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요즘 세간에서 가장 ‘핫’한 이슈를 하나 꼽자면….
[ 맨 레코즈 대표 타이치, HS와 협업 작업을 위해 매일같이 LS 엔터 사옥으로 출근 도장… 화제 ]
바로 타이치 사카모토가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LS 엔터 사옥으로 출근하고 있다는 거였다. 비단 그 사실은 외부뿐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장안의 화제였으며,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 속에는 타이치의 ‘출근길’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연예인 출근길보다 더 난리네.”
기사 목록을 훑어보던 김 실장이 중얼거렸다. 타이치는 음악에 관심이 낮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만큼 명성과 명예가 드높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한국의 작곡가에게 대놓고 애정을 드러내며 러브콜을 보낸 것도 모자라 매일 같이 그와 작업하기 위해 다른 기업으로 출근한다?
그래, 이런 행보는 실로 예상치 못한 충격을 안겨줬다.
물론 현승에게는 아주 좋은 영향력으로 적용됐다. 일명 ‘국뽕’이 차오른다며 대중들은 ‘HS’에 열광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승이 팬카페 회원 수도 엄청나게 급증하고 있다던데….”
모쪼록 김 실장은 제 새끼라 칭할 수 있는 현승의 인생이 순항을 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요즘 한참 협업 작업한다고 며칠 못 봤으니 커피라도 사다 주면서 얼굴이라도 한번 볼 요량으로 캐리어 가득 커피를 챙겨 든 채 녹음실로 향했다.
똑, 똑, 똑-.
김 실장은 혹여나 방해될 수 있으니 가볍게 문을 두들겼다. 왜 응답이 없지? 작업에 몰두하여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하나 싶어 다시 한번 힘차게 노크를 두들기려던 찰나였다.
벌컥.
별안간 문이 열리고 생전 처음 보는 여성이 제 몸보다 훨씬 큰 악기 가방을 멘 채로 황급히 뛰쳐나왔다. 툭 하고 부딪힌 그녀는 시선도 맞추지 않은 채 고개를 까딱였다.
“아, 죄, 죄송합니다.”
김 실장은 자신에게 사과를 전하며 다급히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았다. 아무래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불러 녹음 진행하고 있다더니 그중 한 명인 듯 보였다.
‘근데 몰골이 왜 저래?’
언뜻 보기에도 여자의 얼굴은 창백했으며, 땀으로 범벅되어 헝클어진 앞머리 아래로는 다크서클이 서린 퀭한 눈동자가 초점을 잃은 채였다.
“현승아…?”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녹음실 상태를 보자 그 여자가 왜 그렇게 도망치듯 빠져나갔는지, 왜 여자의 얼굴이 혈색 하나 없이 어두웠는지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이게 녹음실이야, 돼지우리야?”
흡사 태풍이 한바탕 쓸고 간 것 같이 잔뜩 엉망이 된 작업실을 보고 있노라니 이번에도 녹음실을 숙직실 겸용으로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그때 불쑥 어색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사, 사카모토 타이치 상?”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소파에 축 퍼진 채 앉아 있는 타이치가 보였다.
“반갑습니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반듯하고 깔끔한 그의 이미지와 상반되게 풀어 헤쳐진 셔츠, 대충 쓸어 넘긴 앞머리, 아무렇게나 구겨져 걷어 올린 소매가 눈에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잔뜩 흐트러진 그의 모습들은 이질감이 들었지만, 또 역설적이게도 이 녹음실과 퍽 잘 어울리는 행색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예, 저야말로 반갑습니다. 김우현 실장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는 아직 서툴러서 일어로 얘기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제가 사 온 커피 좀 드시면서 쉬었다 하시죠.”
간단히 악수를 나누며 바라본 타이치의 얼굴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지친 기색이 감돌았다. 아무래도 타이치 또한 현승과 함께 이곳을 숙직실 겸용처럼 이용한 모양이다. 처음에는 서지니였고, 두 번째는 정아린, 세 번째로는 문범재와 엔지니어들까지 데리고 녹음실을 단체 합숙소처럼 쓰더니….
이제는 타이치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라인업을 자랑하는 합숙소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아니지… 새디스트 급의 교관이 함께하는 수련회장이라고 해야 할까? 이러다가 전남일 대표까지 합숙시키는 거 아냐?
“실장님, 잠시 앉아 계세요.”
김 실장의 망상이 끝없이 이어지던 찰나, 현승의 한마디로 망상이 끝이 났다.
“녹음이 조금 더 남아서 얼른 끝내고 구내식당이나 가시죠.”
“조금 쉬엄쉬엄해. 너 지금 다크서클 턱까지 내려왔어.”
