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윤제이는 코앞으로 다가온 다음 생방송 라운드의 막바지 연습을 하기 위해 기타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터벅, 터벅-.
한참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오르막길 끝자락에 허름한 제집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저 집도, 이 동네와도 헤어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얼마 전.
꿈에만 그리던 LS 엔터와 계약을 맺게 된 것도 모자라, 갑자기 억대의 계약금을 받게 되었다.
살면서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단위의 액수를 보게 되자, 아이러니하게도 집부터 생각이 났다.
‘화장실 안에 세면대 있는 집….’
아, 맞다.
‘욕심이겠지만 샤워부스도….’
누군가에겐 최소한의 갖춰야 할 집의 요소라 할지라도, 그녀에게 있어선 이마저도 꿈에 그리던 일이었다.
적어도 자본주의인 대한민국의 땅에서 부모도, 보호자도 없이 혼자 살아남아야만 했던 그녀에겐 그랬다.
전세 매물은 쳐다본 적도 없었다.
매번 월세만을 전전해야 했고, 반지하 단칸방 혹은 달동네 꼭대기만이 최선의 선택지였다.
세면대도 샤워부스도 없어서 바가지에 물을 받아 쪼그리고 앉아서 씻어야 하는 그런 집.
그래서 윤제이는 세면대에 집착했다.
어찌 되었건, 세면대가 있는 집을 상상이라도 해 볼 수 있게 된 건 전부 HS가 자신에게 기회를 준 덕분이다.
그런 그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제 모든 시간을 연습하는 데 사용하더라도 모자라게만 느껴졌다.
당장 할 수 있는 보답은 그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무대를 통해 입증해 보이는 것뿐이니까….
‘지금은 TOP 5 진출 결정전에만 집중하자.’
집은 나중에 프로그램이 끝나는 대로 발품을 팔아 제대로 알아볼 요량이었다.
터벅, 터벅-.
그녀는 오늘 연습실에서 밤을 지새우겠다는 표정으로 시내를 향했다.
“흠흠-.”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윤제이는 액정을 계속 흘끔흘끔 확인하고는 히죽거렸다.
[ T O P 100 ]
1. 어깨를 빌려줄게 – 윤제이 (K-싱어스타)
사과뮤직에서 단독으로 공개한 TOP 11의 음원이 공개되고 단 하루 만에 제 노래가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랐다.
물론.
프로그램의 화력 덕도 있을 테고, 다음 업데이트 시간이 되면 다시 쭉 밀려날지도 모르지만….
너무나 행복했다. 어찌 되었건 자신이 부른 곡을 대중들이 들어주고 있다는 반증일 테니까.
“헤….”
윤제이는 휴대폰 버튼을 눌러 음원차트 화면을 캡처하고는 뿌듯하게 웃음 지었다.
어느덧.
고개를 들어 보니, 시내 중심가에 다다른 채였다.
“여기 어디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러나.
시내를 돌아다녀 본 적이 없던 그녀는 예약해 둔 연습실을 찾는 것부터 난항을 겪고 있었다.
“DJ 스튜디오, DJ 스튜디오….”
연습실을 찾기 위해 지도를 보며 재차 중얼거리던 찰나였다.
“야, 저기 윤제이 아냐, 윤제이?”
“맞는 것 같은데?”
“K-싱어스타 나온 애 맞지?”
주변에서 윤제이를 알아본 행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 마침 가방에 종이랑 펜 있는데 사인해 달라 해 볼까?”
“이왕이면 사진도-!”
“맞아, 나중에 엄청나게 잘나가는 연예인이 될 수도 있잖아.”
점차 행인들은 거리를 좁혀 윤제이 쪽으로 다가왔고.
“저기요-!”
마침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윤제이를 불러 세웠다.
“저, 저요-?”
“네, 윤제이 님 맞으시죠? K-싱어스타!”
윤제이는 잔뜩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오는 여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 네, 맞아요….”
“헐, 진짜 맞았어! 진짜 저 언니 찐팬이에요. K-싱어스타도 언니 때문에 전 회차 다 챙겨 봤어요!”
“감, 감사합니다.”
“이번 생방송 무대도 완전 찢어 놓으셨던데! 무대 영상 클립 뻥 안 치고 한 30번은 봤을걸요?”
여자 무리는 한참 호들갑을 떨어 보이고는 A4용지와 펜 하나를 내밀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 사인이요? 저 사인이 없는데….”
