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56화 (56/118)

56화

오늘도 어김없이 현승의 작업실로 향하는 김 실장의 발걸음은 한편으로는 무겁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다.

비록.

모순적인 표현이라지만 어제 받은 스카우트 제안으로 머리가 다소 복잡하기도, 현승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러 가는 길이라 제 일처럼 기쁜 마음이 앞서기도 한 까닭이었다.

똑, 똑-.

그런 두 가지 마음을 품은 채 작업실 앞에 섰다. 형식적으로 가볍게 노크를 한 뒤 문을 열었다. 어제와 같은 행색을 한 뒤통수가 보였다. 이런 걸 데자뷰라고 하나?

“이 녀석, 또 집에 안 갔네.”

“실장님은 또 찾아오셨네요.”

“그래서 혹시 싫으냐?”

“에이, 아니요. 근데 제 밥은요?”

김 실장은 “나만 보면 밥 타령이야.” 하며 투덜거렸다. 물론 습관처럼 사 오기는 했다. 가볍게 먹으라고 사 온 샌드위치와 스무디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옜다.”

현승이 곧장 스무디를 받아 들고는 꽂힌 빨대를 입에 물었다.

“오늘도 제 밥 챙겨 주러 오신 거예요?”

“아니야. 오늘은 다른 소식을 전해 주러.”

“결국 이직 각 잡으신 거예요?”

그 물음에 김 실장이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아니야, 인마.”하고 중얼거렸다. 저, 저 눈치 빠른 놈.

“일본 지사에 있는 직원한테 아침에 보고 받자마자 너한테 알려 주려고 온 거야.”

“아, 그 일본 로컬라이징 앨범 관련해서요?”

“맞아. 지난 3일에 일본에서 발매된 로컬라이징 앨범이 지금 예상보다 반응이 더 좋아.”

그리고는 옆구리에 끼고 온 서류 파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본격적으로 말을 이었다.

“여기 자료 뽑아온 거 보면 알겠지만, 현지에서 점차 반응 올라오면서 오늘 오리콘 차트 오전 업데이트 시간 기준으로 탑 100에도 진입했어. 확실히 네 곡이 좋기도 하고 맨 레코즈에서도 유통뿐만 아니라 홍보도 공격적으로 힘을 좀 실어 준 모양이더라고.”

“그거참 잘됐네요.”

“그뿐만 아니야. 여기 섭외 리스트 보이지? 네 앞으로 지금 광고부터 라디오 출연, 예능,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까지 아주 섭외가 쏟아지고 있어. 다들 헬멧 쓰고 나와도 되니까 제발 한 번만 출연해 달라고 난리야, 아주.”

“됐어요, 안 해요.”

신나서 얘기하던 김 실장은 다소 맥 빠진 얼굴로 초대장 하나를 꺼내 보였다.

“하여간, 단호하기는. 그럴 것 같아서 우선 다 재고해 본다고 하고 까는 중이긴 해. 그래도 이건 참석하면 좋을 것 같더라.”

“이게 뭔데요?”

“작곡가 협회에서 분기별로 진행하는 연회인데, 너 앞으로 초대장이 왔어. 이번 기회에 다른 작곡가들하고도 두루두루 친분을 좀 쌓고….”

“됐어요, 안 가요.”

전부 자신이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였다. 현승은 남과 어울리기도 싫어하고, 노출을 싫어하는 성향이니까 충분히 거절하리라는 건 감안하고 오는 길이다.

“그래도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좀 해 줘라.”

다만 섭섭한 마음에 괜히 투덜거리는 말이 앞섰다. 비록 현승이 소속 연예인도 아니고, 자신이 키운 것도 아니라지만 자신이 영입한 만큼 항상 잘 되기를 바랐다. 누구보다 반짝이고, 누구보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니까.

그래, 그런 아이니까 더욱 많은 이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 더욱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응원하며 묵묵히 서포트 했다. 더욱더 넓은 세상으로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현승의 성장을 돕고 싶었다.

근데 정작 당사자인 현승의 반응이 너무 미적지근한 탓에 맥이 탁 풀리며 섭섭한 감정이 밀려 들어왔다. 자신보다 10살은 족히 어린애한테 서운한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속까지 어른으로 성장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삐졌어요?”

“아니야.”

“삐졌는데, 뭘.”

“아니라니까.”

“에이, 거짓말.”

현승이 김 실장의 얼굴을 살피며 옆구리를 툭 찔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콘솔 앞에 앉으며 덧붙였다.

“물론 아시다시피 사람들에게 얼굴 팔리는 건 원치 않아요. 그렇지만 최대한 신분이 노출되지 않는 선에서 재밌는 일이라면 참여할 의향도 있어요.”

현승이 마우스를 툭 건드리자 화면에는 작업 중이던 미디 프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전문가는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가득 들어찬 화려한 코드들만 보더라도 현승이 좋은 곡을 위해 수도 없이 찍었을 노력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은 맨 레코즈와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싶어요. 지금 이 작업이 너무 재밌어서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오거든요. 이번 프로젝트 잘 마무리하고 차차 재고해 볼게요.”