“아직 바순 녹음이 안 끝나서요.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돼요,”
현승이 슬쩍 손으로 가리킨 부스 안에는 끈으로 고정된 바순을 품에 안은 채 지친 얼굴로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 사람 몰골은 또 왜 저래?”
흡사 그의 얼굴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채로 들어온 감옥에서 겨우 버티며 살아가는 무기징역수처럼 보였다.
“저렇게 큰 악기를 품에 안고 장작 10시간 이상을 연주했다고 생각해봐요. 저런 몰골이 당연한 거죠.”
“뭐? 열 시간? 진짜 감옥도 아니고, 저 사람 좀 봐.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 거란 희망도 빛도 잃은 눈빛이야.
바순을 끌어안고 있는 저 남자의 고통을 함께 통감하듯 김 실장의 얼굴은 안쓰러운 감정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현승은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얼굴로 태연자약하게 답할 뿐이었다.
“감옥이라뇨, 저분은 베테랑이라서 충분히 괜찮을 거예요.”
“베테랑 아니었으면 이미 도망쳤지.”
“역시 베를린 필 하모닉 아카데미 단원은 다르더라고요.”
김 실장은 손뼉까지 쳐 보이는 현승을 보며 살짝 무서운 감정이 들었다. 시력도 좋은 걸로 아는데, 부스 안에서 악기를 품에 안은 채 곧 쓰러질 듯한 얼굴을 한 남자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베를린 필 하모닉 단원 정도라면 분명 음악을 전공한 지 수십 년일 테고, 고된 녹음이나 합주 그리고 장기 공연에 익숙하고 자신 있었을 거다. 그래, 그랬겠지.
아마 현승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 그럼 잠시 쉬었으니까 다시 한번 녹음 가 볼까요?”
아, 맞다. 오늘은 플러스로 타이치까지 있었구나.
“아무래도 높은 음역을 속주로 해 달라고 요청하는 게 조금 가학적이긴 하나, 충분히 가능하시리라 믿습니다.”
“근데 점점 호흡에 힘이 떨어지고 있어요. 소리가 너무 가볍습니다. 멀티포닉스(multiphonics) 구간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저런 귀한 인재가 이런 수련회장 같은 합숙소에 끌려 와서는 현승과 타이치라는 교관에게 붙잡혀 고강도 하드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모습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괜찮았는데 21장 구간만 다시 녹음할게요.”
“방금 정말 조금 아쉬웠어요. 다시.”
“더 빠르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다시 갈게요.”
재차 반복되는 다시, 다시, 다시.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저 남자가 해내야만 하는 일이니, 인생의 난관이라 여기고 잘 이겨 내기를 기도해 주는 수밖에.
“허….”
그러나 갈수록 남자에 대한 동정심보단 현승과 타이치를 보며 느끼는 경외심이 압도적이었다. 분명 왔을 때만 해도 현승도, 타이치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전쟁이라도 난 듯한 테이블 위 상태를 보면 하루 이틀 밤을 새운 꼴도 아니었고.
그랬는데….
다시금 녹음을 시작한 그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은 싹 사라지고 동공 위로 이채만을 번뜩거렸다. 예민한 네 개의 귀가 쫑긋거렸고, 송곳처럼 날카로운 지적들이 난무했다.
광기 어린 미치광이 두 명이 만나자 절대 ‘대충’,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로 타협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둘은 한 치의 물러날 마음 없이 서로 앞장서서 완벽에 완벽을 더했다.
무슨 게임 OST 하나를 만드는데 타이치가 동참하고, 필 하모닉의 단원까지 참여를 한단 말인가. 그런 자들이 무수한 밤을 새워가 녹음을 따고 있다는 게 말도 안 될 일이다.
그래, 지금껏 사고는 사고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의 사고, 상상치 못한 곡 컨셉과 스케일… 이게 정말 말 그대로 ‘사고’일지도 모른다.
“음, 그나마 제일 괜찮기는 했는데 현승 씨는 어땠어요?”
그저….
“방금 끝 음 호흡 처리가 조금 아쉽지 않았나요?”
대형 사고로 인한 부상자가 조금 속출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그럼 한 번만 다시 갈게요.”
* * *
“저게 뭐야?”
박 전무가 바로 사옥 앞에 있는 식당을 향하고자 막 로비를 벗어나려던 때였다. 사옥 앞으로는 플래카드를 든 팬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전무님, 사옥 앞에 팬들 찾아오는 게 어디 한두 번입니까.”
오 실장이 매번 있던 일에 뭐 그리 놀라냐는 식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아니, 그건 그런데 저기 무리 말이야.”
박 전무가 고개를 내저으며 손끝으로 창밖의 한 무리를 가리켰다. 그 손끝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린 오 실장의 눈이 일순 화등잔만 해졌다.
“어?”
