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세간에 K-싱어스타 ‘TOP 11 데스매치 라운드’ 무대가 담긴 방송이 공개되고.
[ 윤제이! 이번에도 기적적으로 ‘TOP 11’이 주인공으로…. ]
[ K-싱어스타, 최종적으로 ‘TOP 11’ 결승 라운드 진출! ]
[ 패자 부활 ‘강하준’의 무대, 순간 시청률 최고점 기록…. ]
포털 사이트 연예란은 한동안 K-싱어스타 관련 기사들이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케싱스도 짜고 치는 판이구나; 10명만 올라간다더니; 슬쩍 11명 진출시킨 거 보면; ]
스으윽, 스으윽-.
↳ 솔까 비주얼 압도적인 강하준 패자 부활시킨 거부터; 걍 극적인 서사 생성하려는 거지; 바로 시청률 올랐던데ㅋ 안 봐도 어우강이네; 어차피 우승은 강하준;
↳ 아니 근데 어제 무대만 보면 11명 중에 떨어질 만한 애가 1도 없었음. 강하준 포함해서ㅋㅋ 탈락자 중에도 진짜 괜찮은 애들 많았고. 방송 안 본 거 아님?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 방구석 심사위원들 여기 다 모였죠?ㅋㅋㅋㅋㅋㅋ 짜고 치든 뭐든 걍 재미만 있으면 된 거 아니냐? 실력이고 모고 걍 자극적이라 개재밋음 ㄹㅇ;;
아무렴 어떠하리?
↳ 근데 윤제이는 어케 갈수록 노래도 점점 잘하구 목소리도 더 좋아지지?;; 우리 제이하고 싶은 거 다해ㅠ 어차피 우승은 제이니까 ㅜㅜ
↳ 강하준도 외모에 가려져서 그렇지 진짜 말안됨; 사기야; 그 얼굴에 그 몸매에 그 목소리에 그 실력이라니; 다 가짐,, 이제 나만 가지면 돼,,
이 모든 건 관심에서 비롯된 비난과 옹호가 아니겠는가?
K-싱어스타는 나날이 화력이 드높아졌으며, 시청률 또한 가히 기록적이랄 수 있는 수치를 갱신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요즘 현승은 ‘K-싱어스타’의 심사위원으로 나가면서 두 가지 이득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
바로.
연주해 보고 싶던 악기가 하나에서 둘이 되었다는 점이다.
윤제이 그리고 강하준.
예상했던 대로 좋은 소리를 가진 악기와 멋들어진 악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조율을 통해 좋은 소리를 갖게 된 악기까지.
그래,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말처럼 큰맘 먹고 출연한 방송을 통해 흥미로운 악기를 양쪽 손에 쥐게 된 셈이었다.
‘어떻게 연주해 볼까나.’
나름 최대 고민이라면 고민이었다.
‘흠.’
윤제이의 첫 연주는 결승에서 부를 경연곡일 될 테고, 강하준은 자신이 진행 중인 계절별 연금 프로젝트(?)에서 여름 시즌 곡으로 연주를 해 보일 터.
“별로야.”
두 악기의 연주를 앞두고 현승은 만들어 놨던 곡을 재차 갈아엎기를 반복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끼이익-.
김 실장은 그런 현승이 걱정되어 매일 아침 출근 도장을 찍듯 작업실을 찾았다.
“현승아, 아빠 왔다. 오늘도 밤샌 거야?”
“이번에도 마음에 안 들어서요.”
“이번에는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푸른 물감에 살짝 물이 섞인 느낌?”
현승의 추상적인 대답에 김 실장은 대강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천재가 하는 말을 자신이 온전히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나,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숨 쉬는 행위를 제외하면 해가 지고, 해가 다시 떠오르는 것도 깨닫지 못할 만큼 작업에만 매달린 채 시간을 지새우고 있지 않나?
“현승아, 작업도 좋은데 숙식은 좀 해결해 가면서 해.”
“그중에 식은 실장님이 해결해 주시잖아요.”
영어 속담 중 ‘Whom the god loves die young’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는 말인데….