“예? 아, 그럼 이름이라도 적어 주시면 안 돼요?”
“아, 네! 적어 드릴게요.”
윤제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펜을 쥐었다. 태어나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사인 요청을 받게 될 줄은, 누군가에게 사인을 해 주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TV에 나오고, 기사나 커뮤니티에 관련된 글들이 올라오는 걸 종종 확인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본다는 게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이왕이면 그럼 같이 사진도 좀….”
“아… 네네!”
“찍을게요! 하나, 둘-!”
윤제이는 최대한 밝은 미소를 띤 채 팬이라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렇게 밝게 웃어 본 적이 언제인지 모를 만큼 아주 활짝 웃어 보였다.
“어? 야, 저기 윤제이다!”
“헐, 대박!”
“진짜 언니 목소리 짱 좋아요!”
어느덧 지나가던 다른 행인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윤제이를 둘러싸 버렸고.
찰칵, 찰칵.
이곳저곳에서 손이 뻗어 나와 악수와 함께 그녀의 사진을 찍어 대기 시작했다.
“HS가 슈퍼패스로 살려 낸 참가자 아니야?”
“윤제이 맞아!”
“확실히 HS가 듣는 귀가 좋은 것 같아.”
이젠 윤제이 하면 빼먹을 수 없는 수식어처럼 HS에 관한 얘기가 뒤따라왔다.
그래.
그만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뒤쫓아 왔다. 자신이 실수하거나, 삐끗하는 순간 ‘HS’란 이름을 실추시키는 일이자, 믿음을 보여 준 그를 실망하게 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문득.
HS가 해 줬던 말이 떠올랐다.
“절망 속에서도 불현듯 기회가 오더라고.”
제 인생이 너무 단번에 바뀌었다고, 너무 꿈만 같다고 했을 적에 그가 해 준 말이었다.
“내가 살다 보니 그렇더라고.”
정말 그의 말대로 절망 속에서 불현듯 찾아온 기회 같은 나날들이 불쑥 찾아왔다.
이 한줄기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를 나의 것으로 만드는 건 온전히 제 몫이리라.
돌연 고양감에 휩싸인 윤제이는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기타 가방을 고쳐 매며 사람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여러분, 응원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렇게나 크게 소리 내 본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왠지 단전에서부터 우렁찬 힘이 쏟아져 나왔다.
“다만, 지금 시간이 없어서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윽고.
재차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달음박질로 연습실을 향했다.
* * *
어느덧 TOP 8의 생방송 촬영 날이 밝아 왔다.
“현승아, 이만 가자.”
“이거 조금만 더하면 끝나요.”
김 실장이 헤드셋을 뒤집어쓴 채 열심히 작업 중인 현승의 뒷모습을 보며 “못 말려.”하고 중얼거렸다.
아직은 조금 여유 시간이 있으니 차분히 기다려 주기로 맘을 먹은 김 실장은 다시금 소파에 앉았다.
대체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까진 모르겠지만….
쉴 틈 없이 생성되는 트랙을 보아 또 엄청난 작업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 내려고….’
김 실장은 언제부터였는지 현승의 곡을 ‘작품’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작품’이라 칭할 법한 노력과 시간이 투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젠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재능이 뒷받침하고 있으니 성공은 따 놓은 당상이고.
똑, 똑, 똑-!
그때 누군가 현승의 작업실 문을 일정하게 두들겼다.
“누구지?”
김 실장이 곧장 걸음을 옮겨 문을 열자, 앞에는 박 전무가 서 있었다.
“어, 박 전무님께선 여기는 어쩐 일로….”
“마침 김 실장이 여기 있었군.”
“네, 현승이 촬영장 데려다주려던 참이거든요.”
박 전무는 “잘됐네.”하고 중얼거리더니, 뒤에 서 있던 강하준의 어깨를 잡아 작업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름 아니라, 김 실장이 우리 애 좀 같이 데려가 줄 수 있나? 난 중요한 미팅이 좀 잡혀서 말이야.”
갑자기 김 실장의 품에 안기다시피 떠밀린 강하준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했고.
“아, 예. 제가 같이 데려가겠습니다….”
“김 실장이라면 든든해서 맘이 놓이겠어.”
박 전무는 두툼한 손으로 김 실장과 강하준의 어깨를 다독이며 덧붙였다.
“모쪼록 우리 애 좀 잘 부탁하고, 난 이만 급한 일이 있어서.”
그리고는 유유히 걸음을 돌려 가버렸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에 현승이 고개를 돌려 강하준을 발견하곤 말을 건넸다.
