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장. 착한 일을 하면 복이 온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양준은 끊임없이 얼룩등거미를 공격했고, 거미는 여지없이 얻어터졌다. 하마터면 머리 전체가 터질 뻔할 정도였다. 생명력이 강한 요수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명력이 강한 요수라 해도, 양준의 계속된 주먹질에 놈은 점차 움직임이 둔해졌다. 결국 거미 요수는 마지막 거미줄을 뿜어내며 양준의 주먹에 죽고 말았다.
양준은 자신이 이리도 가볍게 요수를 물리칠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1급 요수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육체 경지 5단계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야. 나도 적지 않게 상처를 입었지만, 그래도 놈을 쓰러뜨려서 다행이야.’
양준은 얼룩등거미가 확실하게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놈이 자기 팔에 꽂았던 앞발을 뽑았다. 앞발을 뽑아내는 순간, 따뜻한 피 한 줄기가 함께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볼 새도 없이 몸을 얽매고 있던 거미줄을 재빨리 찢어 버렸다. 그러고는 서둘러 땅에 누워 있는 아이를 안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냥꾼도 드디어 거미줄에서 빠져나와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양준이 온몸에 피투성이가 된 채 아들을 안고 달려 나오는 것을 보자, 사냥꾼이 급히 물었다.
“아이는 괜찮아?”
“과다 출혈에 중독까지 되었어요.”
양준이 대답했다.
양준은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 아이를 땅 위에 반듯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자루를 들고 와 그 속에서 약초를 찾아내어 입에 넣고 씹었다. 그리고 일부는 사냥꾼에게 건넸다.
“잘게 씹어서 아이한테 먹이세요.”
넋이 나간 사냥꾼은 망설임 없이 양준의 말을 따랐다. 서둘러 약초를 입에 넣고 꼭꼭 씹기 시작했다.
이 순간, 양준의 머릿속은 더할 나위 없이 명석했다. 약초의 약리 특성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해독할 수 있는 것,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것, 지혈할 수 있는 것 등등 약리를 꿰고 있는 의원 못지않았다.
양준은 입속의 약초를 꺼내 아이의 다친 팔에 발라 주었다. 사냥꾼도 입속의 약초를 꺼내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다.
두 사람의 기대 어린 눈빛 속에서 아이의 창백한 얼굴에 점차 혈색이 돌았다. 호흡도 방금 전보다 많이 안정되었다.
사냥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강철같이 굳세 보이던 그는 대성통곡을 했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직은 아니에요. 제 약초들은 품급이 가장 낮은 것들이라 그저 증상을 완화시켜 줄 뿐이에요. 어서 산에서 내려가 의원을 찾아야 해요. 아니면 고질병이 될 수도 있어요.”
사내는 양준의 말을 무조건 믿고 따랐다.
“그럼, 지금 당장 애를 데리고 의원을 찾아갈게.”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 먼저 아이가 안정되기를 기다렸다가 가요.”
양준이 저지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큰 재난을 당한 사냥꾼은 진작 판단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그저 양준이 말하는 대로 따랐다.
그는 말을 마치고 갑자기 양준도 많이 다친 게 생각났다. 그가 다시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도 상처를 치료해야 하지 않겠어?”
양준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하지만 피를 많이 흘렸잖아. 괜찮아?”
사내는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아주 상쾌해요.”
양준은 몸을 일으켜 껑충껑충 뛰었다.
‘기분이 상쾌하다 못해, 막 흥분되는데.’
양준은 이 모든 것이 금신과 연관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사냥꾼에게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방금 전 거미와의 접전을 떠올리자 다시금 피가 끓어올랐다.
이는 그가 처음으로 겪는 사활을 건 접전이었다. 그러나 조금도 두렵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피를 보자 더욱 흥분이 되었다.
“아!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갔다 올게요.”
양준은 갑자기 자신의 자루를 집어 들고 동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냥꾼은 그저 그가 요수의 시체를 치우려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얼룩등거미는 비록 요수지만 등급이 너무 낮아 그 시체는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양준은 약초를 캐려고 다시 동굴에 들어간 것이었다.
방금 전 얼룩등거미와 접전을 벌일 때, 그는 우연히 동굴 속에 보랏빛 꽃 한 무더기가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에는 자세히 볼 겨를이 없었지만, 다시 생각을 더듬어 보니 저도 모르게 기운이 넘쳤다.
‘만약 내가 잘못 보지 않았다면, 그 보라색 꽃은 바로 삼엽잔혼화일거야!’
삼엽잔혼화는 어둡고 습하며 시체가 많은 곳에서 자랐다. 지금 이 동굴은 그 성장 환경에 꼭 맞는 곳이었다.
기대를 품고 동굴로 되돌아온 양준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고 했지. 지금 보니 과연 맞는 말이군! 사냥꾼 부자를 구하러 달려오지 않았다면, 어찌 나에게 이런 좋은 일이 생길 수가 있겠어.’
눈앞의 보랏빛 꽃송이는 삼엽잔혼화였다. 양도 적지 않아 대충 세어 보니 족히 3~40포기가 넘었다. 양준은 망설이지 않고 약초를 캐서 자루에 넣었다.
