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 [공식] 강하준, 여름 시즌 맞춰 디지털 싱글 ‘윤슬’로 본격적인 활동 시작 예고! ]
스르륵.
─ LS 엔터 측은 강하준의 첫 디지털 싱글 ‘윤슬’을 오는 7월 1일 내놓을 거라 발표했다. ‘윤슬’은 LS 엔터의 대표 전속 작곡가인 HS가 만든 곡으로서, 직접 디렉터를 맡아 녹음까지 끝낸 상황이다… (중략)
스르륵.
강하준은 K-싱어스타에 준우승자로, 안정적인 보컬 실력과 완성형 비주얼로 많은 팬층을 보유한 차세대 라이징 스타의 자질이 보이는… (중략)
스르륵.
특히 마이더스의 손이라 불리는 HS가 만든 곡으로 본격 데뷔를 하는 만큼, 앞으로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중략)
현아는 휴대폰 액정을 거침없이 내리다 말고 잔뜩 심통 난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정말 미워-!”
그녀가 이토록 분을 못 이겨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는….
“나 좀 불러 주지-!”
기사 속 강하준의 데뷔곡 ‘윤슬’이라는 곡을 만들고 디렉터까지 도맡았다는 작곡가 HS가 바로 제 오빠인 탓이었다. 분명 자신이 강하준을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
인사시켜 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같은 지붕 아래 살면서 이런 소식을 알려 주지도 않는다니….’
현아는 지금, 이 순간 제 오빠가 무척 야속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쪼옥, 쪼옥-!
이내 삐죽 튀어나온 입술을 움직여 에이드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제야 속이 좀 가라앉는 기분이 든 현아는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이럴 시간에 우리 오빠 기사나 퍼다 날라야지.”
스크랩한 기사를 온갖 커뮤니티에 누구보다 빨리 게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
한참 몰두하여 강하준의 기사를 퍼다 나르기도 잠시.
“이게 뭐지…?”
어느 게시글에 현아의 시선이 멈췄다.
[애들아, 너희 애들 떡상 시키고 싶으면 HS한테 곡 부탁해봐.]
묘하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제목에, 그녀는 곧장 본문을 확인하기 위해 클릭했다.
─ 우리 하준이 곡 좀 달라고 LS 사옥 앞에 죽쳐가면서 HS한테 선물이랑 편지 전했었거든? 근데 진짜 프로그램 끝나자마자 바로 LS 엔터랑 계약한 것도 모자라; 초고속으로 HS 곡 받아서 데뷔한다더라 ㅠㅠ 너희가 조아하는 아이돌이 잘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면 한번 부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비싼 선물은 못 했는데,, 소문과 달리 HS 천사일지도,, 그럼 이만 총총,,! (참고로 선물은 팬클럽에서 뜻 맞는 사람들끼리 돈 모아서 소소하게 먹거리나 적당한 가격대의 옷으로 준비함!)
스으윽-.
↳ 적당한 가격대가 어느 정도인데?ㅠㅠ 안 그래도 파이브식스도 컴백 준비한다길래 곡 달라고 조공해볼 생각이었는데! hs가 하도 정보가 없어서 ㅠㅠ
↳ 제발 우리 더문이들한테도 곡주면 좋겠다 ㅠㅠ 진짜 매력 오지고 열심히 하는 애들인데ㅜㅜ 왜 뜨질 못하는지.. 그룹명 따라간다는 말이 진짜인가,,
↳ 헐 윗댓 올나잇이야? 지금 우리 문이들한테 곡 좀 주면 안 되냐고 HS 줄 조공 준비 중이었어! 관심 있으면 오픈카똑 들어와! 링크 남길게!
“이것들이…!”
우리 오빠가 곡 만드는 기계냐! -라고 댓글을 쓰고 싶었지만, 아마 그럼 HS의 팬이라 생각하고 한바탕 댓글에서 공방이 펼쳐질 게 뻔했기에 참기로 했다.
