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한편.
현승은 오늘도 어김없이 헬멧을 뒤집어쓴 채로 본선 라운드 촬영장을 찾았다.
북적거리는 세트장 안은 마치 전쟁통을 연상케 했다.
모두 촬영 준비에 열을 올리고, 스태프들은 무전기를 들고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심사위원분들 다 왔는지 인원 체크 했어?”
“HS만 아직… 어? 저기 오셨네요.”
“누가 HS 헬멧 안으로 마이크 설치 좀 해 줘라.”
어느 여자 스태프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섰다.
“제가 할게요!”
그리고는 HS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신다고 고생하셨어요. 얼른 세팅 도와 드릴게요.”
“다른 분들은 다 이미 왔나 봐요. 제가 또 꼴찌네요.”
“에이, 괜찮아요,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죠.”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던 여자 스태프는 현승의 마이크 착용을 돕겠다며 나섰다.
“실례 좀 할게요.”
헬멧 아래로 마이크 선을 밀어 넣었고.
이내.
밀어 넣은 마이크를 정돈하기 위해 헬멧의 앞 고글을 올렸다.
“아….”
여자 스태프는 작은 탄식과 함께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다 얼굴을 붉혔다.
“다 됐나요?”
그 물음에 여자 스태프는 당황하며 “아, 네….”하고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탁-!
그러자 현승은 앞 고글을 재빨리 닫아 버렸다. 여자 스태프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에 입맛을 다셨다.
‘매번 촬영 때마다 내가 마이크 착용해 줘야지….’
그리고는 속으로 앙큼한 계획까지 세워 가며 현승을 인도했다.
“여기 계단 따라 올라가시면 되고, 좌석은 정중앙에서 바로 우측 자리로 앉아 주시면 됩니다. 물은 PPL로 들어온 거니까 최대한 자주 마셔 주시고 로고 보이게끔만 놔 주시면 돼요.”
“예, 그렇게 하죠.”
현승의 대답을 끝으로 그 여자 스태프는 아쉬움을 머금은 채 인파 속으로 유유히 다시 돌아갔다.
“높기는 되게 높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심사위원석은 저곳에 앉아 있을 그들의 위세만큼 드높아 보였다. 권위가 잔뜩 드러나는 계단을 차근히 오르다 보니 일렬로 된 테이블 앞으로 4명의 심사위원이 각자 자리에 앉아 있는 채였다.
“오, HS 왔나?”
정중앙에 앉아 있던 김광진이 제일 먼저 HS를 발견하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십니까.”
김광진을 기점으로 우측 맨 끝에 앉은 이영아와 좌측에 나란히 앉은 제이블과 원진섭의 고개가 저절로 HS를 향했다.
“작곡가 HS입니다.”
HS를 본 그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여기로 와서 앉게나.”
이미 한 차례 서울 지역 예선에서 만났었던 김광진은 나긋하게 웃음을 보이며 손짓했고, 이영아는 새침하게 “또 늦었네요?”하고는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허?”
처음 마주하는 원진섭은 코웃음을 치며 무슨 의미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웬 헬멧? 저 친구 완전 코미디네.”
그리고는 제 옆에 앉은 제이블의 눈치를 살폈다. 여기 있는 누구든 몇 달 전 제이블과 HS의 떠들썩한 ‘음원 내기 사건’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서로 감정이 좋지만은 않을 거라는 사실도….
드르륵-.
현승이 앉으려 의자를 끄는 그 순간까지 제이블은 아무런 응답이나 반응조차 없었다.
원진섭은 재차 제이블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물만 벌컥벌컥 들이켤 뿐이었다.
“제이블은….”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원진섭이 제이블을 툭 건드리며 물었다.
“이미 HS랑 일전에 안면이 있는 거지?”
“아뇨, 대면하는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제이블은 옆눈으로 현승을 쓱 흘겨보고는 넌지시 덧붙였다.
“근데 정말 헬멧을 쓰고 올 줄은 몰랐네요.”
“그러게, 나도 소문 듣고 설마설마했는데.”
원진섭은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보였다. 아무래도 그의 눈에는 현승이 헬멧을 쓰고 온 것이 영 아니꼽게 보인 모양이었다.
“지역 예선전에도 쓰고 왔었는데, 본선이라고 뭐 다르겠어요.”
이영아가 틱틱거리는 어투로 말을 보탰다. 지난 예선전 때 자신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HS의 안목이 별로라 여긴 뒤부터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 버린 그녀였다.
“나 또한 방송에서 헬멧을 쓰는 게 조금 안 좋게 보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네.”
