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52화 (52/118)

52화

이른 오전, 타이치는 호텔 측에 클리닝을 맡겨 놓았던 정장을 찾아 입었다. 추가로 중요한 날만 착용하는 넥타이핀까지 꽂고 나서야 거울 앞에 서서 모습을 점검했다.

툭툭.

가볍게 외투를 가다듬고는 매일 아침 먹는 야채 주스를 챙겨 들었다. 주스를 한 모금 크게 들이켠 그는 남은 한 손으로 ‘간단 초보 한국 회화’라는 책을 펼쳤다.

“안, 안녕하세요?”

그리고는 스위트룸 내부를 빙빙 돌며 야채 주스 한 통을 다 마실 때까지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한국인에게는 너무 쉽고 당연하게 쓰이는 말이었지만, 한국어를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타이치로서는 바로 유창하게 소화해 내기엔 무리였다.

띠리리리리링-!

빈 주스 통을 쓰레기통에 버린 뒤 이제 룸을 나서려고 하던 찰나였다. 휴대폰 액정을 확인해 보니 사내 이사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 대표님, 아직 한국이신 거죠?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렇습니다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 예, 문제라면 문제죠. 대표님 책상 위로 결재서류가 쌓이고 있거든요.

“이런, 그거참 문제긴 하네요. 하지만 제 전임자인 킨지로 이사님께서 대신 결재를 진행해 준다면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능글스럽게 답한 타이치는 제 손목시계를 흘끔 확인하고는 룸을 나섰다.

─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십쇼. 어차피 HS 씨와 계약은 다 된 거 아닌가요?

“예, 그렇기는 합니다.”

─ 그럼 차라리 담당자 하나를 파견 보내시고 대표님은 이만 돌아오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엘리베이터라 통화 연결 상태가 좋지 않군요.”

─ 거짓말 마십쇼. 한국은 IT의 강국이라 산골짜기에서도 전화가 잘 터집니다.

타이치는 작게 “안 속는구만.”하고 중얼거린 뒤 낮게 웃어 보였다. 대표가 없을 시 전임자 역할을 해야 하는 킨지로 이사는 이 상황에 미칠 지경이었다. 점차 밀려오는 결재서류와 예민한 조건의 사안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쌓여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분간 일본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

─ 농담하지 마십쇼.

“그동안 맨 레코즈의 전임자로서 잘 좀 수행 부탁드립니다.”

─ 설마 대표님께서 직접 참여하시려고 그러는 겁니까?

“이미 한물간 영감이라 큰 도움이 되어 주진 못하겠지만 재료 손질 정도야 도와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수화기 너머로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킨지로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침묵한 까닭이었다. 자신에게 ‘타이치’라는 인물은 대표이기 전에 같은 길을 걷던 동료다. 장작 30년 이상 함께 음악을 했고, 맨 레코즈를 함께 일궈 왔다.

서로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 받을 만큼 친밀하며, 공과 사 그리고 그의 이면까지도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하물며 타이치가 자신이 자리를 비울 경우, 전임자로서 활동할 만큼 신뢰 관계도 두터웠다.

그런 자신으로서는 타이치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HS’의 곡? 자신이 듣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곡이랄 수 있었다. 탐나는 인재이며, 혹여 맨 레코즈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한다면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있을 만큼.

다만.

맨 레코즈의 대표이자 얼굴이자 간판인 타이치가 타국의 신예 작곡가를 위해 보러 가는 것도 모자라, 작업하는 걸 함께 하겠다는 건 순리에 벗어나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킨지로, 이건 동료로서 부탁하는 거야. 난 HS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복귀하지 않을 거야.”

아주 사적인 자리가 아니고서야 말을 놓지 않던 타이치가 반말을 해오는 걸 보면, 이미 단단히 각오를 다진 모양이었다. 절대 굽힐 생각도 없는 것 같고.

─ 휴, 얼마나 걸릴 거 같은데?

“마음에 드는 완벽한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 원래 맨 레코즈는 기한을 두지 않고 일하지 않나?”

