생님, 진짜 진짜 고생 많으셨어요!
“전설은 전설이네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음원이 나올 것 같아요.”
그러나.
“잠깐, 잠깐―.”
문범재는 그들의 칭송보단 결과물이 더 급선무였다.
“벌써 설레발 떨기에는 시기상조 같네. 방금은 꽤 괜찮았던 것 같기는 한데 일단 결과물부터 한번 들어 봤으면 하는데.”
뭐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문범재가 내뱉은 말 한마디에 엔지니어들은 일동 경악스러운 표정을 내 비췄다.
음악 변태는 현승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한 명이 더 늘어난 꼴이었다.
‘이거 오도현에게 까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 판이네.’
현승이 제 얼굴을 손으로 가린 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 곡을….
문범재가 아니라 다른 뮤지션이 불렀다면 어땠을까?
‘진즉에 다 끝이었겠지.’
기나긴 녹음 시간에 두 손 두 발 들고 스프링처럼 튕기듯 녹음실 밖으로 뛰쳐나갔을 거다.
‘여태껏 녹음했던 뮤지션들이 대부분 그랬으니까.’
그러나.
자신이 한 소절, 한 음절 단위의 녹음조차 한없이 표독스럽고 끈질기게 꽉 물고 늘어졌다면….
문범재는 자신의 끝 음 하나, 내뱉는 호흡 하나조차 거듭 곱씹으며 달려들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자신과 기분 좋은 신경전을 벌이는 문범재를 보니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다.
일련의 쾌감이라고 해야 할까?
“빨리 들어 보자!”
반면 엔지니어들은 얼른 ‘완성된 작업물’을 확인하고 가족들이 반겨 주는 따스한 집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그 속에는 소위 말하는 불후의 명곡이 탄생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 또한 서려 있는 채였다.
이윽고.
― 그댄 거기서도 내 목소리를 매만지고 있을까.
그들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를 확인하고는 약속이라도 한 양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맙소사….”
말 그대로 대형 사고의 조짐이 보이는 곡이 완성된 채였다.
* * *
어느덧 ‘HS’ 이름으로 발매될 대망의 첫 작곡가 개인 앨범 작업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공장에서 찍어 내듯 금세 뚝딱뚝딱 곡을 만들던 현승이었는데 이번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다른 작곡가들이 앨범을 준비하는 속도와 비교한다면 가히 ‘빛’과 같은 속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모쪼록.
김 실장은 의미 있는 앨범인 만큼 현승과 함께 ‘마케팅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점심 사 줄게.”
“구내식당?”
“나를 너무 쪼잔하게 보는 거 아냐?”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걷다 보니 금세 마케팅팀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고….
“자, 다들 카페인 수혈 시간입니다.”
김 실장이 능수능란하게 준비해 온 뇌물을 나눠 줬다.
“작곡가 HS 님의 앨범 유통 건 때문에 방문하신 거죠?”
“맞습니다.”
“이번 앨범도 대박이겠죠? 대체 어떤 분이시려나….”
커피를 받아 든 직원이 뭔가 생각이라도 난 듯 피식피식 웃음을 흘려 가며 말을 이었다.
“사내에 괴담이 한둘이 아니더라고요. 작곡가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 보니까 성격은 비정상인데 외모는 제법 곱상하다든가….”
“뜬 소문이야.”
“그래요? 듣기로는 돌고래처럼 하루에 10분만 자도 컨디션이 다 회복된다던데. 또 뭐라더라? 성격이 베토벤 뺨치게 더럽고 까탈스럽다고….”
그 말에 김 실장이 고개를 돌려 현승의 눈치를 살피던 찰나.
“아, 맞다.”
두툼한 서류를 휙휙 넘겨대던 직원이 거듭 말을 이었다.
“그 발매 일자 말인데요.”
“응.”
“최대한 앞당겨 볼게요.”
그 말에 김 실장이 눈매를 좁혔다.
“뭐, 그래 주면 고맙기야 한데 너무 서두를 필요 없어.”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왜? 이번 분기는 매출 실적이 조금 모자란가?”
이내 담당자가 정말 모르냐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실장님, 혹시 소문 못 들으셨어요?”
김 실장이 “무슨 소문?” 하고 되묻자 담당자가 목소리를 낮추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 제이블 말이에요.”
그 말에 현승이 미간을 좁혔다.
‘제이블?’
전생에서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이름이었다.
커리어가 꽤 탄탄한 작곡가였다.
