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공헌당의 몽 주인
노인은 공헌당의 주인이었다. 대략 5~60대로 보이는 그는 머리가 새하얗고 인자한 인상을 풍기는 것이 매우 온화해 보였다. 하지만 양준은 이 노인이 아주 뛰어난 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전에 능소각의 우수 제자가 공헌당에서 난동을 부렸는데 이 노인은 손가락 하나로 그를 수십 장 넘게 튕겨버려 그 제자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 때 양준도 현장에 있었다. 그 때부터 그는 온화해 보이는 이 노인의 실력이 매우 대단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양준이 앞으로 다가갔을 때 노인은 한창 코를 골며 자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음탕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쩝쩝거리고 있었다.
‘이 노친네! 또 능소각의 어느 여제자 꿈을 꾸고 있나 보군!’
양준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빗자루로 계산대를 가볍게 두드리며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몽 주인!”
양준은 노인의 성이 몽(夢)씨라는 것 말고는 이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몰라, 줄곧 이렇게 그를 불러왔다.
‘똑똑’ 하고 계산대를 몇 번 두드리자 단꿈에서 깬 노인은 게슴츠레 눈을 떴다. 잠을 깨운 것이 양준이라는 것을 알자, 노인은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마치 똥이라도 밟은 듯한 얼굴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양준은 왠지 울컥했다.
몽 주인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왜 아침에 오지 않았느냐?”
양준은 당당하게 받아쳤다.
“아침에는 사람이 많아서 지금 왔습니다. 지금 한산하잖습니까!”
“내 단잠이나 깨우고, 넌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모르는 것이냐?”
양준은 가까이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느 낭자의 꿈이라도 꾸신 겁니까?
몽 주인은 갑자기 정신을 벌떡 차리더니 입가를 쓱 닦고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양준의 경멸하는 시선을 보고는 뭔가를 느꼈는지 계산대를 치며 버럭 화를 냈다.
“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나의 청렴하고 결백한 명예를 더럽히는 짓이다! 괘씸하구나.”
“몸매가 좋았습니까?”
“좋았지!”
몽 주인은 침을 질질 흘리며 말했다.
“가슴은 봉긋하고 엉덩이는 튀어나왔으며 다리도 길었겠지요. 피부가 백옥 같고 얼굴도 예쁜 데다 허리도 가늘었습니까?”
“응응… 헤헤…….”
몽 주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하마터면 맞장구를 치며 좋아할 뻔했다.
양준은 냉소를 지을 뿐, 말이 없었다.
몽 주인은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창피해하며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능소각에서 양준이 알고 지내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몽 주인이었다. 어쨌든 달마다 그는 이곳에 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몽 주인에게는 별명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몽 착취’였다. 그는 능소각에서 조그마한 공헌당의 주인일 뿐이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바로 제자들의 공헌치를 착취하는 일이었다.
판매가가 원래 공헌치 10점이던 어혈연고를 그는 세 병의 가격으로 두 병의 분량을 팔았다. 수단도 매우 간단했다. 두 병 분량을 세 병에 나누어 넣었을 뿐이었다. 사겠으면 사고 말겠으면 꺼지라는 심보였다.
물론, 몽 주인도 이런 양심 없는 짓을 자주 하는 것은 아니고 가끔씩 했다. 그리고 그가 겨냥한 사람들도 부유한 제자들이었다. 양준처럼 가난한 제자는 그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능소각에 있는 제자들은 모두 어렵게 공헌치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런 착취를 견딜 수 있겠는가? 그래서 몽 주인에게 당한 제자들은 모두 그를 장로회(長老會)에 고발했다. 몽 주인도 여러 차례 장로회의 경고를 받았지만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공헌당의 주인자리는 누구도 대체할 수없이 매우 견고했다.
바로 이 때문에 몽 주인은 수많은 능소각 제자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몽 주인은 그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았지만, 유독 양준에게는 어쩌지 못했다. 그가 흥미진진하게 한 여제자의 엉덩이를 보고 있을 때, 양준에게 덜미가 잡혔던 것이다.
‘늙어서 추접스럽게 이게 다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약점이 잡히다니.’
몽 주인은 양준 앞에만 서면 기가 죽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양준도 노인과 친해진 것이었다.
노인은 색욕도 있었고 얼굴도 두꺼웠다. 그는 순식간에 표정을 수습하고 양준을 흘겨보며 물었다.
“똑같이 바꿔주랴?”
“네.”
양준은 고분고분 대답했다.
몽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산대에서 은자 열 냥을 꺼내 양준 앞으로 던졌다. 그리고 장부를 꺼내 적기 시작했다.
양준은 돈을 집어넣고, 입을 열었다.
“저한테 지금 공헌치가 얼마나 있습니까?”
몽 주인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달마다 공헌치가 4점 남는데 매달 1점으로 은자 열 냥씩 바꿔 가니 3점밖에 안 남지. 오늘까지 모은 공헌치는 12점이 되겠구나. 왜? 어혈연고라도 하나 사려는 것이냐?”
“아니요, 그냥 물어본 겁니다.”
양준은 손을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겨우 12점이라니.”
