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8화 (8/853)

제 8장. 수상한 사기극

얼마 지나지 않아 양준은 하씨 쌀가게에 도착했다. 하씨 쌀가게는 길가의 두 방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장사가 아주 잘 되었다. 가게 안에서는 점원이 돌아다니며 분주히 일을 보고 있었다. 쌀가게 주인은 계산대에 앉아 주판을 튕기고 있었고, 여주인도 손님들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한참 기다려서 앞서 온 쌀가게 손님들이 점차 줄어들자 양준은 쌀가게로 들어갔다.

“주인아주머니.”

양준은 들어가서 여주인을 불렀다. 그러자 대략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주인이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었다.

“어린 총각, 또 쌀 사러 왔어?”

“네.”

양준은 곧장 가장 싼 현미 앞으로 걸어가더니 쌀 포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포대 주세요.”

여주인은 천으로 된 포대에 쌀을 담으며 중얼거렸다.

“한 달에 한 번씩 사는 걸로 충분해?”

“충분해요.”

양준이 대답했다.

“거짓말! 팔다리 얇은 것 좀 봐. 배불리 먹었으면 어떻게 이래?”

여주인은 양준을 흘겨보며 말했다.

양준은 머쓱해서 웃어 보였다.

“사냥도 다녀서 굶지는 않아요.”

계산대에서 열심히 계산하던 주인이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부인, 저기에 묵은 쌀이 있는데 놔두기에는 아까우니 그 총각에게 주시오.”

“알겠어요.”

여주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에요, 아주머니도 작게 장사를 하시는 거잖아요.”

양준은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여주인은 정색하며 말했다.

“안 되긴, 어차피 묵은 쌀이라 벌레가 생겨서 팔지도 못해. 조금만 기다려, 가져다줄게.”

여주인은 말하면서 뒤쪽 창고로 걸어갔다.

양준은 마음이 복잡해져서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쌀가게는 쌀을 살 때마다 인심 좋은 주인 부부가 항상 그에게 더 많은 쌀을 주고는 했다. 그리고 그들도 항상 핑계를 댔다. 쌀벌레가 생겼다고 말하지만 사실 모두 질 좋은 입쌀이었다. 이런 인정에 평소 세상이 무정하다고 여겼던 양준은 마음이 시큰거렸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양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주인은 고개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

“혼자 살다 보면 다 힘들 때가 있어. 앞으로 배가 고프면 여기로 와.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 가게에 쌀은 넘쳐나니까.”

“네.”

양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세상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 있구나.’

감탄하고 있던 중, 두 사람이 쌀가게로 들어왔다. 점원이 열정적으로 그들을 맞이하려고 다가갔다. 하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점원은 그중 한 사람에게 발로 차여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아이쿠…….”

점원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심하게 넘어진 건지 한참 지나도 일어나지 못했다.

“무슨 일이야?”

하 주인은 다급히 계산대에서 뛰어나왔다. 양준도 점원을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리고 가게로 들어온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흉악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창백한 얼굴로 배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몹시 허약해 보였다. 다른 한 사람은 그를 부축하고 있었는데 몸집이 컸다. 바로 점원을 발로 찬 사람이었다.

“여기 주인이 누구야?”

부축하고 있는 사람이 큰소리로 물었다.

“접니다.”

하 주인이 다급히 대답했다. 그는 한낱 일반 장사꾼에 불과했다. 그러나 찾아온 이 두 사람은 몸에 살집이 가득하고 칼자국이 있는 것이 척 보아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하 주인은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 못된 주인 같으니라고, 독이 있는 쌀을 내 친구에게 팔아? 지금 이 친구 모습을 좀 봐. 멀쩡하던 사내가 너희 집 쌀을 먹고 이 꼴이 됐다고. 내 친구는 평소에 맨주먹으로 호랑이도 때려잡는 사람인데 지금 인사불성이 됐어. 돈만 밝히느라 사람 목숨은 안중에도 없나!”

흉악한 인상의 사내가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자 하 주인은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사내가 또 소리를 질렀다.

“오늘 아침 내 친구가 여기서 쌀을 사다가 죽을 해 먹었는데 먹고 나서 이렇게 됐어. 다행히 내가 먹지 않아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나도 친구 따라서 황천길로 갈 뻔했잖아!”

하 주인은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옷소매로 끊임없이 닦으며 말했다.

“저, 무슨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오해? 오해는 개뿔! 너희 쌀을 먹지 않았더라면 내 친구가 왜 이렇게 되었겠어?”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 주인이 어떤 인품을 가진 사람인지 양준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하 주인은 수시로 그를 도와주고 쌀을 공짜로 주고는 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겠는가? 하 주인의 인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정말 그렇게 양심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파는 쌀에 독을 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일이 만약 소문난다면 하 주인은 앞으로 어떻게 장사를 할 것이고, 또 누가 이곳에 와서 쌀을 사겠는가?

