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49화 (49/118)

49화

결국 현승은 타이치와 함께 인근의 한식 전문점으로 향했다.

“제가 한식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겁니다. 음식들이 참 정갈하고 아름답게 담겨 있으니 한 폭의 그림 같잖아요.”

타이치는 잔뜩 설렌 표정을 지으며 제 앞에 놓인 음식들을 눈으로 담았다.

“입에도 잘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현승은 간결하게 답했다. 그 이후로는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와 호로록하며 차를 마시는 소리만이 장내를 채웠다.

‘너무 잘 먹는데…?’

타이치가 식사하러 가자고 했을 때만 해도, 협업에 대해 재고를 권할 줄 알았는데 음식에 흠뻑 빠져든 그는 중간중간 “음-.”하는 감탄사까지 내 가며 한참 식사에만 몰두했다.

탁-.

결국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까지 다 해치운 후에야 식기를 내려놨다. 그제야 고개를 올린 타이치는 정말 만족스럽다는 얼굴이었다.

“입맛에 잘 맞으셨나 봅니다.”

“네,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습니다.”

“그것참 다행입니다.”

현승은 냅킨으로 입술을 꾹꾹 눌러 닦은 뒤 덧붙였다.

“그럼 이제 뭐 하나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예, 뭐든지.”

“제게 왜 그런 파격적인 협업 제안을 주신 건가요?”

제 잘난 맛에 사는 현승이라지만 아까 훑어본 계약서는 잘 모르는 이가 보더라도 꽤 노골적인 호의가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서지니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니 그로 인해 자연스레 자신의 음악을 듣고 마음에 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뭐랄까?

그 정도로 이 상황을 설명하기엔 개연성이 부족했다. 뭔가 서사가 빠진 가족 영화라든가, 범인은 잡았지만 왜 범인인지 모르는 채 끝난 추리소설 같달까? 어떤 모종의 이유로 맨 레코즈 정도 되는 기업의 대표가 자신에게 꽂힌 건지 내막이 궁금해졌다.

“순전히 제 곡을 듣고 흥미를 느껴서 제안을 해 왔다기엔 계약서가 꽤 노골적으로 호의를 담고 있었거든요.”

“그랬는데도 어떻게 바로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네요? 원하신다면 더 큰 호의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원한 건 아닙니다. 저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친절은 의심해 보라고 배웠거든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물렸다. 갑작스럽게 드리운 침묵 속에서, 타이치는 ‘HS’라는 작곡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을 떠올렸다.

“방금 한 청년이 내게 해답을 주고 갔거든.”

오랜 친구를 애먹이고 있다던 ‘콘트라베이스’를 손봐 주러 갔던 날이었다. 그러나 친구로부터 이미 한 청년이 실음으로 조율을 해줬다는 말을 듣자마자, 몇 가지 의문이 연쇄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이어졌다.

HS, 청년이 친구에게 남겼다던 이름을 몇 번이고 곱씹어 봤다. 분명히 음악 전공자겠지. 남들은 엄두도 안 낼 ‘실음’ 조율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실력자라면 자신과 이미 면이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바에서 들려오던 서지니의 곡을 듣는 순간 끝났다.

미치광이

일순 타이치는 미치광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가수의 목소리에 맞게끔 불편한 집착을 거듭하여 깎고, 조각하여 만든 환상적인 선율만 놓고 보더라도 분명 그는 미치광이였다.

그리고.

타이치 역시 한때는 미치광이였다. 비교적 젊었을 적의 일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주변의 가십거리에도, 통장 잔고에도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악기와 작곡만이 자신의 전부인 삶이었다. 자면서도 제 손은 활을 잡고 건반 위를 휘저었고, 눈을 뜨면 떠오르는 악상을 그려 내는 것이 전부였다.

본래 소위 말하는 ‘미치광이’들은 어떠한 다른 사소한 영역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법이었다.

또한.

미치광이들은 언젠가 필연적으로 결실을 돌려받는다. 작업실에서 충치처럼 썩은 시간 위에 이자까지 넉넉히 얹은 채로.

타이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가 이룬 결실은 한둘이 아니었다. 수천억 원의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받는 회사의 주인이 됐다. 빌딩 한 채를 전부 회사의 사옥으로 쓰고 있었으며, 롤스로이스 세단, 고가의 시계, 억대의 장비를 갖게 됐다.

그는 자신과 같은 미치광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미치광이들은 응당 이런 보상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만약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그래야 했다. 세상을 바꾸는데 이바지하는 건 이런 미치광이들이니까.