‘이 정도 공헌치로는 쓸 만한 약초도 못 바꾸겠네.’
몽 주인의 안색이 엄숙해지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양준, 네가 공헌치를 모아 세수단(洗髓丹)으로 바꿔서 자질을 올리려는 건 알겠지만 이렇게 모으다가는 언제 바꿀 수 있겠느냐?”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겠습니까?”
양준은 가볍게 웃었다.
몽 주인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 속도로 모은다면 내가 죽고도 백 년은 더 기다려야겠군.’
“그런데 몽 주인, 저한테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만.”
양준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엇이 말이냐?”
“세수단 같은 귀한 단약이 왜 공헌당에 있는 겁니까? 게다가 왜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이 바꿔 가지 않은 거죠?”
“허허…….”
몽 주인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이 단약은 내 보물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
“네? 몽 주인의 것이라고요?”
양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줄곧 세수단이 능소각의 단약인 줄 알았던 것이다.
‘어쩐지, 이 노친네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책정했다 했어.’
“화내지 말거라.”
몽 주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계산대 위의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비록 내 것이긴 해도 너한테 싸게 줄 수는 없다. 네가 가지고 싶거든 충분한 공헌치를 가지고 와서 바꾸면 된다.”
“전 반드시 모을 겁니다.”
양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몽 주인은 갑자기 또 표정을 바꾸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듣자 하니, 너 어제 또 누구한테 맞았다며?”
양준은 눈을 부릅떠 보이고는 홱 돌아서서 떠나려 했다.
몽 주인이 뒤에서 소리쳤다.
“나와 얘기 좀 하거라. 가지 말고.”
‘얘기할 게 뭐가 있다고? 이 노친네는 그저 고소해하는 거야.’
양준이 공헌당을 떠나려고 할 때, 몽 주인은 무거운 얼굴로 양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양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거라. 능소각은 네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다. 그러다 언젠가 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것이다.”
양준은 걸음을 멈추었지만 돌아서지도 않고 낮은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전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말을 마친 양준은 공헌당을 떠났다.
몽 주인은 두 손으로 찻잔을 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왜 저렇게 고생을 하는 거지?”
‘세수단이라… 허허, 그런 보물이 나한테 있을 리가 있나……. 희망이라도 가지도록 거짓말을 지어낸 것인데 진심으로 믿을 줄이야.’
*양준은 작은 오두막으로 돌아와 빗자루를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부랴부랴 능소각 밖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는 능소각과 십 리 떨어진 오매진(烏梅鎮)으로 향했다. 오늘 은자 열 냥으로 바꿨으니 당연히 양식을 사야 했다. 이것도 양준이 달마다 하는 일이었다.
양준은 길을 걸으며 처음으로 힘들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이전에는 오매진에 올 때마다 십 리 길을 걸으면 얼굴이 벌게지고, 숨을 헐떡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그저 몸에 열이 살짝 나는 것 같을 뿐 기운이 넘쳤다. 이렇게 백 리를 더 간다고 해도 지칠 것 같지 않았다.
‘이것도 금신의 작용인가?’
양준은 갑자기 아침에 이름 모를 사제와 부딪혔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분명 그는 멀쩡했지만 몸이 건장한 사제가 땅에 나자빠졌었다.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내 몸이 언제 다른 사람과 부딪혀서 상대를 주저앉게 했던 적이 있었던가? 항상 내가 부딪혀서 날아갔지.’
생각할수록 흥분되었다. 금신이 그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작지 않았다. 이런 변화를 일시적으로 끝낼 수 없었다. 앞으로 천천히 성장하면서 금신의 힘을 발굴할 생각이었다.
생각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니 오매진에 도착해서야 양준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는 두리번거리며 왼쪽 길로 걸어갔다. 양준이 가려는 곳은 한 쌀가게였다. 쌀가게는 규모가 크지 않았고 주인의 성은 하(何)씨였다. 그는 현지의 주민이었는데 작게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가 파는 물건은 품질이 좋고 가격이 쌌으며 상도덕 있게 장사를 해 왔다. 이는 양준이 줄곧 그에게서 쌀을 사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매진에는 이런 가게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오매진이 이상하리만치 번화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오매진을 중심으로 반경 백 리 안에 능소각을 제외하고도 3대 문파인 풍우루(風雨樓), 혈전방(血戰幫)이 있었고, 다른 작은 문파들은 부지기수였다.
많은 무인들이 이 땅을 키워서 오매진이 이토록 번화한 것이었다. 물론, 중도(中都) 같은 대한의 수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길을 갈 때, 양준은 무심결에 곁눈질로 옆 골목에서 몇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수상한 차림새로 모여서 뭔가를 쑥덕거리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의 경계심이 아주 뛰어났는데, 양준의 시선을 느끼고는 바로 눈을 부릅뜨고 양준을 노려보았다. 그 눈빛이 매우 흉악했다.
양준은 가볍게 웃고 넘어갔다. 그는 상대방이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을 상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중 한 사람의 얼굴이 좀 눈에 익었다. 능소각의 제자 같았다.
하지만 양준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여기는 능소각과 가까운 오매진이었다. 제자들이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