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67화 (67/118)

67화

K-싱어스타의 참가자 모집이 끝이 났다. 이제 곧 온라인 심사를 거쳐 지역별로 2차 예선전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HS가 출연하기로 한 건, 1차와 2차가 모두 끝난 뒤 진행될 최종 예선전부터였다.

그때까지 2주 이상의 시간이 남은 상태다.

근데, 왜….

“예? 작곡가님, 잠깐… 아예 준비를 안 하셨다고요?”

최종 결승전에 쓰일 경연곡 준비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확인차 연락해 보니, 준비는커녕 이제야 인지했다는 듯 “아, 맞다.” 하는 멍한 대답이 돌아왔다.

─ 근데 아직 본선 시작도 안 했는데 왜 벌써 준비하죠?”

황당해서 어버버거리는 자신에게 HS는 되려 한술 더 뜨며 되물어 왔다.

“이런 프로그램 출연은 처음이라 잘 모르실 텐데 막상 본선 시작되면 정신도 없으실 테니, 미리미리 준비하시는 게 더 나으실 겁니다.”

─ 걱정은 감사하지만, 그때 가서 만들면 됩니다.

K-싱어스타 음원 담당자는 수화기 너머로 들리지 않을 한숨을 내쉬었다. HS는 유명 작곡가일 뿐, 방송에 있어서는 초짜인 사람이니까 그때 가서 만들면 된다는 말을 이리 쉽게 할 수 있는 거다.

충분히 이해는 한다지만….

첫 통화만으로 HS에 대한 인식이 밉상으로 바뀌어 갔다.

“HS 씨가 하시는 말씀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만….”

작은 역할을 맡은 스태프부터 총괄 CP까지 모두가 이 프로그램을 위해 온 힘을 다하여 기획하고 제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나?

그런 와중에 요즘 핫하다는 이유만으로 헬멧 착용이라는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더니, 더 나아가 거드름을 피우는 모습이 얄밉게 보일 따름이었다.

“제이블 씨는 이미 곡 만들어서 넘겨주셨거든요. 왜 그러셨겠어요? 그때 가면 곡 작업하기가 버거우니 그러신 거 아니겠어요?”

담당자는 제 관자놀이를 누르며 억눌린 목소리로 덧붙였다.

“이런 말씀 드리기 조심스럽지만, 그때 가서 만든 곡이 없다고 하시거나 저희가 HS 씨에게 기대하는 수준 이하의 곡을 주시면 저희 입장이 무척 곤란해집니다.”

말을 끝내자 수화기 너머는 정적이 흘렀다. 너무 세게 말했나? 혹시 이제 와서 계약 파기하겠다고 하면 어쩌지? 불현듯 불안함이 밀려왔지만, 말을 정정하지는 않았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HS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흥미도 있지만, 높은 퀄리티의 곡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기에 ‘헬멧 착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안도 받아들이고, 제작비 중 큰 비율을 태워서 메인 심사위원으로 세워 놓은 거다.

근데 만약 자신들이 생각한 정도의 퀄 높은 곡이 뽑히지 않아 대중들의 반응이 미지근하다면, 음원 담당자들은 다 같이 쿠사리를 먹을 것이고, 총괄 CP는 방송국장에게 시말서를 제출하는 둥 여러모로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터였다.

“여보세요? HS 씨?”

한참 동안 이어지는 정적에 전화가 끊겼는지 뺨에 붙여 놨던 휴대폰을 떼어 내 확인하려던 때였다.

─ 담당자님, 결승전에서 부르게 될 사람한테 맞춰서 곡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체 벌써 만들어서 무슨 소용입니까?

일순 제 입을 틀어막게 할 정도의 고압적인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 무슨 걱정 하시는지는 충분히 알겠는데 걱정하실 일 없을 테니 이만 끊겠습니다.

오히려 고저 없이 이어지는 말들은 더욱 서슬 퍼렇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저, 저기 HS 씨, 그게 아니고요….”

담당자가 당황한 투로 황급히 말을 이어 나가려던 찰나.

툭-.

전화는 맥없이 끊겨 버렸다.

