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54화 (54/118)

54화

“이야, 민현승.”

김 실장이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금 몇 번째 부르는 줄 알아요?”

“아니, 신기하잖아.”

“대체 뭐가 그렇게 신기한데요.”

그래,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계약할 때부터 특약 조건에 ‘개인정보 노출 절대 금지’를 달고 시작했을 만큼 노출에 있어서는 결사코 타협하지 않던 현승이었다.

그런데 박 전무가 뜬금없이 성적 유지하려면 팬 서비스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이죽거린 한 마디에 곧장 박차고 나가서 실제로 팬들을 만나고 오는 이변을 보여 줬다.

그 덕분에 좋은 결과를 도출했으니 이번에는 오히려 박 전무에게 감사하다고 해야 하려나? 그래, 현승의 게릴라 팬 미팅(?)은 정말 대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현승은 타고난 스타성으로 팬들을 다루는 데 능숙해 보였고, 일부 소녀팬들의 무리한 요구에도 영리하고 침착하게 잘 대처해 냈다고 할 수 있었다.

[ 여러분, HS를 현★상★수★배 합니다! (+몽타주 첨부) ]

스르륵, 스르륵-.

─ 단박에 제 마음을 훔쳐 간 그를 현상수배 합니다. 정말 얼핏 보인 눈매 하나에 제 심장은 뜨겁게 만났었던 첫사랑을 재회한 것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잘생길 거였으면 차라리 나타나지 말지. 정말 그렇게까지 잘생길 거였으면 애초에 보여주지 말지. 내 온 세상을 뒤덮어버릴 잘생김으로 무장한 채 나타나선 내 심장만 앗아가면 다랍니까? 키도, 비율도, 능력도, 하물며 향기조차 좋은 그 남자 정말 괘씸해서 안 되겠네요! HS의 얼굴 예상 완성도(몽타주) 올려놓고 갑니다. 혹시 이 남자 보시면 신고 좀 해주세요. 저와 혼인신고…♡

↳ 몽타주 직접 그린 거 봐 ㅋㅋ 정성스럽다 ㄹㅇ

↳ 근데 떠도는 사진 봤는데 얼핏 봐도 잘생겼더라ㅠㅠ

↳ 이랬는데 헬기꾼이면 어떡함? 하관 막 1미터고 그러면?

↳ ㄴㄴ 나도 봤는데 그냥 잘생길 수밖에 없는 분위기임;

↳ 야야 얘두라 HS 맨얼굴 봤다는 베스트 글 올라옴 +링크

김 실장은 올라온 글을 읽으며 작게 키득거렸다. 유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베스트 글이었다. 정성스럽게 현승의 예상 몽타주를 그려서 첨부하기까지 하는 정성이 담겨 있었다.

“오, 얼추 비슷한데?”

얼핏 고글 안으로 보이는 눈매와 콧대를 기반으로 하관을 상상하여 만든 몽타주 그림은 실제로 현승과 퍽 닮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냥 최대한 잘생겼을 얼굴을 상상하며 그렸더니 현승과 얼추 닮은 거겠지.

↳ 몽타주가 실물만 못 하네요. ㅋㅋ

김 실장이 자신도 모르게 팔불출 같은 미소를 띤 채 중얼거리며 적은 댓글이었다.

“어이쿠.”

황급히 적은 댓글을 삭제하고는 위에 달린 댓글의 첨부된 링크를 타고 다른 글을 확인했다.

스르륵, 스르륵-.

