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2화 (12/853)

제 12장. 약초를 찾아 떠나다

흑풍산맥은 능소각에서 이십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 양준은 전에도 산에 자주 드나들면서 사냥했었기에 익숙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약초를 캐러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준비도 나름 철저히 했다. 마실 물과 주먹밥 몇 개 그리고 삽 한 자루와 자루 하나를 가지고 길을 떠났다.

어느덧 한 시진이 지나 양준은 산기슭에 이르렀다. 멀리 바라보니 산림이 마치 천지간을 가로지르는 태고 시대의 거대한 맹수처럼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주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양준은 기분이 상쾌해졌다.

흑풍산에는 맹수류가 많았다. 이곳에 있는 짐승들은 일정 경지에 오른 무인도 상대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지간히 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감히 흑풍산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했다. 외곽 삼십 리 정도는 그나마 안전지대라고 할 수 있었다. 삼십 리가 넘어가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고, 깊이 들어갈수록 더 위험했다.

양준은 그저 품급이 낮은 약초를 찾으려 할 뿐이었다. 당연히 깊이 들어갈 생각이 없었고, 안전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산으로 오는 한 시진 동안에도 양준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줄곧 머릿속으로 전에 흑풍산에서 발견했던 약초를 되새겨 보았다. 당시는 약초에 대해 몰라 그냥 지나쳤지만, 이번엔 작정하고 왔기에 하나라도 더 많이 캐는 것이 이득이었다.

한참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적지 않은 곳이 떠올랐다. 심지어 필요한 약초 중 한 가지 약초가 자라나는 곳도 생각해냈다.

양준은 온몸에 의욕이 넘쳐났다. 곧장 익숙한 길을 따라 흑풍산 속으로 들어갔다.

반 시진 뒤, 양준은 순조롭게 가시덤불 속에 숨겨진 이치초(利齒草)를 찾아냈다. 좋은 시작이었다. 머릿속에서 띄엄띄엄 떠오르던 기억도 점차 또렷해졌다. 기억을 따라 캐다 보니 저녁 무렵이 되었고, 양준은 이때까지 약초 네 포기를 캤다.

양준이 있는 곳은 흑풍산 외곽으로, 평소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기에 약초가 지속적으로 자라기 힘들었다. 조금만 자라도 캐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때문에 비록 네 포기밖에 캐지 못했어도, 양준은 퍽 만족스러웠다.

다만 넷 다 당장 그에게 필요한 약초들은 아니었다. 품급도 높지 않은 범급 하품 약초들로 공헌당에서 공헌치와 바꿀 수 있었다.

이제 곧 해가 질 시간이었다. 양준은 걸음을 재촉해 해가 지기 바로 직전, 기억 속 마지막 약초가 자라는 곳에 가까스로 다다랐다.

이곳은 아주 이상한 곳이었다. 주위에는 초목이 무성했으나, 눈앞에 보이는 땅에만 아무것도 없이 황폐했다. 사방 석 장 이내는 나무는커녕 잡초조차 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한가운데 품(品) 자 모양으로 자란 풀 세 포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풀은 탁한 노란색을 띠고 있어, 얼핏 보면 거의 죽어 가는 것 같았다. 사실 이는 약초 고유의 색상이었다.

이곳의 약초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을 보자, 양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는 곧바로 약초 세 포기를 모두 손에 넣었다.

양준은 그래도 걱정되어 몽 주인이 준 소책자를 꺼내 한참 대조해 보고 나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이 약초는 절지고목초가 틀림없었다. 손에 든 실물과 소책자 속의 삽화는 별 차이가 없었다. 성장 환경까지도 소책자의 묘사와 똑같았다.

절지고목초가 자라는 곳은 풀도, 나무도 자라지 않았다. 그래서 찾기가 아주 쉬웠다. 산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 황량한 곳은 반드시 절지고목초가 있었다.

양준은 절지고목초 세 포기를 조심스레 자루에 넣었다. 그러고는 물과 주먹밥을 꺼내 그 자리에서 먹기 시작했다.

이번에 입산한 목적은 삼엽잔혼화와 절지고목초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제야 그중 한 가지를 찾게 되었지만 양이 너무 적었다.

‘더 분발해야겠군.’

그러나 날이 저물어서 움직이기 불편했다. 양준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날이 밝으면 다시 찾기로 결정했다.

그는 근처에서 큰 나무를 찾아 기어 올라갔다. 나뭇가지에서 알맞고 편안한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고는 눈을 감고 잠깐 눈을 붙였다. 하지만 잠에 들지 못하고 또 검은 책을 불러냈다. 이어 세 번째 장을 펼치고, 향로 생각을 하자마자 향로가 그 속에서 떠올랐다.

이 역시 양준이 뜻밖에 발견한 비밀이었다. 검은 책에서 나온 물건은 모두 도로 저장할 수 있었다. 검은 책은 진혼석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진혼석 자체가 공간을 만들어 물건을 저장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향로를 저장할 수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검은 책은 향로 외 다른 물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혼석이 선택적으로 물건을 받아들이는 건가?’

