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2화 (2/853)

제 2장. 전무후무한 전적

능소각의 도전 규칙은 다음과 같았다.

능소각 제자는 매일 한 번씩 도전할 수 있다. 또한 닷새에 한 번씩 도전받을 기회가 있다.

쌍방의 실력은 3개 단계 차이가 나서는 안 되며, 도전을 피하거나 도전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이를 어기는 자는 문파에서 쫓겨난다.

결투에서 이긴 자는 상대 제자의 등급에 따라 공헌 점수를 얻게 되며, 진 자는 본인의 등급에 따라 감점한다.

공헌 점수는 공헌치라 불렸다.

이것은 능소각만의 특색이기도 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공헌치는 능소각에서 돈에 해당했다. 공헌치가 충분하면 종문 보급처에 가서 필요한 단약, 비급, 병기 등 수련에 관련된 물품과 바꿀 수 있었다. 물론 공헌치로 돈을 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공헌치는 얻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제자들은 아까워서 돈으로 바꾸지 않았다.

공헌치를 얻는 경로는 다양했다. 문파에 자기가 찾은 보물을 바치거나 문파에서 내린 임무를 완수할 경우, 모두 일정한 공헌치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헌치를 얻는 가장 일반적이고 간단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도전이었다. 본인의 실력과 3단계 이내로 차이가 나는 동문에게 도전해 이기는 경우 공헌치를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양준을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든 만만한 상대를 고르기 마련이었다.

어찌 보면 양준도 능소각 내에서는 나름 유명 인사라고 할 수 있었다. 이는 그가 보기 드문 예비 제자 신분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능소각에 입문해서부터 지금까지, 그는 아직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매번 남에게 도전당하고, 패전만 거듭했다.

양준에게 도전하러 오는 제자들은 당연히 이전에 언제 도전했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은 바로 그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문파의 규정에 따라 또다시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이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공헌치를 탐냈다. 물론 양준을 이겨도 공헌치가 별로 높지는 않았다. 하지만 새 발의 피도 역시 피가 아닌가. 그리고 양준에게 도전하는 제자들은 부유한 집안이나 고귀한 집안의 자식도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공헌치라도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길 한가운데서 양준과 주정군은 자세를 취하고 동시에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누구든 다 알고 있었다.

양준은 오늘 또 흠씬 두들겨 맞을 게 뻔했다.

말이 떨어지는 순간, 양준이 선수를 치며 공격했다. 가냘프고 야윈 몸이 놀랄 만한 전투력을 뿜어냈다. 한 걸음에 다가가 주정군의 가슴팍에 주먹을 날렸다. 그의 공격은 간결하고 직접적이었다. 온몸의 힘을 주먹에 쏟아부은 듯이 주먹에서 바람이 일었다.

이는 능소각의 등급이 낮은 제자들이 모두 수련하는 장권(長拳)이었다. 이 권법은 가장 기본적인 권법으로 제자들이 몸을 단련하는 데 쓰였다. 당연히 초식이 간단했다.

주정군은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양준보다 경지가 두 단계나 높았으므로 이번 결투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양준의 주먹이 닿으려는 순간, 그는 그제야 한가롭게 슬쩍 몸을 비틀었다. 우람한 덩치가 그 순간만큼은 무척이나 날렵해 보였다.

주먹은 옷자락만 스쳤을 뿐, 주정군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주먹을 거두기도 전에, 주정군이 팔뚝으로 그의 팔을 찍으며 동시에 무릎을 들어 올려 복부를 가격했다.

양준은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내며 통증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그러고는 급히 한쪽 발을 뒤로하며 잇따르는 주정군의 세 번째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엥?”

주정군은 깜짝 놀랐다. 육체 경지 3단계밖에 안 되는 양준이 그의 이어지는 초식을 미리 예상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로써 단번에 양준을 쓰러뜨리려던 그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조그마한 실수는 전체적인 흐름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주정군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달라붙으며 양준이 숨을 고르는 사이에 이번 결투를 끝내려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주정군이 발을 움직이는 순간, 뒤로 물러섰던 양준이 또다시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주정군은 양준의 눈빛에 어린 불굴의 의지와 불타는 전의를 볼 수 있었다. 양준은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장권을 날렸다.

‘젠장!’

주정군은 순간 깜짝 놀랐다. 곧 상대방의 얕은수에 걸려들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비록 실력은 양준보다 두 단계 높았으나 실전 경험에서는 뒤처지고 있었다.

그러나 얕은수에 걸려들었다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주정군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는 더는 피하지 않고 다시 장권으로 대응했다.

쾅- 쾅-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양준이 멀리 나가떨어졌다. 주정군은 몸을 움찔했으나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빛은 살짝 굳어 있었다. 방금 전의 접전에서 만약 동일한 등급의 적수였다면, 날아간 사람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주정군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뜻밖에도 양준의 주먹은 자신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니까 양준이 먼저 자신을 맞힌 다음, 자신이 양준을 맞혔던 것이다.

다만 양준의 주먹은 힘이 많이 모자랐다. 그리고 자신이 우람하고 건장한 데 비해 상대방은 마르고 야위었다. 낯빛도 누런 것이 영양실조임이 틀림없었다. 눈앞의 결과는 두 사람의 확연하게 차이 나는 체격 때문이었다.

