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1화 (41/118)

41화

그렇게 대망의 크리스마스 당일이 밝았다.

예정된 대로….

현승의 개인 앨범 역시 세간에 공개됐다.

[ [단독]올 한 해를 뒤흔든 히트곡 메이커 ‘HS’ 개인 앨범, 고해성사(告解聖事) 드디어 베일 벗고 자정 국내 발매… ]

[ [공식]LS 엔터테인먼트 측 관계자 曰, “작곡가 HS, 제이블과 정정당당히 맞붙기 위해 같은 날짜에 발매” 발언 화제! ]

[ [이슈]서지니에게 제2의 전성기를, 그리고 정아린을 스타 반열에 오르게 만든 신예 작곡가 HS는 대체 누구? ]

[ 작곡가 HS, 이번 자신의 앨범은 ‘하나의 작품’이라며 “음악성으로 승부를 보겠다” 자신감 드러내 ]

전남일 대표의 약속 덕분이었을까?

앨범 발매와 동시에 인터넷 웹 뉴스 연예면에 앨범과 관련 기사가 몇 개나 보도된 채였다.

또한.

같은 날 발매 예정이었던 제이블의 개인 앨범 또한 포털사이트 전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 [공식] 칼 갈고 나온 제이블, 개인 앨범 [ Warm us ] 발매… 그의 한계 없는 음악성 ]

[ 제이블, 발매 단 1시간 만에 국내 음악 플랫폼 전부 차트 입성하며 ‘대히트’ 예고! ]

[ [이슈]2년 만에 돌아온 제이블, 히트 메이커로서 부담? “그런 거 전혀 없다.” 발언 ]

그로부터 얼마나 흘렀을까?

“김 실장님, 다리 떨면 복 나가요.”

현승의 말에 김 실장이 신경질적인 투로 답했다.

“야, 그럼 떨리는데 어떻게 하라고―?”

“제 앨범인데 실장님이 왜 떨어요?”

“일이 생각보다 너무 커져 버렸잖아!”

“다들 남 일에 관심이 많아서 그렇죠.”

두 사람의 앨범이 발매된 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제이블의 앨범은 차트 상위권을 점령했지만….

현승의 앨범은 차트 하위권을 헤매는 중이었다.

“야, 또 너 혼자서만 너무 초연한 거 아냐?”

“물 떠 놓고 기도라도 해요?”

“다들 네 앨범 때문에 며칠을 고생했는데!”

“그냥 각자 할 일 한 거잖아요?”

현승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전 만들고.”

그러고는 재차 김 실장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쪽 분들은 홍보하고, 유통하고, 판매하고.”

그 말에 김 실장이 “너는….” 하고 중얼거리며 일련의 서운함이 잔뜩 서린 눈으로 현승을 잠자코 바라봤다.

정작 자신만 하더라도 이번 앨범의 성패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몇 날 며칠을 회사에서 머물렀다.

홍보실을 들락거리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유통 과정이라든지 발매 상황을 체크하고….

물론 현승이 시킨 일은 아니라지만 정말 잘되기를 기도해 가며 간절한 마음으로 보낸 시간일 터.

반면.

정작 당사자인 현승은 바다 건너 불구경하듯 초연해 보이기만 했기에 꿀밤이라도 한 대 놔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나야 그렇다 치고 다른 부서 사람들이 그런 말 듣게 되면 아마 엄청나게 섭섭해할 거다.”

“예?”

“전략기획팀, 홍보팀, 유통팀, A&R팀, 어디 한 군데도 허투루 일한 사람들이 없을 텐데….”

사실상 ‘제이블의 앨범 발매일’에 맞춰 현승의 앨범을 발매하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아니지.

과장을 조금 보태어 말하자면 자살 행위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무모하고 승산이 없는 행위였다.

다만.

다들 입사 이래로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해 가며 업무에 몰두했던 적이 없다고 말할 만큼 치열하기 그지없는 준비 시간을 가졌다.

어째서였는지는 모른다.

