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7화 (47/118)

47화

제이블과 현승의 앨범이 동시 발매된 지는 이제 한 달, 그리고 ‘은퇴빵’ 논란으로 이어진 ‘5억 기부’ 내기가 시작된 지는 약 3주가 흘러가고 있었다.

“와, 정말 대박이지 않습니까?”

“진짜 이 정도면 기적이야.”

“곡이 그만큼 좋으니까 그렇지.”

홍보실 직원들은 물개박수를 쳐 가며 환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승의 앨범 수록곡들이 대부분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모두가 악착같이 힘을 합쳐 암벽 등반하듯 차근차근 한 발자국씩 내딛어 가며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근데 아직 1위는….”

“야, 쉿….”

“아니, 곧 기한이….”

그때 한 직원이 눈치 없이 입을 열었다가 옆구리 어택을 당하며 말끝을 흐렸다. 직원은 억울했다. 데이터를 확인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홍보실의 업무가 아니던가?

그 말대로 아직 현승의 수록곡 중 어떠한 곡도 1위를 취해 내지 못했다. 물론 타이틀 곡이 실시간 차트에서 2위와 3위를 엎치락뒤치락하며 왕좌의 뒤를 바짝 쫓아가고는 있다지만 지금은 기한이 정해진 내기를 벌이고 있는 채였다.

기한이 지나서 1위를 쟁취한다고 한들 전혀 얻어 낼 게 없는 게임이다. 현승이 진다면 누군가는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먼저 도발을 걸어 온 건 현승이었기에 1위라는 영광도 없이, 정산금도 모두 털어 기부금으로 내뱉어야 하는 꼴이었다.

“아무래도 제이블의 팬덤이 너무 견고한 탓인지 2위에서 1위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네요.”

곽 팀장이 김 실장에게 차분히 정돈된 투로 얘기했다.

“그렇겠지. 제이블이 괜히 제이블이겠어? 뭐,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까 어쩔 수 없지….”

김 실장의 얼굴 위로 사뭇 어둠이 서렸다. 말끝도 다소 자신감이 상실된 채였다. 1위를 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결계라도 쳐져 있는 듯 넘어가지 못했다.

약속한 기한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다시금 현승을 조롱하는 기사들이 드문드문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뜨거운 히터 앞에 서 있는 것처럼 피부 겹이 모두 바싹 말라 가는 느낌이었다.

그때.

“제이블이….”

잔뜩 들뜨고 불안한 공기가 서로 충돌하는 속에서 조용히 자라난 야생초처럼 의연해 보이던 현승이 입을 열었다.

“제가 하루라도 1위를 뺏긴다면 깔끔하게 졌다고 인정하고 5억 기부하기로 한 거 아니에요?”

“그렇기는 하지?”

“3위 머물다가 지금 2위를 이틀 연속 유지하고 있으니 하루 정도야 1위 하지 않겠어요?”

“그건 맞는데 지금 일주일….”

“일주일, 설마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제 곡이 1위 자리를 하루도 못 뺏어 보겠습니까?”

현승이 물음을 던지며 주위를 살피자 모두 뒷머리를 긁적이거나, 급하게 커피를 들이켜며 눈을 피했다.

“그럼, 그래야지.”

그때 김 실장이 단단한 울림통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실 여기 있는 누구라도 현승이 1위를 차지하길 바랄 것이다. 이 자리에 없더라도 현승의 앨범에 조금이라도 기여를 한 이라면 당연히 현승이 ‘기부 내기’에서 이기길 바란다. 물론, 본인이 제일 원하겠지만.

그중 홍보실 직원들은 사명감 그 이상의 뜨거운 마음으로 임했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답하지 못했을 뿐, 바램과 결과가 항상 일치할 수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1위 해야죠. 다들 얼마나 고생했는데.”

곽 팀장도 동의한다는 의견을 보탰다. 아이돌 그룹 컴백보다 더 험난하고 긴 여정의 프로젝트였다. 이제 막 그 프로젝트의 피니쉬 지점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여기서 막바지 스퍼트를 내서 1등을 제치고 승리를 거머쥔다면 더욱 극적인 서사가 탄생한다. 그렇게 탄생한 서사는 홍보실에서 사골처럼 쓰일 자료가 되어 주는 셈이다.

모쪼록.