“양 사형, 좋은 결투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정군은 마음이 착잡했다. 자신보다 두 단계나 낮은 적수에게 먼저 가격 당한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비록 결투에서 이겼지만 찝찝하기만 했다.

이때 주변에서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자기가 이긴 줄 안 거야?”

“하하, 양준의 소문도 모르면서 도전하러 온 거야?”

“재밌네. 아직도 그런 놈이 남아 있다니.”

주정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사실 그는 양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다만 그에 대해 늘 주워들었을 뿐이었다. 오늘은 그저 길을 가다가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는 게 보이기에 끼어들었다가 운 좋게도 양준의 결투 상대로 선택되었던 것이다.

‘아니, 이긴 게 아니면 뭐지? 내 주먹 한 방에 양 사형이 날아갈 정도라면, 이미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준 것 같은데? 그리고 문파의 규칙에 따라 사형도 패배를 인정하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잖아.’

“다시!”

주정군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바닥에 쓰러져 있던 양준이 다시 일어섰다. 눈에는 낙심은커녕 오히려 전의가 더 짙어졌을 뿐이었다. 다만 한 대 얻어맞은 뒤, 원래 누렇던 얼굴빛이 살짝 창백해졌다.

주정군이 대답하기도 전에 양준은 또 달려들었다. 주정군과 석 자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갑자기 몸을 살짝 튕기더니 두 다리를 긴 채찍처럼 날려 주정군의 하체를 가격했다.

이 역시 능소각의 등급이 낮은 제자들이 모두 수련하는 기초적인 무예였다. 다만 양준이 옆차기를 펼치는 순간, 그보다 단계가 높은 많은 동문들은 새로운 수확을 얻게 되었다.

‘아, 옆차기를 저런 식으로도 펼칠 수 있군!’

사람들이 미처 감탄할 틈도 없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양준은 또다시 멀리 날아갔다.

경지의 두 단계 차이와 신체적 차이 때문에, 양준은 주정군의 상대가 안 되었다. 주정군의 이번 공격은 양준의 정강이뼈를 가격했다. 양준은 다시 일어서면서 휘청거렸다. 뼈를 다친 게 분명했다.

“다시!”

양준은 이를 악물었다. 눈에서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쾅…!

양준은 다시 날아갔다.

“다시!”

쾅…!

양준은 또 한 번 날아갔다.

차마 끝까지 볼 수 없던 이들은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탄식해 마지않았다.

“양준의 끈기 하나만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도전할 때마다 기절하는 게 아니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단 말이야.”

이 말을 들은 주정군은 씁쓸하기만 했다.

‘이렇게 지독한 상대일 줄이야!’

양준은 족히 7~8번은 나가떨어졌다. 뺨이 부어오르고 눈언저리마저 검게 변했다. 걸음걸이가 휘청거리는 것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바위처럼 끄떡없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다시’라는 말과 함께 달려들었다.

이렇게 여러 번 되풀이되자, 주정군은 드디어 낯빛을 바꾸었다.

“미쳤어요? 죽고 싶지 않으면 패배를 인정하세요.”

능소각 제자들 사이의 해마다 결투로 죽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주정군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앞으로 달려오는 양준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그는 이 정도로 할 수 없었다. 실력이 상대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아마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양준은 몸에 성한 곳 하나 없어도 여전히 전의를 불태웠다. 이를 본 주정군은 양준을 기절시키지 않는 한, 이 결투를 끝낼 수 없음을 간파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주정군은 달려드는 양준의 목을 손날로 쳤다. 양준의 사나운 기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눈에 생기를 잃더니 온몸의 힘이 풀리면서 나른하게 쓰러졌다.

*십여 장 밖에 있는 큰 나무의 높은 가지에 서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이 자그마한 책자를 꺼내더니 한 줄 적어 넣었다.

[예비 제자 양준 대 일반 제자 주정군, 주정군 승]

나뭇가지에 서 있는 사람은 몸매가 날씬한 것이 여인이 분명했다. 다만 검은 면사포를 쓰고 있어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청초한 눈매로 보아 나이가 어린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팔에 착용한 낙엽 완장에서 그녀가 능소각 암당(暗堂) 제자임을 알 수 있었다.

능소각의 암당은 특수 기구였다. 문파 내 삼 장로(長老)가 총괄하며, 소속 제자들은 문파 내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을 기록했다. 그중에는 제자들 간 결투 승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능소각 안에서는 자신이 이기고도 공헌치가 누락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암당 제자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결투의 전적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매월 수치를 통계하고 있었다.

암당 여 제자는 이번 결투의 승부를 기록한 다음, 허리춤에서 더 작은 책자를 꺼내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화(紀和) 14년 5월 7일, 양준, 제147회 결전, 패!]

새로 적은 한 줄의 글 외에, 위에는 양준의 결투 결과가 촘촘히 적혀 있었다. 모두 언제, 몇 번째 결전이라는 것을 적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는 하나같이 모두 패였다.

147번을 연패하고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 이는 그야말로 능소각이 생긴 이래 유일무이한 전적이자, 전무후무한 전적이기도 했다. 이 순간, 이 전적의 보유자는 생사를 알 수 없이 땅바닥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