양준은 한동안 검은 책을 만지작거렸더니 곧 지쳐 버렸다. 오늘은 산길도 적지 않게 걸은 터라, 그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룻밤이 지났다. 이튿날 아침 일찍, 양준은 평소대로 반 시진 동안 육체편을 수련했다. 수확도 나쁘지 않았다. 이틀 전보다 조금 더 수련했을 뿐만 아니라 체내 기감도 점점 더 단단해졌다. 곧 경지를 돌파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마지막 고비만 넘기면 한 단계 더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에 양준은 사기가 크게 진작되었다. 그는 능소각에서 삼 년간 수련했지만 겨우 육체 경지 3단계밖에 이르지 못했다. 그런데 검은 책을 얻고 나서는, 바로 그다음 날에 육체 경지 4단계에 이르렀다. 이틀이 지난 지금, 또다시 곧 경지를 돌파하게 되었다.

육체편을 수련하는 데는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한참 동안이나 쉬어야 점차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양준은 남은 주먹밥 몇 개를 먹어치우고 다시 약초를 찾기 시작했다.

기억 속 약초가 있던 곳은 어제 이미 다 찾아보았다. 오늘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범급 약초들은 가치가 별로 높지 않아 사람들이 다 캐 간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수확이 있었다.

낮 동안, 양준은 약초 7~8포기를 찾아냈다. 심지어 삼엽잔혼화도 두 포기나 찾았다. 이렇게 해서 겨우 수련에 필요한 약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양이 초라할 정도로 적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도 양준은 여전히 산속을 헤매고 있었다. 쉬기 싫어서가 아니라 배가 고파서였다.

원래 오늘은 사냥을 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토끼 한 마리도 만나지 못했고, 손톱만 한 크기의 열매 몇 개만 찾을 수 있었다. 열매는 이가 시릴 정도로 시큼했다. 먹고 나니 오히려 더욱 배가 고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주먹밥이나 몇 개 더 가지고 올걸. 후회막급이군. 이런 산속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으려나?’

배가 고파 쩔쩔매고 있는데 갑자기 앞쪽 숲속에서 불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양준은 곧 정신을 번쩍 차리고 급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산속에서 불을 지피다니 경험이 하나도 없는 바보인가 보군.’

양준이 모닥불에 다가가는 순간,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냐!”

이에 양준은 온몸이 오싹해지며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눈여겨보니 모닥불 옆에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가 큰 이는 건장한 남자였다. 손에는 활을 쥐고 있었고, 활에 화살을 끼운 채 시위를 당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화살 끝은 양준을 향하고 있었다. 남자 옆에는 11~12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남자아이는 어렸지만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오히려 무언가 해보려는 기세였다. 남자아이도 손에 활을 쥐고 있었다. 다만 크기가 훨씬 작아 위력이 커 보이지는 않았다.

시위를 잔뜩 당긴 두 개의 활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지만, 양준은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야생에서 남을 경계하는 마음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때문에 그들이 경계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긴장하지 마세요. 저는 약초를 캐러 입산한 사람이에요.”

양준이 입을 열었다.

이 말에 맞은편 두 사람은 그제야 그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건장한 남자는 천천히 수중의 활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또 불빛이 웬 맹수를 끌어온 줄 알았지. 괜히 놀랐구나.”

“죄송해요.”

양준은 난감해하며 웃음을 지었다.

건장한 남자는 호탕한 편이었다. 그가 양준을 손짓해 불렀다.

“이리 와. 밤바람이 차가워. 밖에서의 생활은 다 쉽지 않지.”

양준은 고맙다고 인사한 다음, 조심스레 다가가 모닥불 옆에 앉았다. 건장한 남자는 줄곧 양준을 훑어보고 있었다. 뼈만 남은 그의 모습은 왠지 동정심을 가지게 했다.

한자리에 앉았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담 중에 양준은, 이 두 부자가 산기슭에 살면서 사냥하며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나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능숙한 사냥꾼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흑풍산에 여러 번 드나들면서 산속 경험이 양준보다 훨씬 풍부했다.

양준도 자기소개를 했다. 그가 능소각 제자임을 알고 사냥꾼은 살짝 놀랐다. 사냥꾼의 아들은 더욱 호기심을 내비쳤다. 그의 까만 눈이 반짝거리며 양준의 몸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사냥꾼이 말했다.

“우리 집 이 녀석도 무공을 익히고 싶어 했었지. 그런데 자질이 안 돼서 퇴짜를 맞은 거야. 그래서 녀석은 너 같은 무인들을 부러워해.”

이 말에 양준은 지난 삼 년 동안 자신이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동질감을 느끼며 손을 내밀어 남자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양준의 배가 못나게도 아우성을 쳤다. 사냥꾼의 아들은 그 소리를 듣고 웃더니 지니고 있던 보따리에서 건량을 꺼내 양준에게 건넸다.

양준은 감동했지만 받지 않고, 먼저 사냥꾼을 바라봤다.

사냥꾼이 웃으며 말했다.

“먹어. 보아하니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 같은데.”

양준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건량을 받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세 사람은 모닥불을 에워싸고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양준은 깊은 잠을 자지 않고 줄곧 선잠을 잤다. 혹시나 주변에서 위험한 일이 생기면 사냥꾼 부자를 위해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인정에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하룻밤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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