동시에 HS가 한 말대로 결승전에서 제대로 된 경연곡을 전해 줄 수 있을지 염려 섞인 한숨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하…….”

이윽고.

머릿속으로 HS의 상상 속 몽타주를 그려 나가고 있었다.

“이 녀석, 성깔 있네.”

매섭고, 부리부리하며, 험상궂은 몽타주를 말이다.

* * *

김 실장은 한쪽 귀와 어깨 사이에 휴대폰을 끼운 채로 전화를 걸었다.

“어, 현승아. 지금 네 곡 유통사에 곡 넘기고 오는 길이야.”

─ 일자는요?

“최대한 벚꽃 개화 시기 맞춰서 잡아 달라고 했지.”

─ 예, 감사합니다.

“뭐해? 나 미팅 나가기 전에 점심이나 같이 먹을까 싶….”

갑자기 귓가에 전해지는 진동에 액정을 확인하니 유통 담당자로부터 전화가 들어오고 있었다.

“현승아, 잠시만 나 전화 들어온다. 다시 전화할게.”

김 실장은 벌써 발매 일자가 잡힌 건가 싶어 황급히 전화를 당겨 받았다.

“어, 일자 벌써 잡힌 거야?”

─ 그건 아니고요, 좀 이슈가 생겨서 연락드렸어요.

김 실장은 곧장 “무슨 이슈?”하고 되물었다.

─ 다름이 아니라, 며칠 전에 유통 들어온 곡 중에 넘겨주신 곡이랑 진짜 유사하게 느껴지는 곡이 있어서요.

“뭐? 유사한 곡이 있다고?”

─ 네, 유통 직원들은 하나같이 다 표절 같다고 하거든요. 제가 들어도 그런 것 같거든요.

그 말을 듣자 김 실장은 얼마 전 자신이 현승에게 건네받은 USB를 분실했던 일이 떠올랐다.

설마, 아니겠지….

김 실장이 불안함에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담당자가 먼저 말을 덧붙였다.

─ 아무래도 이거 빨리 확인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저기, 혹시 누가 넘긴 건지 알 수 있을까?”

─ 저, 그게, 1팀 팀장님이 넘겼습니다. 전달받은 음원도 메일로 지금 보내 드릴게요.

“그래, 고맙다. 바로 확인해 볼게.”

전화가 끊어진 까매진 액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눈앞마저 깜깜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김 실장은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며 정신을 다잡았다. 자신이 분실한 USB를 누군가 주워서 정말 표절한 거라면, 자신이 책임지고 급선무로 처리해야 할 문제다.

‘현승이에게 말해야 하나….’

그리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자신이 먼저 상황을 파악한 뒤 제힘으로 해결을 다 하고 전해 줘야 하는 게 맞을지, 아니며 현승에게 먼저 알리고 함께 확인해야 할지….

복도에 덩그러니 선 채로 무엇이 정답일지 곱씹었다.

이윽고.

김 실장은 현승의 작업실을 향해 걸음을 돌렸다. 그래, 어찌 되었건 원작자가 몰라선 안 될 일이니까.

.

.

.

현승의 작업실을 찾은 김 실장은 유통사로부터 전달받은 일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는 둘이 함께 1팀에서 넘겼다는 음원을 확인해 본 결과….

흔히 ‘막귀’라 불리는 사람이 들어도 현승의 ‘벚꽃 한 줌’과 1팀에서 넘겼다는 ‘spring ending’은 같은 곡이라 착각할 정도로 유사했다.

“하….”

김 실장은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연거푸 벅벅 마른세수를 해 댔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무렵에서야 입을 열었다.

“이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들어도 알겠다.”

“그러게요.”

현승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김 실장은 그런 현승의 표정을 살폈지만, 변화는 없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 그래도 자신이 만든 곡을 누군가 표절한 것이 아니던가?

그래.

지금 중요한 건 지나칠 정도로 의연한 현승의 태도에 관한 궁금증 따위가 아니지. 자신으로 인하여 생긴 이슈를 얼른 해결해야만 했다.

그에 앞서….