한참 동안 약초를 캔 뒤, 흐뭇한 마음으로 되돌아 나가려고 했다. 이때 동굴 모퉁이 쪽에 암홍색을 띤 버섯 모양의 물체가 있는 것이 보였다.
양준은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사발만 한 크기에 암홍색을 띠고 있었다. 어찌 보면 버섯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영지 같기도 했다. 양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몽 주인이 준 책자에도 이런 것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천재지보(天才地寶)라도 되나?’
양준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그것을 캐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뭐든 일단 캐고 보자. 아무튼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잖아.’
양준이 동굴에서 나왔을 때 자그마한 자루는 이미 빵빵해져 있었다.
“가요. 저도 같이 산을 내려갈 거예요.”
양준은 밖에서 기다리던 사냥꾼에게 말했다.
“고맙다.”
사냥꾼은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또 위험에 봉착할까 봐 양준이 따라나선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지나가는 길일뿐이에요. 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양준은 사양하는 말을 건네고 사냥꾼과 함께 급히 산 아래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황혼 녘이 되어서야 오매진에 도착했고, 서둘러 의관(醫館)을 찾았다.
아이를 의관에 맡기고도 양준은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건량을 건넨 남자아이와의 정이 있기에 아이가 깨어나는 것을 봐야 안심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냥꾼은 들락날락하면서 긴장감에 어쩔 줄을 몰랐다. 잠시 뒤, 의원이 시끄럽다며 그를 내쫓았다.
“다행히 제때 처치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아들놈이 죽을 뻔했다고 초(楚) 의원이 그러더구나. 이 장산(張山), 앞으로 평생 너의 사람이 될 테니 마음대로 부리도록 해.”
사냥꾼은 말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양준에게 무릎을 꿇었다.
양준은 부축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했다.
“장씨 형님, 남자는 웬만해서 무릎을 꿇지 않는다고 하죠. 이렇게 무릎을 꿇었으니 은혜는 갚은 겁니다. 이제 더는 은혜를 갚지 못했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저는 아드님이 주는 건량을 먹었으니, 따지고 보면 제가 도리어 은혜를 갚은 거죠.”
말을 마치고 그는 장산을 일으켜 세웠다.
장산은 감동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원이 걸어 나오더니 장산에게 말했다.
“이제 괜찮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네요. 다만 피를 많이 흘려서 아마 한동안 더 잘 것입니다. 이제 깨어나는 것만 기다리면 됩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양준과 장산은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양준은 마음의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몰려왔다. 게다가 그도 상처를 많이 입어 적지 않은 피를 흘렸다. 비록 그 당시는 흥분해서 몰랐지만 몸에 무리가 갔던 것이다. 그는 그대로 의관에서 잠에 빠졌고, 날이 밝을 때까지 통잠을 잤다.
*이른 아침, 능소각.
많은 제자들이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모여 한곳을 바라보며 목을 빼고 기다렸다. 갈구하는 눈빛, 길게 뻗은 목,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까지. 그들의 이러한 모습은 마치 독수공방하던 아낙네들이 다년간 출정했다가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 같았다. 집념에 불타고 기대에 부푼 모습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바로 양준의 오두막이 있는 쪽이었다.
오늘은 양준에게 도전할 수 있는 날이었다. 자리에 있는 능소각 제자들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공헌치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또 어떤 이들은 양준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닷새마다 한바탕 얻어맞다니. 너무 비참한 거 아니야.’
‘나 혼자 동정해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양준에게서 공헌치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도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도전할 거잖아. 아무렴 얻어맞는 거, 내 손에 맞는 게 나을 거야.’
‘그래, 만약 내가 뽑히면 살살 때려야지. 아프지 않게 말이야.’
양준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이들조차 마음속으로 양심이 찔리지 않게 핑곗거리를 찾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 시간에 양준은 이미 일어나 빗자루질을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제자들이 반나절을 기다렸지만 그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발끝을 세우고 오두막 쪽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시종일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양준이 어찌 된 일이지? 늦잠을 잔 건가? 왜 아직 안 나오지?”
“몰라. 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못 본 것 같아.”
“이미 능소각을 떠난 건 아니겠지?”
“그럴 리 없어. 양준의 쇠고집을 몰라. 때려죽인다 해도 나가지 않을 거야. 가려고 했으면 몇 달 전 예비 제자로 강등됐을 때 나갔겠지. 오늘까지 질질 끌 필요가 없잖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런저런 추측을 했다. 그러나 양준이 며칠 전에 외출 허가를 받고 흑풍산에 갔다가,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양준은 평소에 남과 교류하지 않았기에 아무도 그의 행방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한창 시끌벅적할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무리 지어 걸어왔다. 선두에 선 이는 준수한 외모에 품위도 있고 소탈한 미소년이었다. 다만 무슨 영문인지, 소년의 표정은 음침했다. 그는 걸으면서도 이를 갈며 누군가를 욕하고 있었다.
소년의 주변에는 많은 능소각 제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별들이 달을 에워싸듯이 소년을 감싸고 있어 그의 남다름이 더욱 돋보였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자, 소년은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의아해했다.
“어찌 된 일이야? 여기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