킨지로는 다시 한번 입매를 꾹 다물었다. 사카모토 타이치라는 인물은 ‘음악’ 앞에서는 일절 양보도 타협도 없는 사람이다. 모두가 그를 천재라 불렀지만 그건 잘 모를 때나 부를 수 있는 단어였다. 천부적인 재능은 기본 베이스일 뿐.

그 위로 완벽한 음악을 추구하는 집착과 집요함 그리고 광기 어린 강박증이 지금의 타이치가 ‘천재적인 음악의 거장’이라 불릴 수 있게 한 거다. 그래, 그는 모두가 되고 싶어 하지만 되기 어렵다는 노력형 천재였다.

근데 그런 사람이 완벽한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복귀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이는 달리 말하자면 몇 달이 걸리던, 몇십 년이 걸리던 제 귀가 들었을 때 단 하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음악이 나와야만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거라는 얘기다.

대체 얼마나 어마어마한 작품을 만들려고 저러는 건지.

하지만 마냥 알겠다고 물러나기엔, 타이치는 한 기업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다. 마냥 음악에 미쳐 피아노 건반이나 뚱땅거리며 두들기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맨 레코즈에게는 그가 필요하니까.

─ 정말 사춘기야? 다시 한번 다른 방안을 재고….

“어, 이러다가 지각하겠다. 이만 출근해야 하니까 끊자고.”

툭-.

킨지로의 애절함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과감하게 전화를 끝냈다. 그에게 모든 업무를 떠넘긴 것은 몹시 미안한 일이지만, 이미 결정한 뜻을 굽힐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리고 킨지로라면 ‘HS’가 만들어 낸 작품을 듣는 순간, 자신이 왜 옆에서 지켜보고자 했는지 이해해줄 것이다. 어쩌면, 왜 자신은 부르지 않았냐고 땡깡을 부릴지도 모르지.

뚜벅, 뚜벅-.

타이치는 로비 밖으로 미리 준비시켜 놓은 리무진을 향해 걸음을 옮기던 중, 무언가 떠올랐는지 “아.”하고는 급히 방향을 틀었다.

“안녕하세요?”

데스크에 닿은 그가 꺼낸 첫마디였다. 물론 뒷말은 영어로 덧붙였지만….

“2907호 스위트룸을 이용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제가 장기 투숙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3주간은 예약받지 말아 주시겠어요?”

이윽고.

타이치는 제 지갑에서 부의 상징이라 불리는 블랙카드를 꺼내 들었다.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 하겠습니다.”

* * *

“안녕하세요?”

“예?”

“오랜만입니다?”

“예?”

타이치와 현승이 만나자마자 나눈 대화였다. 어색한 한국어 발음 때문인지 둘 사이에는 잠시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한국어를 배워 오셨나 봅니다.”

“근데, 아직 두 문장밖에 외우지 못했습니다.”

“편하게 일어로 하셔도 됩니다.”

“더욱 원만하게 소통할 수 있는 관계가 되려면 저 또한 한국어를 어느 정도는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저는 일어, 영어, 한국어 모두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자, 우선 그럼 같이 제 작업실로 가시죠.”

현승은 앞서 LS 엔터의 사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를 안내했다. 넓은 로비, 그 속을 빠르게 거니는 수많은 직원이 사옥 내부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물론, 둘이 함께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타이치와 현승이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마치 그들의 시간은 멈추기라도 한 듯 모두가 시선을 고정한 채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어디선가는 “헉.”하는 외마디마저 들려왔다.

사내 몇몇 여직원들이 팬카페를 가입할 정도로 인지도가 올라간 현승이 나타난 것만으로도 이목을 끌기 충분한데, 맨 레코즈의 대표이사인 타이치가 LS 엔터 사옥 중앙을 유유히 걸으며 들어오고 있으니 누구나 한 번쯤 걸음을 멈출 만한 장면이었다.

“가시죠.”

현승은 불편한 시선을 얼른 벗어나고자 엘리베이터에 잽싸게 몸을 실었다.

띠링-!

그리고는 내리자마자 넓은 보폭을 자랑하다 보니 금세 자신의 작업실 앞에 닿았다.

“이제 다 왔습니다.”

