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68화 (68/118)

68화

“오 실장,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박 전무는 곧장 오 실장에게 향해 채근하듯 물었다. 그리고는 주변을 빠르게 훑으며 비꼬듯 덧붙였다.

“여기 반겨 줄 사람도 없을 텐데, 2팀 실장이랑 작곡가가 왜 와 있어?”

“그, 그게 2팀에서 갑자기 찾아와서 이상한 소리를 해 대는 바람에….”

오 실장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매를 꾹 다물었다.

그러나.

박 전무 또한 답을 원하고 던진 말이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어차피 얼추 들은 대화나 장내의 분위기만으로 대강 상황은 파악한 채였다.

비록 전부 다 알지는 못 해도, 분명 사실관계를 따져 봐야 할 문제가 생겼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으니까.

다만.

경쟁 구도인 2팀에서 자신이 전담 마크하고 있는 1팀에 찾아와 일방적으로 따져 묻고 있지 않은가?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정말 1팀이 잘못한 일이 되어 버리는 꼴이다.

그럴 수는 없지.

“김 실장은 알 만한 사람이 이렇게 남의 영역에 와서 뭐 하는 짓이지?”

무엇보다 제 새끼를 건드리는 건 자신을 건드리는 것과 같으니까.

“그리고, 거기 애송이 작곡가.”

박 전무는 현승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며 이빨을 드러냈다.

“요즘 너도, 나도 우쭈쭈해 주니까 이 회사가 아무나 막 휘젓고 다녀도 되는 곳 같나?”

“전무님, 요즘 자주 뵙네요?”

“본질 흐리지 말게. 지금 하하 호호 정답게 인사 나눌 만큼 달가운 상황은 아닌 것 같으니.”

“그런가요? 그럼 이왕 전무님까지 오셨으니 확실히 본론만 얘기하겠습니다.”

현승은 흔들리지 않는 안광을 빛내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 봄시즌에 맞춰 발매하고자 만든 곡을 김 실장님에게 들어보라고 USB에 담아서 전해 준 적이 있습니다.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모르지만, USB의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그런데?”

“근데 그 이후 녹음까지 완료해서 유통사에 넘기려고 보니까, 1팀에서 제가 만든 곡과 너무 흡사한 곡을 딱 바로 며칠 전에 유통사로 넘겼다더군요.”

“이봐, 애송이. 그럼 우리 애들이 그 USB를 가져갔다는 증거라도 있나?”

“증거야 없죠. 하지만 우연치고는 이거 타이밍이 너무 운명적인 거 아닙니까?”

그리고는 고저 없는 투로 덧붙였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표절이죠.”

박 전무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표절은 몹시 예민한 사안이라 만에 하나 1팀에서 정말 표절을 한 거라면 무척 큰 이슈이자,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이다.

“표절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군. 요즘같이 하루에도 수백 곡의 음악이 쏟아지는 판국에서 몇 마디 좀 비슷한 걸로 표절이랄 수도 없어. 그렇게 따지면 예술은 다 모방이고 표절이지.”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박 전무님 정도 되시는 분이라면 충분히 들어만 본다면 표절인지 아닌지 판가름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 한번 비교해서 들어 보시겠어요?”

별안간 박 전무는 격양된 투로 따져 묻듯이 소리쳤다.

“됐어, 필요 없네! 막말로 그쪽에서 우리 팀 곡을 표절한 거일 수도 있지 않나?”

“예, 그렇죠. 1팀을 총괄하고 계신 입장으로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당연합니다.”

현승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양 “음.” 하는 추임새까지 넣어 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박 전무님이 제 밥그릇 잘 챙기고, 자기 팀 아끼시는 모습 나쁘다고 보진 않습니다. 가끔 대단하다고 생각도 하죠.”

그리고는.

별안간 서슬 퍼런 눈매를 번들거리며 고압적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제 밥그릇을 탐내는 꼴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겁니다.”

