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금신: 육체편
양준은 소매를 걷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울긋불긋 멍들었던 상처들이 전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예전에 다친 상처도 전부 치유돼 있었다. 손을 뻗어 원래 상처가 있던 곳을 살짝 누르자 피부가 후두둑 벗겨지며 새 피부가 드러났다. 갓난아기 같은 피부는 아니었지만 원래 피부보다 훨씬 건강해 보였다.
“흡…….”
양준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몸에 스며든 금신이 이렇게 강한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그는 기대감을 갖고 자신의 실력을 느껴 보았지만 여전히 육체 경지 3단계라는 것을 알고, 좀 실망스러웠다.
양준은 어려서부터 강호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나 선배들의 경험담과 같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었다. 그중에는 이 세상에 덕을 많이 쌓은 사람들이 우연히 남다른 경험을 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동안 쌓은 덕으로 인해 사업이 큰 발전을 이루고 이름을 날리게 됐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이야기일 뿐이다. 진정 그런 식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다. 신비로운 검은 책도, 금신도 분명 평범하지 않았다. 이건 기연이라고 할 수도 있고,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도 있었다.
검은 책의 첫 장 마지막 구절에 분명히 쓰여있었다.
[강자들이 금신을 노리고 있으나, 불굴의 의지만이 금신을 항복시킬 수 있다.]
자신이 검은 책을 줍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주웠더라면 절대 그 안의 숨은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고, 쓰레기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주웠기에 일 년을 베개로 사용했던 것이고, 그로 인해 검은 책 속의 봉인되어 있던 금신이 자신의 몸속에 있는 불굴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검은 책.”
양준은 자신이 일 년 동안 베고 잔 보물을 떠올리자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러나 검은 책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초조해지려는 찰나, 몸속에 이상한 기척이 느껴지더니 갑자기 양준의 눈 앞에 검은 책이 펼쳐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양준은 깜짝 놀라 손을 뻗어 검은 책을 주웠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마음속으로 사라지라고 되뇌었다. 그러자 검은 책이 손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나오라고 머릿속에 떠올리자 검은 책이 눈앞에 나타났다.
양준은 자신의 의지대로 검은 책을 몸속에 숨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검은 책의 재질은 설마… 진혼석(鎮魂石)?!”
양준은 이 말을 뱉자마자 깜짝 놀랐다.
진혼석! 그건 전설 속의 보물이었다. 이것은 수많은 망령들이 모인 심연 속에서 무수히 많은 생명의 기운을 흡수하여 생긴 돌이었다.
하지만 이런 신기한 돌이 형성되는 과정은 매우 잔인하고 참혹했다. 그것을 가까이하는 생명체는 그 즉시 사망했다. 돌이 형성되는 시간도 더없이 길었다. 짧으면 수천 년이었고, 길면 만 년도 걸렸다.
형성 과정은 그렇다 하더라도 진혼석이 일단 형성되면 둘도 없이 진귀한 보물임에는 틀림없었다. 또 이 돌에는 기이한 능력이 있었는데 사람의 몸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돌 안에서 독특한 공간을 열 수 있었다. 이 공간의 크기는 돌에 따라 제각기 달랐지만, 물건을 감추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양준은 비록 능소각의 예비 제자에 불과하여 신분이 비천했지만 식견이 짧지 않았다. 더구나 진혼석의 전설은 오랫동안 이어져왔으니 누구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검은 책을 처음 봤을 때, 양준은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책 내용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또 금신이 책장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떠올렸을 때, 어떻게 검은 책의 재질을 몰라볼 수 있겠는가?
양준은 그대로 굳어 온몸의 땀을 뻘뻘 흘렸다.
진혼석, 이것은 전설에만 존재할 뿐, 세상에서는 진작 행적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는 뜻밖에 한 조각을 마주친 것이다. 그것도 이토록 큰 조각을!
전설 속에서도 진혼석은 겨우 방촌(方寸: 한 치 사방의 넓이)만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작은 진혼석도 그 가치가 어마어마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무려 길이가 한 척, 두께가 세 손가락 만했다. 이 가치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일이 소문난다면 한낱 능소각은 물론이고 나라 전체가 자신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양준은 검은 책을 든 손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이것을 몸속으로 흡수할 수 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일이 무척 골치 아파졌을 것이다.
이런 진귀한 보물을 몸에 품은 양준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도둑처럼 살금살금 방문을 잠그고 방 안에 숨어 있었다.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양준은 더없이 흥분되었지만 또 불안하기도 했다.
