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81화 (81/118)

80화

“하준아, 더워? 왜 이렇게 땀을 흘려?”

박 전무의 물음에 강하준은 한 차례 긴장한 얼굴로 “예?”하고 되묻고는 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쳐냈다.

“긴장했어?”

“아, 뭐, 조금요…?”

그 대답에 박 전무가 아주 작게 “허-.” 하고 탄식을 내뱉으며 강하준의 얼굴을 면밀하게 바라봤다.

물론 오랜 시간을 봐 온 것은 아니라지만….

현재 1팀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연습생인 만큼 박 전무도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었다.

‘강하준….’

혹시 잘 사는 집 자제들은 어릴 적부터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교육이라도 받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젓하고 매사 교과서적인 태도를 보이던 목석 같은 녀석이다.

그런데.

지금 강하준의 얼굴은 흡사 수능 날 고삼마냥 잔뜩 긴장하여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공을 헤매고, 식은땀을 연신 흘려 대고 있지 않나?

‘녀석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건 이번이 두 번째군….’

첫 번째로는 본선 라운드 때 HS에게 합격과 동시에 악평을 듣고 온 날, 동요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두 번째로는 바로 지금, HS로부터 급히 면담(?) 연락을 받고 만나기로 약속한 오늘이었다.

“같이 가 줄까?”

“아니에요.”

“그래도 같이 가면…”

“괜찮아요.”

강하준은 완강한 투로 덧붙였다.

“신경 써 주시는 건 너무 감사하지만, 제가 직접 1팀 연습생이라는 사실도 말씀드리고, 다시 한번 곡 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기도 전하고 싶어서요.”

박 전무는 한 차례 “음.”하고 침음을 흘려보내고는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그래, 네가 직접 하는 게 맞지.”

하지만 영 마음이 쓰이는지 박 전무의 얼굴 위로도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스쳤다.

그리고는 무언가 번뜩 생각났는지 “아!”하고 소리치며 바리바리 싸 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하준아, 이거 챙겨 가라.”

“이게 다 뭐예요?”

“녀석이 ‘무’를 아주 좋아한다더라고.”

강하준이 “무요?”하고 되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뜸 ‘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무생채, 깍두기, 무말랭이, 무나물 볶음, 무조림, 무전….

의아한 눈으로 쇼핑백에 든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무로 만든 반찬 가짓수만 여섯 가지에 달했으며, 척 봐도 깔맞춤으로 새로 산 반찬통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다 뭐예요?”

“내가 우리 하준이 잘 부탁한다고 특별히 집에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한 거야.”

박 전무는 어깨까지 들썩여 보이며 의기양양한 투로 덧붙였다.

“물론 와이프가 거의 다 만들었지만, 나도 채칼로 무 다듬는 걸 열심히 도왔지.”

그리고는 “이걸 까먹을 뻔했네.”하며 입으로 “짜잔”하고 효과음까지 내가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건 또 뭔가요…?”

“이거? 녀석이 환장할 만한 거랄 수 있지.”

박 전무는 회심의 카드라도 꺼내든 것마냥 씩 웃어 보였다.

“이것도 꼬-옥 전해 주고.”

이내 강하준의 안 주머니에 넣어 주며 작게 “완벽해.”하고 중얼거리고는 옷깃을 탁탁 정리해 줬다.

‘봉투? 돈인가? HS도 돈을 좋아하나…?’

하기야, 돈을 싫어할 사람이 어딨겠는가? ‘무’는 좀 뜬금없는 선물이긴 했지만….

모쪼록 나름 측근인 박 전무가 준비한 것들이니 취향을 저격한 선물이긴 할 터였다.

“네, 감사합니다….”

이윽고.

“어? 벌써 시간이….”

강하준은 HS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가는 걸 확인하고는 헐레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어, 어서 가 봐. 반찬 챙기고, 조심히 잘 다녀와!”

그런 강하준을 배웅하는 박 전무의 뒷모습이 어딘가 아들을 처음 등원시키는 어머니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 * *

LS 엔터 사내 로비에 자리한 카페테라스, ‘ACE’

이곳은 알바가 안 구해져서 애를 먹는다는 이 시대에도 빈틈없이 채워지는 알바생들로 인하여 아무런 펑크 문제없이 원활한 운영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

“와… 진짜 얼굴 미쳤다.”

바로.

엔터테인먼트 내부에 있는 ‘카페테라스’인 만큼 배우나 가수 그리고 연습생들까지 외모가 출중하며 유명한 이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LS 엔터 소속 연예인 내지 소속 임직원들만 이용하는 곳인 만큼 크게 진상을 부리는 사람조차 없어 근무 환경으로서는 최고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 비주얼이 사람 맞냐? 조각상 아니고?”