타이치는 한 발자국 뒤에 서서 작업실 외관을 살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꺼운 방음문 옆으로는 작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 songwriter. HS 」

속으로 그 팻말 속 글씨를 따라 읽던 타이치는 고개를 내 저었다. 음, 현승은 단순히 작곡가라고 칭하기엔 더욱 심오하고, 천부적인 인물이 아닌가? 예를 들어 ‘musician. HS’라던가 ‘artist. HS’라고 변경되면 좋을 것 같은데….

“좀 누추하긴 하지만, 들어오시죠.”

타이치는 그런 팔불출 같은 생각을 하며 현승을 따라 열린 작업실 문 안으로 들어섰다.

“커피 드릴까요?”

“좋습니다.”

“소파에 편히 앉아 계시죠.”

현승이 커피를 내리는 동안 타이치는 소파에 앉아 작업실을 살폈다. 물론 맨 레코즈의 작업실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부족하다지만, 전자기기보다 실제 악기가 더욱 많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퍽 마음에 들었다.

기타도 어쿠스틱, 일렉, 베이스로 다양했으며 그 외에도 드럼,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해금, 젬베, 마림바까지… 아니, 근데 저걸 다 연주할 수 있다는 건가?

“혹시 현승 씨가 저 악기 전부 다 연주하실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따로 세션맨을 초청해서 녹음을 따는 용인가요?”

“세션용은 아니고 직접 다 연주하려고 구비해 둔 악기입니다.”

“혹시 악기 전공자인 건가요?”

“악기라는 게 대부분 원리는 비슷해서 잡는 법이나 소리를 내는 방법만 알면 연주할 수 있더라고요. 타이치 상도 모든 악기를 거의 연주하실 줄 안다고 하던데, 제 말에 공감하시죠?”

타이치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타이치처럼 음악적인 감각이 월등히 뛰어난 천재들이나 공감할 수 있는 말일뿐, 아무에게나 적용되는 말은 결코 아니다.

피가 나는 연습을 통해서도 제 뜻대로 안 되는 것이 연주이자 음악이거늘, 아마 각 악기 전공자들이 방금 현승이 한 말을 들으면 분통해서 피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하긴, 콘트라베이스의 조율을 단순 ‘재미’라는 명목하에 실음으로 조율해 버릴 정도의 인물이니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겠지.

“아 맞다, 동물의 섬 OST 생각해둔 인트로라도 살짝 한번 들려 드릴까요?”

타이치가 싱긋 웃으며 “좋습니다.”하고 답하자, 현승은 곧장 제 작업 콘솔 앞으로 다가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 머릿속에만 있는 거라서.”

“음? 좋습니다. 얼마든지 기다리죠.”

타이치는 현승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 지었다. 머릿속에 있는 곡의 인트로가 잠깐만 기다리면 나온다는 말 자체가 당돌하기도, 놀랍기도 한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 어린 천재는 자신의 말이 정말 가능한 일이라는 걸 증명하듯 얼마 되지 않아 손이 멈췄다.

“한번 들어 보실래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작업실 내부의 스피커를 통해 은은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선율은 피부를 따스하게 감싸고 스쳐 지나갔다. 1분 남짓한 시간이 너무 짧고 아쉽게 느껴졌다.

“제가 조금 더 보태 봐도 되겠습니까?”

“저야 영광이죠.”

아쉽다면 자신이 수저를 더 보태어 밥상을 풍성하게 채워 나가면 될 일이다. 오랜만에 마스터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았다. 나름 음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요즘은 서류를 만질 일이 더 많아진 탓에 손끝의 감각이 어색했다.

툭, 툭, 툭-.

몇 번의 두들김이 이어지니 다시금 본능이라는 놈이 속에서 고개를 치켜들었다. 조심스럽게 마스터 키보드를 두들겨 코드를 찍어 나갔다. 이 피아노 선율을 망치지 않으면서 따듯한 온기를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섹션 합쳐서 들어 볼까요?”

이번에도 현승은 대답 대신 곧장 스페이스 바를 눌러 재생시켰다. 조금 더 풍성하게 어우러지는 피아노의 선율이 제법 그럴싸한 인트로가 탄생했다.

“아!”

눈을 감은 채 다시 한번 선율의 온기를 귀로 맛보던 타이치와는 달리 현승은 무언가 번뜩 떠오른 듯 급하게 마우스를 움직여 가상악기 코드를 찾기 시작했다.

