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5화 (45/118)

45화

김 실장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휴대폰을 노려보고 있었다. 현승의 첫 단독 인터뷰 기사가 곧 업로드될 예정이다. 몇 번이나 인터넷 창의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그도 그럴게, 기자란 본래 믿을 수 없는 족속이었다.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설령 기자를 믿어 본다고 한들, 계진성만큼은 절대 믿을 수 없다.

“쓰읍….”

김 실장의 머릿속에는 살살 제 속을 긁으며 능글스럽게 웃던 계진성의 얼굴이 가득 차올랐다. 그래, 정말 그놈은 믿을 수 없다. 하물며 인터뷰 당일 현승이 늦는 바람에 불만을 토로하던 목소리가 어찌나 까칠했는지.

“어?”

계속 밀려오는 불안감에 휴대폰만 부여잡고 발을 동동거리던 찰나였다. 드디어 포털사이트 메인 배너에 헤드라인 한 줄이 떠올랐다.

[ [단독] 최초! 의문의 작곡가 ‘HS’, 첫 공식 인터뷰 공개! ]

김 실장은 기사를 클릭하자마자 작게 호응했다.

“오?”

「 요즘 가장 핫한 의문의 작곡가 ‘HS’를 만나봤다. 그는 마시멜로처럼, DD 마우스처럼, 헬멧을 뒤집어쓴 채로 약속된 장소에 나타났다. 고글 너머로 슬쩍 보이는 두 눈이라던가 피지컬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상당한 미남이리라… (중략) 」

제 걱정과 달리 인터뷰의 시작을 여는 문장이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할 만한 외적인 점을 거론해 놨으니 이슈를 끌기도 좋아 보였다.

스윽, 스윽-.

깔끔하게 정리된 인터뷰 양식은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이 편안했다. 그렇지만 내용은 여느 인터뷰와 다를 바 없이 형식적인 내용이었다. 작곡을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작곡가 데뷔에 담긴 히스토리, 맡았던 가수들과의 에피소드 같은… 그래, 진부하게 적힐 자기소개서와 같은 단락들 말이다.

스윽, 스윽-.

그래도 이 와중에 답변은 하나 같이 현승의 성향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었다. 직관적이며, 솔직담백하고, 자신만만하며, 여유로운 재치를 담아 냈다. 그 정도면 우선 만족이다.

스윽, 스윽-.

드디어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게 들여다볼 하이라이트 질문이 찾아왔다. 김 실장도 눈매를 좁히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 유명 작곡가 제이블과 음원으로 승부를 내보고 싶다며 의도적으로 개인 앨범 발매를 미뤘다고 들었다. 현재 그에 비해 저조한 음원 성적을 기록 중인데 심정은 어떤지?

: 무조건 이기는 싸움인데 ‘승부’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판이 뒤집히지 말라는 법은 없다. 자신 있다. 제이블 씨가 괜찮으시다면 캐삭빵(게임 속 캐릭터 삭제를 걸고 하는 승부) 내기를 제안하고 싶다.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은퇴빵’이다. 자신 없다면…. (중략)

김 실장은 마지막 ‘은퇴빵’에서 잠시 현기증을 느꼈다. 이미 컨펌 단계에서 얼추 확인한 내용이라지만 정말 그대로 실릴 줄은 몰랐다. 후, 다시 한번 말하지만, 현승의 대답은 정말 직관적이며, 솔직담백하고, 자신만만하며, 여유로운 재치를….

스윽, 스윽-.

김 실장은 잠시 흔들리는 멘탈을 붙잡으며 다시 한번 스크롤을 내렸다.

「 그와 나눈 인터뷰는 한마디로 악동 같은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던 시간이었다. 특히나 인터뷰 내내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유려한 말솜씨에 팬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필자는 ‘HS’가 앞으로 보여 줄 행보를…. (중략) 」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써 줬네.”

김 실장은 스크롤이 끝까지 다 내린 것을 확인한 뒤에야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혹시나 현승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만한 중의적인 내용들을 적어 놨으면 어쩌나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게 그림이 그려진 듯 보였다.

특히나 마지막 기자 한마디에 나열된 칭찬을 봐선 계진성도 현승이 내뿜는 묘한 매력에 매료된 듯 보였다. 물론, 좋게 써 줬다 해서 계진성을 믿진 않는다. 언제 뒤통수를 노릴지 모를 께름칙한 놈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불현듯 기분이 착 가라앉고 걱정이 밀려왔다. 계진성은 둘째 치더라도, 인터뷰에 적힌 단어들이 너무 노골적이었기에 대중들의 입방아에 오르락거리진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 내용이 발표된 순간, 곧장 내기 제안에 대한 제이블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기자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인맥을 총출동하여 인터뷰하려고 혈안이 될 터였다.

