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00화 (100/118)

99화

제이블은 대망의 결승전을 앞두고 강하준을 제 개인 작업실로 불러들였다.

둘이 만난 건 처음이라 꽤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사담을 끝내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하자, 뙤약볕에 빙하가 녹아내리듯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벌써-.’

기지개를 켜던 제이블이 벽에 달린 전자시계를 보고는 놀라며 토크백을 눌렀다.

“하준아, 좀 쉬었다가 할래?”

“아니요.”

“어, 그래. 쉬고 싶으면 손짓하고.”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던 탓에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흐른 지도 몰랐다.

아니지.

되레 연습하면 할수록 더욱 힘이 더해진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전달되었다.

‘확실히….’

재능 값을 점수로 수치화할 수 있다면 강하준은 모든 항목에서 평균 이상의 값이 매겨지리라.

‘타고났어….’

거기에 성실한 노력까지 플러스알파로 더해지니, 분명 좋은 무대가 나올 거란 확신이 들었다.

─ 피를 토해 내듯 노래해.

가르치는 맛이 난다는 게 이런 말일까? 대충 던져도, 나이스 캐치라는 말이 절로 나오도록 받아 낸다.

“지금 좋았는데 첫 벌스는 힘 좀 빼고 한 번 더 가 보자.”

“네-.”

“가능하면 브릿지 때는 성대를 긁는 느낌으로 불러 볼래?”

“네, 해 볼게요.”

그렇게 군말 하나 없는 맹연습이 이어지기도 잠시.

똑, 똑, 똑-.

누군가 제이블의 작업실 문을 두들겼다.

“들어가도 되겠나?”

“아, 그럼요.”

제이블은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확인하자, 곧장 의자를 빼며 말했다.

“앉으세요.”

“고맙네.”

서글서글하게 주름 잡힌 입가와 달리, 스포츠로 짧게 깎아 놓은 백발 머리와 까만 선글라스, 넓은 풍채가 제법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이 남자는….

제이블이 소속된 O&M 레이블의 대표 백규호였다.

“결승 준비 중인데 내가 방해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절대 아닙니다.”

손사래를 쳐 보인 제이블은 부스 너머에 서 있는 강하준에게 나오라며 눈짓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나온 강하준은 백규호를 발견하자 곧장 90도로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인사했다.

그와는 만나본 적도 없었고, 선글라스를 낀 상태라지만 절대 몰라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하준이라고 합니다.”

“그래요, 나도 만나서 반가워요.”

“어릴 적에 선생님 곡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안 듣는 모양이네?”

백규호의 장난기 서린 물음 한마디에도 강하준은 바짝 얼어붙어 말을 더듬었다.

“아, 아뇨! 지금도 당연히….”

“농담일세.”

그는 지금도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레이블의 대표로서 파워가 막강하다지만.

예전에는 ‘백규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명성을 크게 얻은 보컬리스트였다.

문범재가 한참 전성기던 시절,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락 보컬계의 쌍두마차라 불렸다.

강하준은 지금 그저 동종업계 선배가 아니라….

마치 신화 속에 나오는 전설의 동물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백호를 범상케 하는 백발 스포츠머리를 한번 쓸어 넘긴 그는 제이블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만든 곡을 이 친구가 부른다고 했지?”

“네, 이번 결승전에서….”

“그럼 지금 한번 들어 볼 수 있나?”

백규호의 요청에 제이블은 “그럼요.”하고 답하며 콘솔 앞에 앉았다.

눈치 빠른 강하준도 곧장 부스 안으로 뛰어 들어가 헤드셋을 뒤집어썼다.

딸칵.

스페이스 바를 누르자, 곧장 트랙이 재생되며 컨트럴 룸 안으로 구슬픈 피아노 선율이 흘렀다.

이윽고.

강하준이 입술을 열자, 믹싱으로 섬세하게 조율을 맞춘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내가 왜 마이크를 집어 들었는지 알려 줄게.

백규호는 그 목소리에 맞춰 팔걸이를 일정하게 두들겼다.

