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83화 (83/118)

82화

경기도 외곽에 있는 한 수련회관 내 숙소는 분위기가 잔뜩 침전되어 있었다.

“후….”

이유주는 힐끗 곁눈질로 제 방에 설치된 카메라를 흘겨보고는 다시금 악보로 시선을 옮겼다.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은 와그작 구겨진 채였다.

‘숨 막혀….’

숙소 내부는 화장실을 제외하곤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된 채였고, 꺼지지 않는 카메라는 24시간 내내 참가자들을 예의주시하며 감시하고 있었다.

“옷은 화장실에서만 갈아입도록 하고.”

“잠은 딱 정해진 시간에만 자고 일어나.”

“목소리도 다 녹음되니까 말조심해라.”

“제공되는 식사 외 간식은 일절 금지다.”

“싸움 일으킬 경우, 곧장 짐 쌀 생각해.”

마치 아이돌 연습생이라도 되는 것마냥 일상적인 생활에 규제가 따라붙어 강제가 종용 되었고.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모두 방송사에 들어온 협찬 PPL 제품으로만 사용해야 했다.

이런 억압적인 환경에서 찍소리조차 하지 못하는 건….

이곳에서 살아만 남게 된다면 지하 연습실에 틀어박혀 젊음과 맞바꿔 지내 온 시간을 한 번에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었다.

장담컨대.

TOP10에만 들어간다면 유명 소속사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질 거고, 대학 축제를 비롯해 여러 행사 섭외가 쏟아질 터였다. 분명 지금보다 높은 질의 삶을 살게 될 거다.

무엇보다.

운이 좋으면 프로그램이 끝나기도 전에 광고 계약까지 따낼 수도 있으리라.

그래.

제 옆에서 너덜너덜해진 악보 위로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여념 없어 보이는 윤제이만 보더라도 확신할 수 있었다.

사각, 사각-.

윤제이는 ‘HS가 선택한 참가자’라는 타이틀 하나로 TOP10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유명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 발탁되며, 매일같이 브랜드 관계자가 찾아와 당일 입을 옷을 전해 주었다.

듣기로는 강력 우승 후보자로 떠오르는 인물인 만큼 여타 참가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던데….

‘이미 대형 소속사랑 도장 찍었겠지?’

이유주의 들끓는 시기는 은연중에 윤제이를 향했다. 제작진은 악착같이 그 점을 캐치 해냈고.

그 결과, 윤제이와 같은 방을 쓰게끔 하기에 이르렀다. 제작진들의 아주 악랄한 장난이랄 수 있었다.

그래, 참가자끼리의 묘한 신경전은 대중들의 입방아에 오를 제법 괜찮은 땔감이 되어 줄 테니까.

‘쉽게 넘어갈 리 없지.’

이유주는 윤제이의 옆얼굴을 살피다가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이야, 펜 소리가 계속 거슬리는데 나가서 해 줄래?”

“미, 미안….”

“집중이 안 돼서 가사가 잘 안 외워져. 좀 부탁할게.”

그리고는 다시금 이어폰을 귓구멍 깊게 쑤셔 넣었다.

‘짜증 나….’

이유주가 같은 방을 쓰게 되며 밀착해서 관찰해 본 윤제이는 마치 카메라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크게 눈에 띄는 행동도, 잘 보이려 애쓰는 모습도 없이 매일 같이 악보와 기타에만 매달려 하루를 보냈다.

인기와 성공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양, 음악에 목숨을 건 사람처럼 위선 떠는 그 모습들이 상당히 거슬렸다.

정작, 광고 계약은 제일 먼저 하지 않았던가?

결국 윤제이 또한 아닌 척하면서 성공이라는 욕망과 목적을 지닌 채 이곳에 온 것일 거라 확신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수 없어.’

비단 그녀의 날이 선 질투가 윤제이만을 특정한 채 향하는 건 아니었다. 당장 이곳은 옆에 참가자가 나보다 더 인기가 많고, 빼어난 무대를 선보인다면 자신이 탈락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부터 해야만 하는 지옥이었다.

