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11화 (111/118)

111화

김효섭은 꼭두새벽부터 사무실에 나와 청소를 시작했다.

“아휴, 이거 참 청소를 해도 해도 워낙 건물이 낡아서….”

이후 나온 멤버들이 그를 돕겠다며 나섰지만, 영 깨끗해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묵묵히 테이블을 닦고 있던 안지호가 마뜩잖다는 얼굴로 반기 섞인 물음을 던졌다.

“그 사람 온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요?”

“중요한 손님인데, 깔끔해 보이면 좋잖니.”

그때, 막내인 이찬영도 삐딱하게 말을 보탰다.

“깔끔하면 곡 준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김효섭은 입매를 꾹 다문 채 오랜 세월 발자국으로 얼룩진 땅바닥을 바라봤다.

안지호는 자신이라도 대표의 마음을 헤아리고, 팀원들에게 희망과 에너지를 안겨 줘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HS가 곡을 주기로 했다는 말에, 자신이 야심 차게 만든 곡이 밀려나기까지 한 상황인데.

그 사람이 온다고 하여 이렇게 요란하게 대청소하고 있는 꼴이 영 마음에 안 들 따름이었다.

물론.

HS가 요즘 잘나가는 작곡가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고, 음악 평론가들조차 음악 시장을 개혁하러 온 혁명가라고 칭송해 대지 않는가?

하물며.

자신도 그의 곡을 들으며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만.

그건 그거고, 이건 다른 문제였다.

‘갑자기 그런 사람이 왜….’

HS가 자신이 속한 그룹 ‘The Moon’에게 곡을 주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 날부터 계속 곱씹어 생각했다.

그렇게 잘나가는 작곡가가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타 엔터의 아이돌 그룹에게 곡을 주겠다고 나선 걸까?

의심부터 들기 시작했다.

안지호가 이 바닥에 발을 들이고 나서, 늘어난 건 비단 실력뿐만이 아니었다.

빚과 의심도 함께 늘었다.

순진하기 짝이 없었던 어린 시절, 가수로서 성공시켜 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던 사기꾼들 덕분이었다. 하물며 ‘더문’으로 데뷔한 이후에도 투자사들로부터도 여러 차례 배신을 당하지 않았던가?

그 결과, 지금도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한 채였다.

정말 작곡가 HS가 연락한 것은 맞을까? 장난치는 건 아닐까? 우리가 불쌍해 보여서 모아 둔 샘플링으로 짜깁기한 재활용 곡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불신들이 머리를 잠식해 나갔다.

아마.

막내인 이찬영도 자신처럼 의심과 불신에 얼룩져서 대표의 말을 쉬이 믿을 수 없던 거겠지.

‘내가 뭐라 할 처지가 아니었네….’

안지호가 한참 동안 상념과 자책을 이어 나가던 찰나였다.

“지호야.”

김효섭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우선 청소는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애들이랑 노래 연습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있어.”

그때 분위기를 살피던 최정혁이 멤버들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맞아, 우리 대표님 말씀대로 한 번이라도 더 맞춰 보자!”

주우민까지 합세하여 “그러자!”하고 팔짱을 끼운 채 이끄는 바람에 안지호와 이찬영도 못 이기는 척 끌려갔다.

“근데 작곡가님 방송 보면 헬멧 쓰고 나오던데 오늘도 헬멧 쓰고 오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이렇게 개인적인 자리에 헬멧을 쓰고 올까? 나라면 답답해서 안 써.”

연습실로 향하던 최정혁과 주우민은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럼 작곡가님 헬멧 여부로 내기할래?”

“그래, 오늘 김천 쏘기 어때?”

평소 내기를 좋아하던 둘은 이번에도 역시나 내기를 걸었다. 안지호가 유치하다며 옆에서 핀잔을 줬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콜! 난 쓰고 온다!”

“난 안 쓰고 온다!”

안지호나 이찬영도 내기의 결과 여부가 궁금하긴 했지만, 차마 티를 내진 않았다.

머지않아.

작고 낡은 연습실에 들어온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대열대로 자리를 잡았고, 그들의 머리 위로 노란색 형광등이 깜빡였다.

안지호는 생각했다.

“그럼 무반주로 노래 먼저 맞춰 보자.”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한번 보여 주자고.

그래, 자신이 만든 곡을, 우리 멤버들의 실력을 HS가 인정한다면 혹시 또 모르지.

자신이 만든 곡으로 가되, HS가 프로듀서로서 디렉터만 맡아 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게 되면 HS의 이름을 앞세워 곡을 홍보하기도 쉽겠지.

