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09화 (109/118)

109화

나갈 준비를 마친 현승이 현관으로 향하자, 현아가 강아지마냥 쫓아 나왔다.

“오라버니, 출근하시나요?”

강하준과 식사를 한번 하게 해 준 이후로, 과하게 친절해진 느낌이었다.

“어, 왜?”

퉁명스러운 물음에 현아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답했다.

“오늘 오전 기준 새로 업데이트된 것 같더라, 아직 확인 못 했을 것 같아서.”

이내 휴대폰을 내밀며 덧붙였다.

“축하해.”

갑작스러운 축하에 현승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잠시.

“아.”

휴대폰 액정에 떠오른 실시간 차트창을 보자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 T O P 1 0 0 ]

1. 윤슬 - 강하준

자신이 여름 시즌곡으로 만든 윤슬이 음원차트 1위 한 걸 축하한다는 말이겠지.

다만.

발매일부터 차트인을 한 거치고는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기까지 제법 오래 걸렸다.

그 이유는…

기존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던 곡들이 너무 견고하게 알박기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2. I wish time would stop - 윤제이 (feat. 문범재)

3. Dear my Beethoven – HS (feat. 문범재)

4. 같이 걷자 – 강하준

5. 노래를 부르는 이유 – 강하준

6. 벚꽃 한 줌 – 정아린

물론.

대부분이 자신이 만든 곡이라, 자신이 만든 곡들끼리 경쟁하는 꼴이 되어 버렸지만.

“근데 현아야, 나를 축하해 주는 거 맞지?”

“그러엄! 당연하지!”

“네 울 오빠 1위 헸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고?”

“아니거든-!”

“분명 다른 가수 때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그, 그건-.”

현아는 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였다. 현승의 말 중 뭐 하나 틀린 말이 없던 까닭이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제 오빠가 만든 곡이 1위에 올라 기뻤다.

물론 강하준이 불렀다는 사실에 더 좋은 것도 맞고.

“강하준 적당히 들여다보고, 공부나 해라.”

“네, 네에….”

그러나 대화를 더 이어 나갔다간, 현승의 심기만 거스를 듯하여 마무리 인사를 건넸다.

“오라버니, 오늘도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현승은 구십 도로 인사하는 현아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휴-.”

아버지에게 슬쩍 들어보니 집에서도 매일 같이 폰만 붙잡고, 강하준만 들여다보고 있다던데….

미워도 할 건 해 줘야겠지.

어차피 자신은 여동생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현승이었다.

“조만간 여름방학이지?”

“응, 왜?”

“가족 여행 한번 가려고.”

“헐, 진짜?”

“응, 가고 싶은 곳 생각해 봐.”

“아무 곳이나?”

“응, 해외든, 국내든.”

“지구 정 반대편도?”

“그래, 한 바퀴를 돌아도 괜찮아.”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진작에 시간 내서 갈 걸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

앞으로 함께 차근차근 전국… 아니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 될 일이니까 후회는 접어 두자.

정말.

김 실장의 말처럼 윤제이 녹음만 끝내면 가족들과 1~2주 정도는 시간 내어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

“간다.”

이내 현승은 여동생의 머리칼을 헤집어놓고는 집을 나섰다.

* * *

LS 엔터 사옥에 도착한 현승은 늘 그렇듯 1층에 자리한 카페테라스로 향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 맞으시죠?”

이젠 알바생도 자신이 무엇을 시킬지 미리 알고 준비해 둘 정도였다.

현승은 결제를 마친 뒤 커피를 기다리기 위해 빈자리를 찾아 앉았고.

지이이잉-!

얼마 되지 않아 진동벨이 울린 탓에 의자가 데워지기도 전에 픽업대로 향했다.

“감사합니다.”

커피를 받아 든 현승이 가볍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전한 뒤 다시금 자리로 돌아왔다.

하나.

무언가 이질감이 느껴진 탓에 도로 앉지 않고, 테이블을 빤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음….”

현승은 자리에 티슈를 올려놓은 적이 있는지 곱씹었다. 그런 기억은 없었다. 그럼 자리에 원래 티슈가 있었나? 아니, 그것도 아니었다.

“뭘까.”

이내 티슈를 집어 든 현승은 펄럭펄럭 흔들어 보였다. 티슈에 뭐라도 숨겨 놓은 건 아닐까? -싶은 이유에서였다.

“가루 하나 안 떨어지네.”

