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57화 (57/118)

57화

현아는 친구들과 시내로 나섰다. 머지않아 치러질 졸업식을 앞두고 함께 추억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우리 이제 졸업하면 이렇게 다 모이기도 힘들겠다.”

“에이, 주말이랑 방학에 자주 보고 그럼 되지!”

“맞아! 그럼 우리 아직 저녁은 이르니까 카페부터 갈까?”

“그러자, 그러자! 여기 요즘 핫플인 카페 있다더라.”

“나 이제 어른이니까 아메리카노 마실 거야.”

“헐? 윤정이, 허세 부리다가 돈 날린다에 한 표.”

졸업을 앞둔 여고생들의 마음은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처럼 들뜬 상태였다.

“어?”

북적거리는 걸음을 옮겨 시내 중심에 있는 대형 카페 안으로 들어서던 찰나였다.

“이 노래, 그거 아니야?”

“어, 알아, 뭐더라?”

“Dear my Beethoven이잖아!”

현아의 오빠이자 작곡가 ‘HS’의 개인 앨범 타이틀 곡인 ‘Dear my Beethoven’이 카페 내부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아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메뉴 선정에 앞서 곡에 대한 평을 늘어놓았다.

“이 곡은 암만 들어도, 들어도 질리질 않아.”

“맞아, 문범재 노래 중에는 이 곡이 제일 좋아.”

“이거 문범재가 그냥 피처링 해 준 거잖아.”

“엥? 그럼 이거 누구 노래야?”

“작곡가 개인 앨범 타이틀곡이야! 너 ‘HS’라고 몰라?”

그들의 대화를 한 걸음 뒤에서 듣고 있던 현아가 움찔했다. 커피 주문은 뒷전으로 미뤄 둔 채 나온 이야기 끝에 나온 이름 때문이었다.

HS.

그건 제 오빠의 필명이다. 단순한 성향답게 제 이름인 현승에서 이니셜을 따와서 만들었다고 한다. 자신보다 3살이 많은 현승은 어릴 적 자신을 제법 잘 챙겨 주는 다정다감한 오빠였다.

그러나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점차 사이가 소원해지고, 대화도 점점 단절되어 갔다. 까칠하고 무뚝뚝한 성격 때문인지 친구도 거의 없는 듯, 집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드물었다.

여동생으로서 오빠를 바라봤을 때 대체 언제까지 히키코모리처럼 집구석에서 시간을 허비할까?-라는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한심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나?

하지만 제 오빠는 큰 사건도, 사고도 없이 사람이 180도 바뀌었다. 별안간 작곡가로 일한다고 할 때만 해도 돈벌이는 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집안 생활비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가장 노릇을 하며 살뜰히 가족을 챙기고 있다.

정말로 사람은 각자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있는 건지, 공부랑은 담을 쌓고 살던 사람이, 작곡은 시작하자마자 서지니를 비롯하여 정아린, 공효주 그리고 이번 본인의 개인 앨범까지 흔히 대중들이 ‘히트곡’이라 불릴 수치의 기록을 세우며 이름을 알렸다.

덕분에 넓고 좋은 아파트로 이사도 가고, 처음으로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가 보고, 돈 걱정 없이 교재도 살 수 있었고, 대학 등록금 또한 학자금대출을 받지 않아도 갈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그래.

이 모든 건 지난 1년 만에 제 오빠인 현승이 해낸 일이었다.

“야, 애들아 근데 HS, 진짜 잘생겼을 것 같지 않냐?”

“뭐? 잘생겼어? 사진 봐 봐! 나도 볼래!”

“아직 얼굴은 노출이 안 됐고, 눈매만 살짝 나온 사진 있어.”

친구들은 커피를 주문한 이후에 자리에 앉아서도 제 오빠인 ‘HS’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커뮤에 누가 HS 예상 몽타주 올렸거든? 이거 봐봐. 진짜 대존잘 냄새나지 않냐?”

“헐? 도레미침. 리얼 얼굴 말 안됨. 야, 딱 봐도 이 사람 내 미래 남자친구 관상인데?”

“뭐래, 이년이? 이미 내 남친인데? 나 이번에 그 사람 팬카페까지 가입했잖아.”

현아는 괜스레 제 낯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매번 오빠의 소식을 찾아서 보는 편이라 이미 제 오빠에게 팬카페가 생기고 몽타주가 떠돌고 있다는 사실 정도야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동생으로서 HS….