보다 못한 김광진이 제 앞에 서류를 사락 넘기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만, 이 친구는 이 친구 나름의 속사정이 있을 텐데 그만들 좀 하지 그래?”
그리고는 현승의 어깨를 잘게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석 달간은 계속 같이 호흡을 맞춰야 하는 사람들끼리 초반부터 이러면 쓰나.”
그의 말 한마디에 제각각 서류로 시선을 돌리는 걸 보니 우선 헬멧 논란은 잠시 일단락된 듯 보였다.
김광진은 고글 너머로 현승과 눈을 마주치며 찡긋 윙크를 보냈다. 마치 자신만 믿으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모쪼록 이곳에 내 편은 이 사람뿐인가 보군.’
현승은 그의 눈빛에 응답하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앞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탁 트인 시야 안으로 크나큰 세트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세트장 내부에 있는 많은 사람은 분명 제 헬멧을 벗기고 싶어서 안달 나 있을 거다. 어떻게든 출연시키고자 하는 수 없이 자신의 요청을 수락했을 뿐.
속내에는 ‘한 번은 벗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무엇보다 제 양옆에 앉은 사람들 또한 자신이 헬멧을 쓰고 온 점이….
아니, 아니지.
김광진을 제외하고는 그냥 ‘민현승’이라는 사람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보였다.
현승은 다시 한번 맘속으로 경각심을 새겼다.
그래, 이 바닥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정글이라는 걸 호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않나?
까딱하는 순간 다시 전생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도 있을 테니까 더욱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할 터였다.
그때.
“오프닝 장면 좀 따야 하니까 서류 보면서 참가자 관련해서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 좀 나눠 주세요.”
확성기를 타고 메인 PD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그 말에 심사위원들은 차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제 본격적인 쇼윈도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이 참가자가 저번 경기 예선전에서 너무 잘해서 기대가 몹시 되는데….”
“저도, 이 참가자는 워낙 스타성이 엿보였던 친구라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궁금하네요.”
원진섭과 제이블은 서류 하나를 놓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아, 저는 에디슨 킴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개인적으로 얼른 듣고 싶네요.”
“그래, 영아 씨 말대로 그 사람은 타고난 목소리나 발성 자체가 좋아 보이더군.”
서울 지역을 함께 심사했던 이영아와 김광진도 같이 합격을 줬던 참가자에 대한 칭찬을 이어 나갔다.
딱 한 사람.
현승만이 이 대화에 끼지 않은 채 서류 하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윤제이의 서류였다.
지난 예선에서 일말의 힌트처럼 미션곡을 건네줬는데 잘 알아차리고 답을 들고 왔을지 까지는 미지수였다.
뭐, 답을 찾지 못했어도 별수 있나….
아무렴 어떠하리?
남들 눈에는 그녀가 그저 골동품 가게 구석에 처박혀 케케묵은 먼지가 쌓인 악기처럼 보여도, 분명 자기만의 짱짱한 소리를 가진 악기라는 걸 알고 있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윤제이의 잠재력을 못 알아차리고, 본선에서 마저 탈락을 준다고 하더라도, 방송 밖에서 다시금 연주할 기회를 노려보면 될 일이었다.
아아….
다시금 생각해 봐도 어설픈 연주로 낸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홀리게 하는데, 올바른 연주 방식으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면 얼마나 소리가 좋을까? 현승은 벌써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 이게 바로 윤제이에게 ‘슈퍼패스’를 준 이유다.
그때 별안간 제이블이 자신의 우측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그 참가자가 아주 궁금하더라고요?”
“누구요?”
“서울 예선에서 HS 씨가 슈퍼패스 줬다는 참가자 말이에요.”
“아, 그 사람….”
그 말에 갑자기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이영아는 그 말에 호응 대신 콧방귀를 끼며 물을 들이켰다.
“슈퍼패스 했다는 소식만 듣고 실제로 들어 보질 못했잖아요.”
“저도 그 참가자가 제일 기대돼요.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HS 씨가 선택한 사람이니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사람이겠죠.”
원진섭도 제이블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옆눈으로 현승의 반응을 살폈다.
“아, 맞다!”
그리고는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꼬리를 늘리며 물었다.
“그 참가자 이름이 뭐더라-?”
그에 따른 대답은 현승 대신 제이블이 “윤제이요.”하고 짤막하게 답했다.
“저는 같이 현장에 있었지만,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어요.”
이영아는 턱을 괸 채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다시금 날카롭게 가시 세운 말들이 현승을 향했지만, 이번에는 김광진도 도울 말이 없는 듯 서류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음, 영아 씨가 보기에는 HS 씨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그 참가자 실력이 별로였던가요?”