[ HS 맨얼굴 본 사람? 나야 나. (+인증 추가) ]

─ 다들 못 믿던데 그래서 내가 쓰던 헬멧 인증 사진 추가했거든? 확인해봐! 우선 그를 본 건 약 2달 전인 것 같아. LS 엔터로배달 간 적이 있었거든? 근데 거기서 웬 남자가 갑자기 자기한테 내 헬멧을 팔라는 거야; 처음에는 안 된다 했는데 뭔가 사정도 급해 보이고 그래서 팔았어. 그 헬멧이 뭐 리미티드고 한정판인 헬멧은 아니고 정말 널리고 널린 시중 헬멧이긴 하지만 정황상 내가 본 그 남자가 HS 맞는 것 같아. (+ HS가 착용한 헬멧과 내가 쓰던 헬멧 사진 아래 첨부) 요즘 다들 HS 얼굴 궁금해 하던데 내가 본 그 사람은 남자인 내가 봐도 존잘이었어; 지금 예상 몽타주 돌아다니던데 무엇을 상상하던 그 상상 이상이야 진짜로 뻥 아니야; 너무 잘 생겼어서 아직도 또렷하고 생생히 기억남.. 진짜 세상은 너무 불공평한 것 같아; HS는 얼굴도 잘생기고 능력도 좋고... 후.. 그래... 우선.. 인증 남겼으니.. 다시 배달하러 간다...

↳ 울지 말고 얘기해봐.. 그래서.. 내 남자 얼마나 잘생겼다고?

↳ 근데 이 정도면 ㄹㅇ임 우연이라기엔 정황상 딱 들어마즘

↳ 마지막 말이 왜 이렇게 슬프냐... 찐 바이브야.. 얜 진짜다..

↳ HS 씨 헬멧 새 걸로 구매 원하면 연락해요. 헐값에 드릴게요~대신 직거래만ㅎㅎ..

글을 읽던 김 실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현승아, 너 그 쓰고 나갔던 헬멧 말이야. LS 엔터로 배달 왔던 배달원한테 산 거야?”

“예, 그랬었죠? 왜요?”

“아이고, 그 배달원이 너 맨얼굴 봤다고 간증 올라왔어. 지금 너 몽타주도 돌아다니더라.”

“뭐, 어때요. 맨얼굴 사진이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헬멧 바꾸면 아무도 못 알아봐요.”

그 대답에 김 실장은 물끄러미 현승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헬멧 하나 바꾼다고 못 알아보지는 않을 것 같은데, 본인의 피지컬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지금 커뮤에서 반응이 아주 끝내줘.”

“그런가요.”

“덕분에 음원 스트리밍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잘됐네요.”

“진짜 이러다가 너 연예계 진출하겠어.”

“그럴 일 없어요.”

현승의 칼 같은 대답에 김 실장이 “그렇구나.”하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엔 언젠가는 현승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들 앞에 두각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

태양이 어디 손바닥으로 가려지던가?

* * *

타이치는 홀로 출국장에 들어섰다. 그간 현승과 동고동락한 나날이 거짓인 양 느껴졌다.

“멀리 안 나갈게요. 마무리 작업해야죠.”

현승의 마지막 인사말이 귓가에 울렸다. 그래, 서운할 게 없는 일이다. 어차피 돈에서 파생되어 음악으로 맺어진 관계다. 근데, 왜 자신은 어린아이처럼 괜히 서운함을 느끼는 걸까?

아무래도 그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더 안달 나 있다는 증거였다. 왜일까? 그래, 나이와 부 그리고 명예를 다 떠나서 그를 실제로 만나며 품은 존경과 경외심 때문이리라.

똑똑히 보았다.

곡에 담길 스토리텔링과 곡이 전해 주는 감정선 또한 섬세하게 살아 숨 쉬게끔 곡의 전반을 아울러 보고 통솔하여 작품으로 그려 내는 그의 능력을 실제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래.

자신이 그에게 배워 가는 것이 더 많은 유익한 시간이랄 수 있었다. 아쉽기는 하나 후회 한 점 없는 작업이었다.

툭, 툭-.

출국 시간을 기다리던 타이치가 구두 앞 코로 바닥을 가볍게 두들기다 말고 물끄러미 생각했다.

‘그는 음악사에 족적을 남길 거다.’

그는 매일 작업실에서 슬리퍼를 신고 다녔지. 물결무늬의 평평한 족적이 남겠군. 타이치라는 이름을 걸고 하나 장담컨대, ‘HS’라는 이름은 근현대사회의 음악사를 휩쓸고 재정립할 것이다.