톡, 톡, 톡.

그가 좋은 곡을 들을 때만 나오는 버릇이다.

─ 그 옛날에 다짐했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불러.

곡이 절정에 치닫자, 자신이 요청했던 대로 절절하게 긁어 대는 강하준의 목소리가 가슴 깊은 곳을 간지럽혔다.

─ 지금은 초라한 나라도, 언젠가 모두가 들어주기를.

어느덧 마지막 한 소절.

─ 피를 토해 내듯 노래해.

조금 전 둘이 연습할 때보다 더 훌륭한 마무리였다. 힘을 잔뜩 뺏음에도 간절한 호소력이 느껴졌다.

“어떻습니까?”

제이블은 백규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곡에 대한 물음은 아니었다. 곡이 나쁠 리가 없으니까.

더군다나, 곡이 끝날 때까지 팔걸이를 두들기던 걸 보면 곡만큼은 맘에 쏙 든 모양이었다.

다만.

강하준의 보컬까지 마음에 들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로커이자, 보컬리스트다.

보컬에 있어선 자신보다 더 예민한 귀를 지닌 자였다.

‘대표님이 인정한다면….’

다른 심사위원들의 귀에는 당연히 좋을 거고, 대중들의 귀? 두말하면 입만 아프겠지.

“현직에서 손 뗀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겠나?”

“그래도 듣는 귀 하나는 탁월하시잖아요.”

“나는 이제 가수가 아니라, 그저 장사꾼이지.”

한편, 부스 안에 있던 강하준은 둘이 무슨 대화를 오가는지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창 너머로 흐르는 묘한 분위기에 나갈 수가 없었다.

‘가사나 한 번 더 봐야지.’

강하준은 둘에게 시선을 거두고는 제 손에 쥔 악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음.”

백규호가 그런 강하준을 바라보며 침음을 흘리기도 잠시.

“아주….”

마치 히트 상품이 진열된 쇼윈도우를 바라보며 할 법한 말을 꺼냈다.

“잘 팔리겠어.”

“예?”

“그것도 불티나게.”

그는 팔걸이를 두들기던 손가락을 멈추며 첨언했다.

“머지않아 대중들은 저 친구에게 마음을 주고, 시간을 쓰고, 돈을 쏟아부을 걸세.”

그리고는 선글라스를 슬쩍 내려 눈을 찡긋거리며 덧붙였다.

“곡은 당연히 좋고.”

이내.

“그나저나 저 친구는….”

백규호는 곁눈질로 토크백 스위치가 눌리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이미 LS 엔터 소속이라고?”

“네, 맞습니다.”

“이런, 아쉽게 됐어.”

제이블이 잘 들리지 않은 탓에 “예?”하고 되물었고.

“강하준이라….”

그는 대답 대신 부스 안으로 시선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잘 자라서 나중에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

아무쪼록 진심이었다.

그만큼.

거대한 스타성이 느껴졌으니까.

“아.”

제이블은 뒤늦게 그의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윽고.

강하준을 바라보던 둘의 입가에는 승기의 미소가 떠올랐다.

* * *

드디어 결승전 당일이 밝았다.

민준석은 제 딸아이인 현아를 데리고 K-싱어스타 결승전이 치러질 공연장을 찾았다.

“어후, 사람 진짜 많다.”

딸이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줄을 기다리는 게 영 지루한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리고는 팔짱을 단단히 껴 왔다.

딸은 항상 이랬다. 어릴 적부터 사람 많은 곳을 가면 혹여나 놓칠세라 이렇게 바짝 붙어 걷고는 했다.

귀가 안 들리는 자신을 불러 세울 수가 없을 테니까.

머지않아 현아가 잡아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겨 공연장 내부로 들어섰다.

“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는 공연장 규모에 현아의 입술은 여지없이 벌어졌다.

“아차.”

이내 치아끼리 부딪쳐 “딱.” 소리가 날 정도로 황급히 입술을 다물었다.

아마 이 모습을 현승이 봤다면 또 시골 쥐라 놀려 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와….’