“우연히 당신이 만든 곡을 들었을 때 생각했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음악에 단단히 미쳐 있는 미치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치광이라, 뾰족한 말이었으나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죠.”

그가 팔짱을 낀 채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현시대의 젊은 작곡가 중 누군가는 분명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겁니다. 비록 그게 누구라고 콕 찍어 특정할 순 없지만, 누군가는 오리콘, 그래미, 빌보드 같은 분야에서 거대한 영광을 누리게 되겠죠.”

“예, 뭐. 그렇겠죠.”

“미치광이 같은 당신 곡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방금 언급한 현시대의 신진 작곡가 중 하나가 성공한다면 그건 꼭 당신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어선 안 됩니다. 무조건 당신이어야 하죠.”

현승은 그런 그의 말을 공감은 하지만 이해하진 못했다. 분명 자신은 다시 한번 역사를 써 내려갈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나쁜 쪽으로 말고, 좋은 쪽으로,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타이치는 대답 대신 옅게 미소 지었다. 정말 왜일까? 그냥 자신도 모르게 들었던 생각이다. 특히 이번 HS의 타이틀곡을 들었을 때는 모든 사고가 충격으로 정지되었다.

줄곧 기다려 왔던 곡이다. 매일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곡을 들으며 애타게 찾아 헤맸던 곡이다. 계속 그렇게 넓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갈구하듯 찾아다녔다.

‘Dear my Beethoven’처럼 세상의 판도를 뒤바꿀 만한 황홀한 곡을! 더 나아가 그런 곡만을 만들어 나갈 집요하고, 집착적이며, 우직한 바보 같은 작곡가를! 암초를 만나 좌절 직전인 음악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해 줄 선장을 말이다.

“제가 80년대 마이클 잭슨의 탄생을 직접 눈으로 봤던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저도 그 시대에 태어나서 그 장면을 직접 눈으로 담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 당신이 만든 타이틀곡을 들었을 때 그때와 같은 흥분감을 느꼈어요.”

그리고 자신은 그게 바로 제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작곡가라는 확신이 들었을 뿐이다. 탐이 났다. 그렇다고 해서 제 손에 꽉 움켜쥐고 강요하며 휘두르고 싶진 않았다.

본디 천재란 자유로워야 한다. 무언가에 구속되어 기계처럼 일을 행한다기보단 자신이 끌리고 재밌는 일을 선택할 수 있어야 최고의 결과물이 나오는 법이니까.

“기다림이 필요하다면 기다릴 겁니다.”

“얼마든지요?”

“예,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주제넘게 조언 한마디 올려도 되겠습니까?”

현승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본래대로라면 조언으로 위장한 회유나 종용 또는 협박의 말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었다. 인생이 바뀔 기회다, 잡지 못하면 후회할 거다, 혹은 더욱 살벌하기 그지없는 단어로 채워진 말이.

“어차피 언젠가 당신이 거두게 될 성공 위에 제 숟가락을 슬쩍 얹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장담컨대, 비단 우리 맨 레코즈와의 협업이 아니더라도 좋은 기회는 언제고 찾아올 겁니다.”

다만, 타이치는 그런 말 대신 전혀 사업가답게 느껴지지 않는 말만 늘어놓을 뿐이었다.

“이 비즈니스는 당신을 위한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오직 저를 위한 비즈니스일 뿐이죠. 언젠가 이 업계에서 누군가가 비즈니스를 제안하며 당신을 위한 말이라고 떠들어 대거든….”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부디 멀리하셨으면 합니다. 그간의 경험에 따르면 으레 그런 치들의 욕심 가득한 위선이 천재의 발목을 붙드는 법이더군요.”

확실히 사업가답지 못한 말이었다. 자신에게 확신을 느꼈다면, 수익을 고려한다면 이런 말랑말랑한 말을 해서는 안 됐다. 홈쇼핑 호스트처럼 ‘이 기회가 곧 끝납니다!’ 같은 말들로 자신을 불안에 떨게 만들어야 했다.

다만.

역설적으로 지극히 사업가다운 말이기도 했다. 진심이 가득 담긴 몇 마디 조언 탓에 그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게 됐으니까. 물론 정이라든지, 호감이라든지, 감정이라든지 하는 낱말에 따라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순 없다.

“대선배님의 충고, 새겨듣겠습니다.”

하지만.

“종종 뵀으면 하는군요.”

그와 접점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계 내에서는 ‘접점’을 ‘가능성’이라고 부른다. 서로 맞닿는 점이 아주 작게라도 존재하는 한, 협업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다 하더라도 무방할 테니 말이다.

