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초라하게 적힌 ‘TM-ent’라고 적힌 문이 나왔다.
끼이익-.
오래된 철문을 열자 마찰음이 퍼지고, 그 소리에 한 중년의 남자가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애들아, 지방 다녀온다고 고생했다.”
그 남자는 TM 엔터의 대표인 김효섭이었다. 40대에 나이었지만,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얼굴에는 주름살과 어딘가 모르게 그늘이 져 있었다.
“너희 피곤할 것 같아서, 안 부르려다가….”
그런 김효섭이 오늘은 어쩐지 들뜬 기색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
“도무지 이건 안 부를 수가 없겠더라고.”
“무슨 일이에요?”
“우선 편하게 앉아서 얘기하자고, 이리 와.”
김효섭은 좁은 사무실 중에서도 단칸방만 한 대표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상석에 앉아 제 두 손을 파리마냥 비벼대며 넌지시 운을 떼었다.
“너희도 HS 알지?”
“작곡가 말씀하시는 거지?”
“그래, 그 사람 말이야.”
“그 작곡가는 왜요?”
김효섭은 한차례 텀을 두고는 씩 웃으며 답했다.
“영문은 모르겠는데 그 사람이 너희한테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저희를요? 왜요?”
“왜긴, 왜야-! 보고 괜찮으면 자신의 곡을 아무 조건 없이 주겠다더라고!”
잔뜩 흥분해서 몸이 앞으로 쏠린 나머지, 김효섭의 몸은 의자 앞쪽에 걸터앉은 채였다.
비단, 김효섭만 흥분한 건 아니었다.
멤버인 최정혁과 주우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갓 잡아 올린 생선마냥 팔딱거렸다.
“대표님, 이번에는 진짜예요? 진짜 HS가 우리 곡 준대요?”
“와, 그런 작곡가가 우리한테 곡을 왜 주는 거지?”
“왜인지가 중요하냐? 우리 이제 성공할 일만 남은 거라고!”
그 중, 멤버 내 막내인 이찬영과 리더인 안지호만 표정이 어두웠다.
“보고 괜찮으면 곡을 준다는 말은, 결국 안 줄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요. 완전 희망 고문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찬영은 믿지 않는 기세였고.
“대표님, 잠깐 따로 얘기 좀 하시죠.”
안지호는 무언가 불만이 있는 모양새였다.
쿵.
결국 그 말을 남긴 채 먼저 대표실을 나섰다.
“후우….”
그런 안지호를 따라 밖으로 나온 김효섭은, 그가 대충 무슨 말을 할지 예상하던 바였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실 문이 닫힌 걸 확인한 안지호는 다그치듯 얘기했다.
“대표님, 분명 제 곡으로 가기로 했잖아요.”
“그랬지, 그랬는데….”
“이번 곡은 정말 자신 있었단 말이에요.”
그리고는 다시금 풀이 푹 죽은 얼굴로 되물었다.
“대표님, 그럼 HS 곡으로 타이틀을 가져가되, 제 곡도 수록할 수는 있는 거죠?”
한숨을 푹 내쉰 김효섭은 안지호의 어깨를 간절하게 붙든 채 설득했다.
“지호야, 우리 회사가 지금 그럴 여유 없다는 거 잘 알잖니. 우선 이번에는 HS 곡으로만 디지털 싱글 발매하고, 다음 앨범에 네 곡을 타이틀로 수록하는 건 어때?”
안지호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대, 대표님….”하고 중얼거렸다.
‘이번 곡은 정말 자신 있는데….’
몇 푼이라도 벌 수 있고 얼굴을 알릴 수 있는 행사라면, 조건을 따지지 않고 다 다녔다. 알바를 뛰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곡을 쓰는데 몰두했다.
그룹의 사활이 제게 달렸다고 생각했으니까.
좋은 곡을 쓰면, 분명 모든 게 잘 되리라고….
그렇게 만들어 낸 이번 곡은 정말 예감이 좋았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대중들도 좋은 곡인 만큼 알아주리라는 자신도 있었다.
또한, 대표님도 분명 믿고 지지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나.
현실이 너무 참담한 탓일까?
“이런 말까지는 나도 안 하고 싶었어. 그런데 너도 알잖냐? 이제 물리적으로 그룹 유지하는 게 힘들 지경이야. 집도 빼고, 차도 팔았다. 너도 알잖아? 너도, 다른 애들도, 나까지도 최선을 다한 거야.”
끝내.
김효섭이 어둡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성공에만 집중해야 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늘 힘내자며 격려해 주던 대표가 이렇게 얘기할 정도면 이젠 정말 ‘더 문’뿐만 아니라, TM 엔터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리일 터였다.
