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0화 (40/118)

40화

그렇게 모두가 고대하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밝았다.

저녁 무렵.

현승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현아가 넌지시 물었다.

“오빠, 케이크 사 왔지?”

짤막하게 “응.” 하고 답한 현승이 곧장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건네줬다.

“대박! 너무 예쁘다!”

케이크를 보고 좋아하는 현아를 보고 있노라니 이 엄동설한에 귀가 빨개지도록 기다려 사 온 보람이 느껴졌다.

“저녁 차려놨으니까 밥 먹게 얼른 식탁으로 와!”

“응, 옷만 걸어 두고.”

“식는다? 빨리 와! 배고픈데 기다렸단 말이야!”

“것참, 알았다니까.”

퉁명스럽게 답한 현승이 곧장 제 방으로 향해 외투를 대충 벗어 걸어 두고는….

“어딨더라….”

장롱 안쪽에 숨겨 놨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꺼내 들었다.

“다들 마음에 들어 해야 할 텐데.”

현승은 쇼핑백을 제 몸 뒤로 숨긴 뒤 자연스럽게 식탁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야? 웬 진수성찬이야?”

“솜씨 좀 발휘했지.”

“사 온 건 아니고?”

“다 직접 만든 거야!”

식탁 위로 현아가 힘써 만든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거 다 어디서 사 온 건데?”

“뭐? 진짜 죽을래?”

“잘하는 집 같은데 공유 좀 해 줘.”

“직접 만들었다고!”

현승이 농담을 던져 가며 은근슬쩍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식탁 아래 발치에 내려놓았다.

그때.

막 방에서 나온 아버지께서 근심 어린 표정으로 현승의 얼굴을 살피며 수화로 말을 건넸다.

- 아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요즘 바빠서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는 거야?

- 연말에 회사에서 구내식당 개근상 줄 거래요. 한 끼도 안 빼고 꼬박꼬박 와서 먹는다고.

아버지의 염려와 달리 현승은 근래 들어 아주 유복하고 윤택한 삶을 보내는 중이랄 수 있었다.

물욕이 많지 않기도 했고, 어지간한 사치라면 전생에서 전부 다 부려봤기에 과소비하진 않았지만….

딱히 아쉬울 게 없는 나날을 보내며 작업에 전념해 앨범 발매 준비도 마쳤으며 가족도 나름 잘 챙기고 있었다.

심지어.

잘 갖춰진 구내식당에서 *시간 맞춰(*가끔은 식당이 열리기도 전부터 줄을 서 있다가, 첫 순서로 밥을 먹기도 했다.) 매 끼니를 잘 챙겨 먹은 덕분에 살도 제법 오른 상태였다.

‘부모 관점에서 자식은 항상 야위고, 안쓰럽겠지.’

현승이 안심시키려 던진 농담에도 아버지는 쉽사리 웃음기를 보이지 못했다.

그때.

“오빠, 우리 일단 초부터 켜자!”

“유난은, 무슨 초까지 켜.”

“에이, 크리스마스잖아!”

“생일도 아니고 무슨….”

“아니긴! 예수님 생일이잖아!”

“너 기독교 아니잖아?”

“필요할 땐 가끔 기도도 해!”

그렇게 ‘케이크에 촛불을 켜느냐? 마느냐?’를 주제로 한 논쟁이 이어지던 와중이었다.

“그래도….”

현아는 잔뜩 풀이 죽은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크리스마스인데 초는 불어야지이….”

일순간 현승이 나지막이 답했다.

“그래, 초 불자.”

문득.

“크리스마스인데 초는 불어야지―!”

현아의 말 때문에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언제였더라?

자신이 일곱 살, 현아가 다섯 살이던 해의 일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크리스마스 새벽에 일을 나서던 아버지께서 집을 나서기에 앞서 외투를 단단히 여미며 말씀하셨다.

― 현승아, 아빠가 저녁에 케이크 사 올 테니까, 아빠 올 때까지 싸우지 말고 집에 잘 있어야 한다? 현아 잘 돌봐 주고.