문득.
제 오빠도 참 귀찮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연예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팬클럽이 있는 것도 모자라 타 연예인의 팬들까지 이렇게나 귀찮게 하니까.
왜 얼굴을 안 밝히고자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고….
그런 의미로….
야속하다며 원망했던 거 취소.
* * *
“아, 귀찮아 죽겠네.”
현승은 제 작업실 한편에 가득 쌓여 있는 상자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구겼다.
물론.
제 팬들이 보내 준 선물도 많기는 했지만, 다른 의미가 담긴 선물이 반절은 차지했다.
강하준의 팬들이 이상하게 소문이라도 낸 건지….
요즘 부쩍 심각할 정도로 여타 아이돌 그룹의 팬덤에서 조공이 쏟아졌다. 확인하다가 반나절이 가 버릴 정도니까.
“휴우….”
작게 한숨을 푹 내쉬는 현승을 보던 김 실장이 이죽거리는 투로 물었다.
“인마, 왜 선물 앞에 두고 한숨을 푹 내쉬고 있어?”
“이 모든 게 저를 위한 선물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김 실장이 작게 “아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도 계속 자기 아이돌한테 곡 달라고 조공 보내?”
“예, 아주 다양하게도 옵니다.”
현승이 편지 여러 장을 펄럭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덧붙였다.
“특히 얘네가 진짜 집요한데, 이게 편지인지 협박장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정성스레 손글씨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받아 든 김 실장은 혀를 내둘렀다.
「 존경하는 HS 님, 안녕하십니까? 가내는 평안하신지요? 항상 작곡가님의 곡으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갑작스럽게 연락을 드리게 된 것은 혹시 우리 에게 곡을 하나 주실 수 없을지 간곡히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지금껏 더문이 걸어온 길을 한눈에 보실 수 있도록 동봉하여 보내드립니다. 모쪼록 기쁜 소식이 들려오길 고대하며, 귀댁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 올나잇 일동 」
사락, 사락.
「 작곡가 선생님! 가내는 늘 평안하신지요? 저는 작곡가님의 곡 덕분에 늘 귀가 즐거울 따름입니다. 여러모로 바쁘신 와중에 괜찮으시다면 우리 에게 곡을 하나 주실 수는 없을런지요..? 전 멤버가 알바하며 어렵게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부디 가엽게 여기시고, 아량을 베풀어 주시면 잊지 않겠습니다. 늘 귀댁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 올나잇 일동 」
한 장.
「 대한민국 원탑 작곡가, HS 님! 오늘도 어김없이 가내는 평안하신지요? 늘상 좋은 곡으로 대한민국 가요계의 큰 영향력을 행사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근데 문득 제가 보내는 편지가 작곡가님께 정상적으로 가고 있긴 한지 걱정이 되네요. 혹시 중간 직원이 우리 아이들에 대한 악의로 인해 편지를 폐기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부디 아니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전달하러 가야할 테니 말이죠. 아참, 우리 올나잇은 이번에도 생활비를 쪼개어가며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이전에는 tmi인 거 같아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만, 조금이라도 작곡가님이 저희의 간절함을 한톨이라도 더 알아주십사 얘기드립니다. 아울러 시간 나실 때 의 영상을 단 하나, 딱 하나라도 봐 주실 수 없으실까요? 바쁘신 거 너무 잘 알지만, 모쪼록 좋은 소식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오늘도 귀댁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 올나잇 일동 」
또 한 장.
무려, 일곱 장에 달하는 편지는 매번 ‘평안’으로 시작과 끝을 맺었다.
“이 정도면 정성스러운 협박장이 맞는 것 같은데?”
아주 공손한 말투였지만, 정갈한 집요함에 왠지 오싹함마저 느껴졌다.
“곡 안 주면 너의 가내는 평안하지 못할 거라는….”
“예, 아무래도 당분간 밤길 조심해야 할 것 같죠?”
“그런 의미로 로드 매니저랑 경호원 좀 붙여 줄까?”
