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나니 천재 작곡가 회귀하다-113화 (113/118)

113화

더문을 만나고 온 현승은 곧장 엔지니어실을 찾았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저러는 거야?”

“우리 말도 안 들리는 것 같은데?”

“아마 지금 당장 전쟁 터져도 모를 거야.”

엔지니어들은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현승을 흘끔거렸다.

여태껏.

단독으로 마스터링 작업을 거친 후 자잘한 조율만을 맡겨 온 현승이, 이번 윤제이 작업은 공동으로 작업 요청을 해 왔고.

심지어 작업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동안 자리도 비우지 않은 채 집중하고 있으니, 엔지니어들은 몹시 의아할 따름이었다.

“하….”

그때 작업에 열을 올리던 현승이 헤드셋을 벗었고.

“다들 끝나셨어요?”

이내 뻐근해진 목덜미를 주무르며 물어 왔다.

“아, 아직 좀 남았어.”

“나도.”

“쬐끔만 더 하면 돼.”

엔지니어들은 황급히 작업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공동작업이라고는 하나, 현승이 이미 각자에게 작업할 파트를 나눠 요청사항까지 명확히 알려 준 상황이었다.

그에 맞춰 얼른 끝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현승의 요청사항이 워낙 까다로운 작업이기도 했거니와, 보통 사람들에게는 절대 집중 시간이라는 게 있질 않나? 몇 시간을 내리 작업하는 건 아무리 이들이라도 어려웠다.

물론.

통념을 빗겨 나가는 괴물이 간혹 있긴 하지만.

“제가 다할 동안, 다들 뭐 하고 계셨어요?”

한 엔지니어가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라며 중얼거렸고, 잘 못 들은 현승이 “예?”하고 되물었지만, 혼잣말이라며 손사래를 쳐 보였다.

그때.

다른 엔지니어가 화제를 전환 시키기 위해 입술을 열었다.

“현승 씨, 무슨 일이라도 있어?”

“예? 아니요?”

“어라? 지금 좀 당황했는데?”

“아니라니까요?”

“혹시 윤제이한테 협박당하고 있어?”

“예?”

“그런 거라면 몰래 당근을 흔들어 줘.”

더 이상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현승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다급해 보인다는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현승은 맘이 조급했다.

[ 오빠 많이 바쁜가? ]

현승이 이토록 서두르는 이유는 여동생과 약속한 여행을 가기 위함이었다.

[ 오늘은 집에 들어와? 아빠한테도 다 말해 놨어. ]

[ 미리 비행기표 먼저 예약해 둘까? ]

[ 프랑스에 비포 라는 식당이 유명하대! 꼭 가보자! ]

여동생으로부터 온 문자를 내려다보던 현승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텍스트에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나는데, 어찌 기다려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된 거, 얼른 해치워 버리기로 결심했다.

물론.

다급하더라도, 대충이란 건 없었다.

“지금까지 하신 작업물 토대로 한번 쭉 들어 보죠.”

“어? 아직 안 끝났는데?”

“중간 점검이죠. 추가로 요청할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여기서 더…?”

엔지니어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한 명씩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괴물….”

“악마….”

“독종….”

현승이 “예?”하고 되묻자, 다들 시치미를 뚝 떼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바로 취합해서 들어볼까?”

어색하게 웃어 보인 엔지니어는 곧장 나눴던 트랙을 합쳐 곡을 재생시켰다.

─ ♬♬♬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선율에 엔지니어들은 모두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전부 파트를 나눠 받아 작업한 탓에, 완곡을 들어 보는 건 처음인 까닭이었다.

─ 기억이라도 나면 마음껏 그리워할 텐데.

윤제이의 몽환적인 목소리에 한 번.

─ 기억조차 없으니, 그리워할 수도 없어요.

담담하게 전해 오는 속삭임에 한 번.

─ 그대는 나를 기억할까요?

어렴풋이 퍼져 가는 애잔함에 한 번.

─ 왜 세상에 나만 남겨 놓고 가 버린 거야.

엔지니어는 제 코끝이 찡해지는 걸 느꼈다.