사방이 온통 경쟁자이자, 평가자이고, 감시자였다. 또, 혹시나 악마의 편집으로 대중들에게 뭇매질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어 신경을 곤두세운 채 매일 밤 이불속에 들어가 제 이름을 검색하기를 반복했다.

그래.

누구라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으레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자라면 누구나 본선만이라도 진출하게 해 달라며, TOP10이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며 간절히 바라고 기도해 봤으리라.

그렇게 기도한 수만 명의 사람 중 100명만이 이곳에 발을 들였고, 지금은 달랑 20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마저도 한 명이 하차했으니 총 19명이 남은 셈이다.

하나….

단 이틀 밤만 자고 일어나면 10명은 고대하던 TOP10에 오를 테고, 9명은 결국 짐을 싸서 쫓겨날 터였다.

희비가 교차하는 시점….

혹여 자신이 탈락자 중 1명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점차 이유주… 아니, 참가자 전원을 점차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터벅, 터벅-.

윤제이가 눈치를 살피며 주섬주섬 악보를 챙겨 들고 방 밖으로 나서던 찰나였다.

띵동-!

누군가 그녀들의 숙소를 찾아왔다.

아마.

감시자… 아니지, 제작진일 터였다.

* * *

제작진이 맞긴 맞는데….

‘누구지?’

스태프의 부름을 받고 비즈니스 실을 찾은 이유주는 눈을 끔뻑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메인 PD 다음으로 가장 지휘권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성규진 PD와 고현덕 CP가 앉아 있었고.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남자는….

“이유주 양.”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이내 척 봐도 비싸 보이는 커스텀 테일러 정장을 반듯이 차려입은 남자가 악수를 청해 왔고, 소매가 살짝 올라가며 보인 그의 손목에는 시계에 대해 잘 모르는 여자가 보더라도 수천만 원을 호가할 ‘롤렉스 시계’가 채워진 채였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혹시 누구신지….”

“제 소개가 늦었군요.”

싱긋 웃어 보인 남자는 제 안 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내밀었다.

‘어…?’

이유주의 시선을 단박에 끌어당긴 건, 백금 처리된 명함 위로 상아 가루라도 뿌려놨는지 빛을 받을 때마다 은은하게 자태를 드러내는 워터마크였다.

- JN entertainment.

양각으로 새겨진 로고 다음으로는….

- 사내 이사 김우석.

이 남자의 신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JN 엔터의 사내 이사 김우석이라고 합니다.”

이유주는 한 손에는 명함을 들고,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은 채 명함과 김우석을 번갈아 쳐다봤다.

“우리 JN 엔터테인먼트는 이유주 양이 K-싱어스타에서 보여 줬던 무대를 계속 지켜 보았습니다. 유주양이 가지고 있는 뚜렷한 스타성이 눈길을 휘어잡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표로 계약을 제안하기 위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김우석의 말이 끝나자 이유주는 한차례 “헙.”하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말도 안 돼….’

JN 엔터테인먼트는 가수 지망생이라면 도망 찍고 싶은 엔터 3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명성 높은 국내 대형 엔터 중 하나였다.

그런 곳에서 캐스팅 매니저도 아닌 사내 이사씩이나 되는 사람의 명함을 받게 될 줄은 감히 상상도 못 해 본 까닭이었다.

‘미쳤어….’

K-싱어스타의 참자가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할 때도 우승자가 되고 싶다고 바라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바라고 기다려 왔다.

TOP10이라는 고지를 앞두고, 악착같이 이를 꽉 깨물고 떨어지면 죽음뿐이라며 자신을 몰아붙였다.

이 고지만 잘 넘어가면 모든 걸 보상받게 될 거라고, 환하고 아름다운 꽃길만이 기다릴 거라고….

그리고 지금 그 꽃길이 눈앞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차분히 앉아서 얘기 잠시 나눌까요?”