이윽고.

멤버들이 손을 말아쥔 채, 서로 눈을 맞추며 호흡에 집중했다.

탁, 탁, 탁.

발을 굴러 가며, 각자의 파트에 맞춰 노래를 이어 나갔다.

─ 네가 있기에 내가 있잖아. 네가 없으면 내 존재가 흐려져.

이찬영의 포근한 음성을 시작으로, 주우민이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흐름을 이어받는다.

─ 나도 여기서 너를 지킬 거야. 언제라도 나를 찾아와도 돼.

곡의 중심이랄 수 있는 코러스 구간을 최정혁의 얇은 미성과 안지호의 허스키한 음성이 번갈아 채워 나갔다.

─ 울고 싶을 때, 웃고 싶을 때 언제든 얘기해 줄래.

안지호는 곡을 부르는 이 순간,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아니, 행복했다.

멜로디가 없어도, 멤버들의 목소리가 선율, 그 자체였기에 아무렴 상관없었다.

이 노래의 곡명은 ‘안식처’였다.

무려 일 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만들어 낸 곡이자, 팬들을 생각하며 만들었기에 안지호에게 있어선 더욱 각별한 곡이었다.

물론 곡에 대한 자신도 있었다.

그래.

사실대로 말하자면, 어떤 작곡가의 곡이라 해도 이번 앨범의 타이틀 자리만큼은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 존재만으로 날 살게 하는 너에게, 다 해 주고 싶은걸.

마지막 소절을 부르던 찰나였다.

똑, 똑, 똑.

갑자기 들려온 노크 소리에 전 멤버들이 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애들아, 작곡가님 오셨어.”

그곳에는 헬멧을 뒤집어쓴 장신의 남자가 삐딱하게 기대어 서 있었다.

“하이.”

이번 내기의 승자는 최정혁이었다.

* * *

현승은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었다.

물론.

이곳에 오기 전, 이들의 팬들이 자신에게 보냈던 직캠도 보고 왔다.

김 실장의 말대로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크게 특출난 악기가 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조율만 잘해 놓은 채로 다 함께 합주 연주를 한다면 꽤 그럴싸한 소리가 나올 듯 보였다.

그리고.

지금 막 두 귀로 확인하기도 했고.

“생각보다 괜찮네.”

기나긴 정적 끝에 현승이 무심이 입을 열었다. 그 말에 김효섭은 흘깃 눈치를 살폈다. 헬멧을 쓴 채라 무슨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지 알 수 없던 탓이었다.

멤버들 또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로를 바라봤다.

‘분명 괜찮으면 곡을 준다고….’

막내 이찬영이 현승을 지그시 바라보며 다음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김효섭 대표님이라고 하셨죠?”

“아, 예-!”

현승이 몸을 돌려 김효섭을 바라보며 앞 고글을 탁 올리며 말을 이었다.

“약속한 대로 곡을 드리겠습니다.”

김효섭은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HS의 곡을 받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맞지만.

‘와…. 눈만 봐도 잘생겼네.’

마주한 현승의 두 눈매가 영락없는 미남의 모양을 하고 있던 까닭이었다.

정말.

길거리에서 이런 남자를 마주했다면, 곧장 캐스팅을 제안했을 터였다.

“가, 감사합니다!”

우선 그럴 일은 없으니, 김효섭은 그가 말을 바꾸기 전에 넙죽 고개를 숙여 보였다.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부릴 맘도 없었다.

곡을 주겠다는 HS의 말이 마치 ‘The Moon’이라는 그룹을 성공시켜 주겠다는 말처럼 들렸기에, 김효섭은 머리를 조아리라면 조아릴 수도 있었다.

그만큼 성공이 간절했다.

자신의 사활이 걸려 있기도 했거니와, 어린 친구들을 데려와 고생이란 고생을 다 시켜 놓고 정작 제대로 된 지원 한 번, 빛 한 번 보여 주지 못했으니까.

김효섭은 더문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그때.

연습실 문턱에 서 있던 현승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무실 내부를 한번 훑어보고는 물었다.

“혹시 뭐 따로 컨트럴 룸이나 제대로 된 장비가 갖춰진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까?”

“아, 그게….”

현승은 김효섭이 난처한 기색을 보이자, 눈치껏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없군요, 알겠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보통 외부 스튜디오를 이용하는 바람에….”

“그럼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거라도 연결할 수 있습니까?”

“아, 그럼요! 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대표의 눈짓을 읽은 행동파 최정혁은 곧장 달려와 블루투스 연결을 도왔다.