이제는 대중들에게 미끼를 던져 놓은 채 이래도 안 들어? 이렇게 좋은데도 안 들을 거야? ―하며 기다릴 뿐이다. 1위를 할 것이리라 간절히 믿고 기다려야 하는 시기가 왔다. 그렇지만….

“현승 씨.”

대비책은 세워 놔야겠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진다면 얼마 기부할 생각이세요? 언론사에서도 압박이 너무 들어오고 있어서요.”

현승이 잠시 심오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결정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뭐, 그쪽에서 5억 불렀다니까 저도 당연히 5억 기부해야죠.”

별안간 김 실장이 놀란 얼굴을 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너, 전세 계약하고 그런다고 그 정도 여유 자금은 없잖아? 확실하게 대답해 줘야 해. 이거 보도될 내용이야.”

이윽고.

현승이 제 볼을 긁적이며 익살스럽게 되물었다.

“실장님이래도 제 정산 명세서는 따로 확인 못 하시나 봐요?”

그 말에 김 실장이 답했다.

“그야, 아무래도 개인정보보호 사항이니까….”

그리고는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뭐야? 그럼 설마―?”

현승이 어깨를 들썩였다.

“있구나? 있지?”

직접적인 물음에 현승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 침묵 탓에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 버렸다.

“이 자식, 부럽다! 부러워! 있네, 있어!”

* * *

인천 국제 공항 입국 게이트 앞은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언제 나오시지….”

그 많은 인파 중에서도 유독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는 신일일보 소속 기자, ‘김혜연’이었다.

탁탁―.

그녀는 불안할 때면 손톱을 물어뜯고는 했다. 자신이 애타게 기다리는 이가 탑승했을 비행기는 이미 2시에 도착했다고 전광판에 떠오른 채였는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바라보자 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수속 밟고 나오다 보면 이 정도 시간은 충분히 걸릴 일이다. 그래, 심지어 국내선도 아닌 국제선이지 않은가?

‘너무 오바하지 말자.’

김혜연은 마음을 다잡기로 했지만, 재차 자기 손목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였다. 기다리는 인물이 워낙 공식 석상을 제외하고는 얼굴을 잘 비추지도 않을뿐더러….

한국 내한 예정이 잡혔다는 소식에 혹시나 하고 요청한 인터뷰를 흔쾌히 허락했다는 얘기를 듣고 의아함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말 그 사람이 이리도 쉽게?

혹시.

마음이 바뀌었나? 일정이 바뀌었나?

자신이 일정을 착각했을 리는 없다. 약속된 일자와 시간은 분명 수십 번은 더 넘게 확인했다. 노트에 적고, 포스트잇에 적고, 캘린더에 적어 가며 재차 확인하고 머릿속에 인지시켰다. 혹시나 제 회사 측에서 따로 연락이 온 건 없는지 휴대폰 잠금을 몇 번이나 풀어 확인하던 찰나였다.

“어?”

자신이 몇 번이나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온 인물이,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인물이, 안 오면 어쩌나 전전긍긍하며 걱정하던 인물이 드디어 입국장에서 걸어 나왔다. 김혜연은 이민을 나갔던 가족이라도 본 양 반갑게 웃으며 그를 불렀다.

“타이치 상!”

밀려오는 안도감으로 자연스레 나온 미소였다.

“반갑습니다. 제가 좀 늦었네요.”

차분한 걸음으로 빠져나온 타이치는 김혜연에게 정중히 인사를 전했다.

“괜찮습니다. 그럼 바로 저희 측에서 대관해 놓은 미팅룸으로 가실까요?”

타이치는 그녀의 물음에 제 손목시계를 슬쩍 확인하고는 주위를 살폈다.

“죄송하지만 일정이 다소 빠듯한 관계로 저 앞의 카페에서 진행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 카페요? 네, 뭐든 괜찮습니다. 그럼 가시죠!”

김혜연은 바로 근처에 보이는 카페로 앞장섰다. 인터뷰 장소 섭외나 대관하는 데 꽤 애를 먹고 비용이 들었다지만, 지금은 그런 걸 아쉬워할 때가 아니다.

자신이 살아생전 직접 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은 인물이 앞에 있었음에도 자신에게 허락된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발걸음은 점차 빨라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 한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에는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 만큼의 여유 시간이 없었다.

“그럼 바로 인터뷰 시작해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김혜연은 문득 어제 퇴근 전, 선배 기자가 자신을 불러 얘기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말 네 기자 인생이 뒤바뀔 기회를 잡아낸 거야. 바보처럼 흘려보내지 마.”