김우석은 일련의 능숙함이 느껴지는 태도로 이유주를 테이블로 이끌었다.

“우리 JN 엔터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해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믿고, 바로 계약 관련하여 얘기 나눠도 되겠죠?”

“예, 그럼요….”

이유주는 마치 교주 앞에 선 신도처럼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보였다.

“좋습니다. 사실 계약서도 크게 살펴볼 것도 없을 겁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신인 기준 업계 최고의 조건을 제시해 드리는 거라….”

유려하게 말을 이어 나가던 김우석이 곁눈질로 이유주의 얼굴을 살피고는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유주 양은 연습생 기간 없이 프로그램 끝나는 대로 JN 엔터에서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는 걸그룹에 바로 합류하실 수 있게끔 계약 조건을 맞춰 놓은 상태죠.”

이미 신실한 신도의 표정을 한 이유주가 한 차례 침을 꼴깍 삼키며 “네….”하고 답했다.

“당장 계약하자고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천천히 살펴보시고 추후에 사인하셔도 됩니다.”

말을 끝낸 김우석은 파일철에 잘 정리되어 끼워진 계약서를 이유주 앞으로 밀어 보였다.

“네, 감사합니다.”

이유주가 정중히 묵례를 전하자, 김우석 또한 인자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 맞다. 이걸 안 전했네요.”

김우석이 조심스럽게 장내에 있던 고현덕 CP와 성규진 PD를 손짓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미 여기 계신 CP님과 PD님과는 협의가 끝난 사안인데, JN 엔터와 계약하실 경우, 이유주 양은 이번 K-싱어스타에서 무조건 TOP2까지 오르게 될 겁니다. 잘하면 우승자가 될지도 모르죠.”

“예, 맞아요. 제작진들끼리는 이미 이유주 양을 TOP2로 확실히 밀어 드리기로 협의가 끝난 상태라 이유주 양이 선택만 하면 될 일입니다.”

“더군다나 JN 엔터에서 확실히 투자를 해 주기로 했기 때문에, 생방송 무대도 다른 참가자들보다 훨씬 더 퀄리티 높은 무대를 보장해드릴 겁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김우석을 필두로 고현덕 CP와 성규진 PD가 원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며 그녀의 혼을 쏙 빼 놓기도 잠시.

“한마디로, K-싱어스타의 TOP2라는 영광을 안은 채 화려하게 데뷔하실 수 있는 겁니다.”

김우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지막 말을 전하기에 이르렀고.

“헙-.”

이유주는 들고 있던 계약서를 테이블 위로 툭 떨어트리며 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런 걸 보고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던가?

JN 엔터로부터 컨텍을 받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칭할 수 있었는데 TOP2 자리를 보증받는다니.

‘굳이 지체할 필요 없지.’

안 그래도 곧 치러질 TOP10 선발 라운드에서 자신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관계자의 눈 밖에 나서 쫓겨나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며 보내지 않았던가?

데뷔도, TOP2도 확정된 상태라면 더 이상 불안과 초조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여타 다른 참가자들처럼 아득바득 눈치 보고 경계할 필요가 없을 터였다.

“저, 지금 바로 사인할게요!”

성공에 눈이 먼 이유주는 곧장 사인하겠다며 나섰고.

“예, 잘 생각하셨어요. 여기 공란 중 을(乙)에 본인 사인이나 서명하시면 됩니다.”

이내 김우석이 사인해야 할 곳을 명확히 짚어 주자, 계약 조항을 읽어 보지도 않은 채 공란에 사인을 채워 나갔다.

사각, 사각-.

김우석은 계약서 안으로 들어갈 듯 사인을 휘갈기고 있는 머리통을 바라보며 음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띄워 보였다.

“앞으로 차차 느끼실 테지만, 우리 JN 엔터와 계약하신 걸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손을 움직이던 이유주는 어여쁜 미소를 머금은 채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래….

계약서 안에는 자신이 훗날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독소조항이 가득한지 전혀 모르는 채로 말이다.