어차피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니까,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제 눈을 의심하듯 눈을 몇 번이나 비비고, 눈매를 좁히며 어느 한 무리를 천천히 살폈다.
「 G-HS 」
플래카드에 공통으로 들어간 단어였다. 요즘 사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과 비슷한데? 그래, 2팀 소속의 전속 작곡가 민현승의 필명과 말이다.
“설마….”
오 실장의 얼굴은 잔뜩 혼란스러운 마음을 반영하여 묘하게 일그러졌다. 저 ‘HS’라는 인물 때문에 2팀의 성과 및 성적이 압도적으로 앞서 나가는 상황이다.
하물며 이번 타이치 사건으로 인하여 대내외적으로도 확실한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니 경쟁 구도를 취하고 있는 1팀으로서는 당연히 그의 인기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지.”
그러나 오 실장과는 달리 박 전무의 얼굴이 의연해 보였다. 괄괄하고 불같은 성향의 그인데 꽤 침착한 점도 이상했다. 누구보다 2팀의 최 이사 라인을 싫어하고 미워하지 않았나? 의아함을 가득 품은 채 그를 바라보던 찰나였다.
찰칵-!
박 전무가 ‘HS’의 팬들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보내는지 휴대폰을 두들겼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HS에게 네 팬이 찾아왔다며 친절하게 알려 주려는 건 아닐 테고.
“김 실장, 내가 보낸 거 봤나?”
그럼 그렇지. 아무래도 박 전무의 전화 상대는 2팀의 김우현 실장인 모양이었다. 뉘앙스를 보아 친절히 알려 주려는 건 아닌 듯 보였다. 오히려 시비를 걸 때의 이죽거리는 말투였다.
“HS의 팬들이 여기 사옥 앞에 아주 진을 치고 있어서 내가 밥을 먹으러 나갈 수가 없어서 전화했어.”
- 그렇게나 많이 왔나요? 죄송합니다.
“그래, 작곡가한테 팬카페가 생겼다는 것도 웃긴 데 사생팬이라니 말이야. 이참에 그 친구 연예인을 시켜 보지, 그래?”
지나가는 사람이 들어도, 상황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박 전무의 말투는 잔뜩 베베 꼬인 말투였다. 아까 침착한 태도는 지금을 위한 인고의 시간이었나 보다.
“물론 그 친구는 인성 논란으로 곧장 나락 갈 것 같기는 하지만.”
정말 같은 라인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이죽거림은 가끔 도를 넘어설 때가 있었다.
“근데 너무 기고만장한 거 아니야?”
지금처럼 말이다.
“그 잘난 성적 좀 더 오래 끌고 가려면 나와서 팬 서비스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 죄송합니다만, 현승이는 처음 계약 시부터 신분 노출은 안 되는 걸로….
그때 김 실장의 말을 가로막고 젊은 목소리 하나가 새어 나왔다.
- 아니요, 박 전무님 말씀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네요.
HS, 그래, 민현승의 목소리였다.
- 까짓거 얼굴 한번 비춰 줄 수 있죠.
옆에서는 김 실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진심이야?”하고 재차 물어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패기 넘치는 어린 작곡가는 단박에 수락할 뿐이었다.
“팬들에게 이 소식을 얼른 전해 줘야겠네. 엄청 좋아하겠어.”
아니, 잠깐 근데 이렇게 쉽게 오케이를 해 버린다고? 얼굴 노출을 극도로 꺼린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구린 과거라도 숨기고 있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건가?
- 예,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바로 내려가야겠네요.
그렇게 의문만을 남긴 전화는 맥없이 종료되었다.
“참, 이 녀석도 한결같아.”
박 전무는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 액정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아주 한결같이 싸가지가 없어.”
우선 지금 당장은 녀석의 싸가지 유무를 따질 때가 아니다. 정말 지금 당장 내려온다는 걸까?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뀐 거야? 아마 민현승의 얼굴이 세간에 공개되는 순간 팬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오를 것이다.
그래, 반반한 그 얼굴이 그렇게 만들겠지. 아아, 물론 또 혹시 모를 일이다. 이 정도의 싸가지라면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정말 말 한마디에 나락으로 갈 수도 있고.
다만.
회사 차원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잃을 수야 없겠지.
하지만 박 전무는 회사를 위해서 보단 자신의 이득과 권력에 움직이는 독불장군이지 않은가?
“이러다 정말 큰 코 한번 다치지.”
이젠 최 이사 때문이 아니라 HS가, 민현승이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 거슬릴 따름이었다.
* * *
진미소는 아까부터 거세게 뛰는 심장이 주체가 안 되고 있었다.
“HS 씨께서 곧 내려온다고 하니 한쪽으로 서서 안전하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보안요원으로부터 전달받은 내용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신분도 노출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어서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직접 팬카페를 개설하고 늘어난 회원들과 함께 뜻이 맞아, 사옥 앞에 있다 보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길이었다.