차분히 말을 마친 현승이 아예 작업 모니터를 향해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정말 이번 프로젝트가 현승에게 상당히 유의미한 작업인 모양이었다.

“그런 의미로 들어 보실래요?”

그 물음에 김 실장은 섭섭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이며 “좋아.”하고 웅얼거렸다. 그래, 현승은 다른 걸 하지 않더라도, 다른 도움이 없더라도 손끝에서 만들어진 곡 하나로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받을 사람이다. 그 외에 영역은 그저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일 따름이었다.

“아직 완성은 아니라서, 잠시만요.”

현승은 양해를 구한 뒤 한참이나 마스터 키보드와 씨름을 이어 나갔다. 뭐가 잘 안 풀리나? 싶었는데 살짝 보이는 얼굴 위로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4번 트랙은 코러스 구간이 잘 빠지긴 한 것 같은데, 그에 비해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힘이 좀 약한 것 같아요. 한번 비교해서 들어보세요.”

“알겠어.”

“제 생각에 이번 앨범 중 7번 트랙이 도입 인트로 구간은 원탑인데 이어지는 벌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잠시 멈춰 있거든요? 한번 들어 보세요.”

“응, 그래.”

김 실장은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선율에 집중했다. 보통 현승이 제 작업물을 먼저 들려주려고 하는 경우는 드문데 들뜬 목소리로 설명까지 하며 들려주는 걸 보면 이번 작업 자체를 정말 즐기고 있는 거 같다.

그래, 정말 빛이 나는 재능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기면서도 잘해 내는 건 재능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니까.

“오.”

현승이 들려주는 잘라낸 파트 트랙 하나하나가 모두 다 너무 좋았다. 단순히 게임 테마곡으로 쓰이기에는 아쉽다는 마음이 먼저 떠오를 만큼 좋았다.

감히 장담컨대, 지금 들려오는 멜로디를 샘플링으로 따와서 대중가요로 제작한다면 히트곡이 또 나올 것이다.

“정말 좋다.”

곡을 다 들은 자신이 할 말은 이거면 충분했다. 더 나은 수식어도 필요 없었다. 정말 하나같이 다 좋았다.

문득.

반짝이는 현승을 보고 있노라니 어제 김우석 전 본부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현아, 솔직히 말해서 네가 LS에서 배출한 애들이 한둘이냐? 걔네는 지금 스타랍시고 떵떵거리며 사는데 솔직히 억울하잖아?”

그렇다고 현승이 가진 재능과 스타성을 질투하진 않는다.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해서 억울하지도 않다. 그저 더 잘 됐으면 좋겠고, 옆에서 잘 서포트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현승아, 간만에 구내식당이나 먹으러 가자.”

자신도 사람인지라, 아주 조금 부럽기는 할 따름이었다.

* * *

구내식당은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는 시점이라 생각보다 한적했다. 김 실장과 현승은 식판을 받아 들고는 매번 그랬듯 구석진 자리를 찾았다.

“현승아, 많이 먹어라.”

“누가 보면 사 주는 줄 알겠어요.”

“그게 뭐가 중요해.”

“식권도 없이 구내식당 오자는 사람이 어딨어요.”

“네가 있을 거라 믿었지.”

현승이 고개를 내젓고는 식판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는 입안으로 한껏 밥을 밀어 넣었다.

“천천히 먹어.”

김 실장은 그런 현승을 바라보며 저렇게나 잘 먹는데 슬림한 체형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작업에 몰두하면 식욕 따위는 거뜬히 무시하는 성향 덕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이랴?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라는 수면까지도 무시하는데 살이 찔 수 있을 리가 없다.

문득.

조금 전 작업실에서 봤던 현승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너는 작업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냐? 어찌 되었건 일이잖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

“실장님은 재미없어요?”

“나도 재미있어서 시작하긴 했지. 근데 어떻게 1년 365일 내내 재미로만 일하겠냐?”

그리고는 괜스레 젓가락으로 밥을 깨작거렸다. 질문이 아니라 의문이었다. 재미만을 추구하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하는 투정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게 생사를 이어 나가기 위한 ‘업’인데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하며, 재미보단 ‘금전’이나 ‘조건’ 또한 고려해야 할 일이리라고 생각했으니까.

잠시 상념에 잠겨 있기를 잠시.

슬쩍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현승은 별생각 없이 밥을 우적우적 잘도 먹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이리 몰두하는 걸 보면, 그냥 타고난 성향이 집중력이 높은 편인가 보다.

“맨날 먹는 밥이 그렇게 맛있냐?”

“저야, 맨날 먹는 밥 때문에 살죠.”

현승이 마지막 남은 소시지 하나를 입에 털어 넣고는 덧붙였다.

“어떻게 재미로만 일하냐면서요. 일이 재미없는 날에는 그저 잘 먹고 잘살려고 일하면 되는 거죠.”

