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0화 (10/853)

제 10장. 간계

“하… 하지만 사람을 함부로 죽이면 안 되지.”

소무영은 마음이 급해졌다. 눈앞의 사형이 이토록 잔인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의 원래 계획은 완벽했다. 두 사내가 하 주인을 모함하면, 자신이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면 하 주인은 그에게 감격할 것이고 그의 목적도 달성한 셈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잔인한 사형이 하나 튀어나와 느닷없이 사람을 죽이자고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이건 아니잖아.’

소무영은 두 사내가 자신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 눈빛에는 심지어 협박도 섞여 있었다. 소무영은 그들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우리 다 한 배를 탄 사람들이야. 우리가 잘못되면 너도 끝이야.’

그들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때 양준이 웃으면서 말했다.

“사제, 문인은 붓으로 법을 어지럽히고, 협객은 폭력으로 규율을 거스른다는 말이 있지. 강호에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설마 직접 나서기가 두려운 거야? 아니면… 서로 아는 사이라 죽이지 못하는 거야?”

소무영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아 고개를 홱 돌려 양준을 보았다. 양준은 미소를 머금은 채 교활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형, 무슨 뜻이야?”

소무영은 얼굴빛이 차가워졌다.

‘내 계획을 간파한 건가? 하지만 여태껏 아무런 허점도 보인 것이 없는데, 어떻게 간파했지?’

그는 물론 알 수가 없었다. 양준이 그의 계획을 간파할 수 있었던 것은 무심결에 그들 셋이 함께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만약 무심결에 그들을 보지 않았더라면 오늘 양준도 그냥 속아 넘어갔을 터였다.

하 주인은 영리했다. 양준의 말속에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의문스러워하며 물었다.

“총각,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양준이 소무영을 겨냥하는 게 눈에 보였던 것이다. 하 주인이 못 알아챌 리 없었다.

양준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물론 폭로하지도 않았다. 다만 여전히 소무영을 지켜보며 말했다.

“사제, 보아하니 대담한 사람 같은데, 왜 정의를 구현하는 일에 주저하는 거지? 하물며 사형인 나와 함께하잖아. 뭐가 두려워?”

“내가 언제?”

소무영은 일부러 크게 웃었다. 경련을 일으키듯이 입가가 미세하게 떨리며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언제 두려워했다고? 까짓, 사람을 죽이는 거잖아? 누군 못해 본 줄 알아?”

소무영은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고 인정하면 양준 앞에서 꿀리는 것 같았다. 소년의 허세였다. 양준이 슬쩍 자극하자 소무영은 물러설 길이 없어졌다.

소무영은 모질게 마음을 먹고 살의를 드러내며 땅에 쓰러져 있는 두 사내를 바라보았다. 두 사내는 소무영의 눈빛을 보는 순간 일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이 자식이 완전 속아서 제정신이 아니군.’

“사제, 그럼 시작하지.”

양준은 계속해 부채질했다.

소무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내는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곧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동료를 부축하고 있던 사내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더니 소무영을 삿대질하며 말했다.

“소무영, 이 배신자. 우리 두 사람이 하씨 쌀가게에서 행패만 부려 주면 네가 와서 하 주인을 도와주고 환심을 살 거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우리를 죽이려고 해!?”

“무슨 헛소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계략이 까발려지자 소무영 역시 화가 치밀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씨 쌀가게에 와서 행패 부린 건 다 이놈의 생각입니다. 이놈이 하씨네 딸에게 반했는데 말이죠, 웬걸 상대방이 이놈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짓을 꾸민 거예요.”

이 말이 나오는 순간, 모여 있던 사람들이 소무영에게 눈길을 돌렸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시선이었다.

‘그런 거였군!’

양준은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줄곧 소무영의 목적을 짐작하려 했다. 궁리 끝에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익 아니면 명성. 그런데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소무영의 목적은 미색이었다.

하 주인의 딸은 양준도 본 적이 있었다. 어린 소녀는 청초하게 생긴 편이었다. 비록 경국지색은 아니지만 용모가 수려하고 아리따웠다. 올해 열네 살로, 아직 어린 나이지만 오매진에서 나름 유명한 미인이었다.

이렇게 어린 소녀가 소무영의 눈에 들 줄 누가 알았으랴. 바로 이 때문에 하씨 쌀가게가 오늘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허튼소리 하지 마!”

소무영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여전히 발뺌하려 했다.

그 사내는 계속해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튼소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성품이 안 좋고, 평소 돈을 갈취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쌀가게에서 쌀에 독을 넣었다고 모함하며 남의 장삿길을 막는 일은 한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제 부모와도 같은 분들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모든 건 다 저놈이 시킨 겁니다.”