“제가 신속 정확히 연결해 드릴게요!”

“예, 그러세요.”

안지호는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현승의 단호한 어조와 삐딱한 몸짓이 이상하게 자신들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양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선 그럼 곡은 여기서 들어보고, 이후 과정은 제 작업실에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그 말씀은… 작곡가님이 우리 애들 녹음도 직접 진행해 주신다는 걸까요?”

“예, 원래 총괄 프로듀서로 다 관여합니다. 혹시 다른 디렉터라도 구해 놓으신 건가요?”

김효섭은 연신 고개를 좌우로 내젓는 것도 모자라 손까지 보태어 흔들어 보였다.

“그럴 리가요! 그럼 염치없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회생활에 도가 튼 김효섭은 사근사근히 웃다 말고 조용히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저, 그럼 혹시 페이는….”

“됐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맨입으로….”

현승은 슬쩍 고개를 돌려 안지호를 바라봤다. 대기실에서 자신을 집요하도록 쳐다보던 그 남자다. 그래, 눈에 독기가 위태롭게 넘실거리던 녀석.

저놈이 과연 부러질지 혹은 사고가 칠지 궁금해졌다.

“그저 제가 재밌으려고 하는 거라, 저작권료만으로 충분할 것 같네요.”

김효섭은 놀란 얼굴로 “그, 그게 무슨….”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바닥에 공짜라는 건 없다. 만약 금전적인 거래가 오가지 않았다면 그건….

서로의 이해타산이 맞아서 공생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지금 ‘재밌어서’ 아무 조건 없이 곡을 주고 디렉터까지 봐 주겠다니? 김효섭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지.

특히, HS는 LS 엔터라는 대형 엔터 전속 작곡가이자, 현재 대한민국에서 히트보증수표라 불리지 않나? 한마디로 아쉬울 게 없는 조건을 다 갖춘 자이다.

그에 비해….

TM 엔터테인먼트는 별 볼 일 없는 영세 기업이다. 무엇보다 ‘The Moon’은 자신에겐 최고의 아이돌이라지만, 다른 작곡가들 눈에는 그저 무명 아이돌일 뿐이지 않나?

그래.

다른 유명 작곡가들에게 곡을 부탁했을 때 그들은 ‘The Moon’을 투자 가치 없는 상품 취급을 하거나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했었더랬다.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대체 왜….’

김효섭의 상념이 길어지던 찰나.

“그럼 틉니다.”

현승이 제 휴대폰을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톡, 톡.

머지않아 한적한 휘파람 소리가 곡의 시작을 알렸다.

“어?”

귀를 쫑긋 세운 채 집중하고 있던 멤버들은 본격적으로 흘러나온 비트 소리에 흠칫 몸을 떨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던 까닭이다.

‘음….’

그중 안지호는 온 촉각을 세워 곡을 분석하는 일에 몰두했다.

‘일렉트로니카?’

아니, 아니다. 그저 기반을 두고 있을 뿐이고, 훨씬 더 세련되고 현대적이었다. 하물며 벌스가 넘어갈 적에는 분위기를 전환하며 마치 서로 다른 곡을 자연스럽게 연결해 놓은 듯 느껴졌다.

‘역시 가지고 있던 샘플링 곡을 짜깁기 한 건가?’

물론.

그렇다고 하여 듣기 싫은 건 아니었다. 짜임새가 촘촘한 곡은 어디 한 군데 지적하거나 흠잡을 곳 없이 완벽했다. 마치 눈앞에 한편의 뮤지컬이 펼쳐지듯, 너무 자연스러웠다.

“와….”

안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자연이 만들어 낸 절경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와.”하고 감탄하듯이 말이다.

“진짜 듣는 순간 느낌이 딱 오지 않았어? 나만 느꼈어?”

“나도 느꼈어. 백타 이건 히트한다, 히트해!”

“와, 진짜 이런 곡을 저희한테 주시는 거예요? 대박-.”

대표와 멤버들은 꿈에 그리던 장난감이라도 손에 쥐게 된 아이마냥 좋아했다.

의심의 불씨를 끄지 않고 있던 이찬영마저 홀라당 넘어가 연신 발을 굴렀다.

단, 안지호만 예외였다.

“정말 곡이 좋네요.”

더 문의 리더로서 바라본 HS의 곡은 여태 그룹이 지켜 온 색깔과 결이 맞지 않았다.

분명.

이 곡으로 간다면, 어느 정도의 성공은 보장할 수 있겠지. HS라는 네임벨류도 있으니까.