그때.
대표실 안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밝게 웃고 떠드는 멤버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안지호는 아까 멤버들의 웃는 모습을 보고 조금 놀랐었다.
그래.
그렇게나 아무 그림자 없이 환하게 웃는 팀원들의 얼굴은 정말 오랜만인 까닭이었다.
“하아….”
안지호가 고민을 이어 나가기도 잠시.
“그 사람이 우리보고 괜찮으면 곡 준다고 한 거죠?”
“응, 그렇지.”
“우선 알겠어요. 대신 HS 곡이 별로면 저도 거절할 거예요.”
결국 안지호가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이자, 김효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호야, 고맙다. 정말 잘 생각했어.”
그리고는 연신 중얼거렸다.
“고맙다, 고마워. 다 잘 될 거야. 잘 풀릴 거야.”
제 손과 맞잡은 그의 손이 오늘따라 안쓰러워 보일 따름이었다.
* * *
윤제이는 약속했던 일주일이 되어 현승의 작업실을 찾았다.
“어, 제이 왔니?”
그녀를 먼저 반겨 준 건 김 실장이었다.
“네, 작곡가님은….”
“쟤야 늘 작업 중이지.”
김 실장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현승이 헤드셋을 뒤집어쓴 채 카페인 음료를 들이켜고 있었다.
그 모습이 딱.
밤샘 작업에 찌들대로 찌든 작곡가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아아.
작곡가 맞지….
“영 상태가 안 좋아 보이시는데요?”
“밤샌 모양이더라고.”
“설마 제 곡 봐 주신다고 그런 거예요?”
김 실장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것도 맞고, 별안간 다른 짐도 떠안는다고 나서는 바람에.”
“다른 짐이요? 어떤….”
“무명 아이돌 팬한테 협박받아서 곡을 하나 주기로 했거든.”
“협박이면 당장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가 주겠다는데, 어째. 녀석은 맨날 고생을 사서 한다니까?”
그 말에 윤제이가 조심스레 되물었다.
“저기, 혹시 사서 하는 고생이나 짐에 저도 포함인 건가요…?”
“어? 아, 아냐-.”
김 실장은 황급히 그녀를 향해 손사래를 쳐 보이고는 다른 말로 화제를 전환 시켰다.
“혀, 현승이한테 왔다고 말해 줘야겠다.”
그리고는 곧장 현승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들겼다.
툭툭.
현승은 제 어깨에 닿은 인기척에 헤드셋을 벗고 고개를 돌렸다.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아니, 제이 왔어.”
그 말에 뒤늦게 윤제이를 발견한 현승이 “아.”하고 탄식했다. 아무래도 오늘 윤제이를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었던 모양인지,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맞다.”
“까먹었던 거야?”
“예, 완전히.”
“이걸 어쩌나.”
김 실장은 슬쩍 윤제이 눈치를 살피고는 되물었다.
“이 정도면 정말 스케줄 체크 해주는 매니저 하나 둬야 하는 거 아니야?”
“실장님 있잖아요.”
“내가 매일 같이 있어 줄 수는 없잖아. 아무튼 녹음실 사용은 말해 둔 거야?”
“그것도 아직.”
결국 김 실장은 참담한 표정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하나.
현승은 별 상관없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오늘은 간단하게 체크해 보는 걸로 하자.”
“네?”
“곡만 보내주고, 정작 네 노래를 못 들어봤잖아.”
그리고는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윤제이를 보며, 답답하다는 양 다그쳤다.
“계속 그렇게 멍하니 서 있으려고?”
“아, 아닙니다!”
“우선 원테이크만 따 보고 얘기하자.”
“네, 네엡-!”
“대답은 짧게 한 번만 복창한다.”
“옙!”
이내 윤제이가 군인처럼 씩씩하게 대답하며 녹음 부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야, 완전 군대가 따로 없네.”
“군대 다녀오신 지 오래됐는데 기억나세요?”
“인마, 우리 나이 차이 얼마 안 난다니까?”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김 실장이 “으유.”하며 꿀밤 놓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소파에 다시금 자리를 잡았다.
“안 그래도 들어 보고 싶었는데 잘됐네. 듣고 가야겠다.”
“대외비적인 곡이라, 나가 주시겠습니까?
“엉? 어차피 곡 발매하면 전 국민이 듣게 될 거잖아-!”
현승이 “뭘 또 전 국민까지.”라며 인심 쓴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김 실장님만 들려 드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오늘 식권 쏘시죠.”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뭐야, 인터넷 많이 하는 사람 같아.”