제이블의 물음에 이영아가 머쓱한 투로 답했다.
“뭐, 솔직히 처음 딱 들었을 때 목소리는 매력적이긴 했어요.”
그리고는 곁눈질로 HS를 흘겨보며 작게 덧붙였다.
“듣고 있노라면 힘이 빠져서 문제죠.”
제이블은 침음을 흘리며 “그렇군요.”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또한 2차 예선전이 치러진 이후 슈퍼패스 소식을 접해 듣자마자 제작진에게 요청하여 윤제이의 예선 오디션 영상을 받아서 확인한 바 있었다.
처음에는 윤제이라는 사람에게서 ‘끼’라고 일컫는 어떠한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LS 엔터 소속의 연습생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래, 몹시 자존심 상하는 일이랄 수 있지만 윤제이에 대해 캐물었고.
그런 결과 LS 엔터 혹은 HS와는 아무런 연관성이나 접점이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정말 순수하게 가망성이나 잠재력을 보고 슈퍼패스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분명 HS 정도 되는 인물이 슈퍼패스를 아무렇게나 사용하지는 않았을 터.
자신 또한 HS가 발견한 윤제이의 ‘가망성’ 혹은 ‘잠재력’ 혹은 ‘끼’라 불리는 무형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른다.
재생, 되감기, 재생, 되감기….
얼마나 수없이 반복했던가? 파일이 아니라 테이프로 받았다면 아마 잔뜩 늘어져 고장 날 만큼 며칠을 틀어박혀 틈만 나면 재생을 거듭했다.
가창력에 국한되어 보지 않으려 얼굴이나 매력, 눈빛, 손짓, 풍기는 분위기 하나까지 면밀하게 살피다 보니 나중에 가선 그녀가 몇 초쯤에 바닥에 앉는지, 몇십 초 만에 노래가 끊겼는지, 표정은 어땠는지까지 훤히 알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오늘에 당도하게 되었다. 이쯤 되니 깊은 의구심이 들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안목에 대해서 말이다.
으레 한 업종에 오래 있다 보면 점점 보는 안목이나 촉이 흐려진다고들 말한다.
혹시나 자신도 너무 이 업계에 찌들어, 시야가 좁아지고 안목이 흐려진 것은 아닐까?
‘정말 그런 거라면 이제 난 어쩌지?’
단순히 작곡가이기 전에 프로듀서로서 가수를 직접 발굴하기도 하고, 총괄하여 디렉팅을 보는 자신이 가수로서 지닌 잠재력 하나조차 못 알아본다면 생명력이 다해 간다는 뜻이 아니던가?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제이블이 깊은 상념에 젖어 의구심이란 구렁텅이에 허덕거리던 그때.
“HS 씨는 왜 윤제이에게 슈퍼패스를 주신 거예요? 그때는 더 잘 맞는 곡을 부르면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 정도만 말씀하셨잖아요. 그게 다예요?”
이영아가 물끄러미 HS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만.
현승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헬멧을 뒤집어쓰고 있는 채라 아무도 그가 누굴 보고 있는지조차 종잡을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이영아는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HS가 헬멧 안에서 졸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알고 보니 기면증이 있어서 헬멧을 쓸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도달했고.
“음….”
헬멧 안에서 작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휴, 자고 있던 건 아니구나.’
이영아가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상체를 기울이자, 제이블 또한 짐짓 아닌 척하며 귀를 쫑긋 세웠다.
이윽고.
“아마 그에 대한 답변은 이번 라운드 무대 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 * *
길어지는 녹화 시간에 심사위원들의 얼굴 위로는 점차 피곤한 기색이 드리웠다.
“하….”
아무리 실력 좋은 참가자가 나오더라도 잠시 반짝 눈을 빛낼 뿐, 연이어 진행되는 심사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간혹 기대했던 참가자들이 지난 라운드보다 못한 실력을 보여 줄 때면 안 그래도 없던 힘마저 빠지는 기분이었다.
“이젠 노래를 듣는 것조차 지치네요.”
홀로 여성이었던 이영아는 체력이 고갈됐는지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 테이블 위로 엎어져 칭얼거렸다.
“아마도 저는 내일 목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아요.”
“이제 곧 끝나 가니까 조금만 참아 보자고.”
“선배님은 안 힘드세요?”
“힘들지, 그래도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즐거운걸?”
김광진은 그 말이 진심인 듯 지친 기색과는 별개로 입꼬리가 기분 좋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
이내 꼿꼿하게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HS를 발견하여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자네는 아직 쌩쌩한가 보네?”