“TV에서는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연습생인가?”

“나도 처음 보는 걸 보면 새로 들어온 연습생인가 봐.”

카페 알바생인 조하린과 이슬기는 카페 내부 소파 자리에 홀로 앉아 있는 남자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연신 감탄을 쏟아 내는 중이었다.

“웬만한 아이돌보다 훨씬 잘생겼는데?”

“데뷔하면 바로 덕질 시작한다.”

“아냐, 다시 보니까 배우상인 것 같다.”

“결국에는 잘생겼다는 말이잖아?”

흔히 말하는 ‘미소년’의 정석 같은 얼굴을 가진 그는, 길게 뻗은 하얀 손가락으로 연신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마냥 보였다.

“저런 남자가 기다리는 사람은 누굴까?”

“그러게, 얼음과 함께 애간장 다 녹기 전에 오셔야 할 텐데….”

지금 그녀들의 눈에는 그가 마치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비칠 따름이었다.

흘깃, 흘깃.

긴장과 설렘이 묘하게 공존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제 앞의 빈자리에 놓인 커피잔의 위치를 계속 옮겨 놓고, 침전되지 않도록 한 번씩 휘저어 주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띠링-.

카페테라스의 자동문이 열리며, 산뜻한 알림음이 들려왔고.

“헉….”

“야, 씨….”

앞서 온 남자보다 더 큰 후광이 반짝거리는 남자가 긴 다리를 휘저으며 카페 내부로 들어서자, 두 알바생은 자신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심한 말을 삼켜 내기에 이르렀다.

“야, 슬기야, 진짜가 나타났다. 드디어 왔어, 왔다고-!”

“하린이 네가 여기를 못 관두는 이유라던 그 남자?”

“어, 넌 여기 일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처음 보지?”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슬기가 다시금 시선을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는 원래 카페 내부에 앉아 있던 남자와는 아예 뿜어내는 아우라 자체가 틀렸다.

“응, 냉혈남 재질인데 진짜 잘생기긴 했다. 길쭉길쭉하고….”

이슬기는 말끝을 흐리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 사람도 여기 연습생인 건가? TV에서 저런 얼굴을 봤더라면 기억 못 할 리가 없을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아, 근데 왜 LS 엔터는 당장 데뷔 안 시키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조하린은 열불이 터진다는 양발까지 동동거리며 오두방정을 떨어 보였고.

터벅, 터벅-.

이내 ‘냉혈남’은 먼저 온 일행을 찾고 있는지 카페 내부를 둘러보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 어…?”

알바생들의 입에서 방청객처럼 호들갑스러운 탄식이 쏟아져 나오기도 잠시.

“미친… 저 둘의 얼굴 조합 대체 뭐야?”

“저 조합을 보려고 여기 입사했나 보다.”

“와, 더치페이스 완벽하다.”

“내 말이, 보는 내 눈이 다 편안하다.”

‘냉혈남’이 긴 다리를 뽐내며 걸어가 ‘미소년’의 앞자리를 꿰차고 앉기에 이르렀다.

“야.”

생긴 것처럼 날카롭고 싸늘한 ‘냉혈남’의 목소리가 알바생 귀를 파고들었다.

“하….”

알바생 하나가 갑자기 머리를 짚고 비틀거렸고.

“하린아, 너 괜찮아?”

“슬기야, 아무래도 오늘 나 잠은 다 잤어.”

“응? 잠을 왜 다 잤어?”

“머릿속으로 서사 뚝딱 완이라, 소설 써야 해.”

“갑자기 웬 서사? 소설은 또 뭔데?”

슬기의 물음에 하린은 두 남자를 번갈아 훑어보며 답했다.

“미소년과 냉혈남은 사실 오랜 단짝 친구였던 거지. 근데 미소년은 사실 냉혈남을 오랜 시간 남자로 봐 왔던 거야. 그러다가 술 먹고 얼떨결에 고백을 하면서 서로 사이가 틀어지는데, 냉혈남은 막상 미소년이 계속 신경 쓰이고….”

그리고는 양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두 남자를 안에 담아내며 덧붙였다.

“결국 둘은 몇 년 만에 카페에서 어색한 재회를….”

그런 하린을 바라보는 슬기의 표정은 점점 경악으로 물들었다.

‘얘, 뭐야…기분 나빠.’

입사 일주일 차, 슬기는 퇴사를 결심했다.

* * *

한편.

“야.”