― 응! 그럼 우리 케이크에 초도 불어요?

― 그럼, 마음만 같아서는 안 나가고 싶은데 크리스마스라 일 할 사람이 없어서 말이다.

― 그럼 케이크 초 못 부는 거예요?

― 하하, 녀석. 아니야. 케이크 초 불 수 있어. 오늘은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으니 현아랑 집 잘 보고 있어.

어렸을 적 이따금 현아가 아버지께 떼를 쓰곤 할 때면 괜스레 미워 보이곤 했다지만 그날만큼은 아니었다.

현아가 크리스마스가 되기 한참 전부터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고 싶다며 떼를 쓴 덕에 정말 케이크를 먹게 됐다.

― 네, 안녕히 다녀오세요.

어린 현승은 연립주택 단지 내리막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시는 아버지의 등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저녁이 되면 아버지가 달콤한 케이크를 사 오시리라고 믿고서 모퉁이를 사라지신 뒤에도 한참을 바라봤다.

다 함께 초를 꽂고서, 신나게 캐럴을 부르고, 달콤한 케이크를 나눠 먹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으며.

한데, 어떻게 된 영문이었을까?

아버지께서는 저녁 7시, 8시, 9시, 시침이 12시 정각을 가리키도록 돌아오시지 않았다.

“오빠아아, 아빠 언제 와?”

“금방 오실 거야.”

“오늘 온다고 했는데….”

“응, 곧 오실 거야.”

“케이크 사 올 거라고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현아의 얼굴 위로 점차 불안한 기색이 감돌기 시작했다.

목소리에도, 눈가에도 물기가 차오르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온다고 나랑 새끼손가락도 걸었는데….”

한참을 울던 현아가 서럽게 말문을 열었다.

“오빠, 나 집 앞으로 아빠 마중 나갈래.”

“밖에 추워. 안에서 기다리자.”

“싫어, 아빠 빨리 만나고 싶단 말이야.”

현아가 통통한 볼을 더욱 부풀리며 떼를 쓰는 바람에 결국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대신 옷 따뜻하게 입고.”

제대로 보온이 될까 싶은 점퍼와 보푸라기가 잔뜩 일어난 목도리를 동생에게 입히고 매 주다 보니 괜스레 아버지가 밉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아빠! 아, 아니네….”

어두운 골목으로 어른의 형상이 보일 때마다 현아는 몇 번씩이나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도록 밖에서 버틴 탓에 꽁꽁 얼어붙은 동생의 손을 붙잡았다.

“이제 그만 들어가자.”

“싫어!”

“이러다가 감기 걸려.”

그렇게 동생을 집으로 끌고 들어가려던 찰나.

“오빠아아….”

현아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혹시 아빠가 우리 버린 거면 어떡해?”

현아의 눈에서 다시금 닭똥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영영 집에 안 오면 어떻게 해?”

작고 여린 어깨가 거세게 들썩였다.

“일이 늦게 끝나서 그런 거야.”

“그럴 리 없어.”

“아빠가 우리를 왜 버리겠냐?”

현승은 재차 부정하며 현아의 등을 다독였다.

어쩌면….

자신에게 되새기는 주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냐, 절대 아니야.”

오빠이기 전에 7살이었기에….

“분명 오실 거야.”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같은 불안을 껴안고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기나긴 새벽이 다 지나가도록 오지 않으셨다.

“오빠, 나 발이 너무 아파….”

설상가상으로 동생의 발이 발갛게 부어올랐다.

“그러게, 집에서 기다리자니까!”

“이제 아빠 안 올 것 같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있어 봐!”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조그마한 손으로 더 조그마한 동생의 발을 쥔 채로 연신 “하아, 하아.” 하고 입김을 불어 주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현아야, 자…?”

고통을 호소하던 동생은 어느덧 쌕쌕거리며 잠이 들었다.

어두운 방 안.