민준석도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공연장 내부를 천천히 살폈다.

“아빠, 여기가 우리 자리인가 봐! 자리 짱 좋다!”

그리고는 2층 맨 앞 좌석에 앉아 조명이 환하게 켜진 무대를 내려다봤다.

‘TV로 볼 때마다 훨씬 크네.’

스테이지 위로는 조명을 점검하는 중인지, 여러 화려한 조명이 쉴 틈 없이 반짝였고 뒤로 설치된 LED 전광판에는 화려한 영상 전시가 떠올랐다.

민준석은 그 화려함에 시선을 뺏겼다.

젊은 나이부터 귀가 안 들렸던 탓에 공연 같은 것을 보러 다닌 적이 없었다. 애초부터 남들처럼 여가 생활을 즐길 만큼 형편도 좋지 않기도 했고.

그러나.

또, 막상 제 아들이 심사위원으로 있는 프로그램의 공연을 보러왔다고 생각하니까 마치 아내와 처음 영화관에 가던 날처럼 심장이 떨려 왔다.

그때.

자막이 있던 외국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커녕 아내 옆얼굴만 보고 왔었는데….

톡톡.

그때 제 팔을 두들기는 감촉에 고개를 돌리니 아내와 쏙 빼닮은 딸아이의 말간 얼굴이 보였다.

─ 아빠, 저기 봐 봐.

쭉 뻗은 딸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가까운 곳에 심사위원석이 보였고, 티비에서 많이 보이는 얼굴들 사이로 헬멧을 뒤집어쓴 한 남자가 보였다.

‘아들….’

비록 헬멧을 썼다지만,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 현승이….’

제 아들이었다.

톡톡.

그때 현아가 다시금 배시시 웃으며 수어로 물었다.

─ 우리 오빠, 짱 멋지다. 그치?

그 물음에 민준석은 멈추는 법을 고장 난 로봇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아빠 아들, 성공했나 봐.

그래.

딸아이의 말대로 제 아들인 현승은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사람의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일 터였다.

민준석도 요즘 그 점에 대해서는 피부로 와닿고 있었다.

하물며 오늘도 단순히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심사하는 사람으로서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자신이 제대로 뒷바라지해 준 것 하나 없는데 홀로 저 자리까지 오른 아들이 대견하고, 멋질 따름이었다.

문득….

사별한 애들 엄마가 떠올랐다.

‘같이 와서 봤으면 좋았을 텐데.’

나중에 하늘나라에 가면 제 아내에게 한바탕 다 이야기해 줘야겠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나 성공했다고. 아무것도 해 준 게 없는 아비인데….

염치없이 이런 호사를 혼자 누리고 있다고.

당신을 닮아 너무 멋진 아들을 낳아 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꼭 말해 줘야겠다.

톡톡.

그때 다시금 보드라운 제 딸아이의 손이 손등을 두들겼고.

─ 아빠, 울어?

고개를 돌리자 딸아이의 놀란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차오른다.

─ 아냐, 걱정하지 마.

딸아이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비록.

안 울었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너무 행복해서 흘린 눈물이니 배려심 넓은 제 딸이라면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가 줄 터였다.

─ 내가 아빠 지루하지 않게 무대 끝날 때마다 어떤 노래였는지 다 설명해 줄게.

그래, 이렇게 눈치 빠르고 마음 넓은 딸이니까.

아내를 만나면 맨 처음으로 당신을 닮아 너무 마음이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딸을 낳아 줘서 감사하다고도 꼭 말해 줘야겠다.

짝짝짝-!

이윽고.

결승전이 시작되려는 조짐이 보이자 장내 곳곳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짝짝짝짝짝짝-!

그 소리는 점차 덩치를 키워 나가기 시작했고.

─ 이제 시작하나 봐! 아빠도 손뼉 쳐야지!

현아와 민준석 역시 덩달아 힘차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그렇게 장내를 꽉 메운 함성과 박수 소리가 결승전이 시작됐음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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