“제이블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자신이 아는 제이블은 타고난 놈이다. 작곡 실력이야 당연히 뛰어났고, 거기에 작곡가로만 썩기에는 아까울 정도의 스타성까지 타고났다는 거다. 물론, 현승 또한 제이블을 훨씬 뛰어넘을 잠재적인 스타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 또한 독보적이니까.

하지만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대중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기란 어렵다. 그에 비해 제이블은 방송의 흐름을 잘 읽고 대중을 잘 다루며 확실한 브랜딩에 성공했다. 그로서 지금은 이미 방송인으로서 큰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분명 이번에도 현승이 무심코 벌린 ‘은퇴빵 내기’를 제 이미지와 영향력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잘 활용할 놈이다.

한마디로 위험하며, 위협적인 인물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번 현승의 인터뷰가 우리 측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쓰이기는커녕 현승이 대중들의 몰매를 맞고 끝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게 만드는 게 자신이 할 일이다.

“하아….”

김 실장의 상념이 길어지던 찰나, 현승이 무심한 투로 되물었다.

“뭐, 제이블이 가만히 안 있으면, 저 하나 은퇴시키자고 음원 성적을 조작하기라도 하겠어요?”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가 언론을 이용해서 네가 불리한 상황이 되게끔 유도할 수도….”

“어차피 엎질러진 물입니다. 제이블이 닦든지 제가 닦게 되든지 하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현승이 말대로 어차피 키워진 판이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여기서부터는 정말 회사의 재량에 달린 것이다.

“왜 네가 닦아? 내가 닦을 테니까 넌 그냥 성적 오르길 물 떠 놓고 기도나 해.”

“오, 좀 멋진데-?”

이미 기름통은 부어졌고 활활 타오르고 있다. 다 타 버리고 잿가루가 되어 버리는 게 현승만 아니면 될 뿐이다.

그래, 결사코 그건 안 될 일이지.

* * *

한편 같은 시각, 유명 작곡가 ‘제이블’ 역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눈 것 같은데요….”

진행자가 큐 카드를 뒤로 한 장 넘기며 꺼낸 말에 제이블 역시 온화한 미소로 화답했다. 본래 이런 인터뷰라면 질색이다. 하고자 했던 말은 앨범에 전부 담아내지 않았던가?

카메라 앞에서 분을 바른 채, 조명을 쬐어 가며, 이러쿵저러쿵 구구절절 떠들고 억지로 웃는 건 취향이 아니었다. 다만 표정 관리 하나 하지 못할 만큼 어수룩한 시기는 진즉에 지나쳤다.

“예, 저도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이런 대외적인 활동은 소위 말하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데 필요한 노력 중 하나다. 역설적인 이야기라지만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또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수반되고 뒤따르기 마련인 것이다.

“마지막 질문은 조금 민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현재 제이블 씨와 같은 날 앨범을 발매한 신인 작곡가 HS의 인터뷰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보이는데요….”

말끝을 흐린 진행자가 제이블의 눈치를 한번 살폈다. 세간의 화두는 HS의 인터뷰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캐삭빵이니, 은퇴빵이니 직설적이며 도발적인 단어들로 도배된 인터뷰 내용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제이블 역시 해당 인터뷰를 몇 번이고 연거푸 곱씹듯 읽었을 게 더없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순 제이블의 눈매가 좁아졌다. 미묘한 기류의 변화를 눈치챈 진행자가 눈을 번뜩이며 다시 한번 표독스럽게 물었다.

“제이블 씨의 의견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제이블이 그 속내를 가늠할 수 없는 미소를 한번 지어 보였다. 맞다, 분명 민감한 질문이다. 비록 ‘HS’에게 신경을 기울이거나, 곡을 찾아 들어 보지는 않았으나 거슬렸다.

자신의 유명세에 빨대를 꽂지 못해 안달이 난 모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한여름 밤에 잠이 들락 말락 한 와중 귓가에 대고 앵앵거리며 거슬리게 구는 그런 모기.

만약 면이 있는 후배였더라면 진솔하게 조언했을 거다. 타인의 유명세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이전에 ‘창작자’로서 응당 해야 할 법한 고민부터 하라고.

그쪽이 훨씬 이로울 거라고.

“흠, 글쎄요.”

짐짓 고민하는 척 말했다지만, 이미 대비해 둔 질문이었다.

“일단 비슷한 시기에 음원을 발매했으나 경쟁 관계에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일순 진행자가 마치 좋은 먹잇감을 포착한 하이에나처럼 눈을 번쩍였다.

“경쟁 구도가 이루어지기에 HS 씨의 커리어나 실력이 부족하단 말씀이신 걸까요?”

연예계가 콘크리트 정글이라면 제이블은 오랜 시간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군림하고 있는 맹수였다. 그는 살아남는 법을, 그러니까 자신이 어떤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지. 자신을 어떤 형태로 브랜딩해야 하는지 완벽히 꿰뚫고 있었다.