* * *

김우석이 왔다 간 다음 날이자, TOP10 선발 라운드를 치르기에 앞서 간단한 평가전이 있는 날이다.

“이거, 참.”

나름 중요하다면 중요한 촬영을 앞둔 채였는데….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요?”

주요 인원인 메인 PD, 서브 PD, 하물며 CP까지 비즈니스 실 내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하….”

성규진 PD의 물음에 김영호 PD가 수심이 한가득 묻어나는 숨을 바닥이 꺼지도록 내쉬기도 잠시.

“어떻게 말하긴, 뭘 어떻게 말해-!”

고현덕 CP가 테이블을 탁 내려치며 강압적인 투로 말했다.

“그냥 탈락시킬 테니 협조하라고 해야지.”

그 말에 성규진과 김영호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일 따름이었다. 어차피 달리 방도가 없던 까닭이다.

“이런, 벌써 시간이….”

김영호는 제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HS 씨 오실 시간 다 됐네….”

셋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HS였다.

협조해 달라고 청할 사람 또한 HS다.

그리고 그의 협조를 구해 탈락시킬 사람은 바로….

윤제이다.

이미 청탁으로 내정된 연습생 신분의 참가자도 더러 있었던 차에, 프로그램이 점차 대망의 TOP10으로 향할수록 대형 기획사들로부터 투자금을 명목으로 자신들이 계약을 맺고자 하는 참가자를 TOP10에 진출시켜 달라는 청탁이 왕왕 들어왔고….

바로, 어제.

국내 최고의 대형 삼대 엔터 중 JN 엔터의 사내 이사인 김우석이 막대한 투자금을 지원해 주겠다며 이유주 참가자와 계약을 맺으며 TOP2 진출 청탁을 해 오기에 이르렀다.

천문학적이랄 수 있는 제작비를 투자받아 시작되었지만, 워낙 대규모로 진행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만큼 금세 제작비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실정이랄 수 있었고.

무엇보다.

고현덕 CP가 JN 엔터의 사내 이사인 김우석과 지속해서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유지해 왔기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총 20명의 참가자 중 10명만이 살아남아 생방송 무대를 오를 수 있는 TOP10 선발 라운드를 앞두고, 청탁받은 9명의 내정자를 제외한 남은 11명의 참가자 중 누굴 붙일지에 대해 은밀한 회의가 진행되었었으며.

“윤제이가 가장 안정적인 실력을 보여 주기도 하고, HS가 슈퍼패스를 쓴 참가자인 만큼 화제성도 있었고….”

“김 PD님, 윤제이는 너무 자극이 없다 보니 화제성도 점점 떨어지고 있고, 들어오는 소속사 컨택도 무슨 이유인지 다 거절하고 있다던데… 차라리 강하준을 올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도 이번에는 성규진 PD 의견에 한 표야. 윤제이는 사실 HS빨 이잖아? 근데 결국 LS 엔터에서도 계약을 맺지 않았다며? 거기서도 돈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라고 판단한 거지. 반대로 강하준은 이미 팬덤도 형성됐고 LS 엔터에서 데뷔조라며?”

“네, 맞습니다. 일전에 강하준 재참가 문제로 통화해 보니까 박 전무가 끔찍이 아끼는 연습생인 것 같기는 하던데….”

고현덕 CP는 한차례 침음을 흘리며 까끌까끌한 제 턱을 쓰다듬었고.

“그럼 강하준으로 결정하지.”

그의 단 한마디로 TOP10의 마지막 내정자가 강하준으로 결정되었다.

아마도….

나머지 10명은 자신이 탈락 내정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채, 지금도 열심히 평가전에서 선보일 노래를 목이 터져라 연습하고 있을 터였다.

‘윤제이도 마찬가지겠지.’

사실 윤제이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본 HS가 최종 예선에서 극적으로 슈퍼패스를 쓰고, 다음 라운드의 선곡까지 제시해 준 덕택이랄 수 있었다.

그러니.