이번 앨범 발매에 손을 보태게 된 이들은 점차 어쩌면 현승이 대단한 이변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여태껏 그래 와서?

서지니에게 제2의 전성기를 선사하고, 퇴출 위기의 연습생이던 정아린을 스타로 만들어 내서?

아니면 꽤 잘 뽑힌 현승의 곡이 제이블을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을까?

그것도 아니면 안목과 수완 좋기로 유명한 전남일 대표가 직접 나서서 전폭적인 지원을 지시해서?

중요한 점은….

모두가 밤잠은 줄이고, 끼니는 대강 챙겨 가며 이번 프로젝트에 열을 올린 근본적인 이유가 한낱 ‘현승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애석하게도 세상은 개인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현승이 얼마나 좋은 곡을 뽑아냈는지를 떠나서….

또 모두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떠나 반응은 냉담했다.

스르륵, 스르륵―.

[ 작곡가 HS 개인 앨범 고해성사(告解聖事), LS 엔터테인먼트의 전폭적 지원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 기록. 누리꾼 “감히 제이블에 비벼?” 조롱 일삼는 중…. ]

포털사이트 메인에 뜬 기사의 헤드라인을 훑어보던 김 실장이 칭얼댔다.

“제이블이 귀족이야? 황족이야? 비비는 게 뭐 어때서?”

그러고는 곧장 연예 기사란을 클릭하여 하나씩 면밀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스르륵, 스르륵―.

[ 음악 평론 대부 황찬수 曰 “홍보나 마케팅이 순위를 결정하는 시대는 진즉에 끝났다. 대중은 영리해졌으며 기호는 명확해졌다”, 작곡가 HS와 LS 엔터테인먼트를 향한 신랄한 비판 화제…. ]

자연스럽게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얼씨구? 황찬수 이 양반, 우리 애들 앨범 낼 때마다 기웃대는 게 얄미워 죽겠네. 각설이야 뭐야? 왜 죽지도 않고 자꾸 오는데?”

스르륵, 스르륵―.

[ 스타와 흥행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곡가 ‘HS’, 공격적인 홍보에도 부진한 음원 성적… 발등에 불똥 떨어진 LS 엔터테인먼트. ]

“발등에 불똥 떨어지긴 무슨! 평온하기만 한데!”

“지금 발등에 불 떨어지신 것처럼 보이시는데.”

“뭐, 인마? 너도 저 자식들이랑 한통속이냐?”

“그럴 리가요? 제가 저 비방과 비판의 당사자인데.”

이내 현승의 대답에 입매를 일자로 꾹 다물었다.

맞지….

지금 가장 속상할 사람은 다름 아닌 현승이었다.

평소에는 가벼울지 몰라도 제 일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진심인 녀석이 아니던가?

특히 이번 앨범을 준비하던 때의 현승은 유달리 열정적이었고 뜨겁기 그지없었다.

그런 현승 앞에서 굳이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은 평가를 떠들어 댄 꼴이었으니….

“저 나쁜 자식들. 기사를 뭐 이따위로 써? 들어 보기나 했는지 모르겠네. 들어 봤으면 저딴 기사는 한 줄도 못 썼을 텐데….”

그러고는 곧장 격려하듯 말을 이었다.

“어쨌든, 너무 걱정하지 마. 홍보팀에서 나서서 수위 높은 기사 몇 개라도 정리해 줄 거야. 아직 발매 초기에 곡도 잘 뽑혔으니 뉴스, 칼럼, 커뮤 다 신경 써서 관리 들어가다 보면 분명히 차트에서도 반등할 수 있을 거야.”

그때 현승이 차분한 투로 답했다.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돼요.”

“응? 그게 무슨….”

“할 만큼 해 주신 거 알아요.”

당사자인 자신이 봤을 때도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을 만큼 사내 모든 마케팅 채널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이런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는데도 흥행에 실패했다면 객관적인 관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두 가지다.

첫째. 그냥 곡 자체가 별로인 경우.

둘째.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경우.