그러니까 제 오빠의 얼굴은 매일 봐 왔기 때문에, 잘생겼다고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았다. 그런데 제 친구들 입을 통해 이런 말들을 듣고 있노라니 낯 뜨겁고 창피해질 따름이었다.

“진짜 한 번만 얼굴 제대로 보고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이!”

“그냥 확 얼굴 한번 시원하게 까 주면 좀 좋아?”

어차피 제 오빠는 노출되기를 꺼리는 듯 보여, 주변에 자랑도 못 하지만 이젠 정말 자랑하라고 해도 못 할 만큼 너무 유명 인사가 되어 버렸다.

그래, 제 친오빠지만 어색하고 낯설고 이상했다.

그래서 그런가?

바빠진 일정 탓에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얼굴 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 이따금 서운함을 느꼈다.

그렇게 현아가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 채 차가운 레몬에이드로 속을 진정시키던 찰나였다.

“현아야!”

친구의 부름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껌뻑였다.

“너 왜 근데 계속 아무 말을 안 해?”

“어? 뭐가?”

“혹시 너도 작곡가 HS, 몰라?”

모를 리가, 같은 지붕 아래 사는 자신의 오빠인걸.

“글쎄? 그런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하지만, 괜히 아는 척하며 칭찬에 맞장구를 쳤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말실수를 할 것 같아서 아예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렇구나. 관심 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너 집 여기 근처로 이사했다고 하지 않았어?”

“맞아, 맞아! 좀 되지 않았나? 집들이 초대 안 해 줘?”

뱃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나? 친구들은 ‘HS’에 대해서는 언제 얘기했냐는 듯 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하필 그 방향이 이쪽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 집들이 겸 졸업하기 전에 파자마 파티하고 그러면 재밌을 것 같은데?”

“미안해,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오빠가 친구들 오는 걸 안 좋아해.”

“헐? 현아, 너 오빠 있었어? 나 왜 몰랐지? 말 안 해서 난 너 외동인 줄 알았어.”

현아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화 화제의 방향이 자신의 오빠로 향하지 않기를 바랐다. 제발, 제발…다른 얘기가 나오길 바라며 시선을 피하던 찰나였다.

지이이잉-!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 지금 회사로 내 옷 좀 챙겨다 줄 수 있냐? ]

자신의 오빠로부터 온 문자였다.

[ 잠깐이라도 집에 들를 시간조차 없는 거야? ]

[ 요즘은 좀 힘들어. ]

[ 나 지금 친구들하고 놀러 나와 있단 말이야. ]

[ 용돈 50만 원 ]

뭐? 50만 원? 참나, 이 오빠가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나.

이윽고.

현아는 타자를 빠르게 두들겨 답장을 보냈다.

[ 그래서 제가 뭘 챙겨가면 된다고요, 오라버니? ]

.

.

.

“와-.”

현아는 높게 솟아오른 LS 엔터 사옥을 올려다보며 감탄 지었다.

“대박….”

웬만한 사람은 사옥의 규모만으로도 기가 죽을 정도인데, 이런 곳에 제 오빠가 소속 작곡가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현아는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물론.

LS 엔터가 국내 탑3 안에 드는 대형 엔터고, 제 오빠가 소속되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눈앞에 와서 보니 몸으로 느껴지는 체감 자체가 달랐다.

좀 멋진데?

옷가지가 가득 담긴 쇼핑백을 흔들며 입구로 들어서려 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입구 근처에 모여 있는 여고생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는 오늘도 안 나오겠지? 내가 그날 있었어야 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좀 더 기다려보자.”

“만약에 나오면 이번에는 아예 헬멧을 벗어 달라고 해 볼까?”

고개를 돌리니 ‘HS’라는 글씨가 새겨진 플래카드와 전해 줄 선물을 품에 가득 끌어안고 있었다. 마치 제 오빠가 연예인이라도 된 듯, 그들은 추운 날씨에도 혹시나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제 친구들이 칭찬할 때는 다소 낯부끄러웠는데, 이제는 뿌듯함이 들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제 오빠가 객관적으로 잘생긴 얼굴은 맞으니까.

“오빠, 나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

- 로비에 카페테라스 가 있어. 내려갈 테니까.

“음, 아니면 나 오빠 작업실 구경해봐도 돼?”