현승이 이렇게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단순히 저작권이나 돈 따위가 중요해서는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저 곡 하나 뺏긴다고 해서 제 인생에 큰 타격이 오는 것도 아니고, 사단이 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아린이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피 터지는 노력을 해 와서 녹음을 끝낸 곡이다. 1년 만에 큰 성장을 해낸 악기가 대견해서라도 뺏길 수는 없었다.

그래.

이 곡이 저작권협회에 정식 등록될 때는 가수명에 ‘정아린’ 세 글자가 박혀 있어야 할 일이었다.

이내 현승이 날카로운 눈매를 풀고는 제 손바닥을 쫙 펼쳐 보였다.

“어디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린다고 가려지나요? 모쪼록 잘 판단하셔서 조속히 처리해 주시면 좋겠네요.”

이윽고.

“전무님께서 같은 식구끼리 서로 더불어서 돕고 사는 거라고 알려 주셨잖아요? 저도 같은 구내식당 밥 먹는 식구끼리 법적 소송까지 가는 꼴은 보고 싶지 않네요.”

익살스럽지만 뼈가 담긴 말만을 남긴 채 장내를 떠났다.

* * *

현승이 휩쓸고 간 1팀 사무실 안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하… 저, 저, 버르장머리 없는 애송이.”

박 전무는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깊게 한숨을 내 쉬었다.

“우선 2팀에서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곡이 spring ending 맞나?”

그 물음에 1팀 전속 작곡가이자, ‘spring ending’을 작곡한 현태우가 잔뜩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맞습니다….”

박 전무는 그런 현태우를 바라보며 심경이 복잡해져만 갔다. 제 눈치를 살피며 푹 꺼진 고개나 말린 어깨가 무언가 켕기는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민현승이 원래부터 매사 버르장머리 없어 보일 만큼 당당한 놈이라지만, 따지고 보면 단 한 번도 먼저 나서서 으름장을 놓은 적은 없었다.

자신이 정아린이나 맨 레코즈와의 일에 훼방을 놓았을 때도 매번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의연하고 심드렁한 태도로 일관하던 놈이 아니던가?

그런 놈이 이번만큼은 직접 1팀에 찾아와 이빨을 드러냈다?

이건 어쩌면 민현승이 던지는 최후의 경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자신이 본 현승은 생각보다 머리가 비상하고 침착한 놈이었다. 절대 감정 따위에 휩쓸려 홧김에 행동할 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확신이 섰으니 행동으로 옮긴 거다.

표절이라는 확신.

상념에 잠겨 있던 박 전무가 어렵사리 입술을 떼어 냈다.

“태우야, 툭 까놓고 하나만 묻자.”

그리고는 현태우의 양어깨 위로 두툼한 두 손을 다독이듯 올려놓으며 물었다.

“spring ending, 네 힘으로만 만든 곡 맞지?”

“그, 그게….”

“너 정도 되는 녀석이 표절할 이유가 없잖아.”

현태우의 입술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꾹 다물린 채 열릴 기미조차 없어 보였다. 침묵이 지속될수록 초조함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다.

“왜 대답이 없어? 이제 이름 좀 막 알리기 시작한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작곡가 곡을 표절할 이유가 없잖아, 그렇지?”

박 전무는 미세하게 떨려오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붙들고 재촉했다.

“태우야, 네가 표절한 거 아니라고 딱 한마디만 해 주면 돼, 어? 얼른 대답해 봐.”

어깨를 부여잡은 제 손에 의해 현태우의 몸이 종잇장마냥 흔들렸다.

“그럼 네가 여태껏 지켜온 명망을 무시하고, 의심한 2팀에 가서 똑같이 뒤집어엎어 줄 테니까.”

이내 현태우는 맥없이 고개를 푹 떨궜다.

“정말….”

그리고는 잘게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개미가 속닥거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은 들을 수 있었다. 절대 그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되는 말이었기에 충격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뿐이었다.

“너, 이 새끼-!”

별안간 오 실장은 현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떻게 표절할 생각을 해, 인마! 더군다나 같은 사내 작곡가 곡을 겁도 없이-!”