아, 물론 제 곡이 별로일 수는 없으므로 시대를 앞서간 거라고 굳게 믿고 털어 버리기로 했다.

지나치게 나르시스트 같은 사고라지만 언젠가 대중들의 수준이 높아지면 재평가되리라고….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젠가 주머니를 뚫고 나오기 마련이라는 말처럼 비운의 명곡은 먼 미래에라도 재평가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전생에서 냈던 곡 중 일부는 한참이 지난 시점에서야 대중의 인정을 받고, 소비되며, 차트를 역주행하기도 했으니까.

당초에.

신예 작곡가가 피 터지는 전쟁터나 마찬가지인 연말 음원 시장 안에서, 100위권 안으로 차트인에 성공했다는 점만 놓고 보더라도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아니.

고작 데뷔 1년 차도 꽉 채우지 못한 신인 작곡가가 자신의 개인 앨범을 발매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만 놓고 봐도 탄탄대로에 접어들었다는 방증이리라.

“에라이, 할 만큼 하긴 무슨.”

반면, 김 실장의 입장은 달랐다.

“그러는 너는 곡 작업할 때 할 만큼 했으니까 됐다고 생각하고 넘긴 적 있냐?”

“설마요.”

“우리도 마찬가지야. 네가 전에 말했던 대로 곡이 원작자 손을 떠났으면 그때부터는 다 우리 책임이지.”

그가 사뭇 진중한 투로 부연했다.

“됐으니까 너는 지금처럼 초연하게 있어. 나머지는 우리가 어떻게든 알아서 해 볼 테니까.”

그 말에 현승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멋진 척하심?”

“그냥 멋진 거임.”

현승과 농담을 주고받으니 기분이 좀 차분해졌다지만….

‘이거 걱정이네.’

현승에게 형성된 기댓값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이 분명했다.

특히나 이번 일을 계기로 전남일 대표가 제 마음속의 손가락을 하나 접어 버렸을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고집을 피웠고, 마케팅 채널을 집중시켜 줬으나, 이에 못 미치는 성과를 낸 셈이니 그럴 확률이 농후했다.

더욱 두려운 점은 손가락이 몇 번 접혀야 그의 눈 밖에 날지 모른다는 점에 있었다.

‘이것 참….’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을 때일 수도, 세 번째일 수도….

어쩌면.

이미 눈 밖으로 밀려난 뒤일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다음 곡에서 만회하면 되겠지.’

앨범 하나 말아먹는 게 대수랴?

심지어 아직 유통이 끝난 상황도 아니다. 다른 이라면 모를까, 현승의 앨범인 만큼 또 어떤 사건을 계기로 드라마틱하게 반등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래 왔으니까….’

일단 지금 해야 하는 건 부정적인 사고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일 테니까.

“자, 배달이요―!”

그때 홍보부 곽 팀장이 작업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품 안에는 CD가 잔뜩 담긴 묵직한 박스를 든 채였다.

“주문하신 따끈따끈한 앨범 CD입니다!”

내려놓은 박스 안에는 현승의 개인 앨범 약 100장이 꽉 채워져 있었다.

곽 팀장의 뒤를 따라 들어온 홍보부 소속 직원 중 막내가 낮게 되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소량 찍어내는 건 처음이지 않아요? 추첨해서 당첨된 팬들한테 소장용 초판 CD 배부하는 이벤트 같은 거라도 기획하신 거예요?”

그 말에 김 실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비아냥댔다.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만드시고, 축지법을 쓰시는 우리 위대한 작곡가님께서 꼭 실물 앨범도 필요하시다고 최소 물량만큼은 꼭 찍어 달라시잖아? 우리야 까라면 까는 거지, 뭐 별수 있겠냐고.”

반면, 현승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스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실장님, 이두석 선생님께도 한 장 좀 보내 주세요.”

“네가 직접 가져다드려야지!”

“안 돼요. 제가 가면 온종일 붙잡혀 있어야 할걸요?”

“내가 무슨 네 심부름꾼이냐?”