히트 메이커, 천재, 저작권 재벌, 그 밖에도 기타 등등.
‘요란한 수식어가 잔뜩 달린 작곡가였지.’
보유한 히트곡도 많고, 방송 활동도 워낙 활발히 하는 편인지라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지도가 높은 편이었다.
또한.
단순히 한 곡 단위로 작곡을 진행한 게 아니라 제 개인 앨범조차 줄줄이 흥행시키며, 국내 음원 시장에 작곡가의 개인 앨범이라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일조한 선구자 격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제이블이 왜?”
김 실장의 물음에 담당자가 입맛을 다시고는 말을 이었다.
“제이블이 올해 연말쯤 개인 앨범 낸다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아주 칼을 갈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러고는 주변을 살피며 비밀스럽게 덧붙였다.
“지금 제이블 때문에 하반기 발매 예정이던 가수들 다 내년으로 일정 바꿔 달라고 난리도 아니에요.”
이내 현승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제이블이라….’
정확히 표현하자면 제이블이라는 작곡가는 ‘전 세대의 천재’라고 표현해야 옳을 터였다.
현승이 한창 활동을 시작하고 명성을 얻기 시작했을 무렵 즈음이었던가?
돌연 은퇴해 버린 탓에 음원 성적으로 제대로 한번 겨뤄 보지도 못한 채 전설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올해 연말 무렵에 발매할 제이블의 개인 앨범은 그가 은퇴한 이후에도 막대한 저작권료를 품에 안겨 줄 연금 같은 곡이 잔뜩 수록된 명반이었다.
그 말인즉.
만약 발매 일자를 잘 조율한다면 승부를 가릴 수 없던 전 세대의 천재와 외나무다리에서 진검승부를 해볼 수 있으리란 뜻이었다.
‘드디어 한 판 붙어 볼 수 있는 건가.’
늘 비교 대상의 척도가 되었던 그와 동시대에 활동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그런 현승의 마음을 알 리가 없는 김 실장은 깊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서둘러서 먼저 선수 치는 게 좋겠지…?”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하반기에 예정되어있던 음원과 앨범들이 줄줄이 발매 시기를 미루는 추세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무주공산이나 마찬가지인 차트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발 빠르게 움직여서 깃발을 제일 먼저 꽂아야 하지 않겠나?
더군다나….
분명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크리스마스 시즌 곡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올 터.
거기다가 제이블 같은 거물급 작곡가까지 고심하여 준비했을 개인 앨범을 발매한다.
아마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국내 음원 플랫폼은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전장이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 바로 적기이자 기회이리라.
“저기….”
그렇게 판단한 김 실장은 슬쩍 현승의 눈치를 살피며 작게 덧붙였다.
“최대한 빠르게 서둘러 줘. 연말 근처도 가면 안 돼.”
은밀한 지시에 담당자가 “네.” 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 실장은 별안간 뒤에서 들리는 현승의 목소리에 불안함을 감지했다.
“실장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절대 안 돼.”
“예? 저 아직 아무 말 안 했는데요?”
“그냥 안 돼.”
“제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요?”
김 실장이 재차 완강히 답했다.
“아무튼 그거 정답 아니다.”
현승의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를 보아하니 분명 또 말도 안 되는 말을 해 올 게 분명했다.
“이번에는 제발 무난하게 가면 안 될까?”
“뭐가요?”
“우리 그냥 맛있는 밥이나 먹으러 가자.”
김 실장이 담당자에게 황급히 “알아서 잘 부탁해!” 하고 인사를 전한 뒤 곧바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저기, 담당자님?”
현승은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담당자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그러고는 결국.
김 실장이 염려하던 말이 현승의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제 앨범 발매 일자를 연말로 좀 늦췄으면 하는데요.”
역시 불안한 예감이 으레 그렇듯.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안 된다고 했잖아!”
빗나가는 법이 없다.
“제 앨범…?”
이내 마케팅 담당자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그, 그, 그럼, 그쪽이 HS…?”
그러고는 앞서 사내에 떠돌던 ‘HS 사내 괴담’에 대해 떠들어 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멋쩍은 헛기침을 해 댔고.
“모쪼록 연말 발매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현승이 정중히 첨언했다.
“꼭이요.”
이로써 현승은 잘 다듬어진 안정적인 포장도로보다는 울퉁불퉁하고 험난하기 짝이 없는 비포장도로를 훨씬 선호한다는 사실이 확실해진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