TV에서 나온 불에 의지한 채로 연신 혼잣말을 중얼댔다.

“현아야.”

사실, 두려웠다.

“아빠 안 오면 어떻게 하지.”

정말 아빠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정말 버림받은 것일까 봐.

견딜 수 없을 만큼 무섭고 두려웠다.

“현아야….”

그렇게 어슴푸레하게 동이 떠오를 무렵이었다.

끼이이익―.

울다가 지쳐서,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던 무렵이었다.

― 현승아! 현아야!

현관이 열렸고.

― 아빠가 미안하다.

아버지였다.

― 늦어서 미안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아버지께서는 한쪽 팔에는 깁스를, 반대쪽 발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 채로 목발을 짚고서 돌아오셨다.

한눈에 봐도 많이 다치신 게 분명한 아버지를 보며 속없이 이런 생각을 하고야 말았더랬다.

― 아빠.

그 생각을 수화로 전하고야 말았더랬다.

― 정말 다행이에요.

― 무슨….

― 버린 줄 알았어요.

아버지의 다리를 붙들고 고개를 파묻었다.

― 아빠가 우리 버린 줄 알았어요.

복받치는 감정을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한참을 울었다.

아빠는 듣지 못하니 모를 줄 알았다.

얼굴을 묻고 소리 내지 않고 울면 모를 줄만 알았다.

이윽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수화가 아니라.

육성으로 말씀하셨다.

“연… 승아….”

힘겹게 말씀하셨다.

“울… 지마. 압… 빠가… 미안애.”

그래, 아빠는 다 아는 사람이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우리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 아는 사람이다.

우리를 버릴 리 없는 사람이다.

또, 깨달았다.

어른도 가끔은 울 수 있다는 걸.

아빠가 울었다.

나는 귀가 다 들리는데도.

소리를 내지 않고.

아주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미… 안애.”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어른이 울면.

아이들은 모르는 척해 줘야 한다.

다 알아도.

그저 모르는 척해 줘야 한다.

아침이 됐다.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케이크에 초를 불기로 했다.

“오빠! 신난다! 나 케이크 처음 먹어 봐!”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아버지를 따라 동네 빵집을 찾았다.

그때는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초라했던 행색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아버지의 왜소하던 몸.

너덜거리던 점퍼.

부르튼 손과 입술.

까무잡잡한 피부.

주머니에서 꺼낸 낡은 지갑마저.

모든 게 생생히 떠오른다.

우리의 유년기가.

아버지의 생(生)이 힘겨웠던 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지독한 가난이 만든 문제였다.

그래, 가난이 죄였다.

어둡고 긴 터널 같은 시간을 헤쳐 나왔다.

왜 전생에서는 그 사실을 잊었던 걸까?

바쁘단 핑계로 모든 걸 외면하며 살았을까.

그때였다.

아버지께서 어깨를 톡톡 두드리셨다.

― 현승아.

그러고는 마치 제 생각을 읽은 양.

― 그리고 현아야.

사과하셨다.

― 그땐 정말 미안했다. 너희 어렸을 적에. 크리스마스에.

이내 현아가 멋쩍게 미소 지었다.

― 아빠도 참, 그게 언제 적 일인데!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그래!

아버지께서는 어째서 우리에게 늘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해야 하셨던 걸까?

가난하다고 패배한 게 아닌데, 벌을 받기 위해 태어나 사는 게 아닐 텐데.

정말 가난이 죄였던 건가?

그렇다면.

우리 식구는 전부 무죄다.

내가 그렇게 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만들 셈이었다.

이내 애써 태연한 미소를 머금은 현승이 수화로 아버지께 조곤조곤 말씀드렸다.

― 우리가 철이 없었죠. 그날 외벽 작업하시다가 떨어져서 크게 다치셨다면서요? 그렇게 크게 다치셨는데도 의식 돌아오자마자 집으로 와 주셨던 것만 하더라도 정말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러고는 틈을 두고 부연했다.

― 또… 존경스럽기도 하고요.