그래, 어쩌면 나중에 교과서에 실릴 인물이 될지도 모르지.

아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남아서 그의 성공을 모두 제 눈으로 지켜 보고 싶은데 가능하려나? 아아, 그래. 무조건 가능할 거다. 그의 성공은 당장 코앞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을 테니까.

지이이이이잉-!

타이치의 깊은 상념이 늘어지던 찰나였다. 안주머니에서 거센 진동이 울렸다. 맨 레코즈 이사인 킨지로였다. 아마 받으면 언제 복귀하냐며 채근할 거다. 그의 재촉 전화는 받지 않았다.

뚜벅, 뚜벅-.

걸음을 옮겨 곧 출항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어차피 이제 이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가서 제 휴대폰에 넣어둔 음원 파일을 들려주면 킨지로의 잔소리도 멈출 것이다. 그래, 이런 작품을 가져왔다고 하면 왜 이제야 왔냐는 물음이, 어떻게 벌써 왔냐는 물음으로 바뀔 테니까.

이 곡은 그저 수록곡 중 하나일 뿐이다.

젊은 천재의 열의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나 그는 무려 열다섯 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앨범을 만들고 있었다. 이 곡은 그저 15분의 1에 불과한 거다 게임 산업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반이 제작되고 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이 명반의 유통을 자신이 맡게 됐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다행이라 여겨졌다. 연이 닿은 덕에, 운이 좋았던 덕에, 먼저 움직인 덕에, 번호표를 빨리 뽑은 덕에 이 일이 가능했던 거다.

아마….

그 또한 이를 계기로 더욱 큰돈을 벌게 될 거다. 그리고는 일부를 똑 떼서 자신에게 전해 주며 말하겠지.

“고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영광을 함께 나누게 될 것이다. 완성이 기다려지는 앨범이었다. 다시금 실타래처럼 늘어난 생각을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갑자기 피곤함이 밀려온 까닭이었다.

타이치는 비즈니스석 시트를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그래, 그러고 보면 한국에 와서는 정말 스스로 피곤하다는 사실조차 잊을 만큼 피곤한 일정을 보냈지.

“흐음….”

타이치는 비행기가 곧 출항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며칠 만인지도 모를 단잠에 빠져들었다.

* * *

“빼애애앰-!”

“홀리-!”

“오마갓-!”

여기가 외국인지, 한국인지. 우주인지도 모를 정도로 알아들을 수 없는 괴상한 감탄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LS 소속의 엔지니어들이었다.

마스터링 작업을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제일 먼저 완성된 오프닝 OST 음원을 받아서 들어 본 그들은, 듣는 즉시 부리나케 현승의 작업실부터 찾았다.

“진짜 현승 씨 미친 거 아니에요?”

“그니까, 어떻게 매번 이런 퀄의 곡을 뽑지?”

“악마한테 영혼을 판 거일 수도?”

“그치, 파우스트처럼 거래했을 수도 있어.”

“하긴, 현승 씨가 좀 비인간적이긴 해.”

“맞아, 작업실에 같이 자도 혼자만 머리가 안 눌리잖아.”

현승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체 머리가 눌리지 않는 것과 비인간적인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곡에 대한 자신들만의 결과를 도출해 내고 있는 듯 보였다.

“애들아.”

그때 참다못한 김 실장이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논리야?”

“무슨 논리긴요, 그냥 현승 씨가 비인간적일 만큼 완벽하고 대단하다는 거죠.”

“맞아요. 그저 이번 곡도 악마와 거래해서 받아 낸 것처럼 훌륭하다는 뜻이에요.”

분명 이들도 몇백분의 일이라는 확률을 뚫고 입사한 엔지니어들이다.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심심치 않게 들어올 만큼 쟁쟁한 실력을 지닌 자들이고.