의역하자면 ‘천재는 명이 짧다’라는 뜻이었다.
“그럼 뭐해? 숙면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거까지 대신해 주실 수 있으면 좀 해 주시지.”
“지금 당장 기절이라도 좀 시켜 줄까? 그렇게라도 재워 줘?”
“역시나 예전에는 어둠의 세계에 몸을 담그고 계셨던….”
김 실장은 “이놈이?”하고 꿀밤 먹이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두 손 가득 갖고 온 것들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자, 이거 다 너 거야.”
“오늘 저의 일용할 양식인가요?”
“안타깝게도 아니야.”
그의 말에 현승은 턱짓으로 수많은 쇼핑백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대체 저 많은 쇼핑백은 다 뭐예요?”
“오늘 일이 좀 있어서 걸어서 출근했거든?”
“그래서 오늘 길에 쇼핑이라도 하셨어요?”
“아니, 사옥 앞에 죽치고 있던 네 팬들이 주라더라.”
그리고는 무거웠다는 걸 티라도 내듯 제 어깨를 두들겨 가며 덧붙였다.
“내가 LS 엔터만 십 년 이상을 다녔는데 작곡가한테 조공 들어오는 건 처음 본다.”
현승은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일이라는 양 “아.”하고 작게 탄식하며 쇼핑백을 뒤지기 시작했다.
“먹을 것도 있으려나….”
“놀라지도 않아?”
“놀랄 게 뭐가 있어요.”
“그래도 처음인데….”
사실 처음은 아니다. 전생에서는 너무나 흔한 일이었다. 옷부터 신발, 헤드셋, 먹거리, 편지까지….
매일같이 쏟아지는 팬들의 선물 때문에 방 하나를 아예 선물 창고용으로 두기도 했을 정도였으니까.
“재수 없긴….”
이런 사실을 전혀 알 리가 없는 김 실장은 마냥 태연해 보이는 현승을 보며 눈매를 좁혔다.
학창 시절, 책상 위에 매일 같이 선물이 올려져 있던 탓에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닌 걸까?
압도적으로 잘생긴 사람의 삶이란 저런 것인가? 하는 선망 섞인 생각을 이어 나가던 찰나였다.
“음?”
현승이 어느 한 쇼핑백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고.
“뭔데 그래?”
“이게….”
“응, 뭔데?”
이윽고.
쇼핑백 안에 내용물을 꺼내 본 현승은 황당하다는 듯 선물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직접 구운 듯한 쿠키와 마카롱이 예쁘게 포장되어 한가득 들어 있는 상자였는데….
“이게 뭐야?”
상자의 표면이 강하준의 사진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 인상을 찡그렸다.
아침 댓바람부터 남자의 얼굴이 프린팅된 상자를 들여다보고 싶진 않은데.
“여기 쪽지도 있는데?”
김 실장이 상자 옆면에 붙어 있는 쪽지를 발견하고는 곧장 현승에게 건네주었다.
『 위대하신 HS 님에게.
HS 님의 음악은 황홀 그 잡채라 귀에 피가 나도록 즐겨 듣고 있답니다. 저.. 그런 의미로 하준이 오빠에게도 여태 그랬듯 좋은 곡 하나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ㅠㅠ
알바비라도 몽땅 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나, 나중에 혹여 하준이 오빠나 작곡가님에게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직접 만든 간식거리라도 준비해 봤습니다.
작곡가님 제발 우리 하준이 오빠를 거두어 주세요ㅠㅠ 』
쪽지의 내용을 보아하니 어느 어린 팬이 강하준에게 곡을 달라는 청탁(?)을 하기 위해 조공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이야, 하준이 벌써 인기 많네.”
“그러게나 말입니다.”
다른 쇼핑백을 다 정리해 보니 강하준의 팬들이 준비한 선물은 이거 말고도 세 개나 더 있었고.
“강하준한테 곡 안 주면 저 청부살인 당하겠는데요?”
“에이, 설마….”
“어차피 줄 거였는데, 다들 뭘 이렇게까지 극성일까.”
“응? 줄 거였다고?”