그래, 자신을 위해 해 준 진심 어린 조언이다.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입술을 멈추기 위해 잘근잘근 깨물었다. ‘떨지 마’의 마지막 말인 ‘마’의 모음인 ‘ㅏ’를 발음하기 위해 벌어진 입술이 채 닫히기도 전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저 떨고 있어요, 살려 주세요, 제발.

“흠흠.”

하지만 언제까지 바보마냥 떨면서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이내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질문지를 꺼내 들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유통사 중 음원 시장에 대해 누구보다 예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하는 곳이 맨 레코즈사라 생각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유능한 직원들 덕분에 그런 평판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맨 레코즈는 독보적인 음악성을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혹시 타이치 사카모토 씨만의 좋은 곡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으실까요?”

별안간 그녀가 던진 질문에 타이치의 입매가 움찔거렸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뭐지?’

김혜연은 타이치의 안색을 살폈다. 도무지 그의 표정은 읽어 낼 수 없었다. 자신이 사업기밀이라도 물어본 것일까? 다른 질문으로 유연하게 넘어가야 하는 건가? 초조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수록 그녀의 손은 자연스레 입가로 향했다.

“혹시 답하기 어려우시다면 바로 다음 질문으로….”

“아니요. 답하겠습니다.”

그제야 김혜연은 다시금 안도하며 손을 내려놓았다.

“사실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요즘 음원 시장에 대한 불만이 많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이나, 확실히 퇴보하고 있습니다.”

“낙오되고 있다고요…?”

“네, 하루에도 수많은 곡이 쏟아져 나오는 만큼 비슷한 곡들도 넘쳐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요즘 작곡가들은 모두 성공할 수 있는 머니 코드를 손에 쥔 채 내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아요.”

타이치는 정말 수심에 빠진 표정이다. 이를테면 ‘곡을 썼다’라든지 ‘만들었다’라는 표현보다, ‘생산했다’든지 ‘찍어 냈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곡이 판을 친다.

이토록 뻔한 굴레 속에서 탄생한 곡들이 과연 몇십 년이 지난 뒤에도 대중에게 소비될 수 있을까? 자신에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절대 그럴 수 없으리라고 확실히 답할 거다.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누군가는 새로운 도전을 해 줘야 합니다. 단순히 기계에 의존하여 코드를 찍어 내고, 성공이 확정된 중독성 강한 샘플링으로 범벅된 멜로디에 중점을 두기보다, 아날로그적이고 불편하다 하더라도 직접 세션맨의 완벽한 연주를 고집하고 우직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 줄, 퇴보하고 있는 이 음악 시장에 신세대의 문을 열어 줄 선구자가 필요해요.“

“아, 그렇군요. 그럼 혹시 타이치 씨가 생각했을 때, 현재 활동하는 작곡가 중에 선구자 역할을 해 줄 작곡가는 누가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요즘은 그런 작곡가를 찾기 어렵습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근데 우연한 기회로 최근에 딱 한 명을 찾았습니다. 마침 오늘도 그 작곡가를 만나기 위해 한국에 방한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타이치가 미소를 머금은 채 넌지시 덧붙였다.

“이 인터뷰를 수락한 것 또한 그 작곡가에게 어떤 형태로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김혜연은 타이치가 ‘음악’이라는 주제를 놓고 열정적으로 얘기하는 걸 보니 긴장감이 풀리고, 기대감이 차올랐다.

제 예상과 달리 훨씬 더 값진 내용들로 기사를 채워 나갈 상상을 하니 눈앞에 준비해 온 질문지는 보이지 않았다.

흡사 그녀는 핼러윈날에 달콤한 사탕을 받기 위해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는 아이마냥 신난 어조로 물었다.

“그렇다면 그분은 한국 작곡가인 거죠?”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분이 제이블 씨일까요?”

타이치가 잠시 갸웃거리며 “제이블?”하고는 단호히 답했다.

“그가 아닙니다.”

이윽고.

“HS 씨입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타자를 두들기던 김혜연의 손이 뚝 멈췄다.

“예? 방금 누구라고….”

타이치가 웃으며 답했다.

“HS 말입니다. 저는 그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겁니다.”

김혜연은 요즘 한참 불꽃 튀는 제이블과 HS의 승부가 떠올랐다. 그리고 직감했다. 자신이 이 인터뷰를 세상에 공개하는 날, 판도가 바뀌리란 직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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