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원로 가수 김광진은 맘껏 기대에 찬 표정으로 심사위원석 너머의 무대를 내려다봤다.
‘스탠딩 마이크….’
얼마나 또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올까.
─ ♬♬♬
전주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노라니, 이영아와 원진섭이 마이크를 꺼둔 채로 속닥거렸다.
“윤제이뿐만 아니라, HS 씨도 떨리겠는데요?”
“본인이 만든 곡이 발표되는데 당연히 떨리지.”
“제이가 떨지 말고 잘해 줘야 할 텐데.”
“그 점이 이번 결승전에 승부처가 되겠지.”
정작 헬멧을 뒤집어쓴 HS는 대꾸 없이 정면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 ♬♬♬
그때 김광진은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아예 고개를 틀어 물었다.
“아까 리허설 때 음향 체크하면서 얼핏 들었는데 곡이 되게 도전적인 것 같던데.”
다행히도 묵묵부답이던 HS가 반응했다.
“도전적이라….”
고개를 돌려, 시선까지 맞추며. (*헬멧 써서 모름)
“예, 도전적인 곡이 맞습니다.”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즉답했다.
“내가 들은 바가 맞나보군.”
김광진은 촬영장에 일찍부터 찾아와 윤제이의 리허설을 살펴봤었다. 다만, 전체적인 음향 체크 수준이었던 터라 곡을 다 들어 보진 못했다.
‘정말 족보가 어딨는지 모를 곡이었지.’
아주 잠시였지만, 살짝 맛본 그의 곡은 단맛이 나는지, 짠맛이 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더욱 먹고 싶도록 안달이 나게 하는 맛이었다.
그래서.
얼른 곡의 끝을 보고 싶어졌달까?
“어?”
그때 돌연 전주 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뭐야?”
무대 위에 덩그러니 서 있던 윤제이가 눈을 스르륵 감으며 마이크를 집어삼킬 듯 다가선 순간.
“……!”
단번에 변조를 거친 벌스가 귀를 파고들었다.
─ 세상에 이름이 새겨진 순간부터 쉴 틈 없이 달려왔잖아,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이었다. 아마 생전 처음 듣는 형태의 흐름 때문이겠지.
─ 잠시만 멈추고 귀를 기울여 봐.
본격적으로 도입부를 부르기 시작한 그녀의 목소리는 구름 위를 떠다니듯 몽환적이면서도, 중간중간 들리는 음절이 묵직하게 가슴을 내리꽂았다.
이윽고.
윤제이가 눈매를 바로 세우며 심사위원석을 바라보자, 김광진은 흠칫 몸을 떨었다.
아주 어쩌다 한 번….
가수의 눈빛 하나에도 전율이 이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흡.’
이내 김광진은 인이어를 황급히 귓구멍으로 쑤셔 넣었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선율을 따라가다, 그녀의 목소리를 놓칠까 걱정된 까닭이었다.
─ 내 얘기 좀 들어 봐.
음악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음악이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김광진조차 곡을 따라가기 벅찼다.
까딱하면 심사위원이 아닌, 방청객의 마음으로 박수나 치고 있을 것 같단 생각에 휩싸일 정도였으니까.
반면.
윤제이는 지독히도 태연해 보였다. 마치 숨을 내쉬듯 매끄러운 목소리를 뱉어 냈다.
─ 잠시 멈췄다가 가도 되잖아.
만약.
목소리에 형체가 있다고 친다면, 그녀는 격변하는 멜로디에 맞춰 탈바꿈하고 있었다.
잠깐, 잠깐.
윤제이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노라니 너무 자연스러운 탓에 잠시 망각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 곡은 대체….’
으레 대중가요의 송폼(*곡의 형식)은 인트로와 벌스, 프리코러스, 후렴, 브릿지, 아웃트로 정도랄 수 있는데 이 곡은 파트마다 다른 곡인 양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말인즉슨, 전조를 쉴 틈 없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하나, 다른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또다시 새로운 분위기의 브릿지가 치고 나오며 변조가 이루어졌다.
─ 간절히 바라고 있어.
어느덧 절정에 다다른 그녀의 목소리는 맹렬한 기세로 에너지를 발산하며 장내를 압도했고.