더구나 맨 레코즈에서 제안해 온 조건은 한없이 만족스러웠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던 말은 말 그대로 보류였을 뿐이지 절대 거절의 의미가 아니었다. 좋은 기회다. 다만 신중하게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있을 뿐.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타이치의 첫인상은 훌륭했다. 두 번의 생을 통틀어 첫인상이란 말에 속은 게 어디 한두 번이겠냐만, 이 정도라면 어차피 주야장천 속았으니 한 번쯤 더 속더라도 상관없겠노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적이 흘렀다.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차를 홀짝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처럼 만족스러운 식사였군.

* * *

“현승아!”

타이치와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현승은 곧장 최 이사의 개인 사무실로 호출되었다.

“뭐, 이렇게 문자를 많이 하셨어요. 저 아직 식후 커피도 한 잔 못 했는데.”

“우선 들어와서 인사드리고 앉아 봐. 커피는 나가는 길에 사 줄 테니깐.”

현승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미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던 최 이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 또 뵙네요. 이사님께서는 식사하셨습니까?”

“그래, 자네도 식사는 잘하고 왔나?”

“네, 잘 먹고 왔습니다. 물론 타이치 상도요.”

“궁금한 게 많으니 일단 와서 앉게.”

그의 말에 곧장 소파로 향해 한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식사하면서 협업에 관한 대화를 더 나눴을 것 같은데?”

최 이사는 곧장 참지 못한 물음을 터트렸다.

“아뇨, 사담만 잔뜩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사담만?”

“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으니까요.”

최 이사와 김 실장은 동시에 같은 의문을 떠올렸다. 그 말인즉,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뜻인 건가? 두 사람의 시선이 한차례 맞닿기를 잠시, 최 이사가 다시금 목을 가다듬고는 마냥 조심스레 되물었다.

“언제쯤 결정을 내릴 생각인가?”

작곡가로서의 인생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거대한 제안이 분명했다. 회사도. 그러니까 LS 엔터테인먼트는 물론, 현승을 관리·담당하고 있는 최 이사와 김 실장 역시 낙수 효과와 반사이익을 꽤 톡톡히 누릴 수 있는 제안이기도 한 셈이었다.

“글쎄요.”

현승이 잠시 골몰하다가 답했다.

“일단 이번 앨범 이슈가 지나고 나면 천천히 고민해 보려고요.”

현승이 언급한 ‘이번 앨범 이슈’는 제이블과의 내기를 뜻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지금 당장 계약서에 도장부터 찍으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최 이사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그 말을 도로 삼켜 냈다.

이십 대란 으레 변덕스러운 법이었다. 저렇게 굴어 대다가 언제 어떻게 도장을 찍어 줄지 모르는 거다. 강압적으로 나서 봐야 괜한 반발심만 일으킬지 모른다. 더군다나 민현승은 평범한 이십 대도 아니었다.

‘천재적인 재능 덕에 큰 성공을 거둔 이십 대지….’

더욱 신중하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 당장 눈엣가시 같은 일부터 치워야지.”

다만, 아쉬움은 숨길 수 없었다. 말을 마친 최 이사가 혀를 한번 차 보이고는 상념에 잠기자, 현승이 마치 그 속내를 읽어 내기라도 한 양 태연하게 짤막한 몇 마디 말을 덧붙이기에 이르렀다.

“계약사항이나 작업 내용을 좀 더 검토해 봐야겠지만 정말 조금이라도 재미있어 보인다면 어지간해서는 해 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 항상 현승은 재미를 추구했다. 재밌을 것 같아서요. 재밌잖아요? 그놈의 재미, 재미, 재미….

본인의 흥미가 동해서 하고 싶어진 일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조건이던 성공이 확정된 일이던 절대 하지 않는다.

현승은 그런 놈이다.

하지만 그런 점이 싫지 않다. 재미를 기준 삼아 할 일을 선택할 뿐이지, 재미로 일을 처리하진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를 기준 삼아 선택했던 일들의 결과는 늘 환상적이었으니까.

다만.

유일한 문제는 그 재미의 기준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큰돈이 약속된 일이, 누군가에게는 안전하게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일이 재미다. 저 녀석이 말하는 재미는 대체 뭘까?

‘머릿속을 열어 볼 수도 없고.’

그때 김 실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현승아,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말에 현승이 눈매를 살짝 좁혔다.

“전략적으로?”