카페 알바생이 자신을 두고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지, 전혀 모를 강하준은 별안간 제 앞자리에 앉은 젊은 남자 때문에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누, 누구시죠?”

“뭔 소리야, 이건?”

되레 자신을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살피며 퉁명스럽게 되물어 온 남자는 꽤….

아니, 아니지.

외적인 부분으로는 품평하는 행위 조차가 실례일 수 있을 정도의 미남이었다.

‘와….’

굴곡 없이 매끄럽게 그려진 선 마냥 작고 갸름한 얼굴 안에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이목구비들이 비율을 잘 맞춰진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산(山)자로 깔끔히 자리한 눈썹, 쌍꺼풀 없이도 길게 트여 크게 자리한 눈, 곡선처럼 쭉 뻗은 콧대, 도톰하고 붉은빛이 감도는 입술까지….

‘진짜 잘생겼다.’

한차례 그의 얼굴을 면밀하게 살핀 강하준은 자신이 너무 부담스럽게 쳐다본 건 아닐까 싶어 살짝 시선을 테이블로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저기 빈자리라면 주변에 많은데 하필 왜 이 자리….”

이내 말끝을 흐린 강하준이 고개를 번쩍 들며 되물었다.

“서, 설마… HS 님?”

“뭐, 신화 속 단군 아저씨 보듯이 놀라?”

강하준은 놀라서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그럴 리가….”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하관이 15cm가 넘어가는 주걱턱이라, 헬멧을 쓰는 거라고….’

그래, 1팀에서 ‘HS’에 대해 험담하듯 얘기하는 소리를 주워들은 적이 있다.

“그 녀석, 싸가지로 밥 비벼 먹으면 한솥밥은 나올 거야. 어찌나 성깔이 더럽던지….”

“정하린이 계속 바짝 마르는 이유가 너무 강행군으로 진행하는 녹음 때문이라잖아.”

“잘생겼다는 건 다 헛소문이라면서요? 그래서 처음에 아예 노출을 안 하려고 한 거라던데.”

“그래, 맞아-! 나도 전해 들었는데 헬멧 벗으면 하관이 여기까지 나와 있다더라.”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건가?

우선 다른 건 사실인지 확인된 바 없으나, 외모에 대한 정보는 헛소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셈이었다.

‘연예인은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 해야겠는걸….’

HS는 제 뒷머리를 흩트리다 말고 깨달았는지 “아, 헬멧”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까먹었네. 어쩐지 시원하더라니….”

돌연 민낯(?)으로 재회했으니, 강하준이 놀란 기색을 보이는 이유도 이해가 가는 바였다.

“진짜 작곡가 HS 님 맞죠?”

“그럼 가짜겠어?”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날카로우면서도 퍽퍽하기 그지없는 건조한 말투와 목소리를 듣자,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제 앞에 앉아 있는 남자는 ‘HS’가 맞다.

밀당하는 양 합격 버튼과 함께 악평을 쏟아붓던 목소리를….

백스테이지에서 곡을 주겠다고 말하던.

한줄기 따스한 빛이자 하늘이 내려 준 기적 같던 목소리를….

어찌 잊겠나?

“다시 한번 감사해요, 저에게 기회를 주시다니….”

이내 정신을 번쩍 차린 듯 강하준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전했고.

“됐으니까, 앉아.”

HS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손사래를 쳐 보였다.

“약소하지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준비한 선물입니다.”

강하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박 전무가 챙겨준 쇼핑백을 HS의 앞까지 쭉 밀어 놓았다.

“이게 뭐냐?”

“아주 좋아하신다길래….”

쇼핑백 안을 뒤적이던 HS는 “무를 좋아하긴 하는데, 이 무가 아닐 건데….”하고 중얼거렸다.

강하준은 그 말은 듣지 못했는지 제 안주머니에 들어 있던 ‘돈 봉투’로 추정되는 봉투도 마저 꺼내 들었다.

“이건 더 좋아하신다길래….”

HS는 갑자기 제 앞에 놓인 흰 봉투를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이건 필요 없는데?”

“그래도 제 성의니까 거절치 마시고….”

강하준은 HS가 ‘돈 봉투’를 부담스럽다고 여긴 탓이라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그의 손안에 쥐여 주며 사회성 듬뿍 담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음?”

그러나 HS는 제 손에 쥐어진 봉투의 그립감이 어쩐지 돈 보다는 다른 게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슬쩍 내용물을 확인해보았고….

“이건….”

그 안에는 LS 엔터테인먼트의 자랑(?)이랄 수 있는 구내식당 식권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