“꼭 그렇다기보다는-.”

자극적인 해석의 여지를 주지 않고 강경한 투로 답했다.

“작곡 역시 비즈니스겠죠. 가장 중요한 척도는 숫자일 겁니다. 음원 수익이라든지, 순위라든지, 그런 숫자에 따라 급이 매겨지곤 하지만 근본적인 정체성은 ‘예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호한 말이네요.”

“저는 누구와도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이란 스포츠가 아니니까요. 저 역시 ‘경쟁’을 하지만, 제가 경쟁하는 건 과거의 저일 뿐입니다. 제가 하는 싸움은 간단합니다.”

제이블이 특유의 느긋함이 묻어나는 투로 답했다.

“과거의 저보다 좋은 곡을 창작하느냐, 혹은 그렇지 못하느냐. 그게 전부일 뿐입니다.”

이번에는 진행자가 눈매를 좁혔다. 이건 원하던 대답이 아니다. 조금 더 자극적인 구도를 원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어떻게 긁어야, 이 노련한 천재로부터 치기 어린 말을 유도해 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다만.”

그리고, 제이블은 프로였다.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원하는 답을 적재적소에 꺼낼 줄 알았다. 화제에 올랐을 때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시선을 주목시킬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다.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성격도 못 되고요.”

제이블이 점잖게 미소를 지어 가며 꺼낸 말에 진행자가 한차례 화색을 해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오아시스의 존재를 깨우친 사막 횡단자나 지어 보일 법한, 여러 애환과 감정이 깃든 얼굴이었다.

“그럼…?”

기대감 어린 질문 이후로 침묵이 드리웠다.

“굳이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싶은 거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고 어울려 줄 수 있습니다. 다만 패자가 감수해야 할 항목이 은퇴라는 점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입니다. 저야 평생 쓴다고 하더라도 절대 다 쓰지 못할 만큼의 부를 축적해 둔 상황이니 상관없다지만.”

그가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메인 카메라를 바라봤다. 붉은색 점이 점멸하고 있었다. 촬영 중이라는 신호였다. 이 모든 광경이, 날것 그대로 여기저기 송출되리라는 암시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쪽은 아닐 테니까요. 순간의 호승심 때문에 생업을 잃어서는 안 되겠죠. 더군다나 그간 본인의 곡을 소비해 준 팬들의 기대와 애정에 반하는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지더군요.”

으레 너그러움이란 승자의 여유다. 이 업계에서의 제이블이라는 인물은, 특히 ‘예술’과 ‘창작’이라는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승자로 군림해 왔다.

대중이 바라는 건 겸손한 천재가 아니다. 대증은 언제나 자격을 갖춘 자가 선보이는 자만과 오만, 그리고 증명을 간절히 바란다. 이런 형태의 대리만족을 원한다.

이건, 그냥 비즈니스다.

상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판이 커졌다. 주도권을 도로 빼앗아 오면 그만이다. 까마득한 후배가 선을 넘어 도발을 걸어옴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대응하는, 그런 와중에 일련의 가르침까지 주는 선배를 연기할 기회다.

어차피 결과는 뻔하다. 언제나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자신은 최고라는 평가를 지켜 내게 될 거다. 철부지 후배의 치기 어린 도발에도 놀아나지 않는 것 역시 확고한 믿음 덕분이었다. 흐름을 빼앗는 건 제 전문 분야다.

“그럼 은퇴가 아닌 다른 걸 배팅하고 싶단 말씀이신가요?”

제이블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지는 쪽이 ‘기부’를 하는 건 어떨까요?”

그가 재차 부연했다.

“만약 제가 향후 한 달 안에 단 하루라도 HS 씨에게 음원차트 1위 자리를 빼앗긴다면, 그쪽이 지정하는 단체에 곧장 ‘5억 원’을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쪽이 훨씬 생산적이고 이타적인 내기가 아닐까 싶군요.”

그 말에 진행자가 감탄하고는 되물었다.

“그럼 만약 HS 씨가 진다면요? 아무래도 업력과 경력에서 큰 차이가 있는 만큼 같은 금액을 기부하는 건 어려울 수도 있으리라 판단되는데요.”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얼마든 그쪽이 여유 되는 금액이면 충분하지 싶습니다.”

제이블이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래도록 군림한 맹수다운, 여유와 느긋함 따위가 잔뜩 녹아들어 있는 미소였다.

“와….”

앵커도, 작가도, 심지어 카메라 감독도 웃고 있었다. 역사적인 현장이다.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던 모닥불 위에, 제이블이 기름을 잔뜩 쏟아 준 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최초로 담아낸 건. 또,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된 건 놀랍게도 자신들이다. 벌써부터 기록적인 시청률을 뽑아 내고 성과금을 받는 자신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벌써부터 결과가 기대되네요….”

판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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