“각박하게 또 왜 그러세요? 그럼 정 없이 택배로 보내요?”

말을 마친 현승이 박스 안에서 앨범 한 장을 꺼냈다.

“저는 딱 한 장만 가져갈 테니까 나머지 CD는 재량껏 알아서 처리하시면 될 듯.”

“한 장? 겨우?”

“네, 저는 한 장이면 충분해요. 모쪼록 오늘은 집 좀 가세요. 면도도 조금 하시고.”

현승이 앨범 한 장을 들고 유유히 자리를 벗어나자 김 실장이 이죽거렸다.

“저 자식이, 내가 누구 때문에 면도도 못 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이내 곽 팀장이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오늘도 사이좋아 보이시네요.”

“좋긴, 무슨.”

“그나저나 현승 씨, 연애해요?”

김 실장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너, 어떻게 알았어?”

항상 자신의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주는 그였다지만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안 것일까.

궁금증이 가득 차오른 김 실장은 그의 입가를 향해 미어캣처럼 고개를 쭉 빼 들었다.

“보통 저 나이대 작곡가들 첫 앨범 나오면 곧장 여자친구부터 가져다주잖아요.”

“흠, 그런가?”

“혈기 왕성한 청춘에 저 정도 외모와 능력이라면 여자친구가 없는 게 더 이상하죠.”

“뭐, 하긴….”

그때 홍보부 여직원 하나가 의문을 제기했다.

“어라? 앨범 가사지에 악보도 실어 놨네요?”

그녀의 물음에 근처에 있던 직원들도 하나둘씩 앨범 가사지를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어라? 정말이네? 이러니까 무슨 피아노 뉴에이지 앨범 같다. 실장님도 알고 계셨어요?”

김 실장도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앨범을 다시 한번 뜯어 보기 시작했다.

“글쎄, 앨범 구성 속지는 다 현승이가 도맡아서 진행한 거라서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때 홍보부 소속 직원들이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라도 된 양 짹짹대듯 물었다.

“저 현승 씨 앨범 한 장만 가져가도 돼요?”

“저도, 저도!”

“저는 친구도 가져다주기로 해서 한 세 장만….”

이내 김 실장이 의아하다는 양 되물었다.

“아이돌 앨범도 아니고 그걸 챙겨 가서 뭐 하려고?”

이윽고.

“혹시 모르잖아요.”

홍보부 직원 하나가 앨범 한 장을 챙기며 말을 이었다.

“이번 앨범 성적이야 제이블한테 밀릴지 모른다지만 언젠가는 현승 씨가 앞지르지 않겠어요? 그렇게 현승 씨 유명해지고 나면 희대의 명곡이 잔뜩 실린 앨범으로 남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새로 나온 영화야? 재미있네. 계속해 봐.”

“극소량으로 찍어 낸 첫 앨범 초판본이라는 점 감안한다면 훗날 어마어마한 값에 거래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소더비를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상품은 HS의 첫 앨범 초판본…!”

이내 별다른 생각이 없던 이들까지 앨범을 두어 장씩 품 안에 챙기기 시작했다.

“일리 있는 말이네요. 그럼 저도….”

이내 곽 팀장조차 슬쩍 앨범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얼씨구?”

그 광경에 김 실장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정말 모를 일이지.’

실제로 해외 유명 밴드인 ‘비트레이스’는 데뷔 앨범을 달랑 100장의 LP판으로 발매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세계적인 밴드로 살아 있는 역사가 된 지금은 초판 앨범이 소더비에서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맞아.’

홍보부 직원의 말대로 단순히 이번 앨범의 성패를 두고 현승의 앨범에 대한 가치를 논하기에 현승이 보여 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흠, 나도 그럼 몇 장 좀 챙겨 볼까?”

이내 김 실장 역시 현승의 앨범 몇 장 챙기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이거 팔아서 집이나 한 채 사야겠다….”

이윽고.

“내친김에 몇 장 더 챙기셔서 빌딩 사시지 그래요?”

곽 팀장의 농담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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