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58화 (58/118)

58화

동물의 섬 OST 프로젝트는 몹시 흥미로웠다. 한때 열광하던 게임이라 그런 탓인지는 몰라도 각 테마를 머리로 그려 내고 그걸 악상으로 만들어 내는 일 자체가 재밌었다.

그렇다고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곡의 수가 많다는 점도 있지만, 아예 새로운 장르의 도전이기도 한만큼 새로운 코드와 악기를 활용해서 각각 다른 색깔을 지닌 테마를 살리고 싶다는 욕심이 그득한 까닭이었다.

그래서일까?

현승의 작업실 내부는 한참 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이윽고.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옥상을 찾았다. 손을 위로 쭉 펼치며 몸을 비틀어 보이니 “으아”하는 괴성이 흘러나왔다. 너무 오래 앉아있긴 했나 보다.

“김 실장님, 오늘도 안 오시네.”

문득 김 실장의 부재를 깨달은 현승이 작게 중얼거렸다.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 말이었다. 뭐, 주변에 들을 사람도 없으니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도 되겠지.

이직의 낌새를 흘린 그날 이후로 도통 김 실장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정말 이직 준비를 하느라 바쁜 건지 아니면 다른 용무로 바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뭐랄까?

고작 제 일과에서 누군가의 잔소리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하루의 시작이 다소 허전하게 느껴졌다.

“아….”

잡생각을 떨쳐 내기 위해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그에게 쥐어진 일을 해내고 있을 거고, 나는 지금 나의 일을 해내면 되는 거다. 그래,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간을 보내면 될 일이다.

현승은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굳은 몸을 풀어 나갔다. 스트레칭을 위해 점퍼를 벗고 나왔음에도 제법 따스해진 공기가 몸을 감싸고, 뺨을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봄이 오려나 보다.

그래, 사람의 심장을 말랑거리게 하고, 괜스레 들뜨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계절이 찾아오려는가 보다. ‘봄’이라는 단어를 곱씹고 있노라니 문득 자신이 전생에 만들었던 ‘벚꽃 한 줌’이라는 곡이 떠올랐다.

매년 봄마다 제게 연금을 안겨다 준 곡이었다. 차트에 ‘벚꽃 한 줌’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봄이 찾아오고 있다는 증표’라는 말이 할 정도로 봄 테마곡 중에서는 누가 뭐래도 원탑이라 할 수 있었다.

“음….”

현승은 스트레칭을 멈추고 잠시 벤치로 자리했다. 요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의 모든 개인 작업까지도 멈춰 둔 채로 동물의 섬 OST 작업에만 목을 맸다. 이렇게 장기간을 한 작업에만 몰두하는 건 전생에도 거의 없던 일이다.

물론 그만큼 재밌고, 많은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유의미한 작업이다. 다만 오히려 너무 한 가지만을 오래 바라본 탓에,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터벅, 터벅-.

그래,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 가끔 간식거리도 먹어 줘야 하는 법이지. 결심이 바로 서자 곧장 걸음을 옮겨 작업실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새로운 ‘벚꽃 한 줌’을 만들어야지.

전생에서도 따라와 준 결과에 비해 다소 아쉬움이 남은 작업물이다. 이번에는 봄에서 그치지 않고,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계절 테마곡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렇게 4가지의 곡이 모두 대한민국의 사계절을 대표하는 곡으로서 자리매김에 성공해 낸다면, 전생과 달리 봄에 국한되지 않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행복할 테지.

“자, 다시 한번 가 볼까.”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자, 그에 걸맞은 악상이 머리 안으로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온다. 심장이 리듬을 타며 쿵쾅거리고, 제 손은 제멋대로 반응했다. 현승의 입꼬리가 기분 좋은 호선을 그려 내자 작업실 내부가 다시 한번 시끄러워졌다. 현승의 손끝에서는 꽃잎이 흩날리는 듯 살랑거리고, 새롭게 마음을 단정한 연인들처럼 사랑스러운 선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래.

현승에게 있어서 이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리프레쉬 하는 작업일 따름이었다.