그리고는 멱살을 부여잡은 채 닦달하듯 따져 물었다.

“네가 그러고도 전속 작곡가랄 수 있어? LS가 저작권 표절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 몰라서 그래?”

“그 작곡가 곡인지는 진짜 몰랐어요! 어쩌다가 화장실에서 USB 하나를 주워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 봤더니 파일명도 무제로 되어 있고, 가이드도 허밍으로만 따 놨길래 데모곡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절대 일부러 표절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현태우의 말을 듣고 있던 오 실장은 잔뜩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을 와그작 구겼다.

“너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데모곡은 표절해도 된다는 거야? 저작물을 만든다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이냐고!”

“실장님은 아시잖아요. 저 슬럼프 때문에 지난 1년간 제대로 된 곡 하나 만들지 못했다는 거. 하물며 1팀 성적마저 좋지 않으니까 제가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잠시 눈이 회까닥 돌아 버렸었던 것 같아요….”

탁-!

오 실장은 테이블을 짚고 일어나 단숨에 현태우의 앞까지 쫓아가 핏대를 세웠다.

“팀 핑계 대지 마, 인마! 그냥 네가 재기에 성공하고 싶었던 거겠지!”

높게 치켜 올라간 오 실장의 주먹이 잘게 부들거리던 찰나였다.

“오 실장, 그만해.”

그런 둘 사이에 박 전무가 제지하듯 껴들었다.

“예? 전무님, 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문제입니다. 정말 단단히 혼내고 책임을 물어야….”

“애 붙든 채로 욕하고 화낸다고 한들, 이미 벌어진 일이 없던 일로 되돌아가는 건 아니잖아.”

오 실장은 이상하리라 만큼 차분한 표정의 박 전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랜 시간 지켜봐 온 그는 제 식구 밥그릇을 잘 챙겨 주는 사람은 맞지만, 그리 자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조금 전 현태우에게 표절 사실을 확인할 때만 해도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던 양반이, 별안간 안일하다고 느껴질 만큼 태평한 말들을 늘어놓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LS 엔터는 단 몇십만 원의 데모곡 하나를 구매하더라도 법무팀을 통한 계약 절차가 이루어질 만큼 저작권에 있어선 어느 엔터사보다 예민하고, 철두철미한 관리를 진행하는 곳이다.

그뿐만 아니라 전속 작곡가들의 표절 시비나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관계를 엄중히 따져 시말서는 물론이고, 이후 저작권료 정산 중단 조건을 달고 계약 해지를 시켜 버린 전적도 있었다.

그래.

이렇게나 저작권에 있어서 위중하게 다루는 LS 엔터 내에서 같은 전속 작곡가의 곡을 표절했다?

경찰청 안에서 도난 사고가 발생했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LS 엔터가 얼마나 표절 문제에 예민한지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윗선에 이 얘기가 들어가게 된다면 태우 곡 프로젝트에 참여한 다른 1팀 인원 전부가 함께 책임을 물게 될 수도 있어요.”

“어차피 김 실장이 안 이상 최 이사나 대표님 귀에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닐 거야. 그건 내가 어떻게든 잘 처리해 볼 테니까 오 실장은 당장 유통사로 연락해서 발매 일자 잡아 놓은 거나 취소해.”

오 실장의 깊은 상념은 단 몇 마디로 종결되었다. 이대로 정말 취소만 하면 되는 일이 맞나? 박 전무의 사나운 눈매 안으로 힘을 잃은 동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차마 더 물을 수는 없었다.

터벅, 터벅-.

박 전무는 별다른 인사 없이 걸음을 돌려 문 쪽으로 향했다.

터벅, 터벅-.

문 앞까지 다다른 발은 급제동이라도 걸린 양 우뚝 멈춰 섰다.

“1팀아.”

다시 걸음을 돌리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제발, 다들 자기 실력으로 경쟁하자.”

그저 문을 바라보며 얘기할 뿐이었다.

“여러모로 좀 실망스럽다 못해 속상하네.”