이들의 홈그라운드는 후크송이라 불리는 대중가요가 아니던가? 근데 게임 OST가 좋으면 얼마나 좋다고, 이리도 푼수처럼 칭찬을 늘어놓는 걸까.

“게임 OST라며, 그것도 전체이용가.”

“예, 게임 OST 맞죠.”

“그런데 곡이 그렇게나 좋아?”

“들어보시면 저희가 왜 이러는지 알 거예요.”

현승의 곡은 늘 좋기는 했다. 한결같이 좋은 선율을 지닌 높은 퀄의 곡들이었다. 이번 또한 음악 거장이라 불리는 타이치가 참여하고 유명 필하모닉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데려다가 녹음까지 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예 다른 장르의, 다른 상업으로 이용되는 곡이지 않나? 제아무리 김 실장이라도 이번 결과물에 대한 감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현승아, 완성한 거야?”

“우선 한 곡만요.”

“들어 볼 수 있을까?”

김 실장은 헤드셋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또 좋다고만 할 거면서.”

“이번에는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지.”

“그럴 리가 있나요.”

“얼씨구?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야?”

현승이 건네준 헤드셋을 뒤집어쓰며 서로 피식 웃음을 흘려 보였다. 맞다, 현승의 곡을 듣고 안 좋았던 적은 없었다. 매번 좋았고, 매번 좋다고만 얘기했다. 아예 새로운 분야의 곡이라 감이 안 잡힐 뿐, 곡은 좋을 것이다. 그래, 단순 취향 문제로 갈릴 뿐이겠지.

딸칵.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헤드셋을 통하여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아아, 봄이다.

따스한 햇살이 드리우는 창가를 벚꽃잎이 간지럽히며 흩날린다. 새 학기가 시작된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어디선가 꽃내음이 피어오르는 착각이 들었다.

이윽고.

곡이 변주가 이루어지며, 이번에는 여름이었다. 화려하고 쨍한 악기의 합주가 뙤약볕의 더위를 훔쳐 갈 분수를 만들어 낸다. 물방울이 튀어 오르며 제 이마에 달린 더위를 앗아 갔다.

이번에는 가을, 그래 가을이었다.

어둡고, 낮은 악기들이 제각각 연주를 이어 나간다. 불협화음이 가슴 깊이 우울함을 생성시키고, 낙엽들이 머리 위로 후두둑하고 쏟아져 내렸다. 그래도, 센치한 기분을 즐겼다.

어느덧, 겨울이 왔다.

날카롭게 날이 선 음계들이 억센 기교를 만들며 눈보라를 만들어 낸다. 입에서 토해지는 입김은 얼음꽃을 만들며 볼을 따갑게 스쳤다. 이런 걸 보릿고개라고 하나? 이것만 잘 견디고, 버티면 다시금 단내를 풍기던 봄이 오겠지? 그래, 와 주리라 믿으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 냈다.

그러나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오지 않았다.

모든 악기도, 목소리도 점차 뒷걸음질 치며 도망친다. 휘몰아치던 모든 소리가 귀 뒤로 아련하게 흩어진다. 그 텅 빈 공간은 공허하고, 허망한 감정이 가득 들어차며 매웠다.

김 실장은 곡이 전해 주는 허무함에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기만 할 뿐 쉽게 떠지지 않았다. 그렇게 곡에 흠뻑 빠져 허우적거리며 여운을 느꼈다.

“와….”

눈을 떴을 때 시야에 들어찬 배경이 낯설고 어색하리라 만큼 곡에 몰두한 자신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 마치 게임 속 세계에 들어갔다가 나온 느낌이었다.

“진짜 미쳤네.”

“이봐, 이럴 줄 알았지.”

“근데 곡 제목이 뭐야?”

“허무에요.”

“허무?”

“네, 허무”

허무(虛無)라….

김 실장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곡을 듣는 이로 하여금 그들이 느낄 감정까지 미리 파악하여 제목을 짓는 천재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제목 참 잘 지었네.”

그저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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