자신의 실력이 이처럼 보잘것없는데 어떻게 이런 진귀한 보물을 지킬 수 있겠는가? 비록 몸속에 흡수하여 노출될 위험이 없다고 해도 양준은 확신할 수 없었다.
오직 수련해야만, 강해져야만 자신의 것을 지킬 수 있다. 삼 년 전에 당한 봉변을 떠올리자 양준의 두려움에 찬 시선은 점차 침착해졌다. 힘들게 이 능소각에 들어온 것이 바로 수련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는가?
이미 검은 책을 얻었으니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검은 책이 이리도 두꺼운데 금신 하나밖에 없겠는가?
양준은 올해 겨우 열다섯 살이었지만, 삼 년 전에 큰 재난을 겪은 뒤로 정신연령이 다른 사람보다 많이 성숙해졌다. 바로 그 재난으로 인해 그는 불굴의 의지를 갖게 된 것이었다.
양준은 마음이 진정되자, 침대 옆에 앉아 검은 책을 들고서 자세하게 첫 장을 읽어 봤다. 첫 장에는 아무런 작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양준은 천천히 두 번째 장을 펼쳤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부릅뜨고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책장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한참 뒤, 첫 장처럼 금박의 큰 글자가 천천히 떠올랐다.
[금신: 육체편]
양준의 기분은 저도 모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만약 자신의 예상이 맞는다면 이 검은 책에는 책장마다 뭔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양준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두 번째 장에 정신을 집중했다.
순간, 금박으로 새겨져 있던 큰 글씨는 마치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책장에서 빠져나와 방안 가득 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바로 양준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금빛 그림자가 사라지자 양준은 머릿속에 뭔가 새로운 지식이 넘쳐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방금 전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던 검은 책에서 흘러나온 내용들이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 양준은 천천히 눈을 감고 머릿속의 지식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소화할 필요도 없었다. 금빛 그림자가 가져다준 지식은 머릿속에 뚜렷이 나타나 자신의 의지대로 떠올릴 수 있었고, 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육체편이군.”
양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는 이것이 권법술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쉬워 보이나 사실 더없이 심오했다. 이 권법술의 수련 시간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해가 뜰 때에만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매일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은 반 시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금방 밤이 된 지라 이튿날 날이 밝을 때까지 적어도 대여섯 시진이 남아 있었다. 하루 종일 힘들게 보낸데다 구운 고구마 하나밖에 먹지 못한 양준은 계속해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비록 몸은 고단했지만 검은 책을 얻은 그는 몹시 흥분되었다.
한참이나 잠이 들지 못하자 양준은 검은 책의 세 번째 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그가 어떻게 살펴보아도 세 번째 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책을 한참 들여다보다 양준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양준이 다시 깨어났을 때에는 마침 해가 뜨는 시기였다.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고 고요했다. 능소각 전체는 정적만 흐르고 있었다.
양준은 다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집 앞으로 나와서 손을 늘어뜨린 채,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몸이 서서히 편해졌다.
동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오자 양준은 눈을 떴다. 이미 머릿속으로 육체편의 권법술을 여러 번 연습해 봤기에 바로 손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두 손을 들어 합장하고 천천히 왼손과 오른손을 선후로 내밀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여서 가슴팍에 놓았다. 만물을 손바닥에 담고 천하를 밟고서 하늘을 삼킬 듯한 기운이었다.
왼발을 내딛으니 코앞이 벼랑 끝인 것 같았고, 오른발을 살짝 움직이니 어두운 황천길이 보였다. 숨을 쉬니 봄에 꽃이 만발하는 것처럼 생기가 넘치고 봄기운이 물씬 풍기다가 여름이 온 것처럼 햇볕이 쨍쨍 비추고 연꽃 향이 풍기는 것 같았다. 또 쓸쓸한 가을바람이 일고 황금빛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매서운 바람이 기승을 부리더니 세상이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였다.
양준의 기색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손과 발은 이미 무게가 만 근이 넘는 바위에 깔린 것처럼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뻗을 수 없었다.
뚜둑, 두둑!
양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는 갑자기 비틀거리다가 하마터면 땅에 넘어질 뻔했다.
비록 머릿속으로 무수히 훈련했던 장면이고, 이 권법술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양준은 이 육체편이 이토록 기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방금 전 잠깐 수련하던 그 짧디짧은 시간에 양준은 온 세상이 모두 그의 몸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도 거대한 압력 속에서 인간 세상의 모든 감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