* * *

늦은 점심, 최 이사는 사옥 근처에 있는 제 단골집을 찾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다니던 곳으로 간혹 생각이 날 때면 종종 들리는 식당이다.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낡은 내부를 가득 채우는 따듯한 공기와 함께 구수한 돼지국밥 냄새가 자신을 반겼다.

“이모님, 돼지국밥 하나 부탁드립니다.”

최 이사가 구석진 자리 하나를 꿰차고 앉아 주문을 끝냈다. 음, 언제 나오려나. 냄새를 맡고 있자니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배를 달래며 흘끔흘끔 고개를 돌리던 찰나였다.

“어? 최 이사님?”

제 단골 식당 안으로 낯익은 남자가 들어섰다.

“어,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오늘 구내식당 메뉴가 마음에 안 들어서요.”

“그럼 같이 들지. 여기로 앉게.”

그 낯익은 남자는 자신이 맡은 2팀의 전속작곡가인 현승이었다. 갑작스레 이루어진 겸상으로 따듯한 공기는 다소 어색한 흐름을 탔다.

“여기 국밥 하나 더 부탁드립니다.”

추가 주문을 끝으로 둘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뚝배기가 앞에 놓이고 나서야 입술을 떼어 냈다.

“잘 먹겠습니다.”

“어어, 천천히 먹게나.”

형식적인 말과 함께 다시금 찾아온 정적이 깨진 건, 뜨거운 국밥으로 인하여 콧잔등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혀 갈 때쯤이었다.

“그러고 보니, 김 실장은 어쩌고 혼자 왔나?”

“요즘 바쁘신지, 도통 얼굴 뵙기가 힘드네요.”

“그렇지, 그 친구는 인생이 바쁜 사람이니까.”

최 이사는 김 실장을 떠올리자 괜스레 밥알이 목에 탁 걸린 기분이었다. 처음 입사했던 때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어린놈이 무리해서 일한다 싶더라니, 홀어머니의 병원비를 벌기 위함이라며 늘 괜찮다는 말을 습관처럼 해 댔다.

그리고는 제게 시키지도 않은 각오를 늘어놓았더랬다. 뭐든 시키는 건 다 하겠다고 자신에게 크게 소리치던 젊은 날의 김 실장이, 다 잘할 수 있다며 악바리에 차 있던 그의 얼굴이 뇌리에 박혀 제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김우현….

그는 그렇게 제 이름도 없이 실장이라 불리며 청춘을 받쳐 열심히 홀어머니의 병원비로 다 쏟아부었지만, 겨우 완치 판정을 받아낸 췌장암이 얼마 전 다시 재발한 모양이었다.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최악의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아직 초기이고, 다른 장기로 이전되지 않은 상태라 수술과 항암만 잘 이겨 낸다면 생존율은 제법 높은 편이라는 거였다.

그래, 이제 김 실장도 어머니를 위한 삶이 아닌 제 삶을 준비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맘을 놓았었는데, 신이라는 놈은 야박하게도 다시금 그 녀석의 어깨를 짓눌러 무릎 꿇렸다.

“휴.”

최 이사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들어 현승을 바라봤다. 머리통을 뚝배기에 집어넣을 기세로 우적우적 국밥을 참 잘도 먹는다. 김 실장이 없는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이 녀석을 구내식당에 데려가 밥을 먹이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김 실장, 속 썩이지 마라.”

최 이사는 국밥에 시선을 고정해 놓은 채 덧붙였다.

“안 그래도 속이 썩어서 문드러진 놈이야.”

아무리 김 실장이 아끼는 놈이라지만, 자신에게 있어서 더 아픈 손가락은 김 실장이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현승이 활발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지만, 최 이사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혹시 최 이사님도 뭔가를 눈치채신 걸까? 아니지, 그렇다면 속 썩이지 말라는 당부보단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냥 네가 옆에서 잘 좀 챙겨 주라고.”

그러나 최 이사는 의미심장한 대답만을 남긴 채 묵묵히 국밥을 떠먹을 뿐이었다.