진지한 그의 말에 사람들은 그만 웃고 말았다.

양준이 때를 맞춰 한마디 물었다.

“일이 성사되면 얼마 받기로 했죠?”

“은자 쉰 냥이요.”

사내가 대답했다.

“쉰 냥? 많기도 하다.”

양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 주인은 결국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는 화난 눈빛으로 소무영을 바라보며 경멸 어린 말투로 말했다.

“못난 놈. 이런 더러운 수법이나 쓰는데 내 딸이 널 좋아할 것 같으냐? 능소각에 너 같은 파렴치한 제자가 있다니, 능소각의 명성에 네가 먹칠을 하는구나.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성품이 양준의 반의반도 못 따라가잖아. 네 부모님이 불쌍하다.”

상인들 역시 한바탕 비웃으며 욕을 서슴지 않았다. 모두 소무영의 비열한 행위를 질타했다.

소무영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앞으로 오매진으로 올 때는 얼굴을 가리고 와야 하나?! 오늘의 화근은 바로 눈앞의 이… 사형이야!’

만약 양준이 아니었다면, 오늘 소무영은 반드시 하 주인의 호감을 얻었을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많이 왕래하다 보면 그 집 딸과의 접촉도 편해졌을 것이다. 가까이서 접촉하다 보면 미인을 품에 안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계획도 틀어지고 명성까지 잃게 되었다.

소무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나머지, 얼굴빛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형, 이름이 뭐야?”

“한 번 맞혀 봐.”

양준은 그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소무영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말해 주지 않아도 네 신분은 금방 알아낼 수 있어. 입문한 지 삼 년이 넘도록 아직 육체 경지를 돌파하지 못했으니 예비 제자겠군. 능소각에는 예비 제자가 열 명도 채 되지 않아. 두고 봐라. 내가 반드시 오늘의 치욕을 갚아 주마.”

소무영은 말을 마치자, 뒤돌아 밖으로 걸어 나갔다. 무공을 읽힌 몸이라 앞을 막는 사람이 있어도 와락 밀쳐 버리고는 당당하게 떠나갔다.

소무영이 떠나가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흠씬 두들겨맞은 두 사내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두 사람은 일찍이 양준과 소무영이 얘기하고 있을 때 슬그머니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

이번 촌극은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가운데 양준은 예리한 눈썰미로 속임수를 간파해 상인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특히 하 주인은 감격해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

나이 어린 점원도 존경하는 눈빛으로 양준을 바라보았다.

쌀가게 여주인은 양준에게로 걸어오더니 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하 주인은 걱정되어 말했다.

“양씨 조카, 오늘 소무영에게 밉보이게 되었으니 나중에 문파에서 곤란해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오늘 일을 거쳐 하 주인이 양준을 부르는 호칭도 친근하게 변했다.

“괜찮습니다. 문파에 규칙이 있어 아무리 저를 미워해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양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꼭 조심하렴. 오늘 일로 조카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다면, 내가 너무 미안해지잖니.”

“네, 조심할게요.”

양준이 그를 위로했다.

하씨 부부는 오늘 양준이 도와준 데 감격하여 기어코 저녁식사를 대접하려 했다. 원래 양준은 응하려고 했지만, 여주인의 한마디에 놀라 달아났다.

“부모님은 계셔? 집은 어디에 있어? 장가는 갔어?”

이 태도로 보아 여주인은 아마 그의 장모님으로 격상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양준은 어물쩍 어물쩍하다가 달아났다.

양준은 떠날 때, 쌀 한 자루를 짊어졌다. 은자 열 냥으로 살 수 있는 양을 훨씬 웃도는 양이었다. 이제 한 달 양식 걱정은 덜게 되었다.

*원래 양준은 소무영이 길에서 매복하고 있을까 걱정했다. 소무영이 보기에는 품위가 있으나 실제로는 속이 좁고 음험하며 교활해 기습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러나 양준이 능소각에 도착할 때까지 소무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소무영이 기습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한 것이었다. 문파에서는 제자들끼리 이유 없이 싸우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특히 문파 밖에서 싸우는 것은 더더욱 엄하게 다스렸다. 소무영이 능소각 밖에서 그를 기습했다가 발각될 경우, 그 자신도 화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소무영이 그를 상대하려면 도전에서 수를 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의 신분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능소각 예비 제자의 수는 극히 적었다. 소무영이 양준을 몰랐다 해도 아무한테나 물어보면 그의 신분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양준은 소무영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간파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무영도 육체 경지임은 틀림없었다. 다만 구체적으로 육체 경지 몇 단계인지 알 수 없었다.

‘빨리 수련해 실력을 키워야겠군. 안 그럼, 정말 능소각에서 못 버틸 수도 있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