정말 제대로 된 무언가를 찍어 볼 요량인지 헤드셋까지 뒤집어쓴 어린 천재의 손이 이번에는 화려하게 마스터 키보드 위를 휩쓸고 다녔다.

딸칵.

그리고는 묻지도 않고 곡을 재생시켰다.

“음?”

타이치의 눈썹이 들썩였다. 피아노의 선율 위로 예상치 못한 음색이 찰랑거린 까닭이었다. 하프시코드, 피아노가 상용화되어 쓰이기 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반 악기였다. 음, 제법인데?

“혹시 제가 요청하는 가상악기도 하나 끌어와 줄 수 있나요?”

“얼마든지요.”

“디지털 오르간 좀 부탁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자극하는 어린 천재를 보고 있자니 오랜만에 머릿속은 악상으로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연주하고 싶었지만, 당장 오르간을 구할 길이 없으니 그 여한을 섹션 칸 안에 털어놨다.

“어떻습니까?”

어린 천재는 대답 대신 이 음율 자체가 즐겁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일순 고민에 빠진 듯 턱을 긁적이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근데 점점 곡이 너무 웅장하고 장엄해서 게임 오픈 OST보다는 최종 보스 테마곡 같네요. 그래도 이렇게 덧입히고 버리다 보면 정답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리고는 이 고민마저도 즐겁다는 듯 웃음기 서린 얼굴로 덧붙였다.

“이제 그럼 제 차례죠?”

현승은 눈에서 이채를 뽐내며 헤드셋을 목에 걸었다. 악상이 날아가지 않도록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양손을 바삐 움직였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옆으로 얼핏 보이는 어린 천재의 얼굴은 잔뜩 활기를 띠었다.

“쓰읍, 아무래도 이건 좀 안 어울리네. 빼야겠다.”

“혼자 너무 따로 노는 느낌인데?”

“흠, 음역이 더 낮은 악기로 대체해야겠는걸.”

마치 누군가와 함께 작업을 하는 것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과감하게 섹션을 통째로 버리기도 하고 다시 찍기도 하고, 비슷한 악기 중 더 나은 악기로 대체해 가며 가상 악기들로만 수많은 섹션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버려지고, 그려 나갔을까?

타이치는 그런 현승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점차 경외감까지 밀려들었다. 점차 섹션이 정돈되어 가며 흘러나오는 선율이 너무 좋아서도 맞지만, 마치 장난감 다루듯 점을 찍고 버려진 저 섹션들만 잘 모아서 샘플링으로 사용해도 누군가의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명곡으로, 재화의 가치가 드높은 명반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 까닭이었다.

“이런….”

타이치는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이 현승에게 품었던 기대감이 한없이 초라할 정도로 작은 먼지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놀라움의 경지는 이미 도달한 지 오래라, 이젠 그의 재능이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느낌으로 갈까 하는데 어떤가요? 아직 완성은 아니라 더 손 봐야겠지만요.”

“지금 이 곡이 정말 방금 저와 간단히 진행한 앙상블에서 떠오른 곡인가요?”

어린 천재가 자신을 보며 무심히 끄덕였다. 그의 말간 얼굴에는 거짓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았다. 오히려 뭘 그렇게 놀라며 묻느냐는 듯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완성곡도 아닌데 이 정도라면 더 확인할 것도 없겠습니다.”

“그럼 저 테스트 통과시켜주시는 겁니까?”

“아까 하프시코드를 사용할 때부터 이미 프리패스였어요.”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해 본 건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현승은 예의상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들어가는 악기의 가짓수가 많아서 직접 다 연주해서 녹음을 따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호흡이 다르면 안 될 만큼 악기의 합이 중요한 곡이거든요.”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겠어요. 이 곡에 걸맞은 최고의 오케스트라 연주단을 초청하여 최고의 연주를 녹음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 젊고 창창하며 재능이 끓어오르는 자신만만한 천재에게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고작 돈밖에 없었다.

“이번 현승 씨의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완벽하게 서포트 하겠습니다.”

그래, 이런 천재에게 그 이상의 도움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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