이윽고.

마지막 말을 남긴 박 전무가 문을 닫고 나섰다.

.

.

.

“녀석들….”

박 전무는 텅 빈 복도에 서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야야, 실력으로 경쟁하자는 말이 박 전무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않냐?”

“어,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HS한테 온 공문 빼돌린 거 다 아는 사실인데….”

“자기나 실력으로 좀 경쟁하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뭐라 하는 꼴이잖아.”

“왜 갑자기 안 어울리게 저런 말을 한대? 그리고 속상한 게 아니라 쪽팔린 거겠지.”

그리고는 조금 전 1팀 사무실 문밖으로 새어 나오던 말소리를 곱씹었다.

다른 경쟁하는 팀도 아니고….

자신이 이끄는 매니지먼트 1팀 사람들의 적나라한 속내를 엿보게 된 거다.

그래.

상사 좋아하는 직원은 없겠지만, 다만 실제로 속내를 마주하게 되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나.

박 전무는 구태여 문고리를 돌리지도, 다시 걸음을 돌리지도,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터벅, 터벅-.

그저 텅 빈 복도를 홀로 나아갈 뿐이었다.

* * *

박 전무는 착잡한 마음에 도망치듯 자주 찾는 청담동 소재에 BAR를 찾았다.

“매번 이용하시는 VIP룸으로 세팅해 놨습니다.”

익숙한 내부에 들어서자 총관리인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자신을 배웅했다.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내부 깊숙이 들어가다 보니 은밀하게 자리한 VIP룸이 나왔다.

그 안으로는 성인 남성 다섯 명 정도가 누워도 여유로울 만한 테이블이 중앙에 자리했고, 그 위로는 값비싼 양주와 과일 안주들이 보기 좋게 세팅되어 있었다.

한눈에 척 보기에도 탐욕스러운 거래와 청탁이 오가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그래.

이런 으리으리한 VIP룸에 가장 정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술을 마실 수 있게 되기까지 자그마치 30년이 걸렸다. 정말이지, 아득바득 살아온 인생이었다.

태어나 보니 집안이 가난했을 뿐인데, 그 가난이라는 녀석은 자꾸만 삶을 통제시켰다. 아주 당연한 친구를 사귀는 일부터 맘 편히 공부하는 것조차 말이다.

그런 환경은 승부욕도, 자존심도 강한 자신을 자꾸만 ‘열등감’이라는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그렇다고 한낱 열등감 따위에게 잡아먹힐 수만은 없었다.

그래, 되려 열등감을 먹이 삼아 악착같이 자라났다.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해 고등 교육 과정을 포기하고 연예계로 발을 들였다. 그럴싸하고 멋져 보인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막상 발을 들여놓고 보니 홀로 생존해야만 하는 정글과 다를 바 없었다.

전임자라며 일을 알려 주고자 하는 이도, 선배라고 경험을 나눠 주는 이도 없다. 주변을 돌아보면 모두 경쟁자였다. 눈치껏 알아서 일을 찾아 헤맸다.

거기다가 웬만한 대형 연예기획사가 아니면, 보통 부서끼리의 업무도 분리되어 있지 않아 주먹구구식으로 모든 일을 다 도맡아 처리해야만 했다.

힘들다는 말조차 힘들어서 입 밖으로 쉬이 꺼내지 못했다.

그래, 정말 그랬다.

너무나 고단하다고,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앓는 소리를 내는 업계 사람들을 보며 자신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들과 똑같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지는 거라 여겼으니까.

종종 그런 심경을 토로할 때면 주변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냐며 무리하지 말라는 걱정의 말로 위장한 핀잔과 충고들을 늘어놨더랬다.

그리고 점차 자신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걱정하는 척조차 사라졌다. 그저 자격지심에 찌들어 자존심만 센 독종 같은 놈, 눈앞에 놓인 밥그릇만 챙기는 이기적인 놈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댔다.

그럼 뭐 어떠하리?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아득바득 독종처럼 사는 게 뭐가 나쁘다고 욕을 해 대는 걸까? 그건 아마도 그들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위선이리라.