─ 내 손 놓지 말고, 나도 같이 데려가지.

형용 불가한 슬픔이 목 끝을 치고 올라오는 건, 곡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 꿈에서라도 한 번만 꽉 안아 주면 안 돼요?

그래, 어느 소녀가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낸 곡이라는 선입감을 품은 채 들은 탓일까?

─ 나 그대의 온기가 궁금해요.

아니, 아니다.

그런 건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자신이 곡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더라도….

지금처럼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서 무너졌을 테니까.

한편.

다른 엔지니어는 꽉 맞잡은 두 손에 이마를 맞대며 기도하는 자세를 취해 보였다.

그는 이 곡을 듣는 내내 신에게 빌었다.

누군가 이 기도를 들으면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지만.

자기 딸만큼은 이런 지독한 슬픔은 모르고 자라게 해 달라고 빌어 댔다.

천하의 불효자라 해도.

그는 자신을 키우느냐 늙어 버린 노부모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침 출근길에 해맑게 웃으며 인사해 주던 딸아이가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다.

부디.

자신이 딸아이를 남겨 두고 먼저 떠나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또 한편.

한 엔지니어는 버럭 화를 내듯 중얼거렸다.

“야, 이건 너무 반칙 아니야?”

혼잣말이라기에는 소리가 너무 컸던 탓에, 모두의 시선이 그 엔지니어에게로 쏟아졌다.

“야, 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 너 왜 그래?”

현승도 눈을 가늘게 늘어트린 채 엔지니어를 흘겨봤다.

‘반칙?’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잠자코 지켜보던 찰나.

“곡이 너무 좋잖아….”

엔지니어의 표정이 돌연 일그러졌다.

“목소리가 너무 슬프잖아….”

결국 눈시울을 붉히는 그를 보며 다들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윽고.

곡이 툭 끊기자, 엔지니어 셋은 다들 여운에 잠긴 듯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다.

현승은 그런 그들을 보며, ‘성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래, 최전선에서 다양한 곡들을 조립하고, 조율하는 사람들이 동요될 정도면 잘 만들어졌다고 봐야겠지.

‘요즘 의도치 않게 사람들을 많이 울리네.’

무엇보다.

건장한 남자 셋이 나란히 앉아 훌쩍이고 있는 모습이 다신 없을 진풍경이었다.

* * *

밤새도록 진행한 마스터링 작업 덕분에, 윤제이의 곡이 최종적으로 완성되었고.

현승은 빠듯한 일정 탓에 동이 트자마자, 윤제이를 제 개인 작업실로 호출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윤제이에게 곡을 들려주는 과정까지 함께하겠다며 큰소리를 치던 엔지니어들은, 끝내 안 되겠다며 두 손 두 발 들고, 숙직실로 향해 뻗어 버렸다.

결국.

작업실 내부에는 현승과 윤제이만 남게 되었고, 말수가 별로 없는 둘만 있으니, 작업실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완성된 곡을 들어 보라는 현승의 외마디를 끝으로, 윤제이는 자신이 부른 곡을 연거푸 듣고, 또 듣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윽고.

윤제이가 헤드셋을 벗으며 나지막이 뱉은 말이었다.

분명.

자신이 부른 곡을 듣고 있었는데, 왠지 낯설게만 느껴졌다.

“정말 제, 제 곡이 맞아요?”

어디라고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곡을 듣고 있노라니, 믿기지 않을 만큼 황홀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정작 현승은 심드렁한 투로 대답할 뿐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내 곡이지.”

“아, 예….”

좀 정 없이 들리긴 해도, 맞는 말이긴 했다.

아무렴 어떠하리?

윤제이는 지금 제 음원이 나왔다는 사실에 빈틈없이 행복하기도 바쁜 와중이었다.

물론.

K-싱어스타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제 목소리가 실린 음원이 몇 곡 공개되긴 했다지만.

이번 곡은 공식 데뷔곡인 만큼 감회가 색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 위에 HS가 멜로디를 덧입혀서 탄생시켜 준 곡이니, 더욱 각별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그래.

마치 선물 같은 곡이다.

