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련전봉-13화 (13/853)

제 13장. 요수와의 싸움

아침이 다시 찾아왔다. 양준은 사냥꾼 부자가 잠에서 깨기 전에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는 떠나기 전에 어젯밤 음식에 대한 답례로 약초 두 포기를 남겼다.

그 약초들을 가루 내서 사용하면 상처를 치료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사냥꾼 부자는 장기간 산속에서 지내니 필요한 때가 있을 터였다.

동녘이 밝을 무렵, 양준은 반 시진 동안 육체편을 수련했다. 수련을 마쳤을 때, 보랏빛 기운을 흡입하는 동시에, 체내 경맥이 갑자기 꿈틀거렸다. 곧이어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 나갔다. 기감이 활발해지면서 경맥 안에서 요동을 쳤다.

‘육체 경지 5단계! 역시 어제 받은 느낌은 경지를 돌파하려는 게 맞았어.’

오늘 반 시진 동안 수련하자 정말 한 번에 경지를 돌파했다. 양준은 더없이 기뻤다. 또한 금신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더 커졌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금신을 얻은 것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경지를 두 단계나 돌파했다. 이것 또한 수련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서 이룬 것이었다. 만약 하루 종일 수련할 수 있다면 그 속도는 얼마나 빠를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다만, 육체 경지는 기초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련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수련 속도도 점차 더뎌질 수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양준은 계속해서 약초를 찾으러 다녔다.

이날도 수확이 적지 않았다. 약초 열몇 포기를 캤을 뿐만 아니라 살찐 토끼 한 마리도 잡았다. 덕분에 배고플 걱정은 면하게 되었다.

입산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양준은 흑풍산 내부로 더 깊이 들어갔다. 거의 외곽 삼십 리의 한계에 이르자, 더는 감히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금 그의 실력으로 맹수를 만나게 되면, 자칫 맹수들의 먹이가 될 수도 있었다.

오늘 수확한 약초의 양은 앞서 이틀보다 훨씬 많았지만, 문제는 필요한 두 가지 약초의 양이 매우 적다는 것이었다.

양준은 사흘 동안 약초 마흔 포기를 찾았다. 비록 모두 범급 하품이지만 괜찮은 수확이었다. 공헌당에 가져가면 적지 않은 공헌치와 바꿀 수 있었다.

그는 오후가 돼서야 능소각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외출 허가는 사흘만 받았기 때문에, 떠난 날을 빼고 내일 아침 전에는 꼭 돌아가야만 했다. 아니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아직 시간은 넉넉했다. 어림짐작으로 지금 능소각과는 백 리쯤 떨어져 있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날이 저물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준은 검은 책 세 번째 장에서 나온 향로가 자신의 실력을 얼마만큼 더 끌어올려 줄까 기대가 되어, 마음은 즐겁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가 능소각까지 절반도 채 가지 못했을 때,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비명소리에는 아이의 울음소리도 같이 섞여 있었다.

양준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잠시 뒤, 그는 얼굴빛이 변하더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다.

비명소리는 전날 밤 마주친 사냥꾼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울음소리는 필시 사냥꾼의 아들일 것이다. 부자는 아마도 위험에 빠진 듯했다.

‘그날 건량을 받아먹었으니 은혜를 입은 거나 마찬가지야. 그냥 지나쳐서는 안 돼.’

양준이 달려가는 동안에도, 사냥꾼의 비명소리는 점점 더 처량해졌다. 오히려 남자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약해지더니 거의 들리지 않았다.

양준은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은연중에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양준이 그곳에 다다르자, 맞은편 언덕 아래로 어두운 동굴 입구가 보였다. 입구 옆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고, 주위는 은빛 거미줄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땅바닥에 작은 활이 떨어져 있었다. 그날 밤 사냥꾼의 아들이 쥐고 있던 무기였다.

양준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들을 땅바닥에 던져 버리고는 어두컴컴한 동굴 입구로 뛰어들어갔다.

동굴 안은 어두웠지만, 물체를 알아볼 수는 있었다.

양준은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동굴 안은 온통 거미줄 천지였다. 동굴 벽과 바닥에는 젓가락만 한 굵기의 은백색 거미줄이 겹겹이 얽혀서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동굴 안은 축축하고 어두웠다.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고, 발로 바닥을 디디면 살짝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양준은 숨을 죽이고 안쪽으로 걸어갔다. 몇 걸음 걸어 들어가니 한쪽에 누에고치처럼 거미줄로 꽁꽁 묶여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바로 그때 만난 사냥꾼이었다.

양준은 앞으로 다가가 훑어보았다. 사냥꾼은 기절했을 뿐, 별다른 상처는 없어 보였다. 양준은 재빨리 그를 깨웠다.

이윽고 사냥꾼이 눈을 떴고, 양준을 보자 다급히 말했다.

“아이를 구해 줘! 아이가 안으로 끌려들어 갔어. 제발 아이를 살려줘.”

“안에 끌려갔다고요?”

양준은 우선 사냥꾼을 먼저 풀어주려 했다. 하지만 사냥꾼을 휘감고 있는 거미줄이 워낙 질겨 한 번에 풀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일단 그를 풀어주는 것을 포기하고, 곧바로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사냥꾼이 뒤쪽에서 외쳤다.

“조심해. 거미 요수야!”