한차례 “응.”하고 답한 김 실장이 제 속내를 털어놓았다.

“맨 레코즈와 협업 확정됐다는 기사 몇 개만 보도되면 승기를 가져올 수 있지 않겠어? 전례가 없는 일이기도 하니까 우리 LS가 보유하고 있는 마케팅 채널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테고….”

현승이 제 손톱을 들여다보며 답했다.

“싫어요.”

그리고는 툴툴대듯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길 싸움인데 굳이 왜요?”

“그래도 기왕이면….”

“치졸하고 추잡스러운 행동 같아요.”

그 말에 최 이사가 씩 웃음 지었다.

“그래, 존중함세.”

김 실장이 “이사님!”하고 반발했다. 제게 힘을 실어 주리라 믿은 인물이었다. 한데, 설득도 시도하지 않고 현승의 손을 들어 줬으니 배신감 아닌 배신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이랄 수 있었다.

“예, 결과로 보답하죠.”

“그래, 내려가 보게.”

“좋은 시간들 보내십쇼.”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를 해 보인 현승이 곧바로 이사실을 빠져나갔다. 이내 김 실장이 제 목을 옥죄고 있던 넥타이를 슬쩍 느슨하게 풀며 물었다.

“최 이사님! 같이 설득해 주셔도 모자랄 판에 대체 왜….”

그 말에 최 이사가 고개를 내저었다.

“김 실장, 아직 멀었구먼? 민현승이를 바로 옆에서 그렇게 오래 보고도 아직도 몰라?”

“예…?”

“저 천둥벌거숭이가 우리 말 몇 마디에 ‘예, 알겠습니다.’ 할 것 같냐는 말이지.”

그리고는 현승이 열고 나선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친구는 굳이 비유하자면 제천대성 같은 친구야.”

“손오공이요?”

“그래, 맞아. 천둥벌거숭이에, 통제할 수 없는.”

커피 향을 맡은 최 이사가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부처님이 아닌 거고.”

김 실장이 침음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차라리 급발진한 자동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게, 현승을 다루는 일보다 훨씬 쉬울지 모른다.

“이사님,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현승이 미워하지는 말아 주세요.”

“이 양반아, 미워하긴 왜 미워해? 기특히 여기고 어여삐 여기면 여겨야겠지.”

정적이 흐르기를 잠시.

“난 저 친구가 부러워. 저 변덕스러움, 까탈스러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감. 모두 젊음의 특권이잖아? 가만 보고 있으면 정말 아쉽다니까. 나는 왜 젊었을 적에 저 친구처럼 못 살았는지….”

말끝을 흐린 최 이사가 너털웃음을 흘려댔다. 사실 이미 정답을 알고 있는 자문자답이었다. 자신은 젊었을 적, 민현승이 겸비하고 있는 재능이 없었다. 반짝반짝 빛이 나고, 모두가 탐내는 아름다운 재능 말이다.

똑, 똑, 똑-.

그때 이사실 문 너머로 일정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서요….”

홍보부 곽 팀장이었다. 대체 얼마나 급한 일이길래 이사실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걸까? 심지어 헐레벌떡 뛰어온 건지 이마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아무래도 일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최 이사가 놀란 얼굴로 반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거 한번 보시죠.”

그가 제 옆구리에 끼고 있던 태블릿 PC부터 들이밀었다. 이내 최 이사가 안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은색 하금테 안경을 쓰고는 화면을 살폈다.

[ 단독 보도! 맨 레코즈 대표 타이치 사카모토, 한국 내한 첫 공식 인터뷰 대공개. ]

그리고는 대문짝만한 메인에 걸린 헤드라인 속 ‘타이치’라는 이름에 곧장 눈매를 좁혔다.

- 타이치는 “요즘 음악시장은 퇴보하고 있다.”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중략)

- 그는 현재 눈여겨보고 있는 신진 작곡가가 있냐는 물음에 ‘HS’라고 밝혔다. 또한 “HS는 퇴보 중인 음악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킬 선구자가 되리라는….”

(중략)

- 심지어 내한 이유에 대해서도 ‘HS’와 비즈니스를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밝혀…. (중략)

한차례 “허.”하고 헛웃음을 흘린 최 이사가 다시금 너털웃음을 흘려댔다.

“이야, 이거….”

잠시 망설이던 그가 부연했다.

“민현승이가 또 민현승했네.”

그 말에 김 실장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정말….”

모든 상황이 정말 최 이사가 쓴 표현 그대로였다.

“현승이가 또 현승했네요….”

승기가 기울기 시작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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