두 사내는 사기를 치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찾은 핑계도 참 독했다. 남의 밥줄을 끊어 놓으려는 것이었다.

양준은 은혜를 입은 하 주인이 이런 술수에 당하자 화가 났다. 그는 참지 못하고 정색하며 일어났다. 그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

“뭐야?”

사내가 양준을 노려보았다. 그는 점점 난폭해졌다.

양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하 주인이 급히 그의 앞을 막아서며 손짓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

양준은 깜짝 놀랐다.

“액땜한다 치자.”

하 주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양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주인은 이 두 남자의 속셈을 꿰뚫어 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가게를 열고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평화로운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방금 전의 소동으로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빨리 해결하지 못한다면 쌀가게의 명성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그들이 사기 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하 주인은 그들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얼른 이 두 애물단지를 내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 주인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친구분께서 중독되신 것은 저희 쌀가게와는 상관이 없…….”

이 말을 들은 사내는 또 화를 내려고 했다. 이때, 하 주인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 해도, 저희 쌀가게에 오셨으니 제가 모르는 척할 수는 없지요. 친구분께서 이렇게 아파하시니 보고 있기가 마음이 편치 않군요. 어서 의원에게 진료를 받아 보시는 게 중요할 듯합니다. 물론, 만약 두 분께서 돈이 부족하시다면 제가 진료비를 내어 드리지요.”

이 말을 한 목적은 돈으로 액땜을 하려는 생각이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정말 돈을 뜯으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정도껏 하고 물러날 것이다. 그리고 하 주인이 이렇게 말한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건의 진실을 짐작하도록 알려 준 것이기도 했다. 쌀가게의 명성에 해가 갈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참 현명한 대처였다.

하지만 상대편에 있는 두 사람은 이 말을 듣고도 전혀 타협하려는 뜻을 보이지 않았다. 흉악한 인상의 사내가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돈이나 사기 치는 사기꾼인 줄 알아? 나와 내 친구 모두 정직한 사람이야. 평생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한 점 없다고. 독이 든 쌀을 파는 못된 주인 주제에, 양심은 어디다 두었나?”

옆에서 듣고 있는 양준은 입을 삐죽였다.

‘이 꼴을 해서는 무슨 정직하게 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는 거야?’

하 주인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왜 이러지? 이 둘은 돈을 사기 치러 온 것이 아닌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던 순간,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서 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이 소년은 양준과 나이가 비슷해 보였는데 매우 말쑥하고 준수하게 생겼다. 입술이 발그레하고 치아가 하얀 것이 척 보아도 잘 사는 집 자제 같아 보였다.

소년은 사뿐사뿐 걸어 들어오더니 두 남자의 옆에 섰다. 그리고 흥미롭다는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면서 혀를 찼다.

양준은 이 소년이 눈에 익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 아까 오는 길에 그는 눈앞의 이 세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그 골목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남자를 부축하고 있는 흉악한 인상의 사내는 그때 자신을 노려보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눈앞의 이 소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이 셋은 한 패거리잖아?’

양준은 갑자기 짙은 사기극의 냄새를 맡았다.

인파 속에서 걸어 나온 소년은 두 사내 주위를 몇 바퀴나 돌았다. 표정은 불손했고 눈빛도 무언가 놀리는 듯했다.

두 사내는 상대가 만만치 않은 것을 보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사람을 부축하고 있던 사내가 커다란 눈을 부라리며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 자식이 왜 얼쩡거리면서,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거야!”

소년은 헤헤 웃었다. 두 사람 앞에 서서 ‘중독’되었다는 사람을 뚫어지게 보더니 입을 열었다.

“얼굴이 창백한 걸 보니, 심하게 중독된 것 같군.”

“당연하지. 안 그럼 우리가 왜 의원을 찾아가지 않고 이곳에 왔겠어. 저 못된 주인의 민낯을 온 동네에 까발려서 다신 이 집에서 쌀을 사지 못하게 할 거야!”

하 주인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두 사람의 목적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돈을 갈취하러 왔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어코 죄를 뒤집어 씌우려 하는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하 주인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양준이 조용히 물었다.

“아저씨, 최근에 누구한테 원한을 산 적 있어요?”

하 주인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울상이 되어 말했다.

“없었다.”

“아니면 아저씨네 쌀가게가 잘 되서 남의 장삿길을 막았나요?”

양준은 나이가 어리지만 서로 속이고 속는 세상사를 적지 않게 보아 왔다. 곧 생각을 바꿔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내가 벌어 봤자 얼마나 번다고, 누구 장삿길을 막겠어?”

하 주인은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데…….’

양준은 실눈을 뜨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사건의 여러 가능성을 짐작해 보았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 때, 소년은 한마디 묻고 난 뒤, 갑자기 냉소를 짓더니 얼굴이 창백한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이거나 받아라.”

소년은 소리치는 동시에, 두 사람 중 ‘중독’되었다는 사내의 명치끝을 노리고 흑호도심(黑虎掏心)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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