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예비 제자 양준
날이 어슴푸레 밝아오자, 양준(楊開)은 잠에서 깼다. 세수하고 양치질한 다음, 벽 모퉁이에 놓인 빗자루를 들고 홀로 사는 오두막을 나섰다.
그는 문어귀에 서서 기지개를 켜고는 하늘 저편에서 떠오르는 희끄무레한 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잠깐의 평온을 만끽했다. 잠시 뒤, 눈을 뜨고 빗자루로 땅바닥 위의 먼지와 낙엽을 열심히 쓸기 시작했다.
그가 입고 있는 청색 옷은 소박하고 깨끗했다. 다만 노숙해 보이는 색상이 소년을 몇 살이나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했다. 양준은 허리를 꼿꼿이 폈다. 설령 잡일을 하고 있더라도 자세만큼은 빈틈없었다. 양손으로 빗자루를 느긋하게 잡고, 오직 손목만 놀려 빗자루를 자기 팔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심지어 몸도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양준은 능소각의 예비 제자였다. 삼 년 전에 종문(宗門)에 들어와 수련을 시작했으나 오늘날까지 육체 경지(淬體境) 3단계밖에 이르지 못했다. 입문 동기들은 이미 이 단계를 넘긴 지 오래였다. 그들은 각자 기회를 잡아 문파 내 고수의 제자가 되어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오직 혼자만 실력이 미치지 못해 동기들을 바라보며 탄식할 뿐이었다.
삼 년 동안 육체 경지 3단계라니… 이런 자질은 보통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양준은 하는 수없이 문파 내에서 빗자루질 하는 일을 맡아 생계를 유지하는 한편, 열심히 수련했다.
능소각은 특별한 문파였다. 그 특별함은 제자들 사이의 냉혹한 경쟁 관계에서 드러났다. 문파 내에서 유능한 자는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무능한 자는 바로 도태되었다. 능소각에서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다른 문파에서는 제자들 사이의 우정이 돈독할 수도 있겠지만, 능소각에서는 그런 것 따위 없었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동문 제자들의 어깨를 밟고 손에 그들의 피를 묻혀야만 자격이 주어졌다.
능소각은 제자를 엄하게 다루기로 대한(大漢)에서 이름이 자자했다. 비록 초대형 문파는 아니었지만, 문파 제자들 사이의 피 튀기는 경쟁으로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능소각 제자들은 하나같이 사나웠다. 강호에 나가도 그들을 건드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능소각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열네 살 이하 제자는 누구든지 입문해서 삼 년간의 수련 기간을 거쳤다. 삼 년 동안, 문파에서 모든 의식주를 책임지며 제자들은 수련하기만 하면 되었다. 만약 삼 년 안에 육체 경지를 돌파하면 문파 내 고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스승 없이 혼자서 수련해도 상관없었다. 다만 수련 과정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홀로 길을 탐색해야 하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그리고 삼 년 안에 육체 경지를 돌파하지 못한 사람은 문파를 떠나거나 예비 제자로 강등되었다.
지금 양준의 신분은 바로 예비 제자였다. 동시에 능소각의 수치이기도 했다.
일반 제자와 달리 예비 제자의 생존 환경은 각박하기만 했다. 예비 제자가 되면 의식주는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문파에서는 어떤 수련 자원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단 예비 제자로 강등되면, 단시일 내에 실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문파에서 자원을 지원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상, 이번 생은 거의 망했다고 보면 되었다.
능소각의 삼천 명 제자 가운데 예비 제자는 열 명 남짓했다. 양준이 바로 그중 한 명이었다.
예비 제자로서 능소각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양준이 지금 살고 있는 오두막은 스스로 나무토막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것이었다. 지붕에는 구멍 몇 개가 나 있었지만 미처 손볼 겨를이 없었다. 때문에 비 오는 날이면 집 안에는 물이 가득 고이곤 했다. 옷도, 먹을거리도, 모든 것을 스스로 챙겨야 했다.
오두막마저도 능소각에서 가장 구석지고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열악한 처우를 견뎌내지 못했고, 이것이 능소각의 예비 제자가 적은 이유이기도 했다. 때문에 삼 년 안에 육체 경지를 돌파하지 못한 제자는 모두 능소각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양준은 남기로 결정했다.
‘이미 한 번 쫓겨난 몸이야. 이번에도 똑같이 되풀이할 수는 없지.’
몇 달 전 예비 제자로 강등된 다음, 양준은 문파 내에서 빗자루질 하는 일을 맡아 생계를 유지했다.
현재 양준은 능소각의 예비 제자이자 빗자루질 하는 하인이기도 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때때로 끼니를 걸렀다. 누구 하나 관심주는 사람이 없는 생활은 처량하고 고독했다. 현실이 이렇다 해도 그는 한 번도 포기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기왕 이 길을 가기로 결정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중도에서 포기하는 것은 사나이가 할 짓이 아니야.’
양준에게는 끈기가 있었다. 달리 말하면 악바리 정신 같은 것이 있었다.
날이 점점 밝아왔다. 양준은 한참 동안 빗자루질을 했다. 그가 지나간 곳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이 일은 별로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오랫동안 움직였더니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는 실력과 상관없이 그냥 체질이 약한 탓이었다.
하루 세 끼 중에서 두 끼는 허기졌다. 이런 생활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체질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양준의 주위에 능소각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제자들은 하나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수련하러 가지 않고 그를 에워쌌다. 많은 이들이 흥미진진하게 그를 훑어보았다. 그중 어떤 이들은 심지어 탐욕스러운 눈빛마저 드러냈다.