대체 뭘 잘 챙겨 주라는 거지?

잡을 수 있으면 잡겠노라 결심하긴 했지만, 자신이 뭘 어찌할 수 있겠는가? 뭔가 확실한 이직 언급이 있던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돈뭉치를 건네며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나?

특히 김 실장이 정말 이직을 결심한 게 맞다면 당장 눈앞에 돈보단 제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한 것일 테니, 그런 우직한 사람을 잡으려면 어떤 아쉬움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제가 챙길 게 뭐 있나요. 뭐든, 다 알아서 잘하시는 분이라.”

한참을 망설이다 말고 대답을 내뱉은 현승의 얼굴이 어딘가 씁쓸해 보였다.

‘음?’

최 이사는 저 표정의 의미를 알 수는 없었지만, 김 실장의 생각으로 비롯된 표정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김 실장이 티를 안 내서 몰랐겠지만, 아픈 홀어머니가 있어.”

“예? 김 실장님의 어머니가 아프세요?”

“그래, 더군다나 외동아들이라 홀로 모든 걸 짊어지고 있지.”

“혹시 어디가 얼마나 아프시다는데요?”

“2년 전에 완치 판정받았던 췌장암이 다시 재발했다더구나.”

현승이 작게 “아.”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전생에서 자신의 아버지도 췌장암으로 병원에 오랜 기간 누워 계셨던 게 떠올라서였을까? 제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마 벙 찐 표정을 짓고 있을 거다. 아니, 아니지. 아주 조금은 슬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정말 많이 힘드시겠는데요.”

“힘들게야, 버는 족족 다 병원비로 나가고 있을 테니까.”

“항암치료와 입원비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그 와중에 매일같이 병원에 간다는데 아주 곤욕일 거다.”

“그러게요, 그거 정말 보통 일 아닌데….”

이야기를 듣는데 계속 전생의 제 모습이 겹쳤다. 심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아픈 아버지를 동생에게 맡긴 채 병원비만 내주고 나 몰라라 했었다.

사실 돈 내주는 일이 제일 쉽지. 가장 어렵고, 제일 힘든 건 아픈 가족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근데, 김 실장은 그걸 둘 다 홀로 해내고 있다는 말이지 않나?

“저는 정말 이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평상시에도 아예 본인 얘기를 잘 안 하시기도 하고, 얼굴에 힘든 티도 아예 안 났거든요.”

“네 말대로 혼자 알아서 잘하는 놈이니 티를 낼 리가 있나. 근데 그런 상황에도 남들보다 더 빨리 나오고 남들보다 더 늦게 들어가면서 일까지 잘하니 내가 더욱 예뻐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주변에서 김 실장님을 탐내는 것 같더라고요.

이 말은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최 이사가 눈치를 챘는지 아닌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김 실장이 먼저 얘기하기 전까지는 참고 기다려줘야 할 문제다.

“그러니까 네가 잘 좀 해라. 속 썩이지 말고.”

“제가 뭐 자식도 아니고, 설마 저 때문에 속을 썩이시겠어요?”

“걔가 우직하니 강단 있어 보이지만, 또 제 사람한테는 유달리 약한 면모가 있어. 그러니 자네가 사고 치더라도 제일 먼저 나서서 대변하고 챙겨 주는 거 아니겠나? 너를 정말 자기 사람이라고 받아들인 게지.”

자기 사람이라….

맞지, 나는 그의 사람이 되었고, 그 또한 내 울타리 안에 들어온 지 오래였다.

“나는 챙길 자식들이 너무 많다 보니 김 실장에게만 집중해 줄 수가 없는 처지라서 말이다.”

최 이사가 수저를 “탁”하고 내려놓으며 단호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네가 더 신경 써서 챙겨 주고 그래야 한다.”

묵묵히 최 이사의 말을 듣던 현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는 뚝배기를 그릇째로 들어 올려 벌컥 들이켰다.

이윽고.

한 방울도 남지 않은 빈 뚝배기를 다시금 내려놓으며 무심한 투로 답했다.

“예, 김 실장님은 제가 잘 챙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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