‘선물?’

상념 끝에 번뜩 떠오른 기억 하나.

“아, 현승이가 20대 여자애가 삐진 걸 풀어 주려면 뭘 사 줘야 하냐고 묻길래.”

일전에 녹음하던 때, 자신이 현승의 말에 조금 서운함을 느낀 탓에 그는 풀어 줄 방법으로 선물을 모색하는 듯 보였다.

물론.

이건 윤제이의 착각일 뿐이었다. 현승은 윤제이가 서운해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고민하시던 선물은 결정하셨어요?”

그런 내막을 전혀 알지 못한 윤제이는 현승이 아직 결정을 못 했다고 답한다면, 자신에게는 이번 곡이 선물이니 다른 선물은 필요 없다고.

조금 서운하긴 했었지만 금세 풀렸으니,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려던 차였다.

“아아, 선물 대신 그냥 얼른 작업 끝내고 여행이나 가려고.”

여기서 현승이 말하는 선물이나 여행은 모두 제 여동생 ‘현아’를 염두에 두고 꺼낸 말이었지만….

‘옛말에 남녀는 유별하다고 했거늘, 어떻게 둘이 여행을…!’

이미 윤제이의 오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었다.

‘하지만, 작곡가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이내 윤제이가 볼을 붉히며 물었다.

“여, 여행이요? 어디로요?”

“해외로.”

“와, 저 해외 가 본 적 없는데.”

“자랑이다.”

“그래서 해외 어디요?”

현승이 “어디라고 했더라….”하고 작게 중얼거리고는 손가락을 튕기며 답했다.

“아, 유럽.”

“헐, 유럽! 유럽 좋아요!”

“가 봤어?”

“아뇨! 안 가 봤다니까요?”

현승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근데 좋은지 어떻게 알아?”

“가 보면 알겠죠!”

“너도 유럽 가려고?”

“작곡가님이 가자고 하시면….”

뭔가 대화의 흐림이 이상해져 가고 있다고 느꼈지만.

“음?”

현승이 바라본 윤제이는 어딘가 엉뚱한 구석이 있었기에, 그러려니 하며 뒷말을 기다렸다.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야죠!”

“지옥까지? 뭐, 그건 고마운데.”

“네, 고마운데요?”

“가족여행까지 따라오려고?”

화아악―!

그 물음에 윤제이의 얼굴은 잘 익은 토마토처럼 붉게 달아올랐다가 하얗게 질려 갔다.

아무래도….

삐진 20대 여자애도, 선물 대신 여행을 가려던 여자도 자신은 아닌 듯 보인 까닭이었다.

* * *

한편.

더문은 LS 엔터 사옥을 찾았다. 안지호는 웅장하다는 말이 나올 만큼 높이 솟아오른 사옥 앞에서 왠지 모르게 움츠러드는 느낌이었다.

‘대형 엔터는 다르네….’

오래된 건물 지하에 싼값에 세로 들어가 있는 TM 엔터와 확연히 차이가 났다.

‘괜찮아, 우리도 사옥 세우면 되지.’

그래.

안지호는 더문을 꼭 성공시켜서 TM 로고가 박힌 사옥을 세우겠노라 맘을 다잡으며 걸음을 옮겼다.

한 손에는 과일 음료 상자를, 한 손에는 사옥 인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카페에서 오트밀 라떼를 사 들고.

뚜벅, 뚜벅.

더문 멤버들은 리더인 안지호를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도 연신 “와.”하고 중얼거렸다.

기품이 흘러넘치는 널찍한 사옥 로비에 입이 다물어질 새도 없이 게이트를 통과했다.

‘여긴가….’

문자로 안내받은 대로 찾은 작업실 문 앞.

똑, 또독-.

명패에 ‘HS’라고 새겨진 걸 확인하고는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들겼다.

몹시 떨리기는 했지만….

떨고 있을 시간에 연습을 한 번이라도 더 하는 게 도움이 될 테니까.

“뭐야, 왜 이렇게 안 나오시지?”

“없으신가?”

“9시까지 오라고 한 거 아니야?”