“그게 더 HS라고 소문내는 꼴이 될 것 같은데요?”
김 실장은 “아.”하고 작게 탄식하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 모쪼록 지금 이런 상황이 웃긴 까닭이었다. 제 아이돌의 곡을 달라는 협박장(?)을 받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왜 이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제 팬들은 계속 무를 보내요. 들고 가기도 무거운데.”
아니지.
정확한 정보 하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에게 ‘갓스’라는 팬덤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흔한 일은 아닐 거다.
이번 K-싱어스타를 통해 현승의 팬클럽 회원 수는 웬만한 가수와 비등하게끔 늘어났다.
헬멧을 벗지 않아서 욕을 먹는 건 아닌가 염려했던 바와 달리, 사람들은 그 점에 열광했다.
뭐라더라? 신비스럽다던가?
심지어 현승의 심사평 장면만 모은 영상 조회수가 벌써 1,000만 회가 넘었다지?
그 여파라고 해야 할지….
라디오와 나레이션 섭외가 빗발치고 있었다. 이런 걸 보고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
김 실장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기도 잠시.
“근데 The Moon은 나도 처음 듣는 그룹인데?”
“저도 처음 들어요.”
편지와 함께 동봉된 더문의 포토북을 훑어봤지만, 이 업계에서 난생처음 보고, 듣는 그룹명이었다.
그건 현승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전생에서마저 아예 들어본 적 없는 걸 보면 이대로 쭉 뜨지 못한 채 저 물어 버린 모양이다.
“보안요원들한테 아예 선물 받지 말라고 해야겠어요.”
다만.
안 간절한 아이돌이 어딨고, 자기 아이돌이 안 되길 바라는 팬이 어딨겠는가?
일일이 받아 주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테니, 단호히 끊어 내기로 판단했다.
그때.
김 실장이 염려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정말 이러다가 너 큰일 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더욱 얼굴이 알려지면 안 되겠죠.”
“모쪼록 사측에서도 신경 쓸 테니까 조심하고.”
현승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바닥에 놓인 박수 몇 개를 뜯어보며 중얼거렸다.
“쩝, 플스라면 생각 정도는 해 볼 텐데….”
“엥? 플스 선물하면 곡주는 거였어?”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다, 이거죠.”
김 실장이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되물었다.
“플스 정도는 네가 살 수 있잖아?”
“이상하게 게임기는 제 돈 주고 사기 아까워서요.”
“정말 이상한 곳에서 짠돌이였구나.”
“그냥 해 본 말이에요. 당분간 조용히 지내려고요.”
“네가 조용히 지낸다고?”
현승이 잠시 텀을 두고, 대답했다.
“될 수 있는 대로, 그럴 수 있다면 그러고 싶네요.”
정말 간절한 바람이었다.
하나.
이번 생은 조용히 살겠다던 현승의 다짐과 달리, 점차 귀찮은 일은 늘어나고 있었다.
* * *
최 이사는 제 집무실 책상 위에 은테 안경을 벗어놓으며 콧대를 매만졌다.
“하아….”
외부 일정을 다녀온 사이, 쌓인 결재서류를 처리하느냐고 피로감이 밀려온 탓이었다.
“그래도 얼추 끝났나.”
그는 마지막 결재판까지 툭 닫은 후에야 본격적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지금은 최 이사가 하루 중 유일하게 여유를 부리는 시간이었다.
활짝 걷어 낸 블라인드 밖으로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서울의 바쁜 퇴근길 전경이, 스피커를 타고 은은히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좋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선율에 온전히 집중하자 행복감이 밀려왔다. 최 이사는 연예계에 종사하고 있는 만큼, 장르나 가수 편식 없이 다 듣는 편이긴 했지만….
요즘은 즐겨 듣는 곡이 따로 있었다.
─ 난 네 얘기를 들어줄 거야.
지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 그러니 잠시 숨 좀 고르고 멈췄다가 가.