현승이 먹을 것들만 추려내 가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지금 준비하는 여름 시즌 곡 강하준 주기로 했는데요? 제가 따로 말 안 드렸었나?”
“어련히 완성하면 말해 주겠지? -하고 있었지.”
“죄송하게도 그렇게 됐어요. 팀은 달라도 이번 여름 시즌 곡이랑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김 실장은 연신 손사래를 쳐가며 강하게 부정했다.
“아냐,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네 곡인데 네가 주고 싶은 사람 주는 게 맞지.”
“그래도, LS 엔터는 성과로 내분이 좀 있는 편이잖아요.”
“물론 그렇지만, 네 덕분에 2팀이 작년 성과 분기점을 2배나 뛰어넘었잖아.”
빈말이 아니다. 정말 현승 덕분에 2팀은 팀 개설 이래 기록적이랄 수 있는 성과를 세울 수 있었다.
‘그래, 정말 저 녀석 덕분이지….’
서지니의 컴백과 정아린의 데뷔는 대성공이라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흑자를 가져왔고.
그 밖으로는 현승이 LS 엔터에 매절로 판매했던 곡들도 제법 괜찮은 성과를 거둬 냈다.
더군다나, 현승이 개인 앨범과 동물의 섬 OST 앨범까지 초대박이 나지 않았던가?
그런 성과를 안겨다 준 사람이 제 맘대로 곡 하나도 못 주게 한다는 건 어폐가 있었다.
“정말 괜찮으니까 맘 쓰지 않아도 돼. 1팀이던, 2팀이던 어차피 같은 회사 식솔이잖아.”
“그리 말씀해 주시니 맘 편하게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명곡을 만들어 볼 수 있겠어요.”
“뭐? 그 정도의 곡을 만들 거라면 방금 한 말 취소.”
무엇보다 현승이 앞으로 2팀에 황금알 같은 곡을 수도 없이 안겨다 줄 텐데, 같은 식구끼리 곡 하나 가지고 치졸하게 굴 마음도 없었다.
설령….
2팀에 관여된 누군가 현승에게 뭐라 한다 한들, 제 선에서 모두 막아내면 그만이었다.
그가 한참 상념에 잠겨 있기도 잠시.
“실장님.”
“어?”
현승이 나지막이 그를 불러 깨웠고.
“그럼 올해는 성과 분기점 세 배 찍어 봐야겠네요.”
“세 배나? 그럼 구내식당에 업고 다니지!”
“만약 그럼 우리 실장님도 진급하시게 되는 건가?”
“그렇게만 된다면 내년에는 너한테 세배한다!”
“어? 저 녹음합니다. 뱉은 말들 꼭 이행하셔야 해요.”
모쪼록 자신도 지금 뱉은 말을 꼭 이행하리라 다짐했다.
* * *
TOP 11의 첫 라운드를 목전에 앞둔 어느 날.
강하준이 연습실을 향하기 전 습관처럼 들린 카페테라스의 자리 하나를 꿰차고 앉은 찰나였다.
띠링-!
박 전무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 박 전무님: 하준아 다시 재출연하자마자 순간 시청률 또 기록 찍었다더라! ]
[ 박 전무님: 홍보팀에서 네티즌들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라네. 링크 남긴다. ]
강하준은 곧장 문자에 첨부된 링크를 타고 한 포털 사이트의 기사를 확인했다.
[ 패자 부활 ‘강하준’의 무대, 순간 시청률 최고점 기록…. ]
스르륵, 스르륵-.
↳ 짜고 치는 판이라도 좋다. 호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어.
↳ 누나는 한눈 안 팔고 지고지순하게 너만 기다렸어,,
↳ 시청자 투표 시작하면 우리 하준이 다 몰아줄게,,
↳ 완벽한 강하준이 갖지 못한 게 딱 하나있어, 바로 나.
↳ 이렇게 된 이상, 저를 책임져 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 어떻게 고새 더 잘생겨진 것 같지?; 귀공자같이 생김;
↳ 노래도 진짜 잘하던데 ㅠ ㅠ 왜 언급이 없지?