“뭐야? 얘는 또 왜 왔대요?”
“안, 안녕하세요….”
“박 전무님이 같이 좀 데려가 달래.”
현승이 작게 “아아.”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박 전무님, 거의 하준이 학부모인데?”
“실장님도 제 학부모잖아요.”
“내가? 내가 왜 네 학부모야, 인마.”
“그럼 할아버지?”
김 실장은 더 이상 대꾸해 봤자 상처받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아는지 고개를 내젓고는 재촉해댔다.
“하준이도 왔으니까 얼른 출발하자.”
“아, 잠깐만요.”
“차 막힐 거 감안해서 얼른 가야 한다니까?”
“거의 다 했어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강하준은 슬쩍 고개를 돌려 모니터에 떠오른 섹션을 슬쩍 흘겨봤다.
‘어떤 곡일까…?’
때마침 김 실장이 강하준의 속마음을 대변하듯 물었다.
“대체 무슨 작업을 하길래 그래?”
현승은 대답 대신 손을 더 바삐 움직일 뿐이었다.
탁, 탁, 탁.
마스터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만 들려오기도 잠시.
탁-!
마지막으로 저장 버튼을 누른 현승이 고개를 돌렸다.
“결승 무대에 공개할 경연곡이요.”
강하준은 그의 입에서 나온 말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저 곡이 바로….’
그래, 맞다. 일전에 TOP 2에 오른 참가자는 제이블과 HS가 만든 곡으로 결승 라운드를 장식하게 될 거라고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TOP 2까지 진출한 참가자를 위한 보상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상 넓게 따지고 보면 가장 큰 이윤을 취하는 건 제작진이 될 터였다.
‘그치.’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몇 달 전, 제이블과 HS의 음원 내기 사건을 알고 있으리라.
결국.
이번 K-싱어스타 결승 라운드를 통해 발표될 경연곡은 두 사람의 음원 내기 연장선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단, 기사 한 줄이면 장안의 화제가 될 게 분명했다. 그럼 자연스럽게 네티즌들은 궁금해서 미쳐 달아오를 거고.
그 와중에 결승 라운드에서 두 사람의 곡을 처음 공개한다?
그래.
K-싱어스타의 시청률은 폭발하겠지.
‘아아.’
또, 중요한 사실 하나.
준결승에서 1위를 차지한 참가자에게 두 사람의 곡 중 누구의 곡을 택할지 우선 선택권이 쥐어질 거라고 했다. 이건 강하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랄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럼 내가 꼭 부ㄹ…! 아….”
돌연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하던 말을 육성으로 내뱉은 강하준은 황급히 입매를 꾹 다물어 보였다.
“실장님, 쟤 뭐 잘 못 먹인 거 아니에요?”
“우선 난 아님.”
“그 말투는 어디서 배워 오신 거예요?”
“네 팬카페.”
“얼른 가야 한다면서요? 얼른 갑시다.”
“지금 무시?”
이내 현승은 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팬카페에 들어가서 회장에게 쪽지를 보내야겠다고 다짐했다.
─ kimwoohyun85 강퇴 요망
라고 말이다.
* * *
이유주는 숙소에서 잠들기 싫어, 연습한다는 핑계로 JN 엔터 지하 연습실에서 날밤을 새운 채였다.
“하….”
당장 몇 시간 뒤에 TOP 8 생방송인데, 잠도 못 자고 연습도 제대로 못 해서 착잡함이 밀려왔다.
하나.
으레 사람들이 그렇듯, 하기 싫은 일이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몰려오면 딴짓하기 마련이다.
이유주 또한 다급한 마음과는 달리 불 꺼진 연습실에서 휴대전화만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 케싱스 윤제이 본 ssul 푼다. 」
그러던 중 자신이 자주 들어가는 커뮤니티에서 눈길을 끄는 글을 발견했다.
─ 어제 시내에서 윤제이 실물 영접함. 사람들이 알아보고 몰려들어서 당황했을 텐데 인상 한 번 안 구기고 사인이랑 사진 요청하는 거 다 해주고 악수도 다 받아주더라ㅠㅠ 그러다 갑자기 죄송하다면서 뛰어가길래 급한 일 있나? 했는데 인근 연습실로 뛰어 들어감. 넘 사랑스럽지 않음? 인성에 근성까지 갖췄는데 생긴 것도 윤블리 그 잡채; 바로 팬카페 가입함; 오늘 생방송 때 가족 폰 다 모아놓고 윤제이한테 시청자 투표 박는다. +인증사진 첨부 」
스르륵-.