드높은 천장까지 가득 차오른 공명감에 김광진의 몸이 바싹 굳어 가던 찰나였다.
“음? 뭐지?”
돌연 무대 위로 암전이 찾아오고.
─ ♬♬♬
다시금 분위기를 탈바꿈한 인털루드(*Interlude)가 한갓지게 흘러나오고, 모세의 기적처럼 벌어진 전광판 사이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 ♬♬♬
그리고는 반주 위로 화려한 기타 사운드를 덧입혔다.
“대체 누구야?”
“뭐야?”
“이런 얘기 없었잖아?”
심사위원들이 눈매를 좁히며 무대 위에 남자에게 집중했다. 단순 세션맨을 저렇게 화려하게 등장시킬 일은 없으니까.
무엇보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윤제이 또한 합의된 내용이 아닌지 적지 않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무대의 주인공도 모르게 지원군을 불렀다고?’
누구든 예외 없이 혼돈의 카오스를 겪고 있는 와중에, 오직 HS만이 차분했다.
그때.
무대 위로 아주 화려한 색색의 조명들이 쏟아지고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꺄아아아아아악-!
관객석에서는 환호보단 경악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나온 까닭이었다.
‘저자가, 여기를 왜….’
방송에선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문범재였다.
아마.
HS와 인연이 있으니 도움을 주러 나온 거겠지.
‘저런 거물을 움직이게 하다니.’
반칙이랄 수 있는 존재의 등장에 제이블은 혼이 빠진 얼굴을 한 채였고.
이영아와 원진섭은 대선배의 등장으로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미쳤어!”
“선배님!”
무대와 심사위원석의 거리상 둘의 목소리가 닿을 리는 없었다.
이윽고.
기타 연주를 끝낸 문범재가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 난 네 얘기를 들어줄 거야.
단 한 소절 만에 심사위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 있는 사람 중 김광진을 제외하고는, 그의 라이브를 듣는 것이 생전 처음이었다.
그의 라이브는 콘서트에서나 들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문범재 콘서트는 못 가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그만큼 콘서트 티켓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한 번 들으면 라이브 공연을 잊지 못해 콘서트장을 다시 찾는다는 말이었다.
‘가수들의 가수.’
가요계에서 문범재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비롭고, 미스테리하지만 독보적인 가수였으니까.
─ 그러니 잠시 숨 좀 고르고 멈췄다가 가.
어느덧 두 번째 소절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짐승의 포효처럼 들려왔다.
─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이내 문범재가 윤제이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녀가 황급히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 I wish, I wish time would stop.
─ I wish, I wish time would stop.
울부짖는 쇳소리와 몽환적이면서도 절제된 소리가 견고하게 뻗어 나갔다.
지이이잉-.
카메라는 문범재와 윤제이가 눈을 맞추며 마이크를 내려놓는 장면을 줌으로 담아낸다.
아마.
오늘 생방송의 가장 어색하면서도 진귀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되어 줄 터였다.
“후우….”
아웃트로까지 끝이 나자 김광진은 고개를 떨구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순간 곡의 마지막 가사처럼 당장 시간을 멈추고 맘껏 여운에 젖어 들고 싶어질 따름이었다.
문득.
윤제이가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HS가 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예, 도전적인 곡이 맞습니다.”
김광진은 HS의 대답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건 도전이 아니라….
반란이었다.
* * *
민준석은 귀가 들리지 않는 탓에 마치 음소거된 TV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심사위원석에 앉은 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벅차올랐다.
또한.
제 옆에 앉아서 일일이 수어로 무대를 설명해 주는 딸아이 덕분에 행복했다.
그리고.
귀로 음악을 감상할 수는 없어도, 무대 위에 오른 가수들의 표정으로 대충 어떤 곡을 부르고 있을지는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었으니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성이 마이크를 쥔 순간부터 갑작스러운 문범재와 함께 피날레를 장식할 때까지 강렬한 전율이 일었다.
비록 무어라 형용하기는 어렵지만, 곡의 음률이 피부로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마치 일순간 노래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분명 그럴 수가 없는데 말이다.
‘묘하네….’