- 그러던가. 그럼 보안요원한테 전해 놓을 테니까, HS 찾아왔다고 말하고 손님용 게이트로 들어와서 B 구역 엘리베이터 타고 2층으로 올라와.

툭-.

전화가 먼저 맥없이 종료되어 버렸지만, 괜찮다. 이게 제 오빠만의 표현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다.

보안이 철저한 LS 엔터인 만큼 허락된 손님이라 할지라도 명확한 신분을 확인한 후에야 게이트를 통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B 구역, 2층이라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어 2층을 누르고 문이 닫히려던 찰나였다.

“저, 잠시만요! 같이!”

선글라스를 낀 여자가 허겁지겁 닫혀 가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뛰어 들어와서는 재차 “감사해요.”하고 인사를 전했다. 현아는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이 여자, 정아린이다.

선글라스로 가려도 드러나는 청순하고 고운 얼굴선이 누가 봐도 정아린이 확실했다.

“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정아린이 별안간 선글라스를 슬쩍 들어 올리며 눈매를 좁힌 채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왜, 왜 그러시죠?”

“혹시… HS? 아, 아니에요.”

이내 정아린은 고개를 내 젓고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며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띠링-!

2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앞에는….

“오빠?”

“작곡가님?”

제 오빠인 민현승이 서 있었다.

“어, 정아린 하이.”

“하, 하이….”

정아린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펼쳐 들어 자신과 오빠를 번갈아 가리켰다.

“어… 혹시, 그, 작곡가님의 여동생분?”

“맞아, 내 여동생.”

“어머, 어머! 어쩐지 닮았더라니!”

“그런가? 뭐, 남매니까.”

그리고는 특유의 비타민처럼 상큼한 미소를 선보이며 제 두 손뼉을 쳐 보였다.

“현아 씨, 맞죠?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작곡가님이 하도 여동생분, 칭찬을 많이 했거든요.”

그 말에 현아와 현승이 동시에 소리치듯 물었다.

“오빠가요?”

“내가 언제?”

정아린은 둘의 반응을 보고 “역시 남매네!”라며 꺄르르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니, 작곡가님 은연중에 자기 여동생이 나중에 연예인 한다고 그럴까 봐 걱정이라는 둥 뭐 학원도 제대로 안 다녀 봤는데 공부를 엄청나게 잘한다는 둥, 이번에 좋은 대학도 한 번에 탁 붙어서 대견하다고 막 칭찬 많이 했잖아요.”

“그거야 뭐, 다 사실이니까….”

현승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뒷말을 흐렸다.

“작곡가님처럼 로봇 같으신 분도 쑥스러워할 때가 있네요!”

“헛소리 그만하고, 너 안 바빠?”

“아, 맞다! 다음 앨범 컨셉 회의하러 가는 중이었는데!”

이윽고.

정아린은 다음에 꼭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긴 채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조, 조심히 들어가세요…!”

현아는 지금 이 상황이 모두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연예인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기도 처음이고, 그 연예인이 제 오빠에게 “작곡가님”이라는 존칭을 쓰며 스스럼없이 지내는 모습도 처음이고, 오빠가 밖에서 제 칭찬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안 것도 처음이었다.

다만.

그로 인한 감동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현아야, 너 얼굴에 연예인 처음 보는 거 다 티나.”

“당연히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지!”

“내가 말했었지? 시골 쥐라는 동화책 한번 꼭 봐 봐.”

“또, 또 놀리려고!”

“도플갱어 한 번쯤 보고 싶지 않아?”

“민현승, 진짜 짜증나!”

현승이 장난스러운 말과 달리 애정이 묻어나는 손길로 현아의 어깨를 잡아 작업실로 이끌었다.

끼이익-.

두꺼운 방음벽으로 이루어진 문이 열리자, 깔끔하고 쾌적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와아-!”

안 그래도 멋진 공간이었지만, 제 오빠만의 작업실이라고 하니 더욱 멋들어져 보였다.

“시골 쥐.”

“야!”

“찍찍.”

자신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오빠를 한껏 째려봐 준 뒤, 다시금 시선을 옮겨 천천히 작업실 내부를 살폈다. 정말, 이게 제 오빠가 혼자 사용하는 작업실이라고?

척 보기에도 비싸고 복잡해 보이는 전자 장비들과 케이스에 담긴 수많은 악기가 이 공간에서 제 오빠의 모든 곡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었다.