머지않아 테이블 위에 다시 아무렇게나 올려놓았고.

“어?”

현승은 눈매를 좁히며 다시금 티슈를 집어 들었다.

그 티슈 뒷면에는….

익숙한 글씨체로 편지 비스무리한 게 적혀 있던 까닭이었다.

[ 작곡가님, 가내 평안하신지요? 사담은 각설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 ‘더문’에게 제발 곡 좀 주세요. 철저히 비밀에 부치겠습니다. - 올나잇 일동 ]

이 정도면 협박장이 맞는걸?

현승이 고개를 들어 황급히 주변을 살펴봤지만, 딱히 수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여유롭게 커피 좀 마시다 가려 했건만, 아무래도 그럴 때가 아니었나 보다.

이윽고.

김 실장에게 작업실로 와 달라는 문자를 보낸 현승이 작업실로 향했다.

* * *

현승의 호출을 받고, 작업실을 찾은 김 실장은 티슈 사건을 전해 들었다.

“흐음.”

심각한 표정으로 티슈에 적힌 내용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잠시.

“아이고….”

김 실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좋아하면 닮는다더니, 팬들도 독기가 넘치네.”

그 말에 현승이 “독기?”하고 되물었고, 김 실장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부연을 시작했다.

“너한테 왔다는 협박장들 보고 나서 더문이라는 그룹에 대해 좀 알아봤거든? 네 팬덤 이름이 올나잇이래. 그래서 팬덤 사이에서 걔네를 늑대인간으로 부른다더라고. 목 빠져라 달만 바라보고 울부짖는다면서….”

“지금 늑대 다큐멘터리 듣자는 거 아니고요.”

“큼, 아무튼 3년 전에 데뷔했고, 애들이 비주얼도 괜찮고, 실력도 괜찮아 보이긴 하더라. 근데 전 멤버가 다 알바를 해서 ‘알바돌’이라고 불린다더라.”

현승이 따라서 “알바돌?”하고 중얼거리고는 덧붙였다.

“데뷔한 지 벌써 3년 차에, 김 실장님 같은 베테랑이 보기에 비주얼도, 실력도 뭐 하나 빠지지 않고 다 괜찮은 애들이라면 왜 여태껏 뜨질 못했을까요?”

“걔네가 소속된 엔터가 직원 하나 없고, 소속 연예인도 더문 하나밖에 없는 영세한 곳이더라고. 그러니까 지원이 제대로 되겠어? 애들이 뜰래야 뜰 수가 없지.”

침음을 흘려 보인 현승이 이상하다는 양 되물었다.

“그럼 그냥 해체 시키는 게 낫지 않나요?”

“조금 알아보니까 거기 대표가 없는 돈, 있는 돈 다 영끌해서 더문한테 다 쏟아부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고 ”

“그럴 만큼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나?”

“그럼 뭐해? 거기 대표가 밤에 대리 뛰어 가며 빚을 갚고 있다는 소문이 떠도는 걸 보면 가망이 없다고 봐야지.”

현승은 돌연 전생에서 자신을 찾아왔던 영세 소속사 대표가 떠올랐다.

“20억 원입니다. 집 팔고, 차 팔고, 은행 대출은 물론 사채까지 써서 만든 돈입니다. 애들 이번 앨범에 모든 걸 걸었습니다….”

더문 소속사 대표도 그때의 그와 같은 심정이겠지?

“…곡 안 주시면 저 죽습니다.”

분명 사활을 걸 만큼 절절할 상황일 거다.

아아.

깊은 곳에 침전되어 있던 악몽 같은 기억이 스멀스멀 발등을 타고 올라왔다.

“현승아, 너 갑자기 얼굴빛이 왜 그래?”

“아, 아닙니다.”

현승은 복잡한 마음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진짜 괜찮은 거지?”

“예, 괜찮아요.”

“아무튼, 애들만 안쓰럽게 됐지….”

티슈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김 실장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부연했다.

“아, 그리고 리더인 애는 직접 곡도 만들 줄 알아서 지금껏 나온 앨범 수록곡을 직접 다 만들었다더라고.”

그리고는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혀를 끌었다.

“물론 쥐도 새도 모르게 망했지만.”

정적이 흐르기도 잠시.

“이 티슈 관련해서는 사내 법무팀에 말해서 남긴 사람 잡아 달라고 요청해 놓을게. 사내 로비 보안도 더 신경 좀 쓰라고 당부해 놔야겠다.”