제 아들이 만든 곡을 부른다고 하니,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일까?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하는 무대였다는 건 확실했다.
휙, 휙-!
옆눈으로 보이는 손짓에 고개를 돌려보니, 현아가 허공에다 대고 헛손질하고 있었다.
톡톡.
무슨 일인가 싶어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니,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자신과 눈을 맞춰 온다.
─ 아빠.
그리고는 어렵사리 손을 움직여 짤막한 수어를 전했다.
─ 정말 황홀한 무대였어.
이내 현아는 무언가 더 부연해 보려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던 두 손을 내려놓았다.
당장 자신의 수어 실력으로는 조금 전 무대를 표현해 낼 만한 게 떠오르지 않은 탓이었다.
그때 장내에 환한 빛이 켜짐과 동시에.
꺄아아아아-!
관객석에서는 엄청난 환호성과 함께.
짝, 짝짝짝, 짝짝짝-!
귀가 찢어질 듯한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주변을 슬쩍 살펴보니….
몇몇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내오기도 했다.
“아이고, 귀야.”
그 소리에 현아가 먹먹해진 귀를 매만지던 순간.
“미친 X낀가 봐, 진짜…!”
어디선가 거친 욕설이 들려왔다.
‘누구야, 대체?’
현아가 욕설이 들려온 근원을 찾으려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진짜 이게 말이 돼?”
바로 근처에 앉은 젊은 여자들이 조잘거리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와, HS는 찐이야. 이런 곡을 어떻게 만든 거지?”
“그니까! 진짜 귀 호강했다.”
“마지막에 문범재 등장은 리얼 상상치 못한 정체다.”
대화 내용을 제대로 듣게 된 현아가 어깨를 들썩거렸다. 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HS는 바로….
제 오빠인 현승이기 때문이었다.
현아는 괜스레 뿌듯함이 차올라 어깨를 들썩이며 아버지에게 전해 주려던 찰나였다.
“근데 저렇게 다른 가수가 무대 도와줘도 되는 거야?”
“그러니까! 이건 반칙이지! 강하준은 혼자 했는데!”
“대신 강하준도 세션맨들 빵빵하게 깔아 놓기는 했잖아.”
“야, 어떻게 세션이랑 특별출연이랑 같냐?”
아마 강하준의 팬들로 추정되는 무리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것들이…!”
울컥한 현아가 그 무리를 째려보기에 이르렀다.
그때.
MC가 웅성거리는 장내를 중재하기 위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이야, 무대가 끝이 났음에도 장내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는데요! 그만큼 정말 예측에, 예측에, 예측을 전혀 할 수 없던 무대였습니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윤제이와 문범재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시 한번 윤제이 참가자와 특별 피처링으로 무대를 함께 꾸며 준 문범재 씨에게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의 요청에 거대한 박수 소리가 들려오고.
짝짝짝-!
점차 그 소리가 잦아들자, 현아는 심사위원인 제 오빠와 윤제이 그리고 대기석에 앉아 있던 강하준의 면면을 차례대로 훑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안간 초등학교 짝꿍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 탓이다.
“세상에서 제일 풀기 어려운 문제에 빠져 버렸어.”
“무슨 문제인데? 혹시 덧셈이야?”
“아냐, 차라리 덧셈이면 이렇게 어렵지도 않았지.”
“덧셈보다 어려운 거야?”
짝꿍은 지금의 자신처럼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하, 나 오늘 아침에 엄마랑 아빠 중에 누가 더 좋냐는 질문을 들었어.”
그때는 그 질문이 왜 덧셈보다 어려운 문제인 건지 몰랐다. 현아는 엄마가 없었기에 생전 그런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제야 그 짝꿍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보다 더 어렵잖아.’
현아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좋아하는 강하준과 제 오빠가 만든 곡을 부른 윤제이 중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져든 채였다.
‘강하준? 윤제이?’
이내 연신 앓는 소리를 내며 제 머리를 헝클어뜨렸고.
─ 현아야, 어디 아픈 거야?
제 아빠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지만….
차마 괜찮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현아는 지금 덧셈보다 어려운 문제에 놓인 까닭이었다.
“끄응….”
그야말로, 스무 살 인생에 처음 겪는 엄청난 난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