자신은 그런 사람들과 달리 열등감을 이겨 냈고, 올라섰고, 이렇게나 값비싼 술을 혼자서도 가볍게 마시러 올 수 있는 금전적인 여유를 갖추기 위해 개같이 일했다.

그래, 정말 개같이도 일했다.

“후….”

상념에 젖어 들이켠 술은 유달리 씁쓸하게 느껴졌다. 아니, 아닌가? 계속 입맛을 다셔 보니 묘하게 혀끝이 달짝지근하다.

문득.

50대라는 나이가 되어서야 ‘이게 인생의 맛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씁쓸하지만 그 끝에 아스라하게 남은 단맛.

그 옅은 단맛 한 번을 맛보기 위해 기나긴 쓴맛을 참고 인내하는 게 딱 사람의 인생과 닮아 있지 않은가?

‘그럼 내 인생은 지금 어떤 맛이지?’

아무래도 아주 고독하고 씁쓸한 터널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중이라고 느껴질 따름이었다.

“나쁜놈들….”

LS 엔터테인먼트의 시작에는 자신이 있었고, 제 손으로 1팀이라는 사내 중요 컨트럴 타워를 일궈 냈다.

다만.

부실 공사였던 걸까? 아주 작은 돌멩이가 튀어 올라 부딪힌 거뿐인데, 점차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야야, 실력으로 경쟁하자는 말이 박 전무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않냐?”

전무라는 직함에 맞게 살갑거나 친구 같은 관리자는 되어 주지 못했어도, 팀원들 입속만큼은 두둑이 챙겨 주는 실속 있는 관리자가 되고자 부단히 애를 썼더랬다.

그래.

자신에게는 그런 전임자도 선임도 관리자도 없었으니까.

“어,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HS한테 온 공문 빼돌린 거 다 아는 사실인데….”

제 손으로 일군 팀인 만큼, 1팀의 밥알 하나도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남의 그릇을 빼앗아서라도 입에 한입씩이라도 더 넣어 주고자 노력했다.

“지나 실력으로 좀 경쟁하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뭐라 하는 꼴이잖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제 팀원들만큼은 알아주리라 믿었는데, 이것마저 욕심이었던 건가?

“왜 갑자기 안 어울리게 저런 말을 한데? 그리고 속상한 게 아니라 쪽팔린 거겠지.”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섭섭함이 밀려왔지만 결국 모든 게 자신의 업보인 양 느껴졌다.

“현태우, 하필 나쁜 것만 먼저 배워선….”

박 전무는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매단 채 글라스를 들어 올렸다.

“하물며 1팀 성적마저 좋지 않으니까 제가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욕심에 잠시 눈이 회까닥 돌아 버렸었던 것 같아요….”

팀원들을 더불어 현태우가 했던 얘기가 계속 머릿속을 어지럽힌 까닭이었다. 과연 나는 좋은 관리자가 맞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버린 걸까? 사실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아마… 작년부터일 거다.

2팀의 성적이 처음으로 1팀보다 앞서기 시작한 때부터니까.

그저 2팀이 잘하고 열심히 한 만큼 성적이 잘 나온 거일 뿐인데, 1팀이 부족해서라 여겼다. 다르게 말하자면 ‘HS’라는 존재가 1팀에는 없어서라고 생각한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뒤틀렸다.

순수하게 1팀이 더 잘나갔으면 했던 자신의 바람이 잘못된 욕망으로 표출되어 버렸다.

쨍그랑-.

글라스 잔에 얼음을 넣으니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음.”

그 사이로 술을 채워 넣고, 빙글빙글 돌리자 잔 안에서 작은 회오리가 일었다.

이렇게나 큰 VIP 룸도 있고, 술잔도 있고, 값비싼 양주도 준비되어 있는데….

부딪힐 술잔 하나 없다는 사실이 참 헛헛했다.

“하하, 내 인생도 참….”

참 덧없다고 느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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