김 실장이 억울하다는 양 “아까 너도!”하고 말하려 했으나, 현승은 무시하며 토크백을 눌렀다.
“준비 다 했지?”
그리고는 윤제이를 바라보며 첨언했다.
“안 끊고 원테이크로 갈 거니까 그냥 마음대로 한 번 불러 봐.”
말 그대로 그녀가 담아낸 감정을 고스란히 들어 보고 싶었다. 곡은 자신이 만들었지만….
이야기의 주인은 윤제이니까.
“네, 해 볼게요.”
윤제이는 헤드셋을 고쳐 쓰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탁.
스페이스 바를 누르자, 맑지만 어딘가 침울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옅게 떨리는 숨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새어 나오고, 그마저도 하나의 선율처럼 들렸다.
─ 기억이라도 나면 마음껏 그리워할 텐데
현승은 덤덤하게 말하듯 시작된 첫 소절에 고개를 끄덕였다.
─ 기억조차 없으니, 그리워할 수도 없어요.
되레 그 덤덤함이 더욱 애잔함을 불러일으키는 양 들렸고.
─ 그대는 나를 기억할까요?
점차 흡입력 있는 그녀의 목소리에 빨려들어 가다 보니….
─ 왜 세상에 나만 남겨 놓고 가 버린 거야.
그 속에 꼭꼭 숨겨 놓았던 지독한 슬픔과 마주하게 되었다.
─ 내 손 놓지 말고, 나도 같이 데려가지.
어느새 곡이 도입부를 지나.
─ 꿈에서라도 한 번만 꽉 안아 주면 안 돼요?
코러스 구간에 접어들었고.
─ 나 그대의 온기가 궁금해요.
현승은 프로듀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윤제이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덤덤히 전하는 이야기가, 그 속에 지독한 슬픔이, 오랫동안 침전되어 있던 그리움이 자신이 지닌 것들과 닮아 있어서일까?
아아.
속으로 내뱉는 작은 탄식과 함께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건.
곡이 다 끝날 무렵,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탓이었다.
“큼, 흠.”
슬쩍 보니 김 실장이 고개를 돌린 채 괜스레 목을 가다듬고 있었다.
“김 실장님, 어디 아프세요?”
“아니? 나 안 울었는데?”
“울었냐고는 안 물어봤는데….”
김 실장은 황급히 옷 소매로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덧붙였다.
“여기 먼지가 좀 많나? 목도 아프고, 눈도 따갑고….”
“공기 청정기가 두 대나 있는데, 거참 이상하네요.”
현승은 김 실장의 어색한 변명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세히 보니 코끝이 잔뜩 발개진 채였기 때문이다. 이내 윤제이에게도 나오라며 손짓했고.
“어?”
왜인지 부스에서 걸어 나오는 그녀의 뺨도 잔뜩 상기된 채였다.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처럼 붉어진 눈시울만 봐도 지금 그녀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이러다가 내 작업실이 울음바다가 되는 건 아니겠지?’
물론.
현승도 윤제이의 노래를 듣는 순간 잊고 있었던 ‘어머니’가 떠올라 일렁인 것은 사실이다.
‘내가 너무 메말랐나.’
하나, 자신의 눈가는 촉촉하기는커녕 잠을 못 자서인지 푸석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윤제이.”
“네?”
“저 아저씨를 울릴 정도면 성공이다.”
현승이 고갯짓으로 김 실장을 가리키자, 그가 발작하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나 운 거 아니라니까!”
“알겠어요, 그런 걸로 합시다.”
“그런 걸로 하는 게 아니라!”
“안 운 걸로 해 드린다니까요?”
윤제이가 둘이 유치하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푸흡!”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내.
김 실장과 현승도 웃음을 피식 터트리며 상황은 일단락되었고.
“이 테이크 그대로 가도 되겠다.”
“저, 정말요?”
“어, 믹싱으로 손만 조금 보면 될 것 같아.”
윤제이는 그 말에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사실 그녀는 현승이 자신의 SNS에 올라왔던 글들을 인용하여 곡을 만들어줬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눈물이 앞을 가렸었더랬다.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을 곡으로 담아내기가 어려웠는데, 그가 이뤄 준 것이니까.
이후 윤제이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부르며 수백 번을 울었다. 울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감정을 멜로디 안에 숨겨 낼 수 있을 때까지 쉴 틈 없이 불렀다.
그 결과, 드디어 오늘에서야.
울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때.
김 실장이 분위기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내 들었다.
“근데, 현승아 정말 이대로 가도 되는 거야?”