2팀 전속 작곡가인 HS가 만들고.
─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2팀과 새로 계약한 윤제이가 부른.
─ I wish, I wish time would stop.
K-싱어스타의 결승 경연곡.
아아.
물론, 2팀의 일원들이 만들고 불렀다고 해서 즐겨 듣는 건 아니었다. 타 기획사 소속 가수의 곡이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한껏 빠져들어 매일 같이 들었을 터였다.
“하하….”
정말 마지막 한 소절이 주는 전율은 계속해서 이 곡을 찾아 듣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아마.
이 전율을 자신만 느낀 건 아니었는지, ‘I wish time would stop’은 연일 화제가 되더니 방송이 끝난 지 딱 5일 차인 오늘 음원 차트 1위로 올라섰다.
조금 전 자신에게 달려와 그 소식을 전하던 홍보팀장의 표정이 제 일인 것처럼 신나 보였다. 아마,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김 실장도 같은 표정일 테지?
“허허.”
최 이사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 실장이 민현승을 처음 만나고 온 날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어찌나 전속 계약을 따오겠노라 씩씩거렸는지.
아직도 눈에 훤했다.
김 실장은 현승을 만나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성격도 많이 밝아졌으며, 팀 이름 따라 만년 2위였던 매니지먼트 2팀이 연간 성과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혹여나.
기분 상할까 쉽사리 도와주지 못하고 있던 어머니와 집 문제도 해결된 모양이고.
‘무엇보다….’
최 이사가 시선을 옮겨 집무실 책상 위에 반듯이 올려져 있던 서류 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올해 하반기에는 진급시킬 수 있겠어.’
별안간 최 이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녀석, 그땐 국밥이나 들이키면서 무심히 얘기하더니….”
현승이 김 실장을 잘 챙기겠노라 말한 약속은 아무쪼록 진심이었나 보다.
늘 목적지 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처럼 보이던, 어딘가 불안정하게 흔들리던 김 실장이 요즘 부쩍 더 다부지고 단단한 사람이 된 걸 보면 말이다.
그뿐이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박 전무는 현승과 관계가 원만해지면서 잠잠해졌다. 하물며, K-싱어스타 촬영장에서는 김 실장을 도와줬다지?
최 이사는 작금의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제 새끼랄 수 있는 김 실장이 웃을 일이 많고, 2팀이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잘 나오기를.
아마.
그러기 위해선 현승이 절대적으로 필요할 테지.
띠링-!
그때 컴퓨터 모니터 위로 메일이 왔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곧장 클릭해 보니 김 실장으로부터 온 첨부 메일이었다. 유통사로 넘긴 강하준의 데뷔곡인 모양이다.
“윤슬이라….”
파일명에 기재된 글자를 따라 읽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곧장 반복 재생되고 있던 I wish time would stop를 멈추고는 새로 도착한 음원 파일을 재생시켰다.
아아.
잠시 망각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도 현승이 만든 곡이군.’
일순간 집무실 내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배경이 바뀌었다. 자신은 뙤약볕으로 뜨겁게 익은 백사장의 모래를 건너 청량하고 푸른 바다를 향해 몸을 맡기고 있었다.
‘여름, 여름이구나.’
이번에는 여름을 고스란히 담아낸 곡을 만든 모양이었다.
“녀석, 진짜….”
곡을 다 들은 최 이사의 입가 위로 햇살을 닮은 미소가 떠오르던 찰나였다.
[ T O P 1 0 0 ]
켜져 있던 음원 플랫폼의 차트가 업데이트됐다.
예상하긴 했다만.
현재 실시간 차트 상위를 차지한 곡들은….
1. I wish time would stop - 윤제이 (feat. 문범재)
2. 노래를 부르는 이유 - 강하준
3. Dear my Beethoven – HS (feat. 문범재)
4. 벚꽃 한 줌 – 정아린
5. 같이 걷자 – 서지니
대부분 현승의 곡일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