“아무튼 이 정도면 누가 들어도 표절인 거 확실하니까, 내가 책임지고 모두 다 원래 자리로 돌려놓을게.”

“김 실장님이요?”

“응, 이러나저러나 내 불찰로 벌어진 일이잖아. 애초부터 내가 관리를 잘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하다.”

김 실장은 진중한 목소리로 사과를 전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제 잘못부터 인정하는 게 우선순위라는 걸 사회를 통해 배웠다.

다만.

현승은 이런 진지한 분위기를 못 버티겠다는 양 제 양 팔뚝을 붙잡은 채 부르르 떨어 보일 뿐이었다.

“대체 왜 이러실까. 김 실장님도 정아린 닮아 가요?”

“아린이를 닮아 간다니?”

“정아린처럼 별일도 아닌데 오버하고 계시잖아요.”

김 실장은 잠시 “아?”하고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으이구!”하는 추임새와 함께 꿀밤을 쥐어박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주, 무슨 말을 못 해!”

“너무 심각하시니까 웃겨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현승이 킥킥 웃음을 참아가며 익살스러운 투로 말을 이었다.

“제가 저번에 말했잖아요. 이미 생성 날짜 시간 다 찍혀서 저장된 원본 음원도 있고, 저작권위원회에 이미 등록해 놔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그래도 이게 다른 곳도 아니고 같은 사내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잘 해결을 봐야 하는데 자칫 일이 크게 불거지면 분명 대표님 귀에도 들어갈 거고….”

그 말에 현승은 한숨을 짧게 폭 내쉬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김 실장은 자신이 USB를 분실한 탓에 벌어진 일이라 여기는 듯 보였다.

현승이 바라본 현재 김 실장의 불안정해 보이는 모습은 물건을 도둑맞았는데, 간수 못 한 자기 탓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김 실장님.”

이윽고.

책상에 걸쳐 앉아 있던 엉덩이를 떼어 내며 말을 덧붙였다.

“그럼 대표님 귀에 들어가기 전에 얼른 해결하러 가죠.”

* * *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1팀 소속의 오 실장이 눈매를 매섭게 치켜뜨며 물었다.

“저는 그저 정중히 유통사에 넘긴 음원 발매 취소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있는 거뿐인데요?”

현승이 왜 열을 내냐는 듯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대뜸 찾아와서는 이게 무슨 행패입니까? 김 실장님, 담당자 아니십니까? 왜 보고만 있으시죠?”

“저랑 얘기하시죠. 김 실장님은 제가 1팀에 할 말이 있어서 길 안내만 해 주신 거거든요.”

그리고는 김 실장 앞으로 한 걸음 앞서며 말을 이었다.

“당일 유통사에 제 곡을 넘겼더니 제 곡과 매우 유사한 곡을 1팀에서 먼저 넘겼다지 뭡니까? 이 사안에 대해 1팀의 생각을 좀 묻고 싶네요.”

오 실장의 미간 위로 주름살이 잔뜩 패였다.

“뭐라고요? 지금 그 말은 우리 1팀에서 2팀의 곡을 표절이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일부러 돌려서 말씀드린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직설적으로 말씀드릴 걸 그랬네요.”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작곡가가 뜬금없이 찾아와 또박또박 따져 물어 오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정말 기가 찰 따름이었다.

2팀에 소속된 작곡가가 대뜸 1팀 사무실을 찾아와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표절한 걸로 확정을 지은 채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 새끼, 성격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지만 아주 웃기는 새끼네…?”

오 실장은 뒤틀린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조소를 흘렸다.

“2팀 인성 상태가 아주 개판이구나?”

“그럼 개판인 김에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1팀 작곡가분 중에 어떤 분이 제 곡을 훔쳐다가 표절하신 건지는 몰라도 웬만하면 더 좋게 편곡해 주시지 그랬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오 실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뭐?”하고 물었다.

“만약 제 곡보다 더 좋았다면 기특해서 모른 척 넘어가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까, 진짜 이 미친놈이…!”

잔뜩 열이 오른 오 실장이 버럭 소리를 내지르려던 찰나였다.

“대체 이게 무슨 소란이야-!”

별안간 1팀의 아군이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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