“네, 김 실장님이 듣기에도 좋았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네가 원테이크로 끝낸 적이 없었잖아.”
그의 말에 현승이 잠시 기억을 곱씹었다.
전생에서는 몇 번 있기야 했다. 이번 생에서 가장 짧게 끝난 녹음은 정아린의 벚꽃 한 줌이었던가? 그마저도 세 번의 테이크를 거치긴 했지만.
그때 정아린도 믿지 못해 펄쩍거렸었지.
하물며 오늘은 정식 녹음실도 아니고, 제 개인 작업실에서 원테이크로 녹음을 끝내 버렸으니, 김 실장으로서는 놀라 나자빠질 이야기일 터였다.
하나.
이건 자신이 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판단한 까닭에 원테이크로 끝낸 것이다.
그래.
그녀의 이야기자, 있는 그대로 날것의 감정을 살려 두는 게 더 나으리라 판단했다.
그뿐이랴?
여러 멜로디가 잔뜩 집약된 곡 속에서 덤덤한 목소리는 먹먹할 정도로 흔들림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기대 이상이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김 실장도 울고, 자신도 그녀의 소용돌이에 휩쓸렸었지 않던가?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현승이 속 얘기는 잠시 묻어 두고 짐짓 귀찮다는 양 대답했다.
“저 할 일 잔뜩 밀린 거 알잖아요. 이쯤이면 됐어요.”
“이야,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보다. 민현승이 이쯤이면 됐다는 말을 다 하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윤제이는 어딘가 어두워진 표정으로 “저, 화장실 좀….”하며 작업실을 나섰다.
쿵.
현승은 닫힌 작업실 문을 바라보다 김 실장에게도 나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정말 됐으니, 됐다고 하죠. 하여튼 이제 그만 가 주세요. 저도 엔지니어실 가야 해요.”
이제 남은 건, 자신이 잘 가다듬는 것뿐이니까.
‘아, 더문 작업도 남았지.’
현승은 일순간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너 그러다 쓰러져. 휴가 내고 여행 좀 떠나라니까, 하여간.”
“그러니까요. 저도 여행 좀 가려 했는데 도와주질 않네요.”
쉬지 못하는 건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저 여행지를 골라놓으라는 제 말에 잔뜩 기뻐하던 여동생의 얼굴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이거 참, 큰일이다.
아무래도.
여행은 잠시, 아주 잠시만 미뤄 두자고 해야겠다. 맨입으로는 안 되겠지?
현승이 고민하기도 잠시.
“김 실장님, 잠시만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던 김 실장을 불러 세웠다.
“단단히 삐진 20대 여자애를 풀어 주려면 뭘 사 줘야 할까요?”
그 물음에 김 실장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한참 꾸미고 싶을 나이니까 화장품 같은 게 좋지 않나?”
“화장을 잘 안 하면요?”
“뭐, 그러면 삐진 데 푸는 건 역시 명품백이 제일이지”
“아직 학생이라, 명품백은 좀….”
김 실장이 다른 선물을 고민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던 찰나였다.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세요?”
다시 작업실로 돌아온 윤제이가 김 실장을 보며 물었다.
“아, 현승이가 20대 여자애가 삐진 걸 풀어 주려면 뭘 사 줘야 하냐고 묻길래.”
윤제이는 별안간 놀란 기색을 보이며 입을 틀어막았다.
‘혹, 혹시 나 말하는 건가?’
그녀는 사실 아까 현승이 이쯤이면 됐다는 말에 심경이 복잡해져 화장실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막 그렇게 삐진 건 아니었는데….’
지금 윤제이는 현승이 자신을 의식해, 선물을 고민하고 있다고 오해했고.
“음.”
이내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를 하나씩 던져 보기 시작했다.
“MP3?”
“요즘 누가 써.”
“화성학 교재?”
“그건 또 뭐야?”
현승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양손을 휙휙 내저었다.
“됐다, 알아서 고민해 볼 테니 다들 그만 가보세요.”
“네에, 이만 가 볼게요….”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작업실을 나서려다 말고 걸음을 멈춰 돌려세웠다.
“그리고 저, 저는 정말 괜찮아요-!”
이내 그 말을 끝으로 작업실을 서둘러 나갔고.
쿵-!
현승은 닫힌 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그래서 쟤는 뭐가 괜찮다는 건데요?”
“글세, 나도 모르겠다?”
“모르신다면, 이만 나가 주시겠어요?”
“여자 맘 좀 모를 수도 있지! 야박해!”
그래.
정말 여자 맘은 참 알기가 어려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