작업실 안에서 아무 응답이 없자, 멤버들은 금세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이게 바로 소문으로만 듣던 유명 작곡가의 갑질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워낙 그런 갑질과 횡포에 많이 당해 봤기에 안지호 또한 혹시나 하는 걱정이 스쳤지만, 짐짓 의연한 척하며 한 번 더 세차게 문을 두들겼다.

똑, 또독-!

불안함에 재차 문을 두드리려던 찰나였다.

끼이이익익-.

이내 두꺼운 방음문이 열리고, 문을 열어 준 건 웬 여자였다.

“여기 HS 님 작업실 아닌가요?”

귀엽장하게 생긴 여자는 “맞아요.”하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되물었다.

“누구세요? LS 엔터 소속 연예인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는 더문 멤버들의 면면을 살피며 덧붙였다.

“직원은 더더욱 아닌 것 같고….”

그때.

윤제이 뒤로 다가온 HS가 입을 열었다.

“너 왜 비서인 척 그러고 있냐?”

“아니, 처음 뵙는 분들이라….”

“그렇겠지. 내 새로운 악기들이야.”

문 앞에서 들어서지도 못한 채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멤버들은 새로운 악기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어?”

최정혁은 연신 골똘히 생각하는 듯 보이더니, 뭔가 떠올랐는지 윤제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 그, 케싱스 우승자 맞으시죠?”

윤제이는 쑥스러운 듯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에….”

다른 멤버들도 그녀를 알아보고는 연신 놀란 기색을 띠며 한마디씩 보태기 시작했다.

“와, 제이 씨를 직접 만나 뵙게 돼서 영광이에요!”

“저희 케싱스 매 화 다 챙겨 봤어요!”

“맞아, LS 엔터랑 계약했다는 기사 본 적 있는데-.”

HS는 시끄럽다는 양 고개를 내저으며 얼른 들어오라고 턱짓을 해 보였고.

“약소하지만, 빈손으로 오기 좀 그래서 사 왔습니다.”

안지호는 제 손에 들린 과일 음료 상자와 오트밀 라떼를 내밀어 보였다.

“제가 냉장고에 넣어 둘게요.”

윤제이가 잽싸게 과일 음료 상자를 가로채며 싱긋 웃어 보였다.

“아, 예. 감사합니다.”

안지호는 윤제이가 프로그램에서 봤던 모습과 다소 다른 분위기를 풍긴 탓에 의아할 따름이었다.

‘좀 소심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어쩐지 당돌함이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하기야….

티비에 나오는 모습과 똑같은 사람이 어딨겠나. 자신만 해도 평상시에는 잘 웃지도 않다가, 어렵사리 음악방송이라도 나가게 되면 입에 경련이 올 정도로 웃어 대곤 하니까.

“이건 바로 드시죠. 얼음이 녹으면 맛없어질 겁니다.”

안지호가 제 손에 남은 오트밀 라떼를 내밀어 보였고.

“이건 뭐예요?”

언제 다가왔는지 조용히 옆에 서 있던 윤제이가 또다시 음료를 잽싸게 뺏어 들었다.

“아, 오트밀 라떼입니다. 윤제이 씨도 있는 걸 알았다면 두 잔 사 왔을 텐데….”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근데 그쪽은 아직 작곡가님에 대해 한참 모르시나 보다.”

“예?”

“우리 작곡가님은 단 거 안 좋아하셔서, 아아 아니면 카페인 음료밖에 안 드시는데-.”

안지호는 난처하다는 양 뒷머리를 긁적였다. 음료 선택을 잘못했다는 사실에 머쓱한 것도 맞지만, 지금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윤제이가 마치 육식동물을 경계하는 초식동물처럼 보인 까닭이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뭘 잘못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던지라 도무지 그녀가 자신을 경계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윤제이, 헛소리 말고 이만 가.”

“예? 아니, 제 말이 맞….”

“볼일 다 끝났잖아? 얼른 가.”

“아, 네에….”

하나.

HS의 중재로 초식동물….

아니지.

윤제이는 꼬리를 말며 작업실에서 쫓겨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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