김 실장은 불안해할 현승을 대신해 일부러 더 언성을 높이며 티슈를 흔들어 보였다.

“쯧, LS 엔터 사옥이 이렇게 허술해서, 원! 어디 무서워서 다니겠어?”

하나.

현승은 이미 다른 생각에 잠식된 채였다.

‘이쯤 되면 하늘에서 자신에게 죄책감을 털어 내라고, 퀘스트를 내려준 건 아닐까?’

띠링!

[‘속죄의 시간이다!’]

정해진 기간 안에 담당 아이돌이 삼사 음악방송에서 1위 못 할 시, 사망

남은 기간 : D-day. 365

-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말이다.

이윽고.

현승은 김 실장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되물었다.

“저… 그룹 이름이 뭐라고 했죠?”

* * *

“우리는 지구를 공전하는 The-! Moon! 입니다-!”

어느 지방에 한 대학교 축제 무대에 오른 더 문은 힘차게 인사와 함께 무대를 시작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이곳저곳에서 “대체 누구야?” 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무대가 끝난 이후에는 대학이 구려서 섭외 가수도 구리다는 막말까지 들려왔다.

“진짜 못 해 먹겠어….”

결국 그룹 내 막내인 이찬영은 무대에서 내려와 다시 차에 탈 때까지 칭얼거렸다.

“나 이제 정말 안 할래.”

“이찬영, 그만.”

리더인 안지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완강하게 말을 자르며 첨언했다.

“다 같이 힘들 텐데, 계속 힘 빠지는 소리만 할 거야?”

하나, 이찬영도 오늘만큼은 굽힐 생각이 없는지 격양된 투로 되물었다.

“형도 고작 5분도 안 되는 무대 하려고, 의상부터 메이크업까지 다 알아서 준비하고 기름값마저 직접 해결해야 하는 거 지긋지긋하지 않아?”

“우선 올라가서 얘기하자.”

“아니, 얘기할 거 없어. 나 정말 오늘로 그룹 탈퇴할래. 이렇게 해봐야 아무도 우리 몰라 줘. 아까 못 들었어? 누구냐잖아, 우리가 구린 가수라잖아-!”

절규에 가까운 이찬영의 외침에 다른 멤버들 또한 동요된 듯 차 안에 분위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찬영, 너 그만 못 해?”

그럴수록 리더인 안지호는 더 세게 나가야만 했다.

“우리만 바라보고, 응원해 준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이찬영도 진심으로 관두고 싶어서 하는 소리는 아닐 테니까. 다른 건 몰라도, 당장 ‘팬’이라는 단어에 몸을 흠칫 떨면서 뒷말을 잇지 못하질 않는가?

그래.

멤버들은 아무 조건 없이 응원해 주는 팬덤 ‘올나잇’을 위해서라도 굳세게 마음을 먹어야 했다.

그중….

리더인 안지호는 그룹이 흔들리지 않도록 견고히 뿌리를 내려, 단단하게 자리를 잡아야 하고.

그게 바로 리더의 몫이니까.

지이이이이잉-!

그때 마침 안지호의 휴대폰이 거세게 진동했다.

[ 대표님 ]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는 콘솔박스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은 뒤,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 지훈아, 행사 끝났어?

“예, 이제 출발하려고요.”

─ 그래, 애들 잘 챙겨서 조심히 올라오고!

“걱정 마세요.”

─ 그리고 피곤하겠지만 잠시 사무실에 들러 줄 수 있나?

“들릴 수야 있는데, 무슨 일 계세요?”

─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안지호는 대충 알겠다며 통화를 종료하고는 백미러로 뒷좌석에 앉은 이찬영을 주시하며 물었다.

“이찬영, 들었지?”

그러나, 이찬영은 입매를 꾹 다물고는 묵묵부답이었다.

“하아….”

이내 안지호는 아예 몸을 돌려 마주한 채 덧붙였다.

“우선 올라가서 대표님한테 좋은 소식이 뭔지 들어보고 탈퇴할지 말지 결정해.”

“좋은 소식? 형은 그걸 또 믿는 거야? 기대할수록 실망만 더 커지는 거 몰라?”

“듣고 결정해도 늦지 않잖아. 실랑이는 이쯤하고 나중에 마저 얘기하자.”

말을 마친 안지호는 다시 핸들을 잡았고.

덜덜덜덜덜―.

차 내부에는 오래된 자동차 엔진 소리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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