그들 사이에서도 경쟁하는 듯한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그들은 서로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변의 동문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많이 모여들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그러자 다른 제자가 곧장 말을 받았다.
“사람이 많다고 생각하면 가도 돼. 널 붙잡을 사람 없거든.”
그 말에 말을 꺼낸 제자는 무안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모두들 왜 이곳에 모였고, 왜 양준을 지켜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모두가 그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떠나긴 너무 아쉽지. 만약 앞자리라도 꿰차면 오늘 또 하나의 수확을 얻을 수도 있잖아.’
양준도 물론 주변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닷새에 한 번씩, 한 달에 여섯 번을 겪어야 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둘러보니 오늘은 주변의 모인 사람도 적은 편이었다. 아직 다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는 줄곧 빗자루질을 하며 주위의 사람들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양준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어림잡아 3~40명은 될 것 같았다.
양준이 갑자기 빗자루질을 멈추더니 그대로 길 한가운데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이른 아침부터 소모한 체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하려 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를 한가운데 두고 겹겹이 둘러쌌다. 경쟁 분위기는 다시금 가열되었고, 공기마저 멈춘 듯했다.
그들은 서로가 눈에 거슬렸지만 모두 기대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내막을 모르는 이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아마 인파 속에 둘러싸인 이가 절대 고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리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한 사람과 대적하겠는가? 그러나 사실상 양준은 육체 경지 3단계인 예비 제자에 불과했다.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그보다는 실력이 높았다.
“양준,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냥 얌전히 매나 맞아. 그럼 우리도 시간 아끼고 좋잖아?”
누군가 양준이 체력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 하찮다는 듯이 말했다.
‘고작 육체 경지 3단계면서 회복은 무슨? 어차피 질 거면 좀 깔끔하게 지지. 구태여 이렇게 시간을 끌 필요가 있어?’
“맞아, 맞아. 양준, 동문들의 마음을 좀 헤아려 주면 안 돼? 너와 달리 우리는 곧 수련하러 가야 한단 말이야.”
누군가 양준이 그들에게 신속하게 패해야 마땅한 것처럼 말했다. 지금 그가 체력을 회복하는 것도 마치 그들에 대한 무례인 듯이 굴었다.
양준은 가부좌를 하고서 들은 체 만 체 했다.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갑자기 은은한 종소리가 울렸다. 이는 능소각의 새벽 종이었다.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양준을 둘러싸고 있던 제자들은 모두 정신을 바싹 차렸다.
아홉 번의 종소리가 울리면 곧 아침 해가 떴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숨을 죽이며 한가운데 둘러싸인 양준을 빤히 지켜보았다. 이윽고 양준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빗자루를 들고 담담한 눈빛으로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양 사형, 나랑 싸웁시다. 안 아프게 살살 때려줄게요.”
누군가 크게 외쳤다.
“허튼소리. 나랑 싸워요. 시원하게 한 방에 보내 줄 테니까.”
“저요……!”
“저요……!”
그곳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마치 시장 바닥에서 서로 자기 물건이 더 좋다고 소리 지르며 호객하는 광경이었다.
“양준, 자신이 정한 규칙을 어기면 안 돼.”
누군가 입을 열어 일깨워 주었다.
양준은 가볍게 웃으며 손에 든 빗자루를 하늘에 던졌다. 수십 쌍의 눈길이 일제히 위로 향했다. 모두들 기대를 품고 빗자루가 땅바닥에 떨어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마음속으로는 끊임없이 기도했다.
‘나를 뽑아 줘. 나를 뽑아 줘.’
시간이 마치 느려진 것만 같았다. 빗자루는 공중에서 몇 바퀴 돌더니 곧이어 추락했다. 그리고 땅바닥에서 두어 번 튕기다가 정지되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빗자루의 머리는 인파 속 우람한 소년을 가리켰다.
도처에서 애석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는 원망과 씁쓸함이 가득했다. 우람한 소년은 큰 소리로 웃으며 사람들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수한 뒤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내 차례군. 다들 양해 바라.”
“제길, 운도 좋군.”
누군가 질투하며 말했다.
“왜 내 차례는 안 되지. 닷새마다 매번 온단 말이야. 한 달이나 꼬박 왔다고. 양준, 너 일부러 그러는 거야?”
“말도 마. 난 석 달이나 왔어.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고.”
“사형은 나보다 더 비참하군요.”
“아니야. 비참하지 않아. 그냥 구경이나 하면 돼.”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서로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길 한가운데에는 양준과 우람한 소년만 남아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비 제자 양준, 육체 경지 3단계.”
양준이 상대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반 제자 주정군(周定軍), 육체 경지 5단계.”
우람한 소년이 자기소개를 했다.
능소각에서는 제자들도 등급을 나누었다. 차례대로 예비 제자, 일반 제자, 우수 제자, 최우수 제자, 핵심 제자 순서였다. 주정군은 일반 제자라고 했으니, 아직 문파 내 고수를 스승으로 두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육체 경지를 돌파하고 문파 내 고수를 스승으로 모신다면 한 급 높은 우수 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보다 한 급 더 높은 최우수 제자는 모두 뛰어난 인재들로 우수 제자들 가운데서 선발되었다.
핵심 제자는 능소각의 희망이었다. 문파에서는 이 사람들을 미래의 후계자로서 육성했다.
삼엄한 제자 등급 제도는 몰인정해 보이지만, 젊은이들의 패기와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 제도 역시 잔혹한 능소각 제도의 근간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양준 쟁탈전을 벌이는 근본적인 원인은 능소각의 또 다른 규칙에 있었다. 이는 능소각 도전 규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