아버지께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 녀석, 모쪼록 좋은 날인데 좋은 생각만 해야지.

그러고는 곧장 초를 꽂으며 말씀하셨다.

― 현승이 너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잖아? 잘은 모른다지만 그럼 너도 즐거운 생각만 하며 지내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말에 현승이 다시금 상념에 잠겼다.

‘작품이라….’

지금껏 자신이 만든 곡을 ‘작품’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회귀 이전에는 그저….

일로, 직업으로, 혹은 명백한 비즈니스 정도로 대하곤 했다.

그때.

초 몇 개를 케이크 위에 꽂으신 아버지께서 재차 물으셨다.

― 어차피 나야 듣지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 네?

― 우리 아들이 만든 작품 중에 말이야.

― 네.

― 최고의 작품이 뭔지 알려 줄 수 있을까?

문득.

― 아마도요.

이번 앨범이 최고의 작품이 되리란 생각이 들었다.

성적을, 흥행을, 상업적 지표를 떠나서.

처음으로 자신과 가족의 서사를 꾹꾹 눌러 담은….

― 이번 앨범 타이틀곡일 것 같아요.

이번 앨범 타이틀곡이 최고의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 그 곡만은 꼭 한번 들어 보고 싶구나.

아버지께서 재차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은 말이다.

현승은 느릿하게 움직이는 아버지의 손을 쫓았다.

― 너희란다.

이윽고.

― 자, 초 불자.

한차례 “아싸!” 하고 소리를 질러 보인 현아가 곧장 촛불마다 불을 붙이기에 이르렀고….

― 아빠도 눈 감고 얼른 소원 빌어요!

말을 마친 현아가 곧장 두 손을 꼬옥 모은 채 두 눈을 지그시 감아 보였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아버지가 따라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승도 눈을 감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자, 분다? 내가 분다?”

“야! 같이 불어야지!”

“먼저 부는 사람이 임자야!”

“그런 게 어딨냐?”

그렇게 제일 먼저 현아가 입바람으로 초를 껐고.

“후우! 후우!”

질세라 현승 역시 연거푸 바람을 불어 대기 시작했다.

그런 남매를 바라보던 아버지께서 활짝 웃으셨다.

이윽고 현승이 발치에 뒀던 쇼핑백을 꺼내 들었다.

― 아버지, 크리스마스 선물이에요.

고민 끝에 고른 아버지의 선물은 ‘지갑’이었다.

왜였을까?

어쩐지 지갑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고른 선물이었다.

― 현승아, 이거 비싼 지갑 같은데….

빳빳한 오만 원권 새 지폐가 잔뜩 채워진 아버지의 새 지갑 위로.

자꾸만.

어렸을 적 빵집에서 봤던 아버지의 낡은 지갑이 오버랩되며 떠올랐다.

― 제 벌이에 비하면 하나도 안 비싸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 그리고 잘 어울리세요.

이내 현아가 채근하듯 물었다.

“오빠! 나는? 내 선물은?!”

“옜다, 오다 주웠어.”

“헐, 대박! 뭐야? 용돈이야?”

현아를 위해 준비한 선물은 용돈이었다.

정아린한테 물어봤더니….

요즘 애들한테는 현금이 최고라나 뭐라나.

“어쭙잖은 선물보다 훨씬 낫죠.”

“정 없지 않아?”

“대신 실속은 있잖아요?”

이내 현승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응, 아린이한테 물어봤더니 그냥 현금이 짱이라던데?”

“헐, 대박! 정아린? 내가 아는 정아린? 아린 언니 짱!”

“펑펑 쓰지 말고 아껴 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써.”

“네! 오빠! 오라버니! 동생이 물이라도 떠다 드릴까요?”

과장되게 충성을 과시하는 현아에게 휙휙 손짓해 보이고는 넌지시 말했다.

“우리 가족.”

크리스마스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번 크리스마스는 정말이지….

두 번의 생을 통틀어.

최고의 크리스마스다.

부디 앞으로도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