근데, 정말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고, 꿈에서만 그려 볼 수 있던 그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건가? 정말, 진짜로 우리를 만나러 나와주는 걸까?
“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줄 따라오는 생각들은 그녀를 설레게도, 긴장하게도, 우울하게도 만들었다. 단순히 곡을 들으며 상상으로 키워나간 팬심이 이토록 커진 줄은 몰랐다.
비단 긴장한 것은 진미소뿐만이 아니었다.
HS라 하면 장안의 화제의 인물이자 지속적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 사람이다. 그러나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는 신비주의였으니 누구든 그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여타 다른 연예인을 보러 온 팬들까지도 모두 숨을 죽인 채 사옥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여기 있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HS’가 나오길 기대하는 눈치였다.
스르륵-.
머지않아 사옥의 거대한 문이 열렸다.
“어, 어어? 누구 나온다!”
그 문을 통해 걸어 나온 사람은….
“헬멧…?”
다부진 체격의 훤칠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헬멧을 뒤집어쓴 남자였다.
“어? HS다!!!”
다른 팬들은 “저 사람이?” 하며 수군거렸다. 하지만 HS의 팬이라면 첫 단독 인터뷰를 읽어서 알고 있었다. 그는 컨셉처럼 헬멧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걸. 그녀들은 일동 헬멧남을 향해 달려왔다.
“오빠, 이거 준비한 선물이에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필수 영양제에요, 챙겨 드세요!”
헬멧남은 흠칫하고 한걸음 물러나며 얘기했다.
“예, 예, 여러분 저를 위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작업하는데 신경 쓰이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그러시면 안 돼요. 사진 한 장씩 찍어 드릴 테니까 이만 집으로 돌아가셔서 가족들과 함께 제 곡을 한 번씩 들어주시는 게 저에게는 더욱 큰 도움이에요.”
어찌 보면 서운할 수 있는 발언이었지만, 이미 팬들에게 ‘HS’라는 인물의 이미지는 서지니나 정아린의 인터뷰 기사들과 공개 인터뷰들의 내용을 기반으로 ‘츤데레’라 인식하고 있었다.
고로, 지금 기다린 사람들에게 돌아가라고 하는 무신경한 말마저도 자신들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받아들였다.
“생각보다 피지컬도 웬만한 아이돌보다 좋은데?”
“꺄아아아아! 너무 다정해!”
“어떻게 목소리마저도 저렇게 스윗하고 잘생겼지?”
소녀팬들이 격분하며 돌고래 창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헬멧남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히 답할 뿐이었다.
“자자, 밀지들 마시고 한 줄로 서 주세요. 줄 안 서면 저 그냥 다시 들어갑니다.”
팬카페 회장인 진미소는 곧장 팬들을 통솔하여 차례대로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HS라면 자기 말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 정말로 들어가 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정말 나오는 곡마다 너무 좋아요.”
“네, 고마워요. 다음.”
“오빠, 진짜 너무 좋아해요.”
“응, 나도. 자, 다음.”
“사랑해요. 저랑 결혼하면 안 돼요?”
“그건 곤란해. 다음!”
헬멧남은 거의 사진 찍어주는 대답봇처럼 신속 정확하게 소녀팬들을 상대해 주고 있었다.
“자, 드디어 마지막이네. 사진 찍게 본인 휴대폰 줘요.”
마지막 차례로 서 있던 진미소가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기, HS 님… 혹시 고글 한 번만 올려 주시면 안 돼요?”
안 되겠지, 안 될 거야. 노출을 극도로 꺼려 하는 그라는 걸 안다. 그렇지만 또 다신 오지 않을 일생일대의 기회일 수도 있지 않나? 하물며 자신은 ‘G(od)HS’라는 팬카페를 개설한 카페장이다. 회원들을 위해서 용기를 내야 한다. 한번 호기롭게 말을 이었다.
“안 올려 주시면 저 안 갈 거예요.”
“하….”
“하, 한 번만요! 제발요!”
헬멧남은 제 요구가 꽤 부담되는지 고글 너머로 들려올 정도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안 되겠지. 이러다가 그냥 가 버리면 어쩌지? 진미소가 불안함에 심장을 잘게 떨고 있던 찰나였다.
“하, 진짜….”
가까이 서 있던 진미소에게만 들린 대답이었다.
“잠깐이다.”
이윽고.
헬멧남이 “탁”하는 소리와 함께 앞 유리를 올렸다가 닫았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분명 알 수 있었다.
“어…? 어?!”
그건 세간을 다시 한번 시끄럽게 할 만한.
“꺄아아아아아아-!”
순간의 찰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