↳ 헐 진짜 방송에 나오는 것보다 더 여리여리한 분위기야; 여자인 내가 봐도 사랑스럽다 야;;
↳ 좀 소심해서 그렇지, 애는 진짜 착한 것 같음,, 방송에서도 보면 배려가 몸에 밴 사람 같음ㅠㅠ
↳ 진짜 윤제이가 실력으로는 1위인데 사전투표 보니까 강하준이 압도적으로 높긴 하더라ㅠㅠ
참나, 착한 것과 답답한 걸 구분도 못 하나?
↳ 최종 예선 무대 때는 진짜 아니 얘가 왜 슈퍼패스임?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신의 한 수였음;
↳ 그러니까;; HS가 안 살려냈으면 어쩔뻔했음; 솔직히 난 케싱스 애들 중에 윤제이 목소리가 젤 좋음;
↳ 방송 보니까 윤제이 진짜 어렵게 산 것 같던데ㅠㅠ 진짜 울 제이 이제 꽃길만 걸으면 좋겠다!!
어렵게 살면, 뭐 얼마나 어렵게 살았다고.
“이 세상에 구김 하나 없이 자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이유주의 봉긋한 이마가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윤제이….”
그녀에게 있어서 윤제이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HS의 버프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나선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인 양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왜….’
하나도 아름답지 않은데.
분위기도 우중충하고.
소심하다 못해 답답하잖아.
‘쟤는 스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녀는 제 기준에 한참 미달인 윤제이가 심사위원들의 기대와 극찬을 받는 것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K-싱어스타라는 프로그램 내에서 윤제이에게 밀려 점차 자신의 존재감이 옅어진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영 거슬리는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내.
그녀는 짜증 섞인 손가락을 움직여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 애들아 케싱스 이유주 인성 파토난 거 들통남 (캡처) 」
“어…?”
일순간 이유주의 동공이 지진으로 균열이 일어난 땅처럼 뒤흔들렸다.
이게 대체 뭐야….
─ 안 그래도 이유주 합숙할 때부터 유달리 쎄하다고 느꼈는데, 특히 방 옮겨져서 윤제이랑 같은 방 쓰니까 싫은 티 팍팍내고; 경계심 쩔더니 결국 이번에 TOP 11 생방송에서 표정 썩은 거 고스란히 방송탐,, 특히 윤제이 2위 했다고 발표나자마자 구겨진 미간 풀 생각 1도 없어보이더라ㅋㅋㅋ +캡쳐본 첨부
스르륵-.
↳ 이유주는 첨부터 눈빛이 좀 싸했어; 독기가 가득함;
↳ 첨에 방 옮긴 것도 같은 방 쓰는 애 괴롭혀서라는데?
↳ 윤제이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건 좀 아닌 듯; 불쌍;
↳ 이유주 입모양 보면 욕하는 것 같지 않음? 나만 그래?
↳ 확실하지도 않은 거 가지고 또 마녀사냥 시작했네;;
↳ 않이;; 이 캡쳐 며칠째 우려 먹는거임? 사골임?
눈빛이 뭐 어쨌다는 거야.
↳ 그래도 얼굴은 반반하니까 아마 프로그램 끝나자마자 걸그룹에 슥 끼워서 데뷔할 듯;
↳ 맞아 이유주 예쁜 건 솔직히 인정해야됨; 얼굴로 여태껏 케싱스에서 살아남은거잖아
↳ 그때 학폭이나 안 터지면 다행~ 유주야 지금이라도 피해자한테 연락해놔~ 기억나려나 모르겠지만ㅎ
웃겨, 지들이 뭘 안다고.
↳ 아니; 근데 경쟁자인데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됨? 저게 솔직한 감정 아님?
↳ 그니까ㅋㅋ지들은 모 얼마나 천사표라고ㅋㅋ 자기들끼리 서사 뚝딱 만들어선 애 하나 ㅂㅅ만들기 참 쉽쥬?
↳ ㅈㄴㄱㄷ) 그래도 방송 나오는 사람이면 표정 관리 정도는 똑바로 해야 한다고 생각함.
이유주는 마룻바닥으로 된 연습실 바닥에 휴대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몸쪽으로 바짝 당긴 두 다리 사이로 얼굴을 푹 파묻었다.
‘짜증나….’