“저야 뭐 한참 젊잖아요.”
“하하, 역시 젊은 게 좋긴 좋아.”
뭐가 그리 다 마음에 드는지, HS의 호기로운 대답에 한바탕 웃어 보인 김광진의 얼굴에는 다시금 활력이 돌았다.
“다음 참가자 들어갈게요.”
그렇게 짧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으으.”
이영아는 늘어졌던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앓는 소리를 냈다.
“하아….”
사실 다른 이들도 장기간 앉아 있던 탓에 온몸이 찌뿌둥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터벅, 터벅-.
카메라가 다시금 붉은 빛을 내며 돌아가자, 오디션 무대 위로 한 참가자 걸어 나왔다.
“어?”
제일 먼저 알아본 건 이영아였다.
“맞네, 맞아.”
그녀의 반응에 제이블도 즉각 반응하듯 중얼거렸다.
“윤제이….”
원진섭은 이름을 듣자마자 “아!”하고는 옆에 앉아 있는 제이블에게 작게 물었다.
“저 사람이 윤제이구나?”
“네, 맞아요.”
“분위기가… 좀 그렇다?”
그리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떨떠름한 표정으로 윤제이를 살폈다. 칙칙한 옷, 불안정해 보이는 표정 그리고 우중충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음울함이 배는 돼 보였다.
마치 저 사람만 흑백 처리된 것 같달까?
대체 HS는 왜 저런 사람을 뽑은 거지? K-싱어스타 라는 프로그램명에 맞게끔 보컬 실력도 중요하지만, 가지고 있는 끼와 스타성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때.
“윤제이 씨?”
별안간 제이블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K-싱어스타 시즌1에서 가장 화제를 몰고 올 참가자분을 드디어 뵙네요.”
“네? 제가요…?”
“당대 최고의 작곡가인 HS 씨가 예선전부터 슈퍼패스를 사용하게 만든 참가자잖아요.”
윤제이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매를 꾹 다물었다. 그저 불안정한 눈동자를 굴려 현승을 찾았다. 오늘도 그는 여전히 헬멧을 뒤집어쓴 채라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냐, 날 보고 있을 거야.
그렇게 자신에게 최면을 걸듯 마음을 다잡으며 입술을 열었다.
“네, 부족한 저에게 HS 님이 특별히 기회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 기회를 잘 살려 보시길 바랄게요.”
그 말을 끝으로 제이블은 급하게 대화를 종결하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번 본선 1라운드에서는 HS 씨가 예선전 때 직접 선정해 준 미션곡을 부르시는 거죠?”
“네네…!”
“혹시 이번에도 많이 떨리시면 예선 때처럼 최대한 본인이 편한 자세로 부르셔도 돼요.”
이영아도 가볍게 말을 보탠 뒤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저번에 탈락 위기였던 만큼 이번에는 HS 씨의 얼굴을 봐서라도 잘 해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김광진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시시콜콜한 서론은 끝이 났다.
“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정작 장본인이랄 수 있는 현승은 아무 말도 없었지만, 윤제이의 시선은 계속 그에게 고정된 채였다.
일부러 다른 이는 보지 않았다.
전혀 흥미 없다는 걸 티 내는 흐린 눈과 어디 한번 해 보라며 거드름을 피우는 팔짱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헬멧 때문에 자신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더라도 HS를 보고 있는 게 마음이 편안했다.
그때 미동도 없던 HS의 손이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그의 손가락이 윤제이를 한 번, 그리고 자신의 고글 쪽을 한 번 넌지시 가리키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윤제이만 볼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움직임이었다.
‘어?’
그래, 마치 HS의 손짓은 자신을 바라보며 노래해 보라고 하는 수신호 같아 보였다.
잔뜩 확장된 그녀의 눈동자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을 흡수하며 반짝거렸다.
“큼, 흠.”
윤제이는 목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미친 듯이 연습했잖아, 잘할 수 있어.
몇 번씩이나 속으로 되뇌곤 고개를 들어 HS를 바라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오.”
예선 때와 달리 소울풀한 그루브가 느껴지는 인트로에 김광진은 흥미로운 탄식과 함께 주억거렸다.
다만.
느린 템포의 곡이기에 그녀의 목소리가 또다시 곡에 끌려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역시나.
윤제이의 노래가 시작되자 김광진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별안간 그녀의 눈빛이 변하면서 곡의 툭 멈췄다.
“음?”
일순 곡의 변조와 함께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어-?!”
이윽고.
느슨하게 앉아 있던 심사위원들이 눈을 빛내며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