윤제이를 떨어트리는 점에 대해선 HS에게 먼저 고지를 한 뒤 심사위원으로서 협조해 달라 요청하기로 했고, 촬영 시간을 다소 미루더라도 따로 불러 미팅을 하기로 한 차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똑, 똑-.

머지않아 문 너머로 일정한 노크 소리와 함께 “HS입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죠-!”

성규진의 외침에 문이 열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헬멧을 뒤집어쓴 HS와 뒤를 따라 김 실장이 들어왔다.

“김 실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미 몇 차례 마주한 적이 있던 김영호는 먼저 일어나 형식적인 인사치레를 건넸고.

“예, PD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오늘은 제가 시간적 여유가 돼서 HS의 매니저로서 동석했는데 괜찮죠?”

“물론입니다. 우선 편하게 앉으시죠.”

모두 한 자리씩 꿰차고 앉자, 장내는 고요함이 감돌기를 잠시.

톡, 톡-.

고현덕은 김영호를 팔꿈치로 찌르며 말을 하라고 부추겼다.

“다름 아니라 먼저 질문을 좀 드리고 싶은데….”

머지않아 김영호는 목을 가다듬고 제일 먼저 확인해야 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현재 참가자 중에 LS 엔터와 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건 강하준 한 명밖에 없는 거죠?”

그 물음에 HS 대신 김 실장이 “예, 맞습니다.”하고 간결하게 답을 해왔고.

이로써 윤제이는 현재 계약 관계를 맺은 소속사가 없다는 사실이 확정되었다.

“음….”

김영호는 HS의 눈치를 살피며 얘기하려 했으나, 헬멧을 뒤집어쓴 채 일련의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탓에 아무 반응도 짐작해 볼 수가 없었다.

“여러분도 이미 잘 아시겠지만, 으레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은 진행하기 전부터 내정자가 정해져 있기도 하거니와, 진행하면서 대형 엔터와 상호관계로 얽히곤 하거든요. TOP10 진출자도 이미 내정된 상태입니다.”

한 차례 텀을 두고 LS 엔터 사람이라면 듣기 좋은 법한 말을 덧붙였다.

“물론 LS 엔터의 강하준 씨도 진출 내정자입니다.”

이번에 답을 한 건 HS였다.

“그럼 이번 TOP10 선발 라운드부터는 제작진이 심사에 깊게 관여하시겠다는 뜻이군요.”

굴곡 없는 어조였지만, 확실히 반감이 서린 말이었다. 김영호가 잠시 당황한 듯 “그건….” 하고 말하려던 찰나.

“예, 맞습니다.”

성규진 PD가 단호한 어투로 껴들며,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내정자 명단을 공유해 드릴 테니 그에 따라 좀 융통성 있게 심사 진행 부탁드립니다.”

이내 서류를 살펴보던 HS가 “윤제이?”하고 작게 되물었고.

“네, 윤제이 참가자도 이번에 탈락시킬 겁니다. 내정 자리도 꽉 찼거니와, 점차 화제성도 떨어지고 있는데 방송사 측에서는 더 이상 쥐어짠다 한들 돈이 될 법한 참가자는 아니라 판단했거든요.”

성규진의 말은 참가자를 철저히 방송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비인간적인 발언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PD다운 발언이기도 했다.

“HS 씨가 윤제이 참가자를 눈여겨보고 있는 듯하여 다른 심사위원들과 달리 따로 불러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내부 사정이 그렇다 보니 너른 마음으로 양해와 협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심 쓰는 양 말을 끝냈지만, 그 안에는 PD로서 일련의 고압적인 태도가 내재 된 채였다.

“예, 뭐….”

애매하게 뒷말을 끌던 HS가 머지않아 어깨를 들썩여 보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양 답했다.

“맘대로 하시죠, 그건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니까.”

그의 단출한 대답에 CP를 비롯한 두 PD가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잠시.

“다만….”

HS가 다시금 입을 열었고.

“그런 이유라면 저도 하차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발언에 장내는 착 가라앉은 정막이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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