하나.

여태껏 지켜온 ‘The Moon’만의 색깔을 없애 가면서까지 해야 할까?

“다만 우리 그룹이랑 안 맞는 곡 같습니다.”

안지호는 아무리 성공이 중요하다고 한들,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

그 한마디에 장내는 적막이 드리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승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지?”

“멍청한 생각이요?”

“그래, 너무 멍청한 생각이잖아.”

안지호는 현승의 하대하는 듯한 태도에 불만이 있던 차였다. 그런데, 이젠 반말까지 들었으니 속에서 울컥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 더문은 어반 알앤비 장르를 기반에 둔 보컬 그룹입니다. 그러나, 방금 작곡가님이 들려주신 곡은 우리가 추구하던 것과 전혀 다른 색깔이었습니다.”

그러나, 화를 낼 수는 없기에 최대한 꾹꾹 눌러 담아 제 의사를 전했다.

“지호야….”

김효섭은 그런 안지호를 말리기 위해 뒤에서 조심스레 불러 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갈 뿐이었다.

“우리 더문은 지금껏 제가 만든 곡을 불러왔습니다. 팬들은 그런 우리의 음악을 좋아해 줬습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색깔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현승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색깔이라….’

현승은 흥미롭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지만, 헬멧을 쓰고 있던 터라 다른 사람들은 표정을 볼 수 없었고.

그 탓에 장내는 별안간 찬물을 끼얹은 듯 정적이 흘렀다.

“저, 저기-!”

정적을 깬 건, 최정혁이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주우민이 “너까지 무슨 말을 하려고?”라며 팔을 붙들었지만, 괜찮다는 양 자신을 붙든 손을 뿌리치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저희 리더 형이 작곡에 조예가 좀 있는 편이에요. 지금껏 저희가 낸 곡은 전부 형이 작곡하기도 했고, 이번에도 사실 형이 만든 곡으로 내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혹시 작곡가님이 그 곡을 한번 들어 보고 판단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정말 저희 곡의 색깔이 별로인 건지, 아니면 아직 빛을 못 보고 있는 건지.”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말을 거는 낯을 보니, 이 녀석이 그룹 내 비주얼 센터인가 보다. 현승은 사실 기분이 전혀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안 어울리는 컬러를 뒤집어쓰고 있음을 인지시켜 주고 싶어질 따름이었고.

내심.

안지호가 이번에 만들었다는 곡이 궁금하기도 했다.

“내가 들어보고 별로라고 하면 어떡할 건데?”

그 물음에 최정혁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안지호의 눈치를 살폈다.

“어, 그건….”

항상 막중한 책임감을 진 채 그룹을 위해 희생하는 리더의 편을 자신도 한 번 정도는 들어줘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 반, 분위기를 전환시키고자 하는 마음 반으로 뱉은 말이었는데….

“그, 그게….”

어찌 되었건, 곡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니 마음대로 막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때.

가만히 있던 안지호가 굳은 결심이라도 한 양,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만약 작곡가님이 제 곡을 들어보시고 별로라고 하신다면 당장 폐기하고, 군말 없이 작곡가님 곡을 따르겠습니다.”

현승이 작게 “호오.”하고 흥미롭다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네가 내 곡 들을 때처럼 집중해서 들어볼게.”

그리고는 고글을 올려 안지호와 시선을 맞췄다. 역시 눈 안에는 독기가 그득거렸다.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재밌단 말이지.’

현승은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어디 한번 곡을 틀어 보라는 양 손짓했다.

탁, 탁.

안지호는 짐짓 아닌 척 태연하게 곡을 틀었지만, 폰을 쥔 손은 미세하게 떨려 왔다.

그래.

전문가에게 자신의 곡을 평가받는 자리가 처음인 까닭이었다.

“후….”

안지호의 한숨 소리와 함께 시작된 곡은 물결이 흐르듯 잔잔하게 흘렀다.

값싼 스피커인 탓일까….

미세하게 잡음이 섞이는 듯한 기분에 안지호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만.”

현승은 곡이 브릿지로 진입하는 순간, 눈매를 좁히며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꼴깍.

마른침을 삼켜 내는 소리만 들려오기도 잠시.

“어, 어떠세요?”

슬쩍 눈치를 살피던 최정혁이 총대를 메고 물었다.

“어떻기는.”

이윽고.

답답함을 참지 못한 현승이 헬멧을 벗으며 헝클어진 머리를 툭툭 털어냈다.

“그냥 만들다가 만 것 같은데?”

일순간 장내는 여러 의미로 지독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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