↳ 잘 하긴 하는데 너무 얼굴에 묻히는 느낌이긴 해,,,
중간중간 로비하고 다시 들어온 거 아니냐는 댓글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었다.
스르륵, 스르륵-.
뒤로 가기를 누르자 자기 기사 위로 윤제이라 적힌 메인 기사가 보였고.
[ 윤제이! 이번에도 기적적으로 ‘TOP 11’이 주인공으로…. ]
스르륵, 스르륵-.
↳ ㄹㅇ 윤제이 목소리는 진짜 문화재로 지정해서 보호해라; 머리털 나고 이런 목소리 처음이야;
↳ 진짜 노래만 시작하면 바로 눈빛에 생기 도는 거 킬링 포인트야ㅜ 이런 사람이 가수 해야지!
↳ 이번 무대도 찢었더라 개 울었음ㅠㅠ 윤제이 목소리는 먼가 가슴을 쿵 정도가 아니라 쾅 때려ㅠㅠ
↳ 처음에는 그닥 별로였는데 갈수록 호감이야,, 완전 순딩이 재질에 기여워,, 윤블리,,♡
↳ 이유주가 윤제이 별로 안 조아하는 것 같던데 이번에 동시 합격해서 배 좀 아프겠는데?
윤제이 기사의 댓글까지 모조리 확인한 강하준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래.
매번 기사나 댓글 내용이 외모와 관련된 자신과 달리, 윤제이는 목소리나 실력에 관한 얘기가 대부분이라 부러웠다.
더군다나 이번 데스매치 무대는 얼굴보단 보컬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무대 장면을 연출해 내지 않았던가?
“맘처럼 안 되네….”
누군가는 재수 없는 고민이랄 수 있지만, 현재 강하준은 누구보다 실력과 관련된 평가에 목말라 있는 채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연습하기도 바쁜 날들이다. 이런 잡념에 사로잡혀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때.
박 전무로부터 문자가 한 번 더 도착했다.
[ 박 전무님: 그리고 나쁜 말은 다 걸러 듣도록 해. ]
문자를 확인한 강하준이 옅게 웃어 보이기도 잠시.
띠링-!
연이어 도착한 문자 한 통에 곧장 입을 틀어막았다.
[ HS 님: 네 팬들한테 혼나기 전에 곡 보낸다. ]
애타게 기다려온 HS에게 온 문자였다.
쿵.
심장이 발끝으로 떨어지는 양 울렁거렸다.
‘근데… 웬 팬들?’
그가 보낸 문자의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띠링-!
뒤이어 도착한 문자에 그토록 기다려 온 음원 파일이 첨부되어 있던 까닭이었다.
[ HS 님: 윤슬_MP3 ]
[ HS 님: 한 달 내로 불시에 녹음 실시 예정 ]
[ HS 님: 경연 준비도 중요하지만 ]
[ HS 님: 데뷔 준비도 철저하게 해라 ]
[ HS 님: 안 그럼 네 팬들한테 혼남 ]
대체 왜 자꾸 내 팬들에게 혼난다고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 넵.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 ]
물어도 답을 해주진 않을 것 같으므로, 간결하게 답을 보냈다.
“바로 들어 볼까?”
에어팟을 끼우고 음원 파일을 곧장 재생시켰다.
─ ♬♬♬
“아….”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
만약 지금 있는 곳이 카페테라스가 아니라, 집이었다면 소리를 질렀을 거라는 걸.
“미친….”
도톰한 아랫입술을 잘게 깨물며 자신에게만 들릴 정도로 욕을 중얼거렸다.
쪼로록, 쪼로록-.
곡을 듣자 묘한 흥분과 긴장으로 입안이 바싹 말라 갔다.
쪼오옵, 쪼옵-.
결국 시킨 지 얼마 안 된 커피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이윽고.
평상시처럼 커피 리필을 하거나 빈 잔을 반납하지도 못한 채 카페테라스를 나섰다.
‘얼른 음향 설비를 제대로 갖춘 곳에 가서….’
단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온통 지배해 버린 까닭이었다.
‘다시 듣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