자꾸만 약해지는 제 모습이 마음에 영 들지 않던 탓에 감추고 싶었다.
‘다 짜증나….’
그렇게나 갈망해 왔던 행복의 문턱을 넘은 줄 알았다. 앞으로는 아름답고 화려한 꽃길만 펼쳐질 거라 여겼고, 이제는 웃을 날들만이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런데.
자꾸만 이상하게 점차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K-싱어스타에 나온 이후부터인가?
아니, 아니지….
JN 엔터와 계약을 한 다음부터였나…?
이유주는 K-싱어스타에서 진행한 합숙 기간이 끝나는 대로, JN 엔터에서 지원해 주는 단체 숙소로 거처를 옮겼다.
자신이 합류하게 될 그룹의 멤버들과 안면도 터놓고, 겸사겸사 엔터의 도움을 받아 다음 경연 준비를 하려 했었다.
그래.
그땐 모든 게 다 잘 풀릴 거라고 희망에 부풀었다.
‘바보같이.’
K-싱어스타의 합숙소에 있을 때보다 나은 생활을 하겠지, 강압적인 방송 제작진들보다야 제 편인 소속사 품이 훨씬 낫겠지 하며 어림잡아 생각했었던 모든 것들이 착각일 뿐이었다.
직접 피부로 느낀 연예계는….
더욱 혹독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그 자체였다.
“야, 똑바로 안 해? 그룹 이미지 망칠 일 있어?”
“저런 애랑 같은 그룹이라니.”
“땔감으로 쓰기는 딱 좋잖아. 화제성이야 확실하겠지.”
뒤늦게 그룹에 합류한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지,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멤버들의 눈초리를 감당해야만 했고.
“몸무게가 왜 안 줄어? 네 키면 43kg 정도 돼야 화면에 잡혔을 때 안 뚱뚱해 보인다니까?”
“SNS 다 삭제하고 탈퇴하라고 했잖아. 비공개 계정이라도 나중에 문제 될 수 있다고 몇 번 말해.”
“휴대폰 압수야.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휴대폰만 사용하고, 외출할 때는 다 보고 하고.”
“혹시 남자친구는 없지? 있어도 당장 정리해. 참고로 계약서에 연애 금지 항목 적혀 있어.”
애매모호하게 적어 놓은 계약사항들은 불리하게 적용되어 제약된 생활을 강요받았으며, 강압적인 구속이 뒤따랐다.
그래.
연예계 이면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어왔지만, 운이 좋은 자신에게만큼은 해당하지 않는 말이라고 자만했었다.
달콤하게 현혹하던 말들과 파격적인 조건….
무엇보다 JN 엔터라는 대형 기획사의 명함에 홀려 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제 업보였다.
‘참….’
안일하고, 아둔했다.
“만약 계약 해지하게 되면, 위약금으로 계약금의 열 배 물어 줘야 하는 거 알지?”
하나, 되돌릴 수도 없었다.
“네 계약한 업체들 위자료까지 한 번에 청구될 거니까, 허튼 마음 먹지 말고.”
이미 계약서에 ‘을’이라는 칸에 제 서명이 기재되었고. 웰컴 키트마냥 협찬, 광고, 방송, 라디오까지 확정 난 계약과 섭외가 몇 건이나 되었다.
무를 수도 없고, 파기할 수도 없다.
“유주야, 힘들어? 그거 배부른 소리다. 너보다 더 힘들고 고생하는 애들이 이 바닥에 수두룩 빽빽이야. 넌 걔네에 비하면 하이패스 통과해서 고속도로 달리는 중이고.”
그저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버텨 내서 성공해야만 했다. 투덜거릴 곳은 없었다. 기댈 곳도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곤 버텨 내는 것뿐이다.
지이이이잉-!
때마침 깊은 상념에 빠져 들고 있던 자신에게 깨어나라고 닦달하듯 진동이 울려 댔다.
[ 김우석 이사님: 이유주, 당장 출발해야 하는데 너 어디니? ]
그래.
지금은 죽으나, 사나 경연 무대를 올라야 하는 게 현실이다.
「 애들아 케싱스 이유주 인성 파토 난 거 들통남 (+캡처) 」
문자창을 나가자 조금 전까지 보고 있던 자신의 욕이 가득한 커뮤니티 창이 떠올랐다.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이판사판이다.
정말.
아득바득 짓밟고 TOP 2까지 올라설 거다.
“윤제이한테는 절대….”
이 순간에도 윤제이 목격담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