김 실장이 “아.”하고 작게 탄식을 흘리며 현승의 말을 속으로 되새겼다. 곱씹을수록 현답(賢答)이었다.

“그래, 너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리고는 현승의 식판 위로 제 소시지를 덜어 줬다. 현승의 말 덕분에 마음이 이직 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 결국 홀로 책임지고 짊어져야 할 본인만의 업인데 감정적으로 치우치기보단 객관화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겠지.

그래, 나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니까.

사실 LS 엔터에 계속 남아 있던 이유도 다른 더 좋은 선택지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본래 이직이 잦은 업계이기도 하니, 다들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해해 줄 거다.

물론 힐난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가까운 이들은 도리어 응원하며 보내줄 수도 있다. 특히, 제 앞에 앉아 있는 녀석이라면 제 선택을 묵묵히 지지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다 보니 소란스러운 마음도 차분하게 정리되었다.

“현승아, 너는 가벼운 듯 묵직해서 참 좋다.”

“갑자기 뭔데요. 징그럽게.”

“그냥, 우리 되도록 오래 보자고.”

“한 1년에 한 번 보면 평생 가능할 듯?”

“이놈이? 너 나 아니면 누가 너 밥 사다 주냐?”

“뭐 엔지니어들이나 정아린도 가끔 사 오던데….”

“잘났다, 잘났어.”

김 실장은 절반 이상 남은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정이 있어서 먼저 일어난다.”

“예, 조심히 가십쇼.”

“현승아,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이라며. 그러니까 밥 좀 잘 챙겨 먹으면서 일해. 애처럼 옷에 뭐 좀 흘리지 말고.”

그 말에 현승이 “또 잔소리.”하며 대강 끄덕이고는 다시금 식판에 고개를 파묻었다. 김 실장이 전해 준 소시지를 얹어 밥을 크게 한입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우적우적 턱 운동을 하며 고개를 들어보니 식판을 반납하는 김 실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 듯 보였다. 자신이 아는 김 실장은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릴 만큼 불안정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태풍이 휘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것처럼 거세게 요동치고 있었다.

제 전생의 경험을 빗대어 예상해 보자면….

아예 업을 바꾸고자 고민하거나, 둥지를 바꾸고자 고민하거나 둘 중 하나일 테지. 김 실장처럼 이 직무가 천직인 사람이라면 업 자체를 버리지는 않을 것 같고, 능력이 좋은 사람이니까 어제 전 본부장이라는 사람을 만나러 나갔다가 스카우트 제안이라도 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 저리도 들꽃처럼 흔들리며 고민하는 거고.

연예계란 자고로 가변성이 심한 업계다. 김 실장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다만, 본인은 언제나 늘 이해한다며 수용하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입장이었겠지.

LS 엔터의 수많은 임직원 중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근속 근무자, 그게 바로 김우현 실장이다. 어른스러운 척 떠들어봤자 결국 자신이 주도한 이별은 몇 번 해 보지도 못했을 거다.

현승은 뭔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김 실장의 뒤를 쫓았다.

“김 실장님.”

“응?”

“쉽게 쉽게 생각해요.”

“뭘?”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더라?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괜히 낯간지러운 단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냥….”

그중 최대한 담백한 말을 고르고 골라 무심히 뱉었다.

“정 때문에 우물쭈물하다가 본인이 손해 보지 마시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소시지 받았으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 먼저 갈게.”

그 답을 끝으로 황급히 식당을 나서는 김 실장의 표정을 보아하니 모쪼록 자신의 예상이 맞는 듯 보였다. 평생 김 실장과 함께 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이 업계가 으레 그런 곳이니까, 그가 언제든 더 좋은 둥지로 날아가겠노라 하거든 지지하고 응원해 줄 요량이었다.

다만.

이제 그는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자신이 붙잡으려는 시도 정도야 몇 번이고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모든 관계에서 아쉬운 사람이 손해도 보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대가도 지불하는 거다.

자신은 사람 간의 관계에 평등이라는 말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자식 관계, 남녀관계, 김 실장과 나 같은 동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하는 얘기다.

그래.

전생에서도 자신이 소속된 기획사 혹은 여타 다른 기획사들은 항상 자신에게 아쉬운 기색을 보이며 탐스러워할 만한 대가를 지불하겠노라 청해 왔다.

그럴 때면 한낱 정이나 도의 따위보다는 눈에 확실히 보이고 수치로 계산되는 대가들을 나열한 뒤 무게를 재고, 따져 본 다음에야 자신이 옮길 둥지를 선택했다.

그런 자신이, 그렇게나 현실적인 내가.

김 실장에게는 정이라던가 도의적 책임 같은 한낱 힘없는 감정을 명분 삼아 제 곁에 남아 있어 달라고 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자신 또한 이 아쉬움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겠지. 물론, 선택은 그가 할 몫이지만 자신은 얼마든지 대가를 지불할 의향이다.

그래, 그는 이제 내게 그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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