요수라는 말에 양준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요수는 일반 짐승처럼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하지 않았다. 요수야말로 진정한 맹수였다. 지금 양준의 실력으로 이길 수 있는 요수는 하나도 없었다.

흑풍산 외곽 삼십 리까지 안전지대로 지정된 것은 요수가 출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요수가 나타난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안쪽에 요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양준은 더욱 조심성 있게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 정도 걸어가서야 사냥꾼의 아들이 보였다.

남자아이도 거미줄에 꽁꽁 묶인 채, 거대한 거미줄에 매달려 공중에 떠 있었다.

아이의 옆에는 거대한 얼룩등거미 한 마리가 입속에서 빨대처럼 보이는 가느다란 대를 아이의 팔에 꽂아 넣고 있었다. 검붉은 핏줄기가 아이의 몸속에서 거미의 입속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동굴 바닥에는 각종 기괴한 백골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거미 요수가 이곳에서 많은 사냥감을 죽인 모양이었다.

양준은 자신이 거미의 상대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아이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기척 없이 앞으로 달려갔다.

얼룩등거미도 아마 이 순간 방해받을 줄은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한창 맛있게 먹고 있는데, 옆에서 무지막지한 힘이 덮쳐 왔다. 얼룩등거미와 양준은 함께 멀리 나가떨어졌고, 아이도 땅에 떨어졌다.

얼룩등거미는 습격을 받자 크게 노했다. 털이 덥수룩한 긴 발 여덟 개가 땅에서 움직였고, 눈이 양준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양준이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얼룩등거미가 그를 땅바닥에 쓰러뜨렸다.

양준은 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휘둘렀다. 그의 주먹이 얼룩등거미의 입 아래쪽을 맞혔고 놈이 휘청거리는 틈을 타 또다시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거미가 멀리 나가떨어졌다.

양준은 바로 몸을 일으키고는 얼룩등거미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이 요수는 등급이 높지 않군. 아니면 나 같은 건 아예 상대가 되지도 않았을 거야. 그냥 1급 요수에 불과한 것 같아.’

하지만 1급 요수라 해도 그의 현재 실력으로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양준과 거미 요수는 서로를 탐색했다. 얼룩등거미는 느긋했지만, 양준은 살짝 조급해졌다. 아이가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데다, 중독된 증상까지 보였다. 이쪽을 빨리 해결하지 못하면 아이를 구할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얼룩등거미가 입을 벌렸다. 반짝이는 거미줄이 입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더니 곧장 양준을 습격했다.

양준은 이 거미줄의 질긴 정도를 이미 겪어 봐서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에 묶이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양준은 재빨리 옆으로 구르며 거미줄을 간신히 피했다.

하지만 얼룩등거미는 그가 피한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끊임없이 한 곳에만 거미줄을 뿜었다. 양준이 어찌 된 영문인지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동굴 입구가 커다란 거미줄에 의해 차단된 뒤였다. 얼룩등거미는 뒷길을 완전히 끊어버려 그를 안쪽에 가둬 버린 것이다.

“지금 나하고 끝까지 싸워보겠다는 거야?”

‘이 거미를 죽이지 않는 한 밖으로 나가기는 힘들겠군. 기왕 이렇게 된 거, 끝장을 볼 수밖에.’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양준은 발로 땅을 구르더니 신속하게 얼룩등거미에게로 다가갔다. 정면으로 거미줄 하나가 날아왔다. 처음부터 놈의 이 수를 경계하고 있었던 그는 바로 몸을 틀어 피했다.

거미줄 세 개를 연거푸 피하고, 드디어 요수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그런데 양준이 미처 주먹을 날리기도 전에, 얼룩등거미가 앞발을 들어 사납게 공격했다.

양준은 순간적으로 팔을 들어 막았다. 얼룩등거미의 날카로운 앞발이 그의 팔을 관통했다.

양준은 갑자기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흘러도, 그는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도리어 정체 모를 흥분과 기대감이 가슴속에서 일렁였다. 온몸의 뼈가 우둑우둑 소리를 내며 전신에 뜨거운 느낌이 퍼졌다.

양준은 다시 주먹을 날렸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서 주먹이 얼룩등거미의 왼쪽 눈에 꽂혔고, 거미의 눈 두 개가 동시에 터졌다.

얼룩등거미는 깜짝 놀란 듯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는지 놈은 양준의 팔을 관통한 앞발을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양준이 팔의 근육을 꽉 조여 거미가 발을 뺄 수 없게 했다.

양준은 또 주먹을 날렸다. 두 번째 주먹은 바람을 가르며 다시 거미의 눈 두 개를 더 터뜨렸다.

얼룩등거미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리고 몸을 끊임없이 뒤로 움츠렸다. 움직일 수 있는 발 몇 개가 발버둥 치며 양준의 몸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그래도 피가 스며 나왔다.

양준은 통증에 더욱더 흥분했다. 온몸에서 마치 힘이 용솟음쳐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의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양준은 기세등등하게 계속해서 주먹으로 거미를 공격했다. 주먹은 점점 더 강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룩등거미의 이마가 터지면서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얼룩등거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놈은 입에서 끊임없이 거미줄을 뿜어냈다. 양준은 지척에서 몸을 피할 수 없었고, 그는 곧 거미줄에 꽁꽁 묶인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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