물론, 장비 때문에 성공하진 않았으리라.

대중의 한 명으로서 객관적인 귀로 작곡가 HS의 곡을 들었을 때 하나 같이 모두 좋았다. 고로, 장비가 아니라 제 오빠의 재능이 성공의 원인일 터였다.

“우리 오빠가 성공하긴 했나 보네!”

현아가 신난 얼굴로 소파에 늘어지며 조잘거렸다.

“이런 곳에서 일을 다 하고 말이야! 그리고 오늘 친구들 만났는데 아주 오빠 얘기만 하더라? 사옥 앞에 팬들도 기다리고 있던데, 아주 연예인 다 됐어-!”

“마음만 먹으면 연예인 정도야 할 수 있지.”

“얼씨구? 근데 진짜 요즘 어딜 가나 오빠 노래가 나와서 신기해. 어떻게 그런 노래를 그렇게 뚝딱뚝딱 만드는 거야? 확실히 타고났나 봐!”

그리고는 제 옆에 앉은 오빠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어…?

순간 현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가까이서 오랜만에 가까이서 바라본 오빠의 얼굴이 제법 많이 상해 보인 까닭이었다. 피부가 푸석하고, 눈 아래로는 잔뜩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다시 시선을 옮겨보니 콘솔 위로는 다 먹은 커피 잔이 쌓여있고, 쓰레기통 안으로는 찌그러진 고카페인 음료 캔이 가득 보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잔뜩 챙겨온 옷가지가 든 쇼핑백으로 시선을 옮겼다.

‘먼저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볼걸.’

후회됐다. 일을 하느냐 집을 못 들어오는 오빠에게 먼저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필요한 건 없는지 살폈어야 했는데 되레 서운한 감정을 품었다.

하물며 옷가지를 챙겨다 달라고 했을 때 귀찮다고 생각해 놓고선, 용돈을 준다는 말 한마디에 몸을 일으켰더랬다. 철딱서니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래, 아무리 좋아 보여도 이곳은 일터다.

집이 주는 편안함은 찾아볼 수도 없는, 무거운 공기만이 부유하는 이 작업실에서 카페인 따위에 의지해 밤을 새워 가며 홀로 밤을 지새웠을 오빠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잠시 착각했다.

오빠의 곡은 뚝딱뚝딱 나온 창조물이 아닐 터였다. 오로지 재능 하나만으로 성공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 재능 하나밖에 가진 게 없다면 바짝 성공한다고 해도 잠시뿐이겠지.

재능은 베이스로 깔리는 거고, 그 위로 오빠의 노력과 시간이 켜켜이 쌓여 폭발적인 성공을 끌어낼 수 있던 거다. 그 성공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전쟁을 거듭하며 버텨 내고 있었을 텐데….

못 본다고 서운해할 때가 아니었다.

다른 집이었다면 그저 누군가의 아들로서 살 수 있었을 텐데, 제 오빠는 지금 아빠와 자신을 책임지고자 아득바득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분명 무겁고, 버거우며, 부담되었을 거다.

현아가 미묘하고 복잡해진 심경에 고개를 푹 숙이고 상념에 빠져들자 현승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근데 다시 친구들 보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

“아, 응. 이제 가야지.”

“그래, 옷 챙겨 와 줘서 고맙고.”

그리고는 용돈이 들어 있는 돈 봉투를 내밀었다.

“아껴 써라. 졸업 미리 축하하고.”

차마 지금의 마음으로는 받을 수 없었기에 손사래를 쳐 보였다.

“아냐, 괜찮아. 나 저번에 크리스마스에 받은 용돈도 남았어.”

“약속한 거니까 받아.”

“진짜 괜찮아. 오빠가 힘들게 곡 만들어서 버는 돈이잖아.”

현승이 작게 “하여간, 별생각을 다 해.”하며 중얼거리고는 현아의 자그마한 손에 봉투를 쥐여 줬다.

“난 재밌게 만들어서 돈 버는 거니까, 너는 요 작은 머리통으로 쓸데없는 생각 말고 대학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고개를 들어 바라본 오빠에게서 아빠의 형상이 겹쳐 보였다. 무겁고, 버거우며, 부담되지만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인고하며 버티고 견뎌 왔을 가장의 형상 말이다.

“알겠어, 나 진짜 열심히 할게